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1 09:05
연재수 :
897 회
조회수 :
3,821,280
추천수 :
118,501
글자수 :
9,933,002

작성
24.03.28 09:05
조회
1,542
추천
79
글자
24쪽

만수무강(萬壽無疆).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가 혀를 끌끌 찬 후에 동생을 타박했다.


“바쁘다는 핑계대지 말고, 자주 전화 드려. 인마~”

“그러지 않아도 예림씨가 자주 안부전화 해.”

“아들하고 며느리 하고 같냐?”

“아이, 진짜! 우리 형.... 거, 장남 노릇에 너무 진심인 거 아냐?”

“그게 자식이 할 소리냐?”

“오랜만에 만나서 잔소리는....”

‘안 하게 생겼냐? 아버지 칠순잔치에 눈썹 피어싱은 좀 빼고 오지... 자식이!“

“딴따라 집안으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선비인척 할 순 없잖아.”


류순호는 기존의 작곡가 사무실을 연예기획사 체제로 전환했다.

연습생도 받아서 아이돌그룹도 준비 중이다.

그 같은 행보로 인해서 언론에서 ‘재벌가의 이단아‘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가온그룹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도 언론과 대중들은 류지호의 동생들까지 재벌가문 일원으로 묶어서 보는 경향이 있다.


“안 물어봐?”

“뭘?”

“아이돌 기획사 차린 거.”

“어련히 잘하겠지.”

“언제는 냇가에 내놓은 철부지 같다며?”

“작곡가 때려치울 거 아니잖아.”

“기획사는 전문경영인이 운영할 거니까. 난 콘셉트와 곡 작업에만 관여하려고.”

“아이돌 음악도 할 줄 알아?”


기존에 해오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대중가요를 병행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한국 가수들에게 종종 곡을 줬다고 듣긴 했지만.


“웨스트코스트 씬의 랩 뮤지션 친구를 많이 사귀었어.”


특히나 <Frank Castle> 사운드트랙을 작업하면서 당대 최고의 웨스트코스트 힙합씬의 대표 래퍼들과 작업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려운 일 생기면 민아나 재정이하고 의논하고.”

“그럴 게.”


대화를 멈춘 형제가 나란히 서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부모님을 지켜봤다.

천천히 흐르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무심히 흐르는 세월만큼 빠른 것이 없다.

어느새 검은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모두 흰머리로 덮여 있는 아버지.

젊어서 노동일을 주로 한 탓인지 또래 분들보다 좀 더 늙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여동생이 부모님 건강과 피부를 살뜰히 챙긴다고 하지만.

자글자글한 주름이 훈장처럼 여겨지다가도 고달픈 삶의 흔적 같아서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태어나길 귀부인이 아닌데 무슨 피부마사지를 받아. 그냥 생긴 대로 살란다.”

“요즘은 할머니들도 다 피부마사지 받고 관리 받는단 말이야.”

“됐어. 늙은 사람한테 주름이 자연스러운 거지. 다 늙은 노인네가 피부가 빳빳해 봐라. 가면 쓴 것 같아. 흉측해.”

“누가 주름 제거수술 받으래? 주기적으로 마사지는 꼭 받으셔.”

“너희들이 보내주는 크림도 다 못 바르고 있는데, 무슨 마사지....!”

“아휴! 증말! 우리 엄만 어쩜 변하질 않냐....”


얼굴의 주름.

유복하게 한 생애를 살아온 노인의 육체에 새겨진 주름은 흐릿하거나 드문 편이다.

반면에 어렵게 한세상을 살아온 노인의 육체는 또렷한 주름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주름이 근심이나 불행의 은유로 쓰이기도 한다.

주름진 얼굴로 환하게 웃는 어르신의 모습이 푸근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노인의 주름은 고난의 세월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류지호는 오랜만에 주름진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아버지 손에 포갰다.

그리고 부모님을 고희연 무대로 안내했다.


“칠순 축하드려요.”

“칠순 축하해요 아빠. 오래오래 사세요.”

“만수무강 하세요 아버지.”


장남 내외인 류지호와 레오나가 먼저 절을 올렸다.

