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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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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잉스쁘각
작품등록일 :
2023.12.19 01:21
최근연재일 :
2024.01.13 16:14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04
추천수 :
5
글자수 :
162,215

작성
24.01.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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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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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이좋아 아이 행복해

DUMMY

후우······.

따끈한 성수탕에 몸을 담그며, 로베르트가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달칵.


“생전 대마법사 실버헤이즈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다. 이해하기 쉽게 회로도를 그려놓은 것도 그렇지만, 중간중간 회복에 도움이 되는 성수탕을 설치해 놓은 걸 보면 이는 자명하다. 이러한 대마법사의 행태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큰 차이다. 그렇다고 이 던전의 설계자가 실버헤이즈 외 다른 인물이라는 건 생각할 수 없다. 그 정도로 던전의 완성도는 빼어나다.”


“사견이다만, 최근 공연 중인 인기작품의 한 등장인물이 이러한 성격 유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사 깐깐하고 새초롬하다가도, 정작 도움이 절실할 때는 두 팔 걷어붙여 도움을 주는 부류의······.”


작품 이름이 뭐였더라.

동백나무가 어쩌고 했던거 같은데.


“하여튼, 결국 이 지긋지긋한 지하탐험도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보인다. ······이 던전은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길을 되짚어 본 결과, 흥미로운 모양이 나왔다.”


로베르트가 지도를 거꾸로 들었다.


지하 첫 번째 층.

네 칸.

지하 두 번째 층.

세 칸.

지하 세 번째 층.

두 칸.


“그리고, 네 번째 층.”


지도를 뒤집어 보았다.

그러자, 의심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입었다.


“지하로 파고들어하는 역피라미드.”


로베르트는 만전을 기했다.

우선 성수탕에서 모든 체력을 회복한 뒤, 복장점검까지 끝마친 후 회로도 앞에 섰다.


톡, 톡톡.


회로도는 금세 완성됐다.


그긍···.


문이 열리며 후욱, 역한 냄새가 끼쳤다.


“···저거도 치밉은 없었나보넹.”


로베르트가 코를 쥐어 잡았다.

혐기성 세균에 의한 황화합물의 냄새.

흔히 말하는 계란 썩은내였다.

던전의 개폐(開廢)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후웁···. 푸하! ······지옥아종들이 도달하지 못한 심부(深部)인 모양이다. 황화합물의 냄새로 보아 그 외의 침입자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베르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방의 중앙.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건 석관이었다.


“······이건?”


석관의 전면에는 회로도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알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는 평면에 회로도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해석하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석관이라는 입체에 회로도가 조형되어 있었던 탓에 구별이 힘들었다.

나중에 탁본이라도 떠서 바닥에 펼쳐보지 않는 이상 상세한 해석은 힘들어 보인다.


탁, 탁!


두드려보니 제법 두껍다.

안에 무언가 빈 공간이 있는 거 같기는 하지만, 부피나 무게까지는 가늠이 안 됐다.


“끙, 차!”


하는 수없이 뚜껑을 밀어 안쪽을 열어보니.


“······뭐야? 이게 왜 여기에.”


토치에 비친 형태가 어딘가 익숙했다.

석관 안에 존재하는 건 골램이었다.

아까 고블린들을 제거하면서 눈 녹듯 사라져버렸던 골램의 파편들.

그것이 석관 안쪽에 얌전히 잠들어 있다.


“틀림없어. 동일한 파편들이야.”


외부에 나 있는 흠집들까지 일치하는 걸로 보아 확실했다.

아무래도 개조된 고블린들을 처리하면 골램의 파편들만 따로 빼내져 이 석관 안으로 이동되는 모양인데······.


그게 가능한가?


아니, 애초에 그 말인 즉.


“결국 맞았네. 지옥아종들조차 대마법사의 안배였어.”


즉, 그 개조된 고블린들은 애초 그런 목적으로 배치됐다는 소리였다.


그 순간.


번쩍!


골램이 눈을 떴다.


로베르트에게 녹색 시선이 향했다.

그는 기함하며 멀찍이 물러났다.

양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팽팽한 긴장감 속.

골램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 오랜만의 방문자가 오셨군요. 전 이 던전을 수호하는 골램이에요.>


“어, 음.”


로베르트는 당황했다.

설마 이런 식의 대접은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골램이 석관을 빠져나왔다.


조각나있던 삼등분의 신체가 어느새 조립되어 있었다.

마치 본래부터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틈새와 구멍은 톱니바퀴와 안티매직코팅된 합금에 의해 메워졌다.


<전 이곳에 방문한 자들을 시험하고 있답니다. 당신이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건지, 그리고 이 시련을 통과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젠틀하다.

생긴 건 꼭,


‘골램, 그쪽으로 간다.’

