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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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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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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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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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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DUMMY

세파에 휘둘리다 보니 이런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됐고, 이런 일로 먹고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저놈들을 조금이라도 가르쳐 수족으로 부려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가방끈이 부족하니 달리 할 것도 없겠다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게 사실이지만.


"집에 마당도 넓고 한 번에 서너 놈쯤은 가르칠 만 하지 않겠냐? 체질쯤이야 너도 알다시피 굴리다 보면 알아서 바뀌게 돼있는 거고."


"아하, 작전 나갔을 때처럼 풀떼기나 벌레만 먹이고 굴리라는 말이지요?"


"그래, 메뚜기가 단백질 공급원으론 그만이니까, 우선 한 한 달 정도만 가볍게 굴리면 필요 없는 지방은 어느 정도 빠지지 않겠냐? 그럼 몸도 그만큼 가벼워질 거고, 조금은 사람 꼴이 되겠지. 강제로 시킬 수는 없는 거니까, 하겠다는 놈만 우선 가르쳐보자.

이런 일이 또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그때마다 너랑 나랑 언제까지 둘이서만 설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사격이야 가르칠 수 없겠지만 대검술 까지는 가르쳐서 사람한번 만들어보자."


초리는 선배가 뭔가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공작원 출신들은 누구나 다 그렇지만 한번 결심하면 돌아볼 줄 모른다. 작전 중이라면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전멸당하기 때문이다.


강호의 훈련이란 말을 듣고 난 초리의 눈이 가학적으로 빛났다.


"흐흐, 재밌겠네. 이제부터 앞만 보고 가는 건가? 좋습니다. 제가 제대로 굴려보지요."


다음날부터 주택의 마당에서 꽥꽥대는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돼지를 잡는 줄 알았던 모양인지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난, 분명히 너희들한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줬었다. 그리고 너희는 자발적으로 훈련을 받겠다고 했고 그런데 이까짓 것도 못 견딘다고?"


초리가 강도 높은 체력단련을 시키던 중 쓰러져버린 놈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돼지들은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사람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더덕이나 당귀, 민들레 같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피를 맑게 해주는 풀뿌리들을 말린 가루에 쌀, 옥수수가루 등을 섞은 미숫가루에 단백질원으로 고기는 비싸기에 주변의 논밭에서 메뚜기와 개구리 등을 잡아 섭취하도록 하고 하루 8시간이 넘도록 강도 높게 굴린 결과다.

굴릴수록 지방은 조금씩 근육으로 바뀌어갔다.


그래도 공작원들이 작전 중에 먹었던 식재료보다는 훨씬 양반이다. 자신들이 먹었던 그 재료 그대로 먹이려고 했다간 다 도망가 버리고 한 놈도 없을 테니까.


돼지들이 사람 꼴을 찾아가고 있는 동안 10명이나 병신이 돼버린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그게 다 권영감의 힘이겠지. 그럼 재력 외에 뭐가됐든 또 다른 힘도 가지고 있다는 건가?


도대체 정체가 뭘까?

갈수록 영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자네 오늘은 날 좀 도와줘야겠네.


영감의 호출이 있었다.

전화로 끝낼 수 없는 일인가?


"어디로 가면 됩니까?"


-명동 오리엔탈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오게.


"알겠습니다. 곧 가지요."


전화를 끊은 강호는 사람 꼴이 돼가고 있는 돼지들을 굴리고 있는 초리를 불렀다.


"철우야, 나하고 영감한테 가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초리가 물었다.


"왜요? 오랍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영감이 쓰라고 내준 마츠다 파밀리아는 낡았지만 말썽 없이 잘 달렸다.

가는 내내 왜 불렀는지 알 수가 없어 머리를 굴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감은 뭔 놈의 비밀이 그렇게 많은 건지.. 공작원 출신인 자신보다도 더 한 것 같았다.


강호는 눈앞에 있는 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의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자 차에 타고 있는 영감을 볼 수 있었다.


