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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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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05.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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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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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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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말이 없다! (7)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상호, 사건, 단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퀀텀 점프는 올해부터 1만 석이 넘는 규모의 아레나 투어를 도는 명실상부 KPOP 대표 아이돌 그룹으로 올라섰다.

아직까지 스타디움 규모의 콘서트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일본의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구장.

몇 년 만에 MAMA가 일본의 돔구장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3만 명 이상이 운집한 이번 MAMA에서는 차세대 BPS의 자리를 노리는 KPOP 대표 아이돌 그룹이 모두 참석해 행사 전부터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

시상식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시아 뮤지션들의 축제이지만, 저 멀리 유럽과 남미에서까지 KPOP 아이돌을 직관하게 위해 팬들이 날아왔다.


“다음 팀 스탠바이!”

“아티스트분들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


일본 입국 후 MAMA에 초청 받은 KPOP 가수들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사전 인터뷰를 찍고, 최종 리허설을 진행했다.

이온은 지난 한 달 간 하루 네 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다.

드라마 <밤은 말이 없다> 촬영이 없는 날은 MAMA에서 선보일 무대를 위해 새롭게 편곡된 음악녹음과 안무 연습을 해야 했다.

또 촬영이 없는 날은 각종 시상식과 연말 자선행사를 다녔다.

수상만 한 것은 아니다.

작년도 TV 부문 신인상 수상자로서 시상자로도 여러 시상식에 참여했다.

포스트프로덕션를 모두 마친 <조총수> 후시녹음도 다녀오고, 장현기가 출연하는 드라마에 깜짝 출연도 했다.

너무나 바쁜 일정이었다.


후우.


백스테이지에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이온이 긴 숨을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은 3만 명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에 설렘과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온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이완시키고 있는 이온에게 찬기가 다가왔다.


“형... 괜찮아요?”

“응. 뜨겁게 불사르고 내려와야지.”


영화시상식에서 이온답지 않게 너무 떨어서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다.

이슬이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가 종합적으로 검진을 받고 정신과전문의도 따로 면담을 했다.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들으나 마나한 진단일 수도 있다.

배우가 작품을 하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없고.

이온은 딴 생각이 들지 않게 더욱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렇다보니, 토끼발이고 뭐고 육체적으로 거의 그로기 상태에 몰려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MAMA Week 동안 다른 스케줄이 전혀 없다는 것.

다음 마카오 공연과 한국으로 돌아가 뮤직Net 프로그램 촬영만 하면 된다.

살인적인 스케줄 사이에서 일주일 간 숨이 좀 트였다고 할까.


"퀀텀 점프, 5분 전!“


찬기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Don’t fight the feeling!”

“QJ!"

“Tu eres mi tesoro!”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난 후, 멤버들이 흩어지지 않았다.


“MAMA 끝나고 투어 잘 다녀오고. 형들이 미안하다.”


찬기가 이온을 제외한 네 명의 멤버에게 말했다.


“이온형은 뭐 할 말 없어요?”

“건강하게 잘 다녀와. 갔다 와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바다낚시 한 번 데리고 가줘요.”

“제주도!”

“제주도든 뉴질랜드든 어딜 못 가겠냐.”


선택과 지후가 족보도 없는 영어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에스~”

“컴 온 맨!”


이제 무대로 올라갈 시간이다.


“애들아, 우리 프로지?”

“당근이죠!”

“어떤 교수님이 그러더라. 아마추어는 한계를 느낄 때까지만 뛰고, 프로는 한계를 뛰어 넘을 때까지 뛴다고. 3만 명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 자체가 우리의 한계를 깨는 거 맞지?”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자, 우리 이온 주주님 훈시 끝났으니까 돈 벌러 가자~ 레고!”


선택이 까불거리며 먼저 무대로 뛰어나갔다.

그 뒤를 이온과 댄서들이 천천히 따라 나섰다.

컴컴한 후쿠오카 돔에 응원봉 불빛이 넘실거린다.

예고도 없이 무대가 밝아지면서 교복을 입은 선택이 비보이 탑락을 펼치기 시작한다.


꺄아아악!

와아아아!


이어서, 돔 구장의 천정이 날아갈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남자고등학교 교복과 유사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알 없는 안경을 끼고 손에 참고서를 든 채 공부에 열중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이온이 대형 화면에 나타났다.

멋들어지게 탑락을 밟던 선택이 원핸드 앞돌기 등 가벼운 기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대 배경이 고등학교 급식실로 바뀌고, 교복을 입은 댄서들이 식판을 들고 서 있다.

댄서들 사이에 이온이 앞 선 화면처럼 참고서를 손에 들고 공부하는 연기를 유지하고 있다.