‘골램, 힘들다. 무보수, 휴일 업따.’


이런 소리만 할 거 같은 생김새인데 이런 아이러니라니.

고슴도치마냥 바짝 곤두서있던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로베르트는 더듬거리면서도 질문에 대답했다.


“대마법사 실버헤이즈의···. 유산을 찾기 위해 왔다.”


<유산을 찾으러 오셨군요? 왜 주인님의 유산을 찾으시나요?>


“······그거야, 그. 뭐···. 대단하니까? 대마법사의 유산. 정수라든가. 마나퍼즐이론이라든가. 어, 음. 당장, 눈앞에 있는 그 쪽도 훌륭하고 말이지.”


<어머나. 칭찬 감사해요.>


그긍.


골램이 기지개를 켰다.

구부정했던 허리가 좌악, 늘어났다.


순식간이었다.

사각형에 사각형과 사각형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던 몸이 수십, 수백 조각으로 분할됐다.

사람을 닮았으나 머리, 상반신, 하반신으로 구분된 신체.

각 면을 구분 짓는 절지(節肢)의 모습은, 사람의 실루엣을 한 곤충처럼 보인다.


<······그런데.>


골램이 시선을 향해왔다.

비뚜름하게 사선으로 기운다.


<대단하니까 원한다. 그것뿐인가요?>


꿀꺽.


골램의 기세가 이전과는 다르다.

마치 귀뚜라미를 앞에 둔 사마귀처럼.

로베르트는 가까스로 토악질을 참아냈다.


“······마나퍼즐이론이 필요해. 대마법사께서 남긴 특허는 셀 수 없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유산은 남기지 않았어. 마나퍼즐이론을 완벽히 숙지하고, 발전시키는 게 우리 후대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지식욕인가요? 아니면,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공명심인가요?>


“······그런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로베르트는 당장 물 한 모금이 시급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식도와 위주머니가 빨래바구니의 양말처럼 뒤집어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둘 다. 마나퍼즐이론에 대해 궁금한 것도 사실이고, 그걸 발표해서 유명해지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에라 모르겠다.


애초, 로베르트는 위정자가 아니다.

협잡꾼도 아니고, 하물며 셈에 밝은 장사치도 아니었다.

생각한 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

가장 욕망에 충실한 타입.

포커페이스를 따져가며 얼굴색을 바꾸기엔 그럴 깜냥도 안 될 뿐더러,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래서 질렀다.

로베르트는 오롯이 자신의 욕망을 토해냈다.


-자신은 몬트레이 가문 내에서도 애매한 위치다.

-후계는 이미 큰형이 굳혀놓은 상태고, 둘째형도 칼질에 소질이 있어 가문 내 기사단 소속이다.

-그에 비해, 자신은? 재능은 나쁘지 않지만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한계가 발목을 잡는다. 상아탑 출신에 비하면 한 끗발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지금도 아카데미에서 시간강사로 겨우 먹고 사는 삶이다. 짬짬이 렙에서 일하고 돈을 받지만 명예도 뭣도 없는 돈벌이 수단이다.

-명예를 원한다. 돈을 원한다. 안정적인 수익을 기반으로, 교수직함 따서 적당히 살고 싶다.

-구체적으론, 정원이 딸린 저택에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 둘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

-거기다, 남에게 무안당하지 않고 친지들의 눈치 밥 안 먹는 정도의 삶을 원한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푸념들.

로베르트한테도 경계라는 건 있다.

처음 만난 사람···.


아니지.

골램에게 자기 속내를 곧이곧대로 싹 다 나불거린다는 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이 골램이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좋은 청자였다.

골램은 아주 자연스럽게 추임새를 넣었다.

절묘하게, 가벼운 질문을 넣어 대답을 유도했다.

출세에 대한 욕구.

인정을 향한 갈망.

그런, 정서적인 가려움을 한 차례 긁어주는 것으로······.


골램은 로베르트의 지식부터 시작하여 가치관까지.


하물며, 지금 입고 있는 속옷 색깔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독심술사나 세뇌 수준이다.


로베르트도 뒤늦게 깨달았다.


‘시발, 나도 미쳤지. 오늘 행운의 색이 빨간색이라기에 빨간 팬티를 입고 왔다는 건 둘째 치고, 근처 잡화점에서 남성용 빨간 팬티가 동이 났다기에 하는 수 없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로베르트는 얼른 자괴감에서 멀어졌다.

사타구니에 쓸리는 레이스가 그의 죄악감을 부추겼다.


<그렇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공명심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고 해도 좋을까요?>


“······뭐, 정리하자면.”


로베르트로선 도전자의 팬티 색 보다 목적에 집중하는 골램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골램은 석관의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 혹은 그녀는 손등에 턱을 괸 채, 주욱 로베르트를 응시하다가.