검게 번들거리는 머스탱 보스302라는 자동차는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길바닥에서 저런 차가 굴러다는 것은 어디서도 본적이 없었다.


"자네 차는 여기 세워두고 이차를 타면 돼. 운전은 초리라고 했었지? 자네가 하도록 하고."


"거참, 데리고 다니던 애는 어디다 두시고..?"


"좀 하는 줄 알고 데리고 다녔던 건데, 그날 보니 영 아니야. 그러니 자네를 불렀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묻진 않았다.

필요하면 알려주겠지.


차가 출발하자 영감이 입을 열었다.


"지금껏 사고 친 놈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야. 그놈들 말고 다른 놈들도 올 거고. 허허,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도 않나?"


"내가 알아야 될 일이면 어련히 알려주시겠지요."


"역시 입이 무거운 사람이야. 그래서 마음에 드는 거기도 하지만. 오늘 강남땅을 거래하게 될 걸세."


.......


강호의 반응을 기다렸던 모양이지만 아무반응도 없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천중건설과 함께 다른 건설사들도 모이기로 했지. 난, 그중에 조건만 어느 정도 맞으면 유성건설로 땅을 넘길 걸세. 문제는 자신들과 계약이 틀어졌을 때 지독한 중국 놈들이 과연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느냐 하는 거지. 그때를 대비해서 자네의 힘이 필요한 걸세."


"알겠습니다. 그런데 댁이 성북동이라고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으허허. 그게 궁금했었던 모양이로군. 성북동은 집이지, 이곳 명동은 내 사업장이 있는 곳이고."


"아, 그랬었군요. 그런데.. 명동은 사채업자들 소굴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강호의 눈길을 안다는 듯 영감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유성건설에 내 돈이 제법 많이 들어가 있어. 그래서 땅을 주려는 것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땅 일부를 천중에 줄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중국 놈들 하는 짓거리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힘 있는 놈들까지 천중을 밀고 있으니 화가 안날수가 있나."


"오는 게 그 두개 회사 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진 않지만 다른 놈들도 다 똑같아. 덕지덕지 욕심만 많은 놈들이라 아예 배제할 생각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강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정이라곤 머리에 털 난 뒤로 처음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철구는 놀란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흐흐, 선배, 여기가 자그마치 7천 평이랍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저 너른 터에 온통 기와집들하며.. 굉장하네요."


"넌 놀랄 것도 많다."


별채중의 한곳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간 커다란 방안엔 누군지 알지도 못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상석이 비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권영감의 자리인 것 같았다.

권영감은 서슴없이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강호도 비어있는 영감의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철구역시도.


모두가 차려져 있는 요리엔 손도 대지 않고 권영감을 쳐다보기 바빴는데 초리의 눈만 열심히 상위를 더듬고 있었다.

저러다 침이라도 떨어트리는 건 아닐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권영감이 입을 열었다.


"미리 얘기 했던 대로 조건들은 다 가져오셨을 거요. 그러니 어디 봅시다, 내 맘에 드는 것이 있는지."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권영감의 앞으로 두툼한 봉투를 쌓아 놓으며 말했다.


아하, 사람 말을 하는 돼지가 여기도 있었구나.


"강남기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족제비도 있고.


"세류건설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너구리도 있었구나.


"헤헤, 영동건설 이상무라고 합니다."


자신이 나서서 할 일이 없으니 무료한 시간을 죽이려고 애꿎은 사람들의 얼굴이나 쳐다보면서 품평을 하게 된다.


저놈 왕전무라고 했었지? 기분 나쁘게 뱀처럼 보이는 눈을 가졌구나.


"아, 그리고 내가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식사들 하시구려. 차려 놓은 음식을 식혀버리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권영감의 어깨너머로 슬쩍 서류를 넘겨다보았지만 지분관계는 어떻고 개발비용이 어쩌고저쩌고...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돈으로 팔고 사고하는 게 땅 인줄 알았더니 땅덩어리가 크면 그것도 아닌 모양인지 좌우간 뭔가 복잡해 보였다.


