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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C
작품등록일 :
2018.04.09 10:17
최근연재일 :
2018.09.18 22:44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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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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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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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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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루프아티스트 - 42. 루프 안의 유령

DUMMY

미정은 김수인이 가져온 아침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물렸다. 마음이 급해져 가만히 앉아 죽을 입에 떠 넣기가 어려웠다. 식판을 가져가며 궁시렁대는 김수인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병실을 나섰다. 김수인이 알려 준 정인철의 진료실은 다행히 정신건강센터 건물 안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진료실은 문이 활짝 열려진 채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부산히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수술복과 마스크를 갖춰 착용한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 틈에서 미정은 기웃거리며 현기준을 찾았다. 그는 넓은 진료실 한쪽을 틔워 마련된 진입기 침상 앞의 보조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박사님, 무슨 일이예요?」


현기준의 등 뒤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으며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간이식이지만 꽤 고급스러운 진입기 침상 위에 머리카락을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인 남자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진입기 침상에서 나온 두툼한 프로브 케이블 두 가닥이 남자의 뒷덜미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미정씨. 여긴 어쩐 일로요.」


현기준이 쥐어뜯던 머리를 급히 정리하며 돌아보았다. 방금 루프에 진입했다 나온 듯 뒷머리가 삐쭉삐죽 일어서 있다.


「루프 사고가 있다고 해서요. 이분인가요?」


미정이 묻자, 현기준은 약간이나마 안도하는 기색을 비쳤다. 그는 정신과의사로서 마인드루프 치료에는 전문가이지만, 공학적인 센스는 젬병이었다. 마인드루프는 그에게 환자 치료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고, 스스로도 자신의 이런 약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미정을 진료하면서도 마인드루프의 원리나 특성에 기반한 경험이나 지식이 요구되는 상황이 닥치면 주저 없이 루프 전문가로서 미정의 도움을 받아들이곤 했다.


「어떻게 된 거죠?」


「여기 정인철 박사가, 어젯밤 루프 진입을 한 이후로 깨어나지 않고 있어요. 개인 루프에 갔다가, 튜링 역으로 돌아오는 열차를 타지 않았다는군요.」


「디폴트에 빠진 건 아니구요?」


「네, 브레인 액티비티에 디폴트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그럼, 그 개인 루프에 아직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게, 그래도 문제인 게······. 오너는 이미 루프에서 나왔거든요. 루프는 이미 정지되어 슬립 모드로 들어갔을 겁니다.」


「혹시, 이분도 어제 윤시연씨 행사에······.」


미정은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애인이 루프 안에서 실종됐다는데, 윤시연은 어디 있는 거지?


「네, 맞아요. 윤시연 작가 포트폴리오 루프 오픈 행사에 갔죠. 윤작가가 직접 비각성 세팅을 해 줬대요.」


슬립 모드 루프 안에 남아 있으면 스피릿도 시뮬레이트와 똑같이 간주되어 컨테이너의 모든 기능이 마비된다. 루프의 시뮬레이션이 모두 정지하므로, 희뿌연 안개 속에서 온몸이 마비된 상태로 루프 오너가 다시 진입하여 시뮬레이션이 재개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디폴트 못지 않은 끔찍한 경험인 것이다. 현기준이 당황해할 만도 했다.


「큰일이네요. 정박사님은 루프의 슬립 모드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현기준은 조금 더 당황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아, 인철이는 정식으로 처방을 받은 게 아니고 의료인 라이센스로 진입을 허가받은 거라······. 따로 교육을 받지는 않았어요. 제가 간단히 설명해 주긴 했지만요.」


미정은 헛웃음이 나왔다. 환자를 진료할 때는 규정과 절차에 그리도 철저한 의사들이 왜 자기들끼리는 이리도 허술할까.


「윤시연씨는요? 왜 정박사님만 두고 나온 거래요?」


「비각성 세팅 시에 행사 종료 후 마인드트레인 역 앞 광장에서 다시 만나는 시나리오를 입력했는데 약속이 어긋났다는군요. 그래서 일단 하객들을 튜링 역에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갔다고 하는데······.」


비각성 모드의 시나리오가 깨지는 법은 좀처럼 없다. 스피릿의 무의식에 직접 설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시연같은 전문가가 비각성 시나리오 세팅에 실수했을 리도 없었다. 뭐, 그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 현기준을 보면 좀 다르긴 하지만.