뮤지컬 콘셉트의 무대 연출이다.

가볍게 비보잉 기술을 선보이던 선택이 ‘Go Tomorrow' 앨범의 인트로 랩을 하기 시작하고, 이온이 참고서를 댄서에게 던져주고는 선택을 지나쳐 메인 무대와 연결된 중앙 무대로 힘차게 걸어간다.

이온이 중앙의 돌출 무대로 걸어가는 내내 돔 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열화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어떤 그룹과 가수의 팬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걸어가며 넥타이를 풀고, 교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마지막에 알 없는 안경까지 던져버리자, 팬들의 함성이 비명으로 변했다.

대형 화면에 비친 이온의 표정 때문이다.

장난기가 가득 묻은 미소를 입가에 달고 카메라를 향해 끼를 부리기까지 했다.

각종 광고와 화보 촬영으로 훈련된 표정연기가 다채롭게 화면에 나왔다.

돔 구장을 가득 채운 소녀팬들이 자지러질 수밖에.


두둥,


이번 MAMA를 위해 특별히 편곡한 ‘Go Tomorrow' 비트가 흘러나왔다.

이온은 풋워크도 밟지 않고 곧장 몸을 날려 토마스에 이은 윈드밀, 원핸드 돌기를 연달아 펼쳤다.

짧은 연계기에 이은 마무리는 비교적 부담이 덜한 베이비 프리즈.

공연장이 일제히 암전 되었다가 다시 밝아지면, 이온의 주변으로 어느새 멤버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본격적으로 Worldwide Fans' Choice TOP 10 퀀텀 점프의 수상 세리머니 무대가 시작됐다.

이날 퀀텀 점프는 총 7분 러닝타임 동안 정규 2집 앨범의 ‘Go Tomorrow' ’A Better Tomorrow(영웅본색)‘ 두 곡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온과 선택은 응급실로 실려 가기로 작정한 듯 몸을 사리지 않고 트릭킹이나 비보이 기술을 브레이크 타임에 펼쳤다.

마치 KPOP 그룹 중에서 퍼포먼스만큼은 우리가 최고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열광했다.

단 FLEX-A와 굿데이뮤직 관계자만 빼고.

사전 리허설 전부터 회사 관계자들이 무대 바닥을 면밀히 살폈다고는 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 야! 이~ 쉐끼야! 죽을래! 내가 몸 사리라고 했어 안 했어! <밤말업> 끝날 때까지 넌 내꺼라고 했잖아!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면.....! 대가리 컸다고 제 멋대로야 아주!


MAMA 생중계를 본 모양이다.

송하나 작가가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 난리를 쳤다.

송하나에게 있어서 <밤은 말이 없다>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장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상황.

본래는 주연배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을 자제해야 하건만.

송하나는 자신의 스트레스가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이온은 밤늦게 걸려온 송하나의 전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흘려 넘겼다.

배우로서 <밤은 말이 없다>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퀀텀 점프로서 공연을 적당히 할 순 없는 것이다.

물론 작은 부상이라도 당하게 되면 ‘프로’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만.

마카오 공연까지 마치고 귀국하면서 이온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럼 된 거지 뭐.”


구필성은 이온과 함께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살뜰하게 챙겨야 하는 전담 매니저로서 근심이 쌓여만 갔다.


‘앞으로는 연말에 배우 활동과 아이돌 활동이 겹치지 않도록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 크랭크인이라는 것이 계획된 대로 되는 법이 거의 없으니까.

암튼 이온은 MAMA Week 기간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본, 마카오, 한국의 상암을 이동하는 시간에 잠만 잤다.

리허설과 본 공연을 제외하고 대기실에도 주로 잠을 잤다.

구필성은 몸에 좋다는 각종 음식과 건강보조식품을 열심히 이온에게 먹였다.


“휴가 끝!”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퀀텀 점프의 짧은 국내 활동이 마무리됐다.

한우, 성진, 지후, 선택은 쉴 새도 없이 팬미팅 월드투어를 위해 곧바로 호주로 날아갔다.

이온과 찬기는 배우 활동으로 복귀했다.


✻ ✻ ✻


“도대체 상을 몇 개나 받은 거야?”


마치 시비를 거는 것 같다.

인상도 무섭게 생겨서 낮게 깔아서 물으니 조폭이 따로 없다.

바로 <밤은 말이 없다>에서 강력반장으로 출연하는 전만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6개요.”


이온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황룡도 받았지?”

“감사하게도요.”

“내년에 한예상 신인상까지 받으면 올킬인 거냐?”

“올킬 그런 말은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죠 뭐.”

“기록 아니냐?”

“모르겠어요.”


구필성이 끼어들었다.