이후 남매가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칠순잔치 진행은 매니지먼트 CHAN 소속의 유명 개그맨이 맡았다.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는 트로트가수를 특별히 섭외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산 너울에 둥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개그맨의 능숙한 리드에 따라 어르신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축하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국악인이 부른 민요 메들리 그리고 ‘회심곡’이었다.


“진자리는 인자하신 어머님이 누우시고 마른자리는 아기를 뉘며 음식이라도 맛을 보고 쓰디 쓴 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달디 단 것은 아기를 먹여 오뉴월이라 짧은 밤에 모기 빈대 각다귀 뜯을세라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다 떨어진 세살부채를 손에다 들고 왼갖 시름을 다 던지시고 허리 둥실 날려를 주시며....”


심영숙이 한복 고름으로 눈물을 찍었다.

류아라가 얼른 달려가 손수건을 건넸다.

노래가 이어질수록 여기저기서 훌쩍거림이 심해졌다.

회심곡이 끝나고 진행자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겨우 분위기를 밝게 띄운 후로 노래자랑 시간이 되었다.

고우찬과 김재욱 바보 콤비가 오랜만에 듀엣을 결성했다.

둘은 나이도 잊고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여흥을 돋우는 이벤트가 모두 끝이 나고 본격적으로 먹고 마시는 시간이 찾아왔다.

류지호는 참석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감사를 표했다.

장남으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다.

줄이고 또 줄였다고 해도, 칠순잔치 하객이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이 부친 류민상의 손님들이다.

간혹 류지호와도 인연이 깊은 이들도 몇몇 참석했다.

가온재단 이사장이자 외삼촌인 심재우가 자신의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장남이 손님들께 건배를 청해봐.”


류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의 잔을 높이 치켜들고 선창했다.


“아버지어머니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위하여!”


하객들의 잔 부딪치는 소리가 일제히 들여오고.

그때 고우찬과 김재욱 콤비가 고희연 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버님 제 잔 한잔 받으십시오. 아버님뿐만 아니라 어머님까지 백수를 축원하는 잔이니 안 받으시면 큰일 납니다.”

“그래 한 잔 따라 봐라.”

“오래오래 사셔서 류지호 닮은 아들래미가 사고치는 것도 꼭 보십시오.”


김재욱의 말에 심영숙이 따가운 눈총을 쏴댔다.


“지호 아들... 아니 아버님 손자는 제 아비를 반만 닮아도 우주를 정복할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호호호.


콤비의 너스레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류민상이 녀석들이 건넨 술을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아무렴, 손주들이 시집장가 가는 것까지 다 보고 죽으련다.”

“하하하. 그러십시오.”


이어서 사인방이 차례로 나와 류민상에게 술을 올렸다.

장장 세 시간에 걸친 연회로 많은 이들이 술에 취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심영숙까지 취할 정도로 연회 분위기가 뜨거웠다.


“나중에 어머니 칠순 잔치는 더 성대하게 치러드릴 게.”

“이보다 더 어떻게 성대할 수 있겠니.”

“까짓 크루즈나 메가요트 하나 빌려서 하와이까지 항해하면서 매일 파티를 벌일까요?”

“엄마는 놀 기운도 없어. 이제.”

“보약 열심히 드셔. 아버지와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


전이었다면 크루즈를 빌리겠다는 말에 펄쩍 뛰었을 어머니다.

이젠 아니다.

세계 최고 부자라는데 뭔들 못할까.

여주 가온호텔에서 열린 칠순잔치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날, 부모님 댁 저택 대문이 활짝 열렸다.

인근 농가 노인들이 찾아와 류민상의 칠순을 축하해주었다.

이후로 뒷잔치가 삼일 동안이나 저택에서 이어졌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

예로부터 먹고 사는 것이 힘들면 윤리이든 도덕이든 따질 겨를이 없다고 했다.

곳간이 가득 차야 예절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도 부끄러움도 안다.

과거의 만석꾼들은 항시 곳간을 열었다.

인근의 백성을 구휼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부자의 인격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데서 드러나는 법이다.


❉ ❉ ❉


5호선 여의도역 주변으로 형성된 금융가.

얼마 전 9호선까지 개통됐다.

