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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앵무의 글공간

엘프세계에 떨어진 한식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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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앵무
작품등록일 :
2019.08.19 00:23
최근연재일 :
2019.10.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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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473

작성
19.08.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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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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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8쪽

7화. 콩비지전과 콩비지찌개

DUMMY

콩비지.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해 두부 집에서 종종 콩비지를 얻어오곤 했다. 두부를 만들 때 생기는 콩비지는 일반 두부보다 맛이 떨어져 상품가치가 없어 음식물쓰래기 처리겸 겸사겸사 주는 그런 재료다. (북한에선 콩비지를 짜지 않고 그냥 만들어 영양소가 풍부해 고급 재료에 속했다고 후에 알게 되긴 했지만. 그건 따로 '되비지'라고 불렀다.)


그런 걸로 어머니가 적당히 얼마 없는 채소와 함께 만들어내던 요리가 바로 지금 내가 만들려는 콩비지 요리다. 이처럼 콩비지는 가난한 요리였다. 이게 엘프 누님에게 먹힐지 말지는 내가 이 맛을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달려있다.


과거 회상에 잠긴 것도 잠시, 나는 바로 요리에 들어갔다.


먼저 '콩비지전'부터다. 전 종류가 그렇듯 속재료는 만드는 사람 맘대로다. 이곳 사람들이 채식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에 야채를 듬뿍 넣어서 반죽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나는 도마를 꺼내 먼저 야채들을 씻고, 다졌다.


-탁탁탁탁탁탁탁


도마 위에 경쾌한 칼소리가 울려 퍼지고, 양배추(요람슈, 엘프요람처럼 둥글게 생긴 슈[배추]) 8분의 1통, 양파(알봉초, 알처럼 생긴 봉초[파]) 1개 반, 파프리카(캡시컴벨, 종모양처럼 생긴 캡시컴[고추]) 1개, 쪽파(가지봉초, 가지처럼 생긴 봉초[파]) 한 줌을 모두 잘게 다졌다.


이걸 대야그릇에 모두 담아 손으로 잘 섞고, 여기에 콩비지를 넣어 반죽한다. 이 세계엔 비닐장갑이란 개념이 없어 깨끗이 닦은 손으로 잘 버무렸다. 그래도 역시 음식은 손맛 아니겠는가.


하지만 두부를 만들 때 나온 콩비지는 단백질이 대부분 두부로 넘어가 맛이 떨어진다. 이걸 보완하기 위해 소금(나중에야 안 거지만 이곳에선 소금을 '바다씨'라고 부른다고 한다. 바다에서 난 씨앗이란 뜻인가 싶었다.)과 후추(검은향초열매)가루를 반죽에 섞어준다. 후추는 열매의 형태라 약사발에 넣고 막자로 으깨 가루로 만들어 썼다. (약사발과 막자는 차를 가는 데 써서 집에 이미 있었다.) 믹서기는 아직 안 말라서 쓰기가 좀 그랬다.


아까 감자껍질튀김을 하느라 썼던 아까운 기름을 재활용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을 켰다. (나머지 기름은 다른 통에 담가두었다. 곧 쓸 일이 올 거다.) 어느 정도 달궈졌다고 생각되었을 때, 이 콩비지전 반죽을 납작하고 동그랗게 모양내서 하나하나 프라이팬에 올려놓는다. 반죽의 양을 보니 대략 10개는 나올 것 같았다.


우선 다섯 개를 먼저 부쳤다.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주방에서 퍼져나가고, 엘프 자매도 그 구수한 냄새에 관심이 간 모양이었다.


이제 누님께 부탁했던 '매콤한 맛이 나는 채소'를 쓸 차례였다. 생김새가 영락없이 홍고추였다. 이 고추를 이세계에선 '붉은(레드) 캡시컴'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난 콩비지의 부족한 맛을 이 매콤한 맛으로 가릴 생각이었다.


고추 하나를 송송 썰고 다시 썬 고추를 반으로 갈라 하나씩 반죽 위에 올려둔다. 먹어보니 엘프의 입장에선 좀 매울 수 있으니까 매콤한 맛만 나도록 최대한 적게, 그리고 장식으로 쓸 수 있도록 적당히 반죽 위에 올렸다.


한쪽 면이 다 익었으니 뒤집개로 뒤집어두고 반대쪽도 익으면 콩비지전 완성이다. 이 짓을 한 번 더 해 10개의 콩비지전이 만들어졌다.


콩비지전이 완성 되었으니 이제 콩비지 찌개를 할 차례였다. 인덕션이 하나 밖에 없어 한 번에 하나의 요리밖에 못하니 조금 불편했다.


우선 냄비에 물을 넣고 센불로 끓인다. 남은 콩비지 양이 뚝배기 한 그릇 정도밖에 안 나오니 물을 그에 맞게 적당히 넣어주는 게 포인트다. 그리고 이제 야채육수를 만들어야한다.


말린 표고버섯 3개(흉터버섯), 양파 껍질과 남았던 양파 1개를 반으로 가른 것과, 아까 쪽파를 썰고 남은 파뿌리, 그리고 아까 손질 했던 양배추의 겉잎을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아 야채육수를 우려냈다.


이 육수가 잘 우러나야 부족한 콩비지 맛을 보완할 수 있다.


우려내는 동안 도마를 씻고 나니 육수가 보글보글 하며 끓어오르자 냄비뚜껑이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뚜껑을 열고, 누님들이 쇼핑을 하고 오는 동안 불린 다시마(바다초)를 냄비에 넣었다.


