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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22,508
추천수 :
719
글자수 :
491,767

작성
22.12.28 11:17
조회
351
추천
9
글자
12쪽

7화.

DUMMY

유라가 궁금하다는 듯 얼굴을 들이대고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시는 건가요?"


뭐 이런 여자가 다..


당황한 강호가 얼굴을 붉히며 피했다.


"이만 일어납시다."


유라가 강호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짜랑짜랑 웃었다.


"깔깔깔, 왜요? 내가 겁나요?"


쯧, 누군가 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여자다.


뭐하는 놈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정리하는 수밖에.


이화수는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강호를 보고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기운을 느꼈다.


저놈은 또 뭐 하는 놈이지?


자신이 겁을 주고 쫒아냈던 기자와 한담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서 알지 못 할 위화감을 느끼고 지켜보고 있던 방첩과 소속 이화수는 긴장으로 굳어지고 있는 자신의 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래전 자신을 가르치던 교관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긴장감이다.


뭐냐, 왜 이래?

몸이 좀 좋아보는 것 말고는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내가 왜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 거지? 특별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방첩과 내에서도 특무조는 특별한 기관이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고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필요 시에는 경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정보사 방첩대에서 복무를 하던 중 실적을 인정받아 내부의 특무조에 선발돼 1년이 넘도록 추적과 살인에 특화된 별도의 고된 훈련까지 따로 받았다.


이제는 상대의 살기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까지 지니게 된 이화수였지만 지켜보고 있던 남자에게선 단 한 올의 살기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니...


수련결과 아무리 건장한 일반인이라도 대여섯 명 정도는 언제든 한순간에 병신을 만들어버릴 수 있는 기예를 지니고 있게 된 지금 그런 자신이 긴장을 한다.


모질게 수련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자신감이 조금은 살아났다.

요즘 들어 자꾸 문제가 생기다보니 내가 수련을 게을리 한 탓일까?


대통령에게 찍혀 앞으로 살아갈 집이 남한산성으로 변해버린 사령관으로 인해 정보사 내부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쓰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동안 연무관 출입을 등한시했었다.


그러다 눈에 뜨인 것이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기자.

사령관이 구속됐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특급비밀이라 겁을 줘서 쫒아냈는데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기웃거리는 걸 본 바람에 한 번 더 주의를 주려고 나온 참인데 이상한 인간을 보게 된 것이다.


어떡할까... 무작정 검문을 해야 하나?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만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망설여졌다.

볼수록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이마에 슬그머니 배어나온 땀을 느낀 화수는 망설여졌다.


잠깐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서로 헤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화수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에 따라 강호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신원이 확실한 기자보다는 남자 쪽이 더 수상하게 느껴진 때문이다.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뒤따라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우면산기슭이었다.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알지 못한 화수는 당황했다.


젠장.. 조원들한테 무전으로 연락이라도 할 걸.


어느새 눈앞에 서있는 강호를 보고 후회가 일어났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걸 알았다.


멀리서 봤을 땐 그저 그런 인간인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본 강호는 맹수가 따로 없었다.


강호가 비웃는 것처럼 입 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여기까지 날 따라온 이유가 뭡니까?"


화수는 긴장을 하면서도 자신과 막강한 권력의 힘을 믿었다.

여기까지 와서 저놈이 누군지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잖아.


"수상해서. 우선 네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게 신분증부터 내놔봐."


강호한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신분을 감추는 게 공작원의 운명인데 공작대엔 남아있을까?

있을 리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난 신분이 없는 유령이 돼버렸구나.


"흐흐흐, 신분증이라고?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이화수의 머릿속으로 특진이란 낱말이 떠오르면서 저절로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이 새끼! 신분증도 없다니, 간첩이냐⁉"


이놈도 사기꾼들과 한통속인 놈이다. 교관들처럼 자신의 알량한 권력에 취해 윽박지르는 법부터 배운 놈들. 그러니까 여자한테 까지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겁을 줬겠지.


"크크큭, 정보사 사기꾼 새끼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다 똑같은지. 하긴 가르치던 놈들부터 그랬으니까."


비웃어? 저건 분명 비웃음이 맞지?

화수는 강호의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에 열이 뻗쳤다.


수상한 놈이니 도주하지 못하게 우선 다리부터 한 짝 부러트려 놓고 차분하게 취조를 해봐야겠네.


막상 총을 뽑으려던 화수는 강호의 살기도 아닌 뭔지 모를 무색투명한 눈과 마주치자 동작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마치 눈 속으로 자신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총을 뽑으면 죽는다는 강력한 직감에 품속에 들어간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내가 겁을 집어 먹었다고? 특무조장인 내가?


어찌된 일인지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상대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독? 간첩들이 사용한다는 마비독에라도 걸린 걸까?

그,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강호는 느낄 수 있었다. 정신감응으로 상대를 조종할 수 있다던 글귀가 아주 거짓말 만은 아니란 사실을.


저 새끼 기억만 지울 수 있다면 죽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직은 그 정도로 수련이 깊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되겠지.


화수는 왠지 모르지만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생각을 아는 순간 진득한 진땀이 흘러나왔다.