<그럼, 마지막으로 묻지요.>


시선이 반짝였다.

로베르트는 순간, 표정따위 없는 철편(鐵片)의 형태 안에서 감정하나를 잡아냈다.


그건, 즐거움이었다.


<시련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꿀꺽.


로베르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



——————————

[“실버헤이즈”의 던전 공략 성공]


-공략 성공 회수 001회

——————————


로베르트는 시련을 통과했다.

어려웠지만, 할 만 했다.

솔직히 이때까지 겪었던 난관들이 조금 더 어려웠으니.


짜릿한 동시에, 로베르트는 혼비백산했다.


공략회수 때문이다.


“1회는 또 뭐야? 그럼, 10회차도 있고 100회차도 있단 소리?”


회수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하지만 오히려 열망이 피어올랐다.


“······다음 회로는 어떤 모양일까?”


마치 퍼즐을 푸는 듯한 감각.

세 살 배기 아기의 양 손에 나무블럭이 쥐어지면 이러할까.

로베르트는 거기서 원초적인 즐거움을 찾았다.


때문에 남아있던 식량도 확인 안 하고 2회 차를 돌았다.


2회 차 공략은 손쉬웠다.

하지만, 놀라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똑같았기 때문이다.


-지옥 아종의 출현

-부숴진 골램의 파편

-골램 파편으로 개조된 고블린까지.


등장 타이밍이나, 공격패턴.

개조된 고블린의 형태 등등에 조금씩 변화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비슷했다.


그리고 2회 차를 공략하자, 로베르트는 확신했다.


실버헤이즈가 모종의 방법으로 이 던전을 허수차원에 고정했다고.

거기다 무한한 다중차원을 끌어와 이곳에 투사시키고 있다고.


일리 있는 추측이다.

애초 자신이 이 던전을 발견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그의 던전이 고향에서, 그것도 10년이나 지난 후에 발견됐다?


실버헤이즈가 유언을 남기고 죽은 직후.

사람들이 고향 땅을 안 뒤져 봤으려고.

탐침봉으로 산이며 들이며 이곳저곳 쑤셔봤겠지.


아마도.

아마도···.


공간을 유리시켜 차원의 틈에 고정한 것이겠지.

그래.

마치, 인벤토리 마법처럼.


“백팩에다가 10파인트 용량의 인벤토리 마법을 인첸트한다고 쳐도, 고정하는데만 한 달 내내 걸리는 걸···.”


하물며 이 던전을 고정한다면 얼마나 걸릴까?

10년이라는 세월은 던전을 고정시키고, 안정화하는데 걸린 시간이리라.


로베르트는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실상은 그저, 실버헤이즈의 과오를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교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을 뿐이지만.


흥미를 끄는 건 허수차원에 던전을 고정했다는 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회로가 계속 바뀌잖아?”


처음 즐거움을 주었던 동기.

회로의 형태가 1회 차 공략과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낌새는 있었다.

몬스터의 배치도 조금씩 다르고.

출현 타이밍도 다르고.

당연히 회로도 다르겠지.

여기서, 로베르트는 한 가지 추측을 더했다.


“그렇다면, 3회 차 회로도 다르겠지?”


네 번째도?

다섯, 일곱, 열, 스물···.

백 번째 회로도?


로베르트가 셈을 해 봤다.

던전엔 총 열 개의 회로도가 있다.

모든 회로가 쓸모있는 건 아니지만, 개중 네 개는 ‘진짜’였다.

금은보화도, 골램도 필요 없다.

자신이 던전을 공략한 이유는 저 회로도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던전 1회 공략때 마다 회로도 4개. 최소 100회 공략이라고 가정하면······. 400개.”


400개의 회로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차고 남는 장사다.

단순히 이론마도학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실험실 하나 차리고 대충 아무 대학원생이나 갈아 넣어도 특허가 튀어나오는 수준.


몸이 달았다.


작가의말

길어서 두 편으로 쪼갰습니다.

오후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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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끝까지 간다 23.12.29 9 0 18쪽
11 골목식당 찍으라는 소린가 23.12.28 9 0 11쪽
10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23.12.27 48 0 18쪽
9 도움! 23.12.26 12 0 13쪽
8 절로 웃음이 났다 23.12.25 11 0 15쪽
7 풍년이었다 23.12.24 10 0 14쪽
6 록맨처럼 벽타기라도 할까요? 23.12.23 13 0 12쪽
5 손은 눈보다 빠르게 23.12.22 14 0 13쪽
4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니까 23.12.21 19 0 13쪽
3 일단 저장부터 하자 23.12.20 2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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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앞의 주인공 23.12.19 34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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