하루 이용객 5만 명 대 후반이던 여의도역은 9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한국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여의도 금융가에 새롭게 완공된 32층 빌딩.

빌딩 꼭대기에 거대한 GD금융투자란 간판이 걸려 있다.

가온그룹 산하 대유증권과 기존 금융사업이 통합해 탄생한 한국형 투자은행이다.

그룹 명칭 ‘가온‘은 순우리말로 가운데, 중심이란 의미다.

한자로는 노래 가(歌)에 평온 할 온(穩)을 써서 평온의 노래, 평안의 노래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영어 Gaon은 ‘탁월함’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중동의 바빌로니아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흥성했던 탈무드 학파를 이끈 유대교의 정신적 지도자들이나 학자들에게 주어졌던 칭호였다.

후에는 천재라는 의미로 확장해서 쓰이기도 했다.

가온그룹의 기업명 ‘가온’에는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금융그룹으로써 ‘가온‘은 고객에게 탁월한 투자성과로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한편으로 류지호라는 투자의 귀재가 소유한 회사이면서 천재들의 집합소란 의미도 담았다.

그룹 홍보실에서 규정한 가온그룹의 CIP(corporate identity program)다.

그에 따라서 그룹의 로고와 상징 디자인 변경이 이루어졌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가온’이란 단어의 의미가 확장됨으로써 그룹과 브랜드 이미지 모두에서 내외적으로 더욱 강화된 마케팅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


처음 주안역 앞에 결혼비디오 스튜디오 간판을 걸 때가 떠오르는 류지호다.

세상의 중심에 선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는데.

그 바람대로 되고 있는지는....


“엉뚱하게 JHO가 더 가까워지고 있지. 큭”


류지호가 고개를 돌려 맞은편의 부지를 쳐다봤다.

무려 1만 5천여 평의 부지다.

여의도에서 얼마 남지 않은 금싸라기 땅이다.

그곳에서 한창 터 닦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전주 완산구, 부산 센텀시티, 송도국제도시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네 번째로 가온쇼핑문화복합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


잠시 긴 건너에 시선을 두었던 류지호가 수행원들과 함께 GD금융투자 본사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십시오. 의장님.”


50대 중반의 남자가 류지호를 맞이했다.

1970년대 초반 대유증권에 입사해 얼마 전까지 대유IB센터장을 역임하고, 개편된 금융투자 사업 부문의 대표이사가 된 한재현이다.

한때 대유증권은 압도적인 맨파워를 자랑했다.

수많은 금융인재를 배출하면서 ‘증권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대유증권 출신들이 국내 주요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리서치센터장으로 맹활약 중이다.

국내 최초의 코리아 펀드 출시.

국내 최초의 민간 경제연구소 설립.

국내 최초의 트레이딩룸 설치.

수많은 국내 1호 타이틀을 갖고 있던 증권사가 대유증권이었다.

류지호가 처음으로 주식을 보유한 것도 대유증권이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대유증권과 대산증권 주식으로 얻은 수익이 이후의 영화 사업과 투자에서 큰돈을 벌게 해 준 시드머니 역할을 했다.

수십 년간 국내 증권업계의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한국 자본시장과 함께 호흡해왔던 대유증권은 가온그룹에 매각되었다가 상호의 이니셜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대우증권의 역사는 곧 GD금융투자로 이어져서 한국 증권시장의 역사로 통할 것이다.

대유증권 출신들이 한국 증권가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한은.

어쨌든 대유그룹이 망해서 류지호의 한국 사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금융과 건설 부문은 가온그룹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저기 건너편 복합쇼핑타운 건설부지 말입니다.”


류지호가 창밖으로 보이는 길 건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계통일연합교가 추진하는 파크넘버원 사업보다 먼저 완공할 수는 있는 겁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비슷한 규모의 사업이 몇 년 전부터 추진 중이다.

모 종교단체가 야심차게 밀고 있는 사업인데, 교주 집안의 법정다툼과 여러 문제들로 인해 자꾸만 지연되고 있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도 이전 삶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7년 이상 지연되었다.

완공된 후에도 여러 뒷말이 무성했었고.


