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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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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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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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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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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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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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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Again 1987.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수호가 비닐도 뜯지 않는 LP백판을 흔들어 보였다.


“어제 지하상가에서 센 놈 하나 건졌다.”


동인천 지하상가에는 10여 곳이 넘는 크고 작은 레코드 가게가 있다.

때문에 지하상가를 걸어가다 보면 다양한 음악을 공짜로 감상할 수 있다.

가요부터 팝, 재즈,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지하상가 레코드 가게에는 없는 게 없다.

굳이 음반을 사러 서울까지 나갈 필요가 없다.

한수호가 악동처럼 씨익 웃었다.


‘저 선배가 저런 미소를 지으면 항상 사고를 쳤던 것 같은데....’


류지호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센 놈이라고 표현한 앨범의 비닐이 순식간에 뜯겨졌다.

한수호는 비장한 표정으로 LP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늘의 위치를 조정했다.

한수호의 손가락이 믹서를 조정하자 잔잔한 팝송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오늘은 팝음악을 들려드리는 날입니다. 학우 여러분, 점심 먹고 솔솔 졸음이 몰려오지 않습니까?]


오철규가 활기찬 음성으로 애드리브를 쳤다.


[제가 여러분들의 졸음을 한방에 날려버리겠습니다!]


‘으음.....’


오철규의 멘트를 들으며 류지호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믹서콘솔 앞에서 한수호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학우 여러분, 준비하세요. 다음 곡은 아주 쎈 놈으로 갑니다!]


한수호가 오철규를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보였다.


“쓰리, 투, 원.”


두두두둥!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가 모든 교실의 스피커를 때렸다.


[Master, Master, Where's the dreams that I've been after?

(주인님, 주인님, 내가 쫒던 꿈은 다 어디에 있어요?)

Master, Master, You promised only lies.

(주인님, 주인님, 당신은 거짓만을 약속했군요.)]


평온한 교정이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류지호는 헤드뱅잉을 하는 2학년 선배들을 보며 불현 듯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Pump Up The Volume>(90년)

고등학생이 아마추어 무선라디오로 해적방송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헤비메탈과 소위 닭장 댄스뮤직을 튼다는 것은 고등학교 점심방송에서까지 강제적으로 건전가요를 틀어야만 했던 이 엄혹한 시절에 방송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류지호는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교감에게 죽도록 빠따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한수호는 연이어 유로댄스뮤직 ‘BAMBINA‘를 틀었다.

bambina는 이탈리어어로 어린 여자 아이라는 말이었는데, 흥겨운 리듬의 이 노래에서는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의미했다.


[Bam-bam-bina, oh-oh-whoa~]


한수호는 운동장에 설치된 스피커 스위치까지 올려버렸다.


[Bam-bam-bina, oh-oh-whoa~]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쫒아 뛰어다니던 학생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 서서 방송실을 쳐다봤다.


“오늘 방송부 제대로 음악 트네?”

“걔들 가끔 미친 짓 하잖아.”


볼을 차던 학생들이 신나는 유로댄스 리듬을 몸에 싣고 더욱 열정적으로 공을 찼다.

교실은 숫제 광란에 빠졌다.


“밤!밤! 비나~ 오우 오오!”


날라리들이 디스코텍에서 유행하는 최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헛슬을 추는 놈도 있고, 디스코를 추는 놈도 있다.

머리에 젤을 바른 제대로 발랑 까진 날라리 녀석들은 패션춤을 췄다.

나른하고 평화로운 신포고의 점심시간이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와 유로댄스 리듬으로 들썩였다.


꽝꽝! 꽝꽝꽝!


신포고 교실이 유로댄스 음악으로 광란에 빠져있을 때 방송실 출입문은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듯 들썩였다.

방송실 안에서 단단히 걸어 잠가 도저히 문을 열 수 없게 되자 교감은 체벌용 몽둥이를 단단히 그러쥐고는 콧김을 씩씩 내품었다.


