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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검사가 판타지 무협의 이세상에서 영웅이 되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kinghoya
작품등록일 :
2021.09.21 22:37
최근연재일 :
2021.10.21 18:01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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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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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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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존댓말을 하라고!

DUMMY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정갈하고 은은하게 들렸다. 모닥불로부터 따듯한 기운이 퍼지며, 동굴 안은 제법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 분위기를 맘껏 즐기려는지, 두 사람이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일체의 감정적 교류는 없어 보였다. 별다른 말 없이 어색한 시간만 흘렀다.


괜히 무안해진 흑발의 사내가 불쏘시개로 땔감을 이리저리 들쑤시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모닥불 위에 대롱대롱 매달아진 양은냄비를 향하고 있었다. 입가에 침이 잔뜩 고인 채였다.


“어휴. 맛있겠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밥 생각이 나?”


금발 머리를 한 청년이 손으로 코를 막았다.

비린내와 구수한 냄새가 절묘하게 섞였다.

모닥불 뒤에는, 털이 뽑힌 채로 세상을 하직한 멧돼지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흑발의 사내는 그 멧돼지 것으로 보이는 육신 몇 조각을 냄비 안에 넣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요 뭐. 어유~~ 마이카님은 생각보다 비위가 약하시군요.”

“그 빨간 스프는 먹을 수 있기는 한 거야? 그거 혹시 피로 만든 거 아냐?”

“MSG라고 하면 아시려나? 우리 고향에서는 음식에 맛을 더할 때 이걸 씁니다요.”


흑발의 사내는 라면스프를 다 털어 넣은 후, 국자로 냄비를 저었다.

품에서 꺼낸 숟가락을 흙 묻은 바지춤에 쓱쓱 닦은 후, 국물을 한 술 떴다.

감탄사를 시원하게 내질렀다.

맛있어서 그런 것인지.. 맛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도통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흙과 먼지로 뒤덮인 그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금발의 청년은 그의 추한 몰골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쌈보, 당신 정말 용병 맞아? 하는 짓 보니 칼 하나 제대로 못 다를 거 같은데?”

“용병 맞습니다! 아직 신출내기라 써 주는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유혈의 맹세와는 정말 관련이 없는 건 확실하지?”


마이카는 쌈보라고 하는 사람의 흑안(黑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카라파 왕국의 왕족 혈통을 보여주는 표시가 바로 저 검은 눈동자.

그 덕에 쌈보는 유혈의 맹세 일원으로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음. 그런 사이비 단체하고는 상종을 안 합니다.”

“용병이라면서, 어찌 그리 팽거리그 공용어를 잘 구사하지?”

“귀족분들 상대로 밥 빌어먹고 살려면, 도리 있나요? 공용어 하나 잘하는 게, 다른 용병과는 차별화된 저 만의 장점입죠.”


자신이 속한 조직을 깎아 내리는 발언은 이 세상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공용어를 잘하게 된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금발의 청년은 의심을 풀었다.


“어깻죽지는 좀 괜찮습니까?”


마이카는 팔을 크게 휘둘러보았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거의 없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어깨에 박혀 있던 화살촉이 깔끔히 제거되었다. 어떠한 고통도 없이, 상처가 깨끗하게 봉합되어 있었다.


“당신은 과거에 치유사였나?”

“사람을 치료한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첫 환자라는 사실에 찝찝했다. 그리고 찝찝한 사실 한 가지 더.


“혹시 봐... 봤나?”

“봤죠!”

“............”

“상처를 봐야 치료할 거 아닙니까?”


마이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절해 있는 틈을 타 저자가 자기 몸을 보면서 샅샅이 만졌다면...

정체를 들키는 것도 문제지만, 이성에게 몸을 농락당하는 수치심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감히 일국의 황녀를 건드렸다면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마땅했다.

그를 죽일 양으로, 손에 마나의 기운을 담아보았다.


‘어?’


마나가 전혀 모이지 않았다. 황망함을 감출 수 없던 그녀가 깊이 호흡을 해 보았다.


‘.....’


기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나지막이 흘리며, 앞머리를 쥐어짰다.


“어깨에 통증이 다시 오고 있습니까?”


사내가 근처로 다가오자, 마이카는 뒷걸음 쳤다. 일개 힘없는 아녀자로 전락한 상황에서, 이 못난이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가 딴마음이라도 품게 된다면...


“아니야. 괜찮아.”

“얼굴이 헬쓱한데, 많이 먹고 운동 좀 해야겠습니다. 남자가 이리 약해서야 되겠습니까?”


다행히, 쌈보가 마이카의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그의 순진한 표정으로 보아,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아 보였다. 모닥불 근처로 다시 옮겨 앉은 레보는 냄비에서 고기 한 점을 꺼내 자기 입에 넣었다.