“법정 다툼이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마 세계통일연합교 측이 원만하게 해결해서 사업을 재시행할 때 즈음이면 가온그룹이 조성한 메가복합타운이 이미 영업을 시작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최초의 계획은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복합타운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센텀시티 모델을 서울에도 똑같이 구현해서 백화점, 영화관, 호텔, 아트 갤러리, 실내 아이스링크 등이 한데 모인 복합쇼핑몰을 건립하는 계획이었다.

망원시장 등 상인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는 수 없이 상암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물색한 곳이 바로 여의도였다.

최근 디지털미디어시티 해당 부지를 광성그룹에 2,000억 원에 팔았다.

광성그룹 역시 야심차게 상암에 복합쇼핑몰을 지으려고 하지만, 사업을 완료하는데 무려 10년을 허비하게 된다.

석촌호수 랜드마크 빌딩 프로젝트와 함께 광성그룹의 숙원사업이다.

대통령이 이선택이 아니라 정의국이 되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여의도에 쇼핑복합타운을 조성하는 것에 그룹 내부에서도 여러 말들이 많았다.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통 백화점 상권은 인구 20~30만을 근거로 계획을 수립한다.

여의도 주거 인구는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백화점 상권으로써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동인구가 하루 32만 명에 달한다.

그 중에서 여의도 증권가 상권의 유동인구는 20여만 명에 달하고.

다만 30~40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쇼핑 비즈니스에서 유일한 걸림돌이다.

장단점이 명확한 여의도 상권과 함께 영등포와 마포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회의실로 갑시다.”

“저를 따라 오시죠.”


한재현이 회장실 부속 회의실로 류지호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주요 금융사업 임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후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올해 자본시장법(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여러 개로 나눠져 있던 증권시장 관련 법률을 모두 통합하고, 이에 따라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던 증권관련 금융회사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유도해 금융산업의 효용성과 경쟁력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는 법률 개정이 이뤄졌다.

정의국 대통령은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을 예로 들면서 한국에도 글로벌 투자은행이 탄생해야 한다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Rehman Bros 인수, GD금융투자의 글로벌 투자은행으로의 전환 요구 등 정의국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했다.

문민정부의 원죄라고 할 수 있는 IMF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정의국 대통령은 유독 경제문제에 예민했다.

내심 김태평 대통령을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는 것도 조금 웃겼고.

정의국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가 토대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보통신 인프라와 대중문화예술 부문의 업적에 비견되는 금융과 경제성과에 온힘을 다 하고 있다.


“IMF 원죄 때문에 ‘보수는 경제‘라는 이야기를 못 하게 됐습니다. 그걸 만회해야 앞으로도 보수가 계속 집권할 수 있습니다.”


경제에만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여당으로부터는 국내정치(정적 제거)에 소홀하다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고, 야당으로부터는 외교를 포기했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다.

암튼 새로운 자본시장법에 따라 가온그룹 금융사업 부분의 통합과 개편이 불가피해 졌다.

그동안 자산운용, 선물회사, 신탁회사, 종합금융회사 등 각각의 독자적인 법률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다보니 서로 중복되는 것들도 많고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법의 시행으로 각각의 업무들을 단일 업종으로 통합하여 매매업, 중개업, 자산운용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자산보관관리업 등 6개 업무를 겸영하는 통합투자증권사로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원하는 경우 필요한 업종 한두 개만 골라 영업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상업은행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 유념하길 바랍니다.”


괜히 GD금융투자 경영진들이 CIB(Commercial Investment Banking) 형태의 금융지주사를 꿈꿀까봐 명확히 선을 그었다.

투자은행 업무 형태는 IB(Investment Banking), CIB(Commercial Investment Banking), UB(Universal Banking)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IB는 수신 기능 없이 IB업무만 수행하는 형태로 골드만대거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CIB는 금융지주 산하의 자회사를 통해 업무를 다각화하는 구조로 류지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L & GP 금융그룹이나 NYU시티뱅크그룹이 대표적이다.

UB는 상업은행 내에 IB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설치하는 것으로 유럽계 은행들이 주로 이 범주에 속한다.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제한되었던 많은 증권관련 규제들도 함께 풀렸기 때문에 IB에만 집중해도 충분하다는 판단입니다.“


GD금융투자는 일반 예금을 예치하는 상업은행 업무를 굳이 하지 않아도 가장 기본이 되는 증권거래, 자산운용, 생명(보험), 금융서비스(신용카드), 벤처투자, 캐피탈, 펀드서비스, M&A 업무, 증권거래소 상장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총망라할 예정이다.