“기록 맞습니다. 선배님! 4관왕은 몇 명 있었는데, 6관왕은 이온이 처음이랍니다.”

“독식하면 욕먹을 텐데?”

“<서커스 소녀> 버프도 있어서 악플러들 빼고는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전만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이온에게 말했다.


“졸라 부담되겠다?”

“어쩌겠어요. 팔자려니 해야죠.”

“팔자는 자식이..... 이온아, 너랑 나랑 친하다고 봐야지?”

“지균 선배님 술친구시잖아요.”

“같이 먹고 살자. 혼자만 막 잘나가서 저기 안드로메다로 훌쩍 가버리지 말고. 알았지?”

“안드로메다 간다는 말은 안 좋은 말 아니었어요?”

“걍 그런 줄 알아. 하여튼 자식이 따지기는....”


천하에 무서울 것 같은 전만석 배우도 특별히 몸가짐을 조심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최무영과 신지균이다.

대선배들한테 수더분하게 잘 대하는데 유독 두 사람을 부담스러워 한다.

어릴 때 두 사람이 연극하던 모습을 선망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 본인도 왜 그런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쨌든 무서운 인상과 역할을 주로 맡다보니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실제로는 다정다감한 편이다.


“연출부 오는 거 보니까. 촬영준비 끝났나 보다.”

“가시죠.”


일주일만에 현장에 복귀했는데, 마치 한 달 동안 쉬었던 것 같다.

그 만큼 연기라는 것이 예민하다.


“선배님, 죄송한데 리허설 좀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래.”


전만식이 이온의 부탁을 고민도 없이 들어주었다.

겨우 일주일이라고 하지만, 이온은 석필호 캐릭터에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연기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

발동이 걸리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한 편이다.

이온은 미리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준비해 간 인물을 준비한 대로 소화하는 배우다.

모든 배역을 자신으로 일치시키기보다 완전히 그 배역 자체가 되는 걸 선호한다.

이온이 추구하는 연기스타일의 롤모델 중에 한 명이 할리우드 대배우 메릴 스트린느다.

그녀는 맡은 배역마다 말투 행동 몸가짐이 모두 다채롭다.

국내 배우로는 사생활로는 욕을 할 순 있어도 연기로는 도저히 욕할 수 없다는 명배우 허병인이 롤모델이다.

이온은 석필호라는 캐릭터의 모든 걸 준비했다.

가령 걸음걸이까지 신경 써서 연기하고 있다.

드라마 초반에는 일자 걸음걸이로 비교적 여유로운 속도로 걷는다.

심지어 권총을 털렸음에도 처음에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다.

금방 찾을 것이라 자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한 것처럼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서 걷거나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걸음걸이는 팔자걸음으로 바뀐다.

행동 역시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어딘지 어긋나게 행동한다.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물컵도 헛손질을 한 후 잡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자꾸 뭘 잊어먹은 것처럼 하나 씩 뭔가를 빠뜨린다.

대본에 나오지 않는 것을 이온이 상상해서 구체화 시킨 설정들이다.

그렇게 한 번만 변화를 주지 않았다.

한 번 더 꼬았다.

드라마가 후반으로 치닫는 가운데 서두르고 허둥대는 석필호의 모습이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침착해지는 것이 아니다.

체념하는 것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으니 약간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

몸가짐, 행동거지도 드라마 초반으로 돌아간다.

석필호는 차예리의 소위 ‘장학생‘이다.

영화 <무간도>처럼 차예리가 목적을 가지고 경찰에 잠입시킨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써먹을 수 있는 카드로 준비된 것이다.

석필호도 알고 있다.

드라마 내내 조바심을 내고 허둥대는 것은 내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석필호의 행동거지가 후반에 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차예리의 도구가 아니라 경찰로 남겠다는 걸 의미 한다고 볼 수 있다.

모두 송하나가 구축한 석필호 캐릭터다.

그런데 이온은 거기에 걸음걸이와 속도라는 방식으로 서사가 아닌 연기로서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죽갔네 진짜... 총이야 애기들 잡아서 되찾는다고 쳐. 근데 그걸로 사람이 죽었다고?]

[내가 안 죽였어. 삼촌... 담배 있으면 좀 줘봐~]


진짜 삼촌이 아니다.

차예리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새끼가 지금... 담배 피울 때냐? 내가 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어. 공포탄 한 발 분실해도 생 난리... 징계 먹는데.... 사람이 죽어? 경대 출신 꽃길만 걸으랬지 누가....]

[아 놔~ 증마알~ 바가지 그만 긁어. 마누라도 아니고 삼촌이 왜 바가지냐? 나 지금 머리 터질라 그래. 그만 쫌!]


