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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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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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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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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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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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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go] 0장 5화

DUMMY

오두막에서 가장 넓은 장소이자, 얼마 안 되는 가구가 남아있는 장소.

큰 방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리온, 얼굴이 새파란 타란티노, 단어 그대로 새하얀 모습의 덥수룩한 유령이 있었다.

리온은 편안한 자세를 유지한 체 나무만 남은 소파에 앉았으나. 타란티노는 당장에라도 일어날 법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걸쳤다.

어디서부터 이해를 해야 하는 걸까. 리온은 조금 전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리온과 타란티노의 앞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유령의 이름은 칸. 놀랍게도 스스로 자신을 소개했다.

살아있을 때의 기억이 있는 유령. 칸의 이야기로는 현재 있는 오두막도 자신의 소유라고 한다. 죽은 시점에서 소유권은 상회로 바뀌었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락을 받고자 물어보니.


“음? 딱히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괜찮은 게 아닌가? 여긴 쉼터로 쓰려 했으니. 게다가 자네는 내가 없어도 쓰려 한 게 아닌고?”

“···그렇지.”


호탕한 성격인지 미련 하나 없는 모습으로 허락해주었다. 아니면 유령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간단한 조사라는 이름의 심문이 끝나고, 리온은 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유령과 대화를 나눌 기회는 드물 테니까.


“언제부터 유령이 된 거지?”

“음? 이 상태가 된 것 말인가? 아마···. 10년 전? 그쯤이지 싶구먼. 당시에는 여러모로 당황했으니,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네.”

“10년 전?”

“으음. 정확하진 않다니까. 뭐, 당시에 상인 노릇을 했었으니···. 마을을 돌아다녀 본다면 정확한 시간을 알지도 모르겠구먼.”

“상인이었다?”

“그렇지! 대륙을 돌아다니던 대상인이었네. 상회를 이끌던 상인이었지. 크루의 칸이라고도 불렸다네.”

“크루의 칸?”

“우리 상회 애들이 너무 늘어났다는 의미일세. 처음에는 갈 곳 없는 이들을 모았던 자그마한 상회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지.”

“흠···. 그들은 당신의 지금 상황을 알고 있는 건가?”


칸은 리온의 질문에 그립다는 표정을 짓다가, 눈을 찌푸렸다.


“아마, 알고 있을걸세.”

“···? 어째서 그리 생각하지?”

“마지막으로 활동에 나섰으니까. 저기 있는 양초들도 그 상품일세.”


칸은 리온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며 거실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칸이 가리킨 벽면에 다가가니 언뜻 느껴지는 위화감.


“그쪽에 어긋난 판자일세.”


칸의 말대로 리온의 시선 끝에는 어긋난 판자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판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아니, 이건.


“일부러···. 인가?”

“그렇지. 비밀장치, 라는 녀석일세.”


얼룩과 먼지, 세월의 흔적으로 보이는 판자는 자세히 보면 매끄러운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나무판자에 보이는 광택. 새것이 아닌 판자에서의 광택이 보이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마술 각인···.”

“호오, 자세하게 아는구먼?”

“개인적인 이유지.”


리온은 어긋난 판자의 틈으로 손을 찔러넣었다. 망설임 하나 없는 움직임으로 판자를 잡아당기니,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판자가 열렸다.


“양초?”

“호오, 꽤 대담하구먼. 그래 그건 양초일세.”

“여기에 있는 이유는 뭐지?”


열린 판자, 금고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술식의 의미를 지닌, 마술 각인이다.

리온은 금고의 내부를 차지한 공간과 마술 각인보다 그 금고에 있는 양초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 금고에 양초가 있는 것인지.


“무얼. 내 상품이라 그런 것일세.”

“상품이라고?”


칸은 리온의 질문에 즐겁다는 듯, 묻지 않은 사실까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칸의 소유지에는 항상 일정한 돈을 들여서 마술 각인을 새긴 금고를 준비한다고 한다. 오롯이 상품을 보관하기 위해 값비싼 마술 각인을 사용하는 것이다.