“이놈에 자식들! 내가 가만 두나봐라.. 뿌드득!”


미친개라 불리는 교감이 이를 갈며 분노를 끌어올렸다.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

한바탕 폭풍 같았던 점심방송이 끝이 났다.

그리고 방송부원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퍽!퍽!


2학년 선배들은 1학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감에게 빠따를 맞았다.


꽈당!


오철규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엄살 피우지 말고, 똑바로 안 대!”


퍽!퍽!


오철규는 이를 악물고 교감의 빠따를 맞았다.

제 분에 못 이겨 폭력적으로 변한 교감은 화살을 1학년에게까지 돌렸다.


“너희 놈들도 엎드려!”


화들짝 놀란 1학년들이 바닥에 엎드려뻗쳤다.

류지호 또한 서슬 퍼런 교감의 기세에 눌려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했다.


퍽!퍽!퍽!


교감은 미친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무자비했다.


“일어나!”

“끙.”


류지호가 엉덩이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뭔가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교감이 한수호의 앞머리를 잡아 뜯으며 으르렁거린다.


“학교가 고고장이야?”

“아닙니다.”


한수호가 열중쉬어 자세로 대답했다.


“앞으로 클래식만 틀고 싶지? 아니 아예 점심방송 못하게 해줄까. 그렇게 해줄까?”

“아닙니다.”

“선생님 말이 우스워?”

“아닙니다.”

“근데 왜 말을 안 들어 처먹어?”


교감이 말할 때마다 침이 한수호의 온 얼굴에 튀었다.

한수호는 교감의 침을 맞아가며 열중쉬어 자세를 풀지 않았다.


“......!”


류지호는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이건 아니다 싶다.

도대체 방송부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선생이 학생을 개잡듯이 팬단 말인가.

학생은 선생의 분풀이 대상이 아니다.

류지호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하고 끊어졌다.


“교감 선생님!”


교감의 화난 눈동자가 류지호에게로 향했다.


“왜! 뭐야?”

“그만하십시오!”


류지호가 교감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교감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붉게 달아올랐다.


“......!”


방송부원들이 얼굴이 시뻘게 진 교감을 보며 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 패시겠다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뭐, 뭐 신고?”

“또한 특수폭행으로 고소하겠습니다.”

“트, 특수폭행? 고, 고소?”


교감은 너무 황당해 말까지 더듬었다.

류지호의 건방짐이 점입가경이다.


“문교부에서 체벌, 폭언, 기타 단체기합을 금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 이 자식! 감히 선생님을 협박해!”

“고소하게 되면 타격이 큰 쪽이 어느 쪽일까 생각해보십시오.”

“이 자식이....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웠어!”

“폭행 사건으로 불거지면 학교 측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될 겁니다. 우리 신포고는 명문 중에 명문 아닙니까?“

“누가 고소를 받아준데!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이 자식이!”

“.......!”

“교육 목적으로 매를 때리는 것은 괜찮아. 엎드려!”


교감이 팔을 걷어붙이며 몽둥이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안 엎드려?”


류지호는 내친걸음이었다.

이제와 멈추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아무리 교사라고 하더라도 과중한 체벌을 한다면 이 역시 특수 폭행죄에 해당되며 일반 폭행죄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 증거는 여기 계신 선배님들과 저와 동기생들의 피 터진 엉덩이와 허벅지입니다. 여기서 그만 두지 않는다면 전 끝까지 가 볼 겁니다.“


방송부원들은 끼어들지도 못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교감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또박또박 제 할 말을 다 하는 류지호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목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폭행은 전치 2주 이상부터는 무조건 구속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멍일지라도 2주는 나옵니다.”


땡그랑!


교감은 몽둥이를 던져버리고, 류지호의 얼굴에 따귀를 올려붙일 듯 콧김을 내품었다.