쯧. 내가 그렇지 뭐... 공연히 자괴감만 든다.


초리는 여전히 식탁 위만 노려보고 있었다. 꼬락서니를 보니 식탁하고 한판 붙기라도 할 모양새다.


영감의 손이 바삐 종이를 넘기더니 얼굴이 변해 천중건설 임원을 노려보았다.


"허, 조건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건방지게 협박을 해?"


차가운 뱀을 연상시키는 천중건설 왕전무라고 했던 인간이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하하, 회장님 협박이라니요? 그 무슨 무서운 말씀을... 전 그저 높은 분의 뜻을 전달해 드린 것뿐입니다."


노기가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던 영감이 입을 열었다.


"오늘 어떤 식으로든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없던 일로 해야만 하게 생겼습니다. 해량하여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그러자 왕전무의 얼굴색이 변했다.


"감히, 그분의 뜻을 무시하시겠다는 겁니까?"


"허허. 천중건설이 나란 인간을 노인네라고 너무 우습게 본 것 같은데, 어디 마음대로 해봐. 당신들에게 내어줄 땅은 단 한 평도 없으니까."


왕전무라는 놈의 뱀 눈이 세모꼴로 찢어졌다.


"으음.. 두고 봅시다. 우리에게 안 넘겨주고 배길 수 있는지."


강호는 뭔지 몰라도 영감에게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어떻든 결국 밥 한술 뜨지 못한 초리는 아쉬운 눈으로 식탁을 노려보며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파탄이 난 자리를 걷어차고 나온 권영감을 태우고 돌아가는 차속은 어색한 기운만 감돌았다.

강호는 영감이 입을 열 때를 기다렸지만 차에서 내릴 때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


차는 영감의 명에 따라 명동이 아닌 성북동으로 갔다.

초리야 운전을 하고 있다지만 강호는 자신까지 왜 함께 가고 있는지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타인의 의지에 따라 끌려 다니는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을 수는 없었다.


강호의 감정을 느꼈는지 권영감이 입을 열었다.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은 영감이다.


"돈에는 귀신이 붙어있다네."


귀신이라니?


"사람을 홀려 미치게 만드는 전귀(錢鬼)지. 전귀(錢鬼)에 홀린 사람들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돼. 한마디로 돈의 노예가 되는 거라네.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말을 하다 말고 영감은 갑자기 회한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뭐야 , 귀신이라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천중건설에 전귀(錢鬼)가 붙었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람이 하는 말인데 뜻을 모르니 외국어처럼 들렸다.


"군사쿠데타 때 대령계급을 달고 공사장 역할을 맡았던 김장열이가 지금은 여당 부총재를 맡고 있지. 그놈 새끼가 중국 놈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구만.


그놈이 어떤 놈이냐면 말이지...


쿠데타가 성공하자 자금지원을 맡았던 그놈은 민정을 시급하게 장악할 자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지.

군인 답지 않게 잔머리를 쓸 줄 알았던 그놈은 중앙정보부를 맡았던 이정필이와 결탁해 증권회사를 3개씩이나 설립하도록 하고는 대한증권거래소를 장악해 주가조작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증시를 조종해 투기를 부추기고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자 주식을 매도해서 돈을 챙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결재일이 되자 돈을 날려버린 투자자들이 거래 대금을 결재하지 못했던 거야. 아니 할 수가 없었던 거지.

그들의 손에 남은 건 쓸모가 없어져 버린 종이 쪼가리 뿐이었으니까.

대한증권거래소의 주식, 즉 대증주라 불렀던 자신들의 주식 역시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어쩌라고? 여전히 요령부득(要領不得) 한 말이었다.


"그게 바로 증권파동이라 부르게 된 내막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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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23.01.18 261 9 12쪽
23 23화. +2 23.01.16 27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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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23.01.13 269 9 12쪽
20 20화. 23.01.12 27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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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23.01.10 28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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