마술 각인을 새길 수 있는 각인사와의 연줄, 마술협회가 인정할만한 금액. 그의 재력과 능력 일부가 흘러나온 이야기였다.

즐거운 듯 흘리는 이야기가 각인사와의 인연에서 드디어 리온의 질문으로 넘어왔다.


“나는 상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것도 상회가 있는.”

“그랬지. 상회가 있으면서 돌아다닌다고도.”

“크···. 그건 내 성미가 그런 것이네. 어찌 되었든. 나는 상품을 다루기 전에는 상회 녀석들에게 연락을 넣어둔다네.”

“연락을···. 거래장부를 위해서?”

“그렇지. 상인 일은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우리 상회에도 정보를 다루는 부서가 있을 정도이니.”


금고에 있는 양초 또한 같은 순서였다고 한다. 물건을 넘겨받기 전, 상회를 통해서 관련 정보를 구하고 가장 이윤이 날 법한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어이.”

“음?”

“상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만.”

“뭔가? 질문이라면 편하게 하게나.”

“보통···. 돈이 되는 정보를 알고 나서 물건을 들이는 게 아닌 건가?”


의기양양하게 혹은 그립다는 듯 이야기를 하던 칸이 리온의 질문에 허를 찔린 듯 얼빠진 얼굴을 했다.

실제로, 당시 칸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물건을 넘긴 상인이 이윤이 넘친다며 소개한 시점에서 실제 이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상인의 흐름, 정보의 흐름, 물건의 흐름, 돈의 흐름. 그들의 이야기가 모든 이의 이야기가 된 시점에서 너도나도 따라 하기 마련인 것이다.


“자, 자네···. 날카롭구먼. 뭐···. 딱히 틀린 방법은 아니건만. 그것도 설명하겠네.”


본래의 칸이라면 재고처리의 양초는 받지 않았으리라. 상회를 통해 연락이 왔을 당시에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들놈이 아직 미숙한 놈이라 어쩔 수 없지.”


그 상인이 제 아들만 아니었더라도.


“아들이 있나.”

“그래. 딱 자네와 비슷할 무렵이겠구먼.”

“아들인데 직접 알려주지 않는 건가?”

“뭐든지 경험일세.”


아들의 실수. 그 실수로 상회는 손해를 입었다. 전체적인 부분을 본다면 큰 손해는 아니었으나, 손해는 손해. 그렇기에 칸은 일부러 자신이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상회의 힘으로 얻은 정보를 분석. 차선이라 판단한 여행을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칸이었다.


“아들놈에겐 미안한 짓을 해버렸구먼···.”

“···미안하네.”

“아니, 괜찮네. 이미 일어난 일이지. 내 아들을 자처한다면, 이미 수긍하고도 남았겠지. 그것보다. 저 물건은 어디로 갈 것 같나?”


암울했던 분위기를 한순간에 날려버린 칸은 양초를 가리키며 리온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양초를 어디에 팔았을까.

리온은 칸에게 편승하며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10년 전이라면, 리온은 어릴 적이다. 어릴 적에 양초가 많이 팔리는 장소는?


“양초···. 귀족인가?”

“호오. 정답일세! 사실, 간단한 이야기지만.”


리온은 열심히 궁리한 정답이었으나, 칸은 간단한 소거법이라며 크게 기뻐하진 않았다.

우선, 상품이 양초다.

양초는 일반적인 평민 이하의 사람이 구매하기에는 값이 제법 나간다. 기사급이 되어도 절약 정신을 내세우며 체면치레만 하는 정도.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남는 것은?

왕족, 어용 상인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물건을 넘기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았다. 남는 것은 돈 많으신 귀족뿐. 칸은 간단한 이야기라며 손님이 될 예정이었던 귀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 높으신 귀족은 아니었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계급이었어. 그렇다고 돈이 적은 것도 아니니 좋은 봉···, 으흠! 손님이었을 예정이었네.”

“봉···.”

“···어찌 되었든. 그 당시의 귀족들은 어둠이 무섭다며 불을 밝힐 것들을 찾았으니···. 오히려 어두운데 불을 밝히면 좋은 표적이라는 걸 모르는가?”