「못 만났대요?」


「아뇨. 못 갔답니다. 마인드트레인 열차가 가다가 그 루프 바로 앞에서 서 버렸대요. 오류가 난 거죠.」


미정은 갑자기 머리에 둔한 충격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해. 정보를 좀 더 모아서. 앞서 나갈 필요는 없어.


「······오류라면?」


「듀플리케이트······ 뭐라던데.」


「‘듀플리케이트 스피릿 아이덴티파이드(Duplcate Spirit Identified)’로군요. 개발팀에서는 DSI라고 불러요.」


「네. 그거였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예요? 루프 엔지니어가 와서 설명을 하긴 했는데 통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말 그대로예요. 스피릿 중복이 발견되었다는 거죠. 열차에 탄 스피릿과 동일한 스피릿이 루프 안에 있으니, 열차 안 스피릿의 접근을 막아 루프 내 스피릿 중복, 시뮬레이션 오류를 방지하는 거예요.」


「그 시간 마인드트레인 열차에는 윤시연밖에 없었을 텐데요? 맙소사, 그럼······.」


「네.」 이쯤 되면, 미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윤시연의 유령이, 루프 안에 있는 것 같네요.」



*



충격을 받았는지 현기준은 조금 얼빠진 상태였지만, 곧 자신이 확인해야 할 윤시연의 병증이 무엇인지 눈치챌 것이다. 그에게 윤시연의 병력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정인철의 진료실을 나왔다. 일단 먼저‘이쪽’ 윤시연을 만나 봐야 했다.


미정은 자신을 두고 루프 안의 그 여자가 ‘저쪽의 나’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나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널 부정하는 것이 방어기제라고? 남의 의식 속에 들러붙은 쓰레기 주제에. 그래, 유령이라는 말은 차라리 너에게 어울려. 난 네가 무섭지 않아, 미정은 다짐하듯 마음 속에 말하며 차갑게 웃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지금 여기서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닌 듯 했다. 현기준은 윤시연이 다시 엑싯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루프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아직 마인드루프 안에는 있는 것이다.


‘아아······ 그럼 난 만날 수가 없잖아. 저쪽 여자밖에 안 되겠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의 단축번호를 한번 꾹 눌러 이진수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무관님.」


「안녕하세요, 이진수 부장님. 류미정 ‘상무’입니다.」 미정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단호했다.


「아, 네, 상무님. 이 호칭을 고정할까요?」


「죄송해요. 매번 말씀드리지만, 저쪽 여자가 자꾸 바꾸네요. 부장님께서 신경 좀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얼마든지요. 찾으신 용건은요?」


「윤시연 수석 아키텍트를 만나려고 하는데요. 현재 위치 추적 가능할까요? 아직 엑싯 전인 걸로 알고 있어요. 간밤에 윤수석 스피릿의 DSI 오류 건도 간단히 브리핑 부탁드립니다.」


「네. 오류 자체는 DSI 의미 그대롭니다. 윤시연 수석님의 스피릿과 뇌문은 같고 스피릿 아이디는 다른 스피릿이 루프 안에서 활성화된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루프 오너 스피릿에 DSI가 걸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루프는 가동 중이죠?」


「네, 윤수석님의 듀플리케이트 스피릿이 오너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스피릿 아이디 확인해 주시고, 확인되면 히스토리 뽑아 윤수석님 것과 비교해 주세요. 등록 시점 - 둘 중 하나는 발생 시점이라고 해야겠네요 - 및 루프 진입, 엑싯 기록도 모두 포함해서요.」


「개인정보보호 이슈가 될 만한 사항은······.」


「아직은 회사 직원이니 스피릿 아이디 확인과 루프 등록 상태, 진출입 기록 열람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그 정도는 인사기록부에도 기록되니까요. 혹시 저촉될 만한 데이터를 만나면 제게 사전 확인 부탁드리구요. 루프 내 위치 추적 결과는 나왔나요?」


「네. 장애 신고 접수된 그 위치에 아직 그대로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은요? 정인철 박사, 진흥원의 구한울씨.」


「윤시연 수석님 개인 루프 안에 계신 것으로만 파악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개인 루프 내의 위치 추적은 기술적, 법률적으로 불가합니다.」


「흐음. 윤시연 수석 타고 간 열차 상태는요?」


「오쿨리 투이 역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다른 열차편은 있나요?」


「해당 노선은 윤수석님 개인 루프고 일체의 AI 스피릿을 사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단 하나의 열차편만 운행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급 추가 운행편은요? 운영팀은 따로 조치하고 있지 않나요?」