이렇게 5분간 더 끓여 우려내면 야채육수 완성이다. 이 육수를 쓰기 위해 다시마 빼고 나머지 건더기를 건져낸 다음, 그 표고버섯과 양파를 통 썰어 다시 육수로 퐁당 빠뜨렸다. 그냥 버리기엔 아깝고, 고명으로 충분하니까. 그 다음 불을 약불로 줄이고, 남은 마지막 콩비지를 모조리 부어 넣고 좋은 냄새가 날 때 까지 저어준다. 그렇게 10분간 저어주니 콩비지찌개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마지막으로 남은 후춧가루를 조금 뿌려 간을 맞추면 완성! 만드는 동안 콩비지전이 식어서 기름을 두르고 잠깐 부쳐서 데워주었다.


거기에 콩비지찌개와 함께 곁들이라고 누님이 오는 동안 준비한 엘프보리밥을 밥그릇에 옮겨 담아 주었다.


나는 자신 있게 음식을 서빙하며 외쳤다.


"콩비지전과 콩비지찌개 나왔습니다! 맛있게 잡숴보십시오!"


엘프 자매는 생전 처음 보는 요리에 신기해했다.


"이게 콩비지전이고, 이게 콩비지찌개?"

"오오. 맛있겠다."


두 누님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두 누님이 먼저 콩비지전을 입에 넣었다.


-아암.


콩비지전을 입에 넣자 두 엘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오, 이건?"

"맛있어요!"


엘프 자매는 다시 콩비지전을 하나 더 먹고 맛을 평가했다.


"이 노릇노릇하면서 기름지고 담백한 식감. 거기에 야채를 넣어서 아삭아삭한 식감도 추가했어. 이건 요람슈를 넣었나보네, 아저씨?"

"네, 우리 세계에선 양배추와 비슷하던데 말이죠. 양배추는 신선하고도 아삭한 식감과 적은 양으로 부피도 많아서 자주 쓰이는 재료입니다. 그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선 오래 전을 부치면 안 됩니다. 애당초 콩비지를 오래 구우면 퍽퍽해져 모양이 망가지니까요. 그래서 콩비지전을 강불에 빠르게 노릇노릇 익혀낸겁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이 미묘한 향은 바로 검은향초열매. 이 향과 기름진 냄새가 어우러진 풍미가 식욕을 자극해주고 있어···!"


실제로 후추는 식욕을 자극시키는 효과가 있다. 기름진 음식에 침을 흘리는 까닭은 고칼로리의 음식을 먹고자하는 생명의 본능 때문이고.


"야채로 이런 식감이라니 샐러드보다 훨씬 맛있어요! 거기에 마지막으로 오는 이 캡시컴의 매콤한 식감이 악센트를 줘서 뒷맛도 물리지 않고 깔끔하고요."


다행히 이 고추의 양이 엘프의 입맛에 알맞았나 보다. 나는 릴리 누님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근데 비교대상은 또 샐러드인가? 샐러드에 미친 종족 같으니라고.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콩비지찌개도 한번 잡숴보겠어요?"


엘프 자매는 숟가락을 이번엔 콩비지찌개가 담진 냄비로 옮겼다. 산뜻한 후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해주었다. 누님들은 버섯 고명까지 올려 한 숟가락을 떠먹었다.


-사르륵


"으음?"


이것도 엘프에겐 신기한 맛인 듯 했다.


"입···, 입에서 녹아 사라졌어! 마치 부드러운 죽 같아."

"입에서 사라지면 먹는 느낌이 잘 안 나서 고명과 함께 먹으니 먹는 느낌도 나네요."

"그리고 이 콩비지찌개라는 거 아까의 콩비지전보다 담백해. 야채육수를 써서 그런가? 뱃속을 뭔가 따뜻시원하게 채워주는 느낌이야."

"이 흉터버섯. 말려서 그런지 맛이 농축되어서 국물 맛도 좋고, 그냥 먹는 것보다 좋아요."


이번에도 다행히 야채육수와 후추 처방으로 콩비지 맛이 보완된 모양이었다. 그냥 먹으면 별 맛도 없는 재료라 살짝 걱정했었다.


"하지만 뭔가 2% 부족해. 육수의 시원한 맛도 좋지만, 콩비지가 단백한 나머지 마지막에 텁텁한 맛이 있달까."

"그래서 이 반찬과 밥을 같이 드시면 좋습니다."

"이 새하얀 샐러드는 뭐예요?"


이건 한국인의 밥상에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반찬, 그 바리에이션 중 하나이다.


"백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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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떡 돌리기(3) +8 19.09.06 1,691 36 8쪽
12 11화. 떡 돌리기(2) +6 19.09.05 1,719 36 9쪽
11 10화. 떡 돌리기(1) +7 19.09.04 1,810 35 8쪽
10 9화. 촉박한 시간 +7 19.09.03 1,929 38 7쪽
9 8화. 밥과 백김치 +8 19.09.02 1,944 40 8쪽
» 7화. 콩비지전과 콩비지찌개 +7 19.08.30 2,000 42 8쪽
7 6화. 감자껍질칩과 두부 +8 19.08.29 2,117 45 9쪽
6 5화. 난민신청(3) +10 19.08.28 2,121 43 8쪽
5 4화. 난민신청(2) (수정) +10 19.08.27 2,266 45 10쪽
4 3화. 난민신청(1) (수정2) +12 19.08.26 2,524 44 12쪽
3 2화. 감자채전 (수정2) +14 19.08.24 2,817 50 14쪽
2 1화. 엘프세계에 떨어지다. (수정2) +13 19.08.24 3,123 53 8쪽
1 프롤로그. (수정2) +21 19.08.24 3,726 4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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