저 새끼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정신감응으로 인해 강호도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면 뇌파를 키우기 전까지는 정신력이 강한 놈한텐 감응이 먹히질 않는단 말이잖아. 그런 글귀는 없었는데?


가능하면 살려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죽이는 수밖에 없잖아.


화수는 자신의 총을 꺼내가는 강호를 보면서도 꼼짝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아, 이 새끼가 탄창까지..

그런데 지갑은 왜?


"어차피 죽는 마당에 돈은 쓸데가 없을 거 아냐? 그러니 가는 마당에 필요한 사람한테 적선이나 하고 가라고."


"좋아, 죽기 전에 네 정체가 뭔지나 알자. 정말 간첩이냐?"


강호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간첩?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날 따라온 거였구나. 그래 죽는 마당에 시원하게 얘기해주지. 난 너희들이 뽑아서 북한으로 보냈던 공작원이다. 이제 알았나?"


화수는 뒤통수를 두드려 맞기라도 한 것같이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왜, 죽지 않고 여기에 와있느냔 말이지? 흐흐, 네 놈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기만 했으면 내가 여기에 있을 일도 없었겠지. 무슨 말인지 아나?"


강호의 말에 화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놈도 물색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던 놈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짓말보다도 사기에 가깝지 그렇지 않다면 어느 미친놈이 맨 정신으로 북한을 넘나들겠나.

그런데 무슨 훈련을 어떻게 받았기에 자신이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럼.. 조기상하고 문달수중령이 사라진 것도 네 짓이었겠네?"


"흐흐흐, 이제야 눈치 챘구나. 최종 목표가 사령관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별판 자동차를 볼 수가 없더군. 어떻게 된 거지?"


화수는 자신도 모르게 사실대로 진술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사령관이 공작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공작금을 횡령하다 들통 나서 대통령 명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사실은 나도 몰라."


뇌가 안정적인 걸 보니 사실이군.

갑자기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내 짓이란 게 벌써 밝혀진 건가?"


"그건 아니고 조상사하고 문중령 실종이 북한공작원의 짓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중이었지."


"흐흐흐, 그렇단 말이지?"


누구를 어떻게 조져야 분이 풀릴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내 돈을 떼먹은 놈은 이미 교도소로 들어갔단 말이지?

그러면 겨우 그 두 놈으로 복수를 끝내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대통령 모가지 따는 건 쉽지 않을 텐데.. 누구에게 든 가슴을 치밀고 올라오는 분을 풀어야만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지만 자신에게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닌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놈을 죽여 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적이라면 죽이겠지만 난 살인마가 아냐.


쯧. 화수를 쳐다보면서도 살기가 일지를 않았다.

그만두자..


이제 와서 자신을 속이고 이용만 해먹은 부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태백이 보고를 올렸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처리돼있을 것이다.


후-.어찌 살아가야 하나...

길 잃은 아이처럼 막막한 처지에 한숨만 나왔다.


화수는 이제 끝났구나 하고 포기하고 있던 차에 강호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이놈은 또 왜 이래?


"나에 대해서 함구한다고 약속하면 살려주마. 약속할 수 있겠나?"


화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총도 필요가 없겠지?"


당장은 써먹을 데가 없는 총이다. 하지만 저놈은 총을 분실했다고 하면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강호는 총을 포기했다.


"총알은 돌려줄 수 없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그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란 생각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총알을 제거한 빈총을 땅바닥에 던진 강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이화수는 허청대는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는 강호의 뒷모습을 보며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작원, 이름도 모르지만, 약속대로 난 모른 척 할 테니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


강남.


한강 건너 남쪽에 있다고 해서 강남이다.

양잠이 성했고 서울이 가깝기에 채소 및 화훼농가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공동묘지 또한 많았던 곳이다.

그래서 추석이면 성묘객들이 많이 찾아다녔다.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과 언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어 성동구에 속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곳 판자촌의 주민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서울이 됐건 경기도가 됐건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강호는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추적을 끊어내기 위해 이곳으로 스며들어 신분을 감출 수 있었다.


저 살기에 바빠 타인에게 전혀 무관심한곳이었으니까.


이재민들의 판자촌이 들어선 이곳은 아침저녁 가릴 것 없이 연탄가스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만 오면 악취가 진동을 하고 빗물에 공동변소가 넘쳐 똥물이 도랑처럼 흘러내리는 바람에 발 디딜 곳조차 조심해야 하는 곳.


이곳에서 손바닥만 한 밭이라도 가꾸고 있는 사람들은 얄궂은 냄새에도 아랑곳 없이 아침부터 퍼낸 똥을 똥장군에 담아 지게에 매고 가 밭 에 뿌려 댔다.


사람이 살아 갈만한 기본적인 환경조차 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도저히 파낼 수 없을 것 같은 가난이 뿌리 깊이 박힌 곳.


가난이 대물림 해 내려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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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2 23.01.16 273 9 12쪽
22 22화. 23.01.14 258 9 13쪽
21 21화. 23.01.13 269 9 12쪽
20 20화. 23.01.12 278 9 12쪽
19 19화. 23.01.11 271 9 12쪽
18 18화. 23.01.10 282 9 12쪽
17 17화. 23.01.09 28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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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23.01.05 292 9 12쪽
13 13화. 23.01.04 29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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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23.01.02 307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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