1학년들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 벌어지게 될 교감의 폭행을 떠올리며 방송부원들이 치를 떨었다.

그때.


“여기까지 하시죠?”


학생주임이 나섰다.


“교감선생님. 얘들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을 겁니다.”


교감의 지나친 처사에 중재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

만에 하나 교감이 완전히 이성을 잃을까싶어 나섰다.

학생주임은 교감이 이성을 잃으면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 진다는 것을 잘 안다.

몽둥이로 체벌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손찌검은 다른 문제다.

방송부 학부형들이 들고 일어나 항의하면 학교로서도 난감해 진다.


‘방송부 놈들 중에는 서울대 갈 놈도 있으니까...’


혼쭐을 내주더라도 빠따 치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나중에 방송부장들을 불러 잘 타일러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꿀꺽...


방송부원들이 남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후우웁.”


교감이 몇 번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흥분을 가라앉힌 교감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몇 학년 몇 반 이름 뭐야?”

“1학년 5반 류지호입니다.”

“이 선생님이 항상 지켜볼 거야.”


류지호는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교감선생님, 가서 일보세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흠.”


교감의 신색이 평소로 돌아왔다.

그의 속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 이놈들은 제게 맡기시고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십시오.“

“그럼.”


교감이 짧게 혀를 차고 방송실을 빠져나가자, 학생주임이 목소리를 깔며 입을 열었다.


“가요 틀어. 너희 놈들은 가요도 신나는 노래 많은데 왜 하필 시끄러운 음악을 못 틀어서 그렇게 안달이냐?”

“신청곡이 많이 들어옵니다.”

“같잖게스리....”


한수호의 대답에 학생주임이 비아냥거렸다.


“니들이 진짜 방송국 라디오 DJ라도 되는 줄 아냐?”

“......”

“니들이 공부 못하는 꼴통들이었으면 진즉 근신처분이야. 그걸 알아야지 자식들이.”


엄연한 차별이다.

몇몇 교사에게 모범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과 동의어다.

행실이 바른 학생, 착한 학생은 모범생이 아니라 그냥 학생이다.

그들에게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두 종류로 구분될 뿐이다.


“법대 갈 거냐?”


학생주임이 류지호에게 대뜸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주임이 훈육봉으로 류지호의 가슴을 꾹꾹 찔렀다.


“법대 가려면 공부 엄청 잘해야 돼.”


류지호는 모멸감을 느꼈다.

차라리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맞는 것이 낫지 훈육봉으로 신체부위를 약 올리듯 찔리면 당하는 학생은 자존감에 심한 상처를 입는다.

류지호는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반에서 10등 안에는 드냐?”

“......”

“자식들이 잘 대해주려고 해도 꼭 한 번씩 말썽을 부린단 말이야...”


학생주임은 그 뒤로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고, 방송실에서 나갔다.


“씨바.”


류지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딩동댕!


때마침 수업종이 울렸다.

류지호에게 한소리 하려던 2학년 선배들이 서둘러 방송실을 빠져나갔다.


“앞으로 어떻게 학교 생활하려고 그랬어?”


박상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나도 몰라. 순간 욱해서......”

“진짜 패는 선생 고소하면 폭행죄로 잡혀가?”


이철웅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되지 않을까?”


류지호가 자신 없는 투로 대답했다.

참고로 학교 체벌은 1990년대 후반에 가서야 금지가 되고, 법이 개정 된 2011년에 가서야 일절 허용되지 않게 된다.

이 시기는 신고해봐야 학생만 힘들어진다.

그런 짓을 벌인다면 교사들에게 찍혀서 맘 편히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터.

차라리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지른 거야?”

“학생도 인권이 있잖아. 때린다고 무조건 맞아야 하는 건 아니지.”

“형들이 헤비메탈 틀은 건 맞을 만한 일 아닌가?”

“악마의 음악이지.”


김석민이 이철웅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원석이 김석민의 말을 거들었다.