반장이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뻑뻑 초초하게 담배를 빠는 석필호를 보며 슬그머니 주먹을 푼다.

이온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 몇 장면에 강박을 보여주는 특유의 제스처를 넣었다.

바로 담배 설정이다.

드라마 상에서 석필호는 단 두 번 담배를 피운다.

바로 지금 장면과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이다.


[아놔~]


MZ세대의 말투가 아니다.

그 이전 세대의 말투다.

그리고 양아치가 등장하는 수많은 한국영화에서 선배 배우들이 자주 사용했던 말버릇이다.

이온은 그걸 가져왔다.

겉모습은 분명 6급에 해당되는 경위 계급의 경찰공무원이다.

경찰대체복무인 기동대를 마치고 이제 막 경찰업무를 시작한 신참내기이고 하고.

그런데 행동거지나 말투 곳곳에 양아치스러움이 배어 있다.

그것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 세대 양아치 말투가.

석필호가 결코 평범한 삶을 살다가 경찰이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암시하고, 추후 양아치스럽게 폭주할 것이라는 복선도 된다.

게다가 ‘아놔‘ 말버릇은 형사반장이 쓰는 말버릇이기도 하다.


[빨리 찾아야지 안 그럼. 여러 사람 다친다. 까딱하면 줄줄이 옷 벗는 거야.]

[내가 싼 똥, 내가 치워. 삼촌이 안에서 서포트 좀 해줘.]

[아놔~ 이 미친 새....! 졸라 쿨하다 이 새끼야~]

[삼촌 차 좀 쓸게. 아 놔~ 자가용이야 쓰레기차야? 차 좀 깨끗하게 쓰지...]

[야!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내 차를 쓰더라도 택시 다니는 데까지는 떨궈 주고 가야지. 야! 야 이 새끼야! 석필호!]


마음이 급한 석필호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않는 외진 곳에 형사반장을 방치하고 떠났다는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전만식은 옷깃을 여미며 앱으로 콜택시를 부르는 애드리브를 쳤지만, 편집에서 들어낼 가능성이 높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죽는 거 찍으러 한 번 더 와야 돼.”

“두 달 후에나 뵙잖아요.”

“지균이형하고 술 마시는데 알지? 심심하면 종종 오던가.”

“넵. 가끔 찾아뵙겠습니다.”


전만석은 내년에나 <밤은 말이 없다>에 합류한다.

이온이 MAMA 참석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을 때 단 한 장면만 남겨놓고 모든 출연 장면의 촬영을 마쳤다.

차예리가 경찰에 심어놓은 진짜 스파이가 형사반장이다.

10년도 넘게 차예리 집안의 온갖 범죄를 경찰 내부에서 비호해 온 인물이다.

그랬는데, 석필호의 사건에 휘말려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평소 삼촌처럼 따르던 형사반장의 죽음에 석필호는 자신도 쓸모없어 지면 언제든 죽을 것이란 위기감에 정신이 번쩍 들게 되고, 이후부터 권총 분실 사건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살인사건 수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이제 20% 넘긴 건가?”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온이 구필성에 물었다.


“연말 시상식만 스케줄 소화하면 1월부터는 드라마에 올인할 수 있을 테니까. 속도가 붙겠지.”

“나만 드라마 찍는 것 같아.”

“드라마가 석필호 위주로 진행되니까.”


드라마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끝내놓고 나면 또 다시 배우로서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 같다.

원톱 주인공이라는 것은 큰 부담이다.

게다가 이야기를 혼자 끌고 가야 한다.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과 호흡조절이 꽤나 어렵고 복잡했다.

이온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석필호의 행동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설정한 후에 그것이 어떻게 변하고 뒤집어지는지 전체적으로 설계를 했다.

마치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미세한 움직임부터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감정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계했다.

그런 후에 김원탁 감독과 토론하고 설득하고 때론 포기하면서 전체 연기 설계를 완성했다.

김원탁 감독이 저 대단하고 자기중심적인 송하나 작가와 캐릭터 해석과 연기 톤에서 괜히 이온의 편을 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김원탁 감독은 영화감독 출신이다.

그로서는 시나리오가 감독인 자신에게 넘어오는 순간부터 또 다른 창조행위가 당연했다.

배우가 상상력을 발휘하고 일관된 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판을 잘 깔아주는 연출이 좋은 연출이다.

반대로 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는 좋은 배우다.

이온의 너무나 심층적이고 세밀한 캐릭터 설정으로 김원탁 감독의 콘티가 좀 더 풍부해졌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감독 본인뿐이지만.


작가의말

낮에 비를 맞고 돌아다녔더니 감기기운이 살짝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도 건강 유의하십시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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