“와우.. 고기 맛이 야들야들한 게 끝내주네... 어서 이리 와서 드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뱃속으로부터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쌈보의 눈치를 보던 마이카가 천천히 모닥불가로 옮겨 왔다. 쌈보가 먼지 쌓인 나무그릇과 스푼을 꺼내서 입으로 훅 불었다. 국물과 고기 몇 점을 그 그릇에 담아 마이카 앞에 내어 놓았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입니다.”


상대가 음식에 독을 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꺼냈다. 마이카가 음식에 손을 댈 생각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그제야 쌈보는 자기 실언을 깨달았다.


“아, 죽는 게 진짜 죽는 것이 아니고, 죽여 준다는 맛입니다.”

“............”

“엄청 맛있다고요. 도대체가 여기 사람들은 비유를 몰라.”


쌈보가 먼저 한술 떠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를 보며, 마이카는 스푼을 들었다. 쌈보가 스푼의 먼지를 후후 털어내던 모습을 생각하니, 쉽게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눈을 꼭 감고, 한 모금 떠서 꿀꺽 삼켰다.


“!!”


그릇에 담긴 국이 순식간에 동났다. 맵고 자극적이지만, 달달하며 중독성이 강한 이 맛을 어디서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느새, 쌈보에게 빈 그릇을 내미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두 세 그릇을 더 퍼먹고 나서야, 숟가락질을 멈췄다. 더 먹고 싶어도 배가 너무 불렀다. 마이카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쌈보를 바라보았다.


“혹시 용병 말고 요리사할 생각은 없어?”

“돈만 많이 준다면야, 뭐..”

“내가 좋은 자리를 소개해 줄 수도 있는데.”

“그러면야. 저는 좋죠!”


마이카로 분한 레나제에게, 황궁의 대령숙수(待令熟手) 보조 한 자리쯤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매끼 맛있는 식사를 먹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었다.


“날 구해 준 은혜를 갚는 셈 치고, 취직자리 알아봐 주지.”

“은혜라뇨? 당치도....”


굳이 자기 공을 깎아 내릴 필요는 없었다. 길바닥에 쓰러진 자를 업고 낑낑대며 이곳 동굴까지 데려왔고, 상처도 치료해 주었고, 멧돼지를 죽여 식량도 마련했고, 따뜻하게 모닥불도 피웠으며, 맛있는 음식까지 대접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그를 구하기는 했다. 그의 차림새가 부유해 보이고, 귀티가 잘잘 흐르는 미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분명 귀족일 거라고 추측했다. 이 정도 귀족이면, 꽤 많은 돈으로 사례하지 않을까? 쌈보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은혜를 갚는다 하시면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취직자리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것으로 주시면..”

“돈을 달라는 이야기군.”

“지금 제가 돈이 없어서, 말 한 필 못 샀습니다.”

“내가 말 한 필 값이야 문제없이 내어 줄 수 있지. 그런데..”


하필, 모든 돈이 칼리에 외숙부의 수중에 있었다. 지금은 자신도 빈털터리 신세에 불과하였다.


“도적을 만나 돈을 모두 뺏겨서, 당장은 주기가 어려워.”


쌈보가 의혹어린 시선으로 레나제를 바라보았다.


“혹시, 마이카님 진짜 귀족이 맞습니까?”

“용병 따위가 감히 날 의심하다니.”

“용병 따위는 의심도 못 합니까?”


그의 눈초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레나제는 자기 입을 탓했다.

쌈보를 자극하지 말아야 했다. 둘만 있는 이 공간에서 그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에.


“아.. 아냐. 쌈보. 대신 차용증을 써 줄 테니, 그걸로 돈을 마련하면...”


품을 뒤지던 레나제의 표정이 하얗게 질러버렸다. 공주임을 증명하는 인장과 만약을 대비해 만들어두었던 마이카 명의의 가짜 귀족 신분증이 감쪽같이 없어져 버렸다.


‘아차! 아까 폭포수에 버린 갑옷 안에 다 두었는데..’


쌈보는 레나제의 허둥대는 꼴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의혹의 눈길이 더 짙어졌다.


“뭐 해요? 차용증 준다며..”

“어, 그게..”

“혹시 입 씻으려는 건 아니요?”

“아니야. 내가 정말로 갖고 있었는데..”

“그냥 오는 길에 잃어버렸다?”


레나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쌈보의 말이 점점 불순해졌으나, 레나제로서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 사태를 벗어날 방안부터 강구해야 했다.


“어이, 당신. 귀족 아니지?”

“뭐?”

“귀족행세 해서, 내게서 뭘 뽑아내려는 수작 아냐?”

“그런 당치도 않는 말을.”

“와.. 얼굴이 반질한 놈들이 사기를 더 잘 친다더니, 그 말이 맞네.”


사기꾼으로 취급받은 레나제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화를 필사적으로 눌렀다.