“헤비메탈 하는 인간들은 정상적인 놈이 없다더라.”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박상은이 나섰다.


“수업 종 울렸다. 다들 교실로 들어가.”


동기들이 엉덩이를 부여잡고 하나 둘 방송실을 떠나갔다.

류지호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바지가 멍든 살결에 닿으며 통증이 몰려왔다.


“윽!”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분명 훈육이 아니라 분풀이에 가까웠다.

뭘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허벅지에 피멍이 들 정도로 팬단 말인가.

그래서 미친개란 별명의 교감에게 대들었다.

교감이 뒤끝이 심했다는 게 떠올랐다.

학교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 예감이 강하게 든다.


❉ ❉ ❉


오후 수업 내내, 류지호는 피멍든 엉덩이를 부여잡고 불편한 자세로 보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1학년들이 모두 모여 방송실 곳곳을 열심히 청소 하고, 방송장비를 닦았다.

다른 날보다 더욱 열과 성을 다해 방송실을 정리했다.

류지호가 나댄 일로 2학년 선배들의 심기가 불편해졌을 거라 짐작해서다.


“장비는 마른 수건으로 닦으라고 했잖아! 콘솔 뒤쪽도 한번 잘 봐봐. 지호 너는 어디 담당이야?”


박상은의 폭풍 같은 잔소리가 청소 내내 이어졌다.

마침내 청소를 마친 1학년들이 군대 점호처럼 일렬로 늘어섰다.


“삐뚤삐뚤 섰잖아. 줄 좀 맞춰봐.”

“방송부장아~ 그만 좀 해.”

“엄마 잔소리보다 더 심해.”

“저 놈 잔소리 듣느니 차라리 형들한테 빠따 맞고 만다.”


박상은의 잔소리에 동기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삼십분을 점호 자세로 대기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방송부실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미친개 교감의 눈에 뜨일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오늘 안 올 모양이다. 저녁이나 먹자.”

“근데 저.... 너 누구세요?”


최원석이 심각한 어조로 류지호에게 물었다.


“누구, 나?”

“네, 너요.”

“내가 나지. 류지호지 누구야?”

“아닌 것 같은데?”


최원석의 말에 방송부 동기들이 류지호를 빤히 쳐다봤다.


“뭘 봐? 밥이나 먹어.”

“우리가 아는 내성적이고 비리비리한 지호가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내 말이! 겁 없이 미친개한테 대들고.”

“귀신 들린 거 아냐? 우리 고모할머니가 용한 무당이야. 한번 같이 가볼래?”


이철웅, 김석민, 박상은이 차례로 한마디씩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살짝 맛이 가서 그랬다. 됐냐?”


속으로 뜨끔해진 류지호가 서둘러 말을 맺었다.


❉ ❉ ❉


“다녀왔습니다.”


류지호는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했다.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부엌으로 가 빈 도시락을 꺼내 설거지통에 넣었다.


부스럭!


심영숙이 안방에서 나오다 류지호를 발견했다.


“늦었구나. 피곤하지?”

“아직 안 주무셨어요?”

“아들이 안 들어왔는데 엄마가 어떻게 자겠어. 얼른 씻고 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방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부엌에서 심영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방송부 선배들한테 빠따 맞았니?”


류지호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속일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가 군대도 아닌데 무슨 군기를 잡는다고....”


심영숙은 설거지를 하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말로 타일러도 되지 꼭 매질을 해야 한다니?”


속상함에 심영숙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감이 그랬다고 이를 순 없었다.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마세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지라 심영숙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류지호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갔다.

목욕탕에서 엉덩이를 뒤로 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세수를 했다.


“괜히 서클에 들어가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원......”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영숙이 짧게 혀를 차고, 거실 서랍장으로 향했다.

류지호가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펴고 누웠다.

엎드리고 누워도 자세가 불편하고, 모로 누워도 불편했다.