「물론 하고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마인드트레인에는 유휴 열차가 거의 없습니다. 특별 운행편 편성에 약 24시간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난감하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마인드트레인 노선 외, 플랫폼루프와 윤수석님 루프를 연결하는 비상 도로 구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불법 루프 재등록 및 양성화를 위한 루프 간 도로 확충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서, 테스트용으로 자신의 루프와 플랫폼루프를 잇는 고속도로를 깔아놓으신 것 같습니다.」


「아아, 다행이네요. 죄송하지만, 조금 이따 제가 진입하면 저쪽 여자에게 이 사항 알려주시고, 윤수석 있는 곳으로 가서 미팅 진행하라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교통편은 어떻게?」


「혼자 가는데 바이크 한 대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괜찮은 모델로 준비해 줘요. 까탈스런 성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가진 정보로는 상무님도, 저쪽 상무님도 면허는 물론, 오토바이 운전 경험이······.」


「루프니까 면허는 필요 없고, 운전은 지금부터 배우면 되죠. 공유 메모리에 넣어 두겠다고 전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미정은 정인철의 진료실로 다시 되돌아가 열린 문 안으로 현기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번엔 말하고 가는 게 좋겠지.


「박사님, 저 진입할게요.」



*



미정이 정인철의 진료실에서 나와 어디론가 사라진 후, 모퉁이 뒤에서 한 간호사가 복도로 나와 휴대폰을 꺼내 들고 통화를 시작했다.


「정인철 박사 진료실에 들렀다가, 지금 막 현기준 박사와 함께 돌아갔습니다. 아뇨, 바로 진입할 것 같진 않구요.」


「윤시연 수석을 만나러 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 그 곳에 있답니다. 네? 아, 듀플리케이트 스피릿······ 네, 맞아요. DSI라고 했습니다. 스피릿 아이디 확인, 루프 등록부와 진출입 기록 열람을 지시하는 듯 했습니다.」


「비상 도로 구간을 사용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바이크 얘기를 하던데요. ‘지금부터 배우면 되죠’ 라고 했습니다.」


「현기준 박사에게는 윤시연 수석의 병력 조사를 부탁했습니다. 네, 보안상태 다시 체크하겠습니다. 저는 그럼 바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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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1부 루프아티스트 - 60. 에필로그 +4 18.06.06 424 4 6쪽
59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9. 진짜의 조건(1부 최종화) +6 18.06.04 523 3 15쪽
58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8. 적합성 테스트 +2 18.06.01 458 3 13쪽
57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7. 절박함 +6 18.05.29 465 3 9쪽
56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6. 댓가 +2 18.05.28 481 2 9쪽
55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5. 시맨틱 락 (Semantic Lock) +6 18.05.25 470 5 9쪽
54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4. 고백 (2) +6 18.05.23 555 5 12쪽
53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3. 고백 (1) +2 18.05.22 449 4 13쪽
52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2. 시립병원 (2) +3 18.05.21 488 5 9쪽
51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1. 시립병원 (1) +5 18.05.18 552 5 12쪽
50 제1부 루프아티스트 - 50. 따끔한 맛 (2) +4 18.05.17 534 3 12쪽
49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9. 따끔한 맛 (1) +10 18.05.16 512 5 9쪽
48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8. 강제 회수 +7 18.05.15 479 7 7쪽
47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7. 자매 +2 18.05.14 487 6 9쪽
46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6. 주유소 +5 18.05.11 537 7 12쪽
45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5. 소심한 AI의 사과법 +6 18.05.10 590 4 9쪽
44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4. 황전길 +6 18.05.09 574 3 8쪽
43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3.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2 18.05.09 576 4 8쪽
»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2. 루프 안의 유령 +3 18.05.08 589 4 11쪽
41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1. 각성전환 +2 18.05.06 573 4 7쪽
40 제1부 루프아티스트 - 40. 두 약속 +1 18.05.05 576 4 10쪽
39 제1부 루프아티스트 - 39. 빛의 여제(5) : 퇴직의 변(辯) +2 18.05.04 669 3 9쪽
38 제1부 루프아티스트 - 38. 빛의 여제(4) : 루프 디자인 실습 +3 18.05.03 606 4 11쪽
37 제1부 루프아티스트 - 37. 빛의 여제(3) : 장사인의 통찰 +2 18.05.02 631 6 13쪽
36 제1부 루프아티스트 - 36. 빛의 여제(2) +2 18.05.01 596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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