“쌈보, 이곳을 벗어나면 내가 귀족이라는 걸 증명해 보일 게.”

“어이, 보아하니 네 나이가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존댓말 좀 쓰지?”

“뭐라고?”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어디서 딱딱 반말이야!”


레나제로서는, 용병 나부랭이에게 반말을 듣고 존댓말을 써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쌈보에게 대들었다.


“너야말로 어디서 귀족에게 반말을 지껄여?”

“말을 먼저 깐 건 댁이고, 난 받아쳤을 뿐이고.”

“평민이 귀족에게 무례하게 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여기 법도에 따르면, 죽는 거겠지.”

“그걸 아는 놈이..”

“뭐 어때? 이 자리에는 우리 둘 밖에 없는데? 더군다나 넌 사기꾼이고.”


레나제는 새삼 자기 처지를 깨달았다. 입을 꾹 닫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해 봐야 자기에게 득될 것이 없었다.


“흥. 이제야 현실을 알았나 보네.”

“...........”

“솔직히 말하면 형이 봐줄게. 너 뭐 하는 놈이냐?”

“..........”

“반항하냐? 묵비권 행사야 뭐야.”

“..........”


레나제의 침묵에, 이번에는 쌈보가 속이 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대화하는 방식을 바꿨다.


“좋아, 나란 놈에 대해 말해주지. 나는 말이다..”

“...............”

“첫째, 간땡이가 부어서 뵈는 게 없는 골통. 둘째, 곱상한 외모를 가진 자들에게 환장하는 호색한. 셋째, 귀족이라며 개념 없이 행동하는 작자들을 처단하는 정의의 사도!”

“.......”

“지금 말한 걸 다 합치면, 내가 어떤 놈인지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

“네가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거라는 것도 알게 될 텐데? 어때? 그렇게 대접받고 싶어?”


결국 그의 위협에 레나제는 입을 열고야 말았다.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나.. 날.. 어떻게 할 건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네.”

“날 설마... ”

“지금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할 거야.”

“이.. 미친 새끼! 날 건들면 널 갈가리 찢어 죽여 버린다.”

“네 말대로 한다고 그랬다!”


순진해 보였던 쌈보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쌈보의 기에 눌려 버린 레나제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겠어요. 말을 높이겠습니다.”


쌈보로 분한 한돌이 씨익 웃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난 널 구해 준 사람이다. 그러니까, 예의를 다해.”

“네...”

“그럼 우선 날 형님이라고 불러봐.”

“네엣?”


팽거리그 대륙에서 형이나 형님이라는 호칭은 혈육관계나 의형제를 맺은 사이에서나 붙일 수 있었다. 그 단어의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 못한 한돌은 그저 손윗사람을 표현하는 의례적인 명칭으로만 알고 있었다. 무조건 사람을 하대하는 레나제의 버릇을 고쳐 놓기 위해서 형이라고 쓰도록 한 건데..

레나제의 입이 차마 떨어지지 못했다.


“나한테 존대 말 쓴다며. 뭐 하냐?”

“형..”

“좋아. 너는 내게 빚을 졌으니, 그 빚을 갚아야 한다. 빚 갚기 전에는 절대 도망 못 가.”


레나제로부터 존댓말을 듣고자 하는 소원을 성취해서, 한돌은 기분이 좋았다.

기회를 엿보던 레나제가 슬쩍 말을 이었다.


“내 반드시 은혜를 갚겠으니, 날 보내주세요.”

“뭘 믿고?”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내 부하들이 주위에 있을 겁니다. 그 부하들이 보상을 할 겁니다.”

“흥,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들과 마주치면, 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래, 널 지금 보내주면, 내 목숨은 구하겠네. 그런데 네 목숨은 못 구한다.”


한돌의 손끝이 동굴 밖을 향했다.

낙엽을 밟는 소리와 함께, 달빛에 비친 사람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한돌은 레나제의 손목을 잡고 재빨리 동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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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레나제의 수치 21.10.21 72 3 13쪽
18 운명적인 조우 21.10.18 62 3 13쪽
17 가증스러운 백작과 헬스트롬 21.10.16 6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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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주에게 뻗은 마수 21.10.01 77 1 12쪽
10 무명의 검사를 만나봐야겠군 21.09.29 83 2 18쪽
9 정략결혼은 싫어. 21.09.29 89 2 11쪽
8 마검사 한도르 21.09.29 90 3 18쪽
7 상대가 마검사? 21.09.28 94 2 11쪽
6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21.09.25 103 3 14쪽
5 대전사 대결의 시작 21.09.24 110 2 15쪽
4 이 행성에 오기까지 21.09.23 110 3 15쪽
3 대전사가 되겠습니다. 21.09.22 123 3 13쪽
2 그깟 오우거! 21.09.21 137 3 13쪽
1 한도르, 그의 정체는? 21.09.21 198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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