“죽겠네...”


잠시 후, 방문이 열렸다.

심영숙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가 약 발라줄게.”


심영숙의 손에 호랑이연고라고 불리는 타이거밤 연고가 들려있다.

안티푸라민과 함께 집집마다 상비약으로 구비하고 있던 만병통치약이다.


“돌아누워 봐.”


심영숙이 이불을 들추며 류지호의 엉덩이를 탁하고 쳤다.


“아얏!”


류지호가 비명을 지르며 배를 방바닥으로 향한 채 엎드리고 누웠다.

바지를 내리자 시커멓게 멍든 엉덩이가 드러났다.


“쯧.”


심영숙이 혀를 짧게 차고는, 연고의 뚜껑을 열었다.

방안에 호랑이연고 특유의 파스냄새가 퍼졌다.

연고를 정성스럽게 바른 심영숙이 바지를 추켜올려 주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들도 잘 자. 가위 눌렸다고 울지 말고.”


심영숙이 방을 빠져나가고, 류지호는 엎드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내가 원래 반골기질이 있었나? 미친개한테 물리면 약도 없는데.’


미친개라는 별명의 교감은 호불호가 분명했다.

자신이 아끼거나 관심을 두는 학생에게는 잘해주지만 불량학생이라고 찍으면 시도 때도 없이 불러 온갖 꼬투리를 잡아 곡소리가 날 정도로 팼다.

이 시절의 부모들은 제 자식이 교사에게 맞고 오면 그건 전적으로 자식의 잘못이지 교사의 잘못이 아니라고 인식하던 시기다.

교사가 아무리 무자비한 폭행을 가해도 학생도 학부모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담배.‘


흡연의 기억이 정신에 박혀있는 모양인지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술도 생각나네.’


류지호는 죽기 전에 알코올중독이었다.

돈이 없어 쌀을 사지 못할 상황에서도 소주를 사서 마셨다.

지금은 어리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덕분에 알코올중독 증상이 없다.

술을 찾지 않을 정도로 심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술·담배를 했던 류지호다.


‘담배는 절대 사양이다.’


고등학생이 술·담배를 하면 날라리에 불량학생임이 분명했다.

정작 본인은 날라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나름 공부도 좀 하는 편이었던지라 스스로는 아웃사이더라고 우겼다.

분명한 사실은 류지호는 결코 모범생은 아니었다.


[Nothing Gold Can Stay.]


로버트 프로스트라는 시인의 시 제목이자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리고 영화거장 프랭크 코폴라 감독의 영화 <이방인>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 황금(색, 빛)은 영원하지 않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가 남긴 편지 글귀다.

청춘의 아름다운 황금기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 다는 것.

아웃사이더 주인공은 질풍노도의 방황도 하고 큰 사고에 얽히기도 하면서 더욱 성숙한다.

영화는 빈민촌 아이들과 부자 아이들 그룹간의 갈등과 대립을 보여주며 미국사회의 계급문화에서 비롯된 빈부격차를 은연중에 풍자하고, 혈기왕성한 청춘들의 패싸움과 설익은 연정, 감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칠고 때론 말썽꾸러기일 것만 같은 아웃사이더 패거리 중에는 화재 속으로 뛰어 들어가 어린이를 구하는 소년도 있고, 폭주하며 사고를 치고 다니다가 끝내 경찰의 오인 사격에 죽음을 맞이하는 청춘도 나온다.

감독은 불우하고 질풍노도의 위태로운 아웃사이더 청소년들을 통해 청춘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니 그 시기를 소중히 하라고 충고한다.

누군가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긴 개뿔.....!’


아픈 건 그냥 아픈 거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뒤척이다가 서서히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평범한 하루인 듯 평범하지 않은 하루였다.

그 하루를 살았던 류지호가 어제의 그가 아니었기에.


작가의말

이벤트 기간 동안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연재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오전은 10시. 오후에는 18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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