특히 재무자문, 주식 인수, 채권 인수 부문과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에선 FICC(채권·외환·원자재) 및 주식 거래에도 역량을 점차 증대시킬 계획이다.

한국에는 투자은행이라고 할 만한 금융사가 실질적으로 없기에 GD금융투자가 하기에 따라 그간 외국 투자은행에게 갔던 IB업무를 상당 부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실적은 어떻게 됩니까?”

“매출 기준과 자산 및 자본 모두에서 2년 연속 1위입니다.”


매출액 기준 증권사 순위는 (구)대유가온증권(6.8조원), 우리금융증권(5.4조원), 한국투자금융(3.5조원), 태산증권(3.3조원), 경일증권(2.9조원) 순이다.

적어도 금융 부문에서 가온은 국내 업계 최강으로 부상했다.

물론 건설부문 역시 오성물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안정적이고.


“빅5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간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많이 불렸습니다. 저희는 따로 M&A를 하지 않고 내부 통합과 개편만으로도 빅5를 가볍게 따돌릴 정도입니다.”

“국내 사업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비즈니스에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군요.”

“현지 인재들을 열심히 영입하고 있습니다.”


국내 빅5 증권사의 자기 자본은 대략 4조~6조 원 사이다.

신생 GD금융투자는 7조 원을 넘어선지 꽤 됐다.


“바뀐 CIP로 광고비용이 크게 증가하겠군요?”


여름부터 GD금융투자 광고가 온 매체에 도배가 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광고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가온그룹 일부 계열사와 금융부문은 광고를 확대하고 있다.

단 한창 소송전 중인 백원일보만 빼고.


“가온이란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서 CI 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운용자금이 국내 어떤 증권사와도 비교가 되지 않고.

대주주가 리틀 버펫이라고 불리는 투자의 귀재인데다가.

일찌감치 닦아 놓은 해외 네트워크도 탄탄했다.

가온그룹은 여타 국내 증권사보다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다.

헌데 대유증권을 인수함으로써 단숨에 1위 업체로 치고 나갈 수가 있게 됐다.

가온GP투자 시절부터 금융선진국에 주기적으로 직원들을 연수 보내왔다.

이미 회사에 미국, 일본, 홍콩 출신의 직원도 많다.

L & GP 금융그룹과 제휴계약도 체결되어 있다.


“한국의 IB를 선도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본시장법을 통해 정의국 정부는 전문화된 기업금융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증권사들은 IB 인가를 받은 후에도 일반 증권사 시절의 위탁매매와 자기매매 등에 치중한다.

IB의 중요 사업 중 하나가 기업의 인수·합병(M&A)이다.

국내 IB의 존재감은 그 시장에서 매우 미미하다.

국내 증권사들이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금융환경이 미국식 투자은행과 맞지 않았다.

정의국 대통령이 제 아무리 증권사 대형화를 통해 미국식 투자은행을 육성하려 해도 그 의도에 걸맞은 규제해제와 법률 지원이 따라와야 한다.

규제는 규제대로, 증권사의 대형화는 대형화대로 따로 논다.

참고로 한국의 자본시장통합법이 추구하는 투자은행의 롤모델이랄 수 있는 골드만대거스의 경우 2008년 기준 자본규모가 한화로 약 100조 원에 달한다.

매출은 대략 175억 달러, 수익은 19억 달러 정도다.

국내 증권업계 1위 GD금융투자는 골드만대거스의 1/10도 안 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미국식 투자은행을 롤모델로 내세웠을 때 업계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빅5 증권사 중 두 곳은 일본식 자산관리 모델을 지향하고 있고, 나머지 증권사는 투자은행과 자산관리 모델을 결합한 한국식 형태로 발전하길 원했다.

정책당국과 업계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한국형 글로벌 투자은행이 성공할 리가 없다.

1995년에 산업자본이 최대 4% 이상 금융사 지분을 갖지 못하도록 처음 정책을 도입했다.