“어둠이 무섭다니···. 귀족은 꿈꾸는 아이인가?”


리온은 기억의 저편에서 귀족의 인상을 떠올리며 감상을 말했다. 칸의 이야기에서 나온 귀족 또한 어둠을 두려워하며 리온이 알고 있는 귀족 또한 어둠을 무서워했다.

칸은 리온의 감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허공을 유영하며 한참을 웃었다. 유령의 몸으로 어떻게 눈물을 흘리는 걸까, 리온이 그런 생각을 할 즈음이 되어서야 칸의 웃음은 멈췄다.


“후우···. 자네의 유머는 마음에 드는구먼! 그래도, 그때는 귀족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어둠을 두려워했다네. 왕님도. 귀족도. 백성도. 심지어는 기사마저도.”


모두가 어둠을 두려워 한 시기. 공교롭게도 리온은 짐작 가는 시기가 있었다.

칸은 자신이 언제 죽었는지. 어느새 유령이 되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했다. 그도 그런 것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경험해보지 못할 경험이니까. 그러나 생전의 기억은 있었다.

생전의 기억을 자랑스레, 씁쓸하게, 그립게, 달콤하게 늘어놓는 그의 이야기. 그의 말속에는 결단코 평범하진 않은 특징이 나열되었다.


-설마···.


대략 10년 전.

모든 인간이 어둠을 두려워했다.

여행길에서 이상하게도 마물이 활발했다.


말속의 특징을 나열하고, 생각을 정리한 리온의 뇌리에 단 하나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때는 마왕의 시기였으니···. 공포에 떠는 것도 어쩔 수 없었네. 뭐, 그때의 자네라면 어려서 몰랐을 수도 있겠구먼.”

“마왕의, 시기.”

“그렇다네. 마왕이 있었지. 동화 속의 존재가 실존했던 시기지! 바람의 이야기로는 믿음직스러운 용사님이 쓰러뜨렸다던 걸.”


마왕의 시기.

단순한 현상. 모든 생명의 종말. 세계의 끝. 다양하게 불리는 존재가 나타나는 일정한 주기를 마왕의 시기, 마왕의 해라고 부른다.

리온 또한 그 시기를 이겨낸 사람이며, 본래라면 지난해가 마왕의 시기--일터였다.


“자, 잠깐. 그렇다면 당신은 마왕의 시기에 죽었다고? 그리고 그 시간이 10년 전···?”


리온은 눈앞의 칸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가, 손이 칸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내뻗어도 닿지 않는 손.

눈앞이 흐려진다.

이번에도 잡지 못했다.


리온은 언제나 보는 광경을 떠올리며 점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온이 꾸는 꿈은 언제나 악몽이다.

눈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무력함으로 소중한 이들을 잃는. 그야말로 악몽.

악몽은 신기루와도 같아서 보이기만 할 뿐. 리온의 손은 닿지 않는다. 칸을 향해 내뻗은 손 또한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리온에게 있어서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현상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진 리온을 도운 것은 대화를 나누던 칸이었다.


“이보게! 갑자기 왜 그러는가!”


눈앞에서 멀쩡히 이야기하던 상대가 갑작스레 당황하더니, 공황상태에 빠진 듯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황.

갑작스러운 사태에 칸은 당황하며 리온을 도우려 했으나 유령인 몸은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칸의 목소리는 들렸는지 리온은 호흡을 천천히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후.”

“진, 진정된 건가? 갑자기 왜 그리된 것인지···. 물어도 되겠나?”


칸의 순수한 물음에 리온은 잠시간 고민하더니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한심한···. 이야기를 들어줘.”

“좋고말고. 얼마든지. 단, 한심한 이야기인지는 듣고 나서 내가 직접 정하겠네.”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여태껏 가벼웠던 기색 하나 없는 진지한 모습의 칸이 리온과 마주했다. 리온은 그 배려심에 이끌리듯 한심한, 한심하고도 한심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세계를 구한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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