그 동안 금융자본에 비해 산업자본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정의국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은행법 개정을 통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다시 9%로 올려줬다.

보험사나 증권사에 대해서는 은행과 달리 산업자본의 지배를 직접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가온그룹의 금융사업 모델은 복합미디어금융그룹 GTE를 참조했다.

미국의 GTE는 전기·에너지·금융 등 여러 업종의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비(非)금융계열 사업은 GTE지주회사가 직접 지배한다.

반면 금융계열사는 GTE가 100% 출자해 만든 GTE캐피탈서비스(GTECS)라는 중간지주회사가 지배하고 있다.

가온그룹도 그 방식을 수직계열화에 일부 참조했다.

가온그룹의 정점인 가온 컴퍼니 홀딩스가 100% 출자한 일종의 중간지주사가 새롭게 개편된 GD금융투자를 지배하는 형태다.


‘가온그룹도 슬슬 JHO처럼 중간지주회사 지배체제로 전환할 때가 되었어.’


자회사, 손자회사, 계열사 포함 100개에 육박하고 있다.

몇 건의 인수합병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고.

원활한 통제와 관리를 위해 사업 부문별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저러나.... 영화를 안정적으로 찍으려고 만든 벤처캐피탈이 투자은행으로까지 발전하는 구나.'


글로벌 4위의 대형 투자은행의 개인 최대 주주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전 삶에서 창투사 투자를 받아보려고 갖은 수모를 다 겪어보았던 류지호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Rehman 사태로 938.75까지 추락했던 코스피 지수는 연초 이후로 풍부한 유동성 유입에다 실물 부문도 'V자형'에 가까운 회복세를 보이면서 금융위기의 그림자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올 안에 1,600선까지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증권가 안팎에서 ‘버블‘ 논란마저 낳고 있을 정도로 회복을 넘어 호황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류지호는 시류에 편승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40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2) +4 24.04.27 1,420 67 27쪽
839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1) +4 24.04.26 1,426 68 24쪽
838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5 24.04.25 1,402 66 24쪽
837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4 24.04.24 1,395 66 28쪽
836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2) +3 24.04.23 1,380 65 25쪽
835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1) +5 24.04.22 1,418 68 23쪽
834 두 배 성장할 겁니다! +5 24.04.20 1,442 69 25쪽
833 불한당(不汗黨). (10) +6 24.04.19 1,356 67 29쪽
832 불한당(不汗黨). (9) +2 24.04.18 1,315 63 26쪽
831 불한당(不汗黨). (8) +8 24.04.17 1,318 73 22쪽
830 불한당(不汗黨). (7) +5 24.04.16 1,326 68 24쪽
829 불한당(不汗黨). (6) +3 24.04.15 1,348 71 26쪽
828 불한당(不汗黨). (5) +6 24.04.13 1,437 68 27쪽
827 불한당(不汗黨). (4) +9 24.04.12 1,442 76 30쪽
826 불한당(不汗黨). (3) +5 24.04.11 1,398 73 24쪽
825 불한당(不汗黨). (2) +5 24.04.10 1,423 75 24쪽
824 불한당(不汗黨). (1) +8 24.04.09 1,488 74 26쪽
823 미래의 성장 동력. (3) +7 24.04.08 1,527 79 28쪽
822 미래의 성장 동력. (2) +6 24.04.06 1,529 74 23쪽
821 미래의 성장 동력. (1) +6 24.04.05 1,607 69 24쪽
820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게임기? +9 24.04.04 1,595 69 22쪽
819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4) +4 24.04.03 1,531 80 22쪽
818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3) +3 24.04.02 1,503 75 20쪽
817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2) +4 24.04.01 1,543 71 22쪽
816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1) +4 24.03.30 1,641 83 26쪽
815 만수무강(萬壽無疆). (3) +2 24.03.29 1,563 84 21쪽
» 만수무강(萬壽無疆). (2) +3 24.03.28 1,543 79 24쪽
813 만수무강(萬壽無疆). (1) +7 24.03.27 1,597 77 25쪽
812 둘째 생기는 거 아냐? +9 24.03.26 1,603 86 30쪽
811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끝났을 때.... +5 24.03.25 1,547 87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