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자(A.J.A)의 서재입니다.

빛과 어둠 속 뒤틀린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아자aja
작품등록일 :
2022.05.11 11:27
최근연재일 :
2022.12.21 20:12
연재수 :
232 회
조회수 :
19,198
추천수 :
970
글자수 :
1,384,956

작성
22.05.22 22:46
조회
109
추천
6
글자
20쪽

- 제 21 화 – 수호자로 내세웠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DUMMY

- 제 21 화 – 수호자로 내세웠다.


건국기념 축제 사태가 있고 며칠 후.

리아인과 류안은 산책 겸 왕궁 정원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어이, 소년.”


루카테르의 껄렁한 부름에 리아인이 돌아보며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검은 머리 소년 류안.”


리아인은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고,

류안이 뒤돌아 루카테르를 봤다.


세이지의 말에 따르면

꿰뚫어 보는 힘으로도 저 녀석 류안의 ’보는 힘‘이 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알고 싶으면 직접 물어봐야지 별수 있나.

그래서 루카테르는 류안한테 물었다.


“넌 뭘 보는 거야?”


리아인은 그의 물음에 ‘저건 또 뭔 헛소리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잘 못 말했나? 류안 네가 ‘보는 힘’은 뭘 보는 거냐고?”


“??? 보이는 것을 보는데?”


루카테르는 류안의 대답에 한숨을 한번 쉬고는


“아니 내 말은 너도 아는 것 같지만, 세이지의 ‘보는 힘’은 본질을 파악하는 ‘꿰뚫어 보는 힘’이야. 그럼, 너의 ‘보는 힘’도 뭔가를 볼 것 아냐? 그게 뭐냐고.”


“??? 보이는 것.”


“아─! 진짜 말귀 못 알아듣네. 잘 들어! ‘보는 힘’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꿰뚫어 보는 힘, 과거를 보는 힘, 미래를 보는 힘 등등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넌 어떤 식의 ‘보는 힘’이냐고!”


류안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뭐야, 저 녀석 왜 말이 없어?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예시까지 들어줬는데 아직도 못 알아들은 건가?’


아니, 류안은 잘 알아들었다.

단지 대답해 줬음에도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루카테르는 류안을 한심하게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아직 자신의 ‘보는 힘’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것 아냐? 그래, 그럴 수 있어! 어리니까.’


루카테르는 아직 어린 소년인 류안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듯 보던 시선을 안쓰러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모를 수 있어. 그리고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니 걱정하지마. 모르고 궁금한 것은 말만 해. 내가 뭐든 다 알려주고 가르쳐 줄 테니까.”


루카테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가 아주 대견스러웠다.

아직 부족한 것과 모르는 것이 많을 어린 존재한테 무상으로 가르침을 주는 어른으로서,

인간의 상위존재로서 아주 뿌듯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친분을 쌓다 보면 기생 마수에 자연히 얘기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꼼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루카테르를 보는 리아인의 표정은 썩어있었다.

류안도 저 드래곤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표정들이 왜 그래?”


국왕 레이쉴의 만남 요청으로 국왕의 집무실로 향하던 벨드라엔의 눈에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세 명이 보였다.


루카테르는 벨드라엔을 보자마자 한심하다는 듯 봤다.


‘쯧, 신이라는 것이 데리고 있는 아이가 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있다니···.’


벨드라엔은 루카테르의 시선에 아주 매우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카테르는 벨드라엔한테 가던 길 가라며 손을 휘저었다.


“국왕이 드래곤 너도 부른 것으로 아는데.”


그 말에

드래곤 루카테르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 난 왜? 나 일 꽤 잘했는데··· 열심히 했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국왕을 만나러 가보면 알겠지.”


“·········.”


루카테르는 할 말을 잃고 잠시 멍하니 있더니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국왕이 있는 집무실로 터덜터덜 발을 움직였다.


국왕 레이쉴의 집무실.


똑똑.

끼이익───.


“···레이쉴, 나도 불렀어?”


드래곤 루카테르가 집무실 문을 열고 뻘쭘하면서 들어왔다.

그 뒤로 류안을 앞세운 벨드라엔이 무슨 이유인지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왔고,

리아인은 그런 그를 죽일 듯 노려보며 들어오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해탈한 표정의 쌍둥이가 들어왔다.


“허······.”


레이쉴은 다양 각색한 그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일단 다들 앉도록 하시죠.”


다들 집무실에 들어올 때의 표정 그대로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음, 루카테르 님과 벨드라엔 님 두 분을 부른 것인데, 너희도 왔군···.”


레이쉴은 잠시 난감한 듯하다가 진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저를 대신해 희생했던 병사의 영혼이 육체를 떠났습니다.”


“아, 잠깐 말 끊어서 미안. 국왕이잖아, 그냥 말 편하게 해.”


루카테르의 말에 벨드라엔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레이쉴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 병사를 마지막으로 창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영혼이 모두 육체를 떠났다. 그래서 내일 그들을 위한 합동 장례 화장식을 치러줄 예정이지.”


집무실에 모인 모두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한 명 빼고,

류안은 평소처럼 멍하니 있었다.


“또한, 내일 합동 장례 화장식을 끝내면 루카테르 님과 더불어 벨드라엔 님을 이 왕국 ‘레쉬아’의 수호자로 소개할 계획이다.”


“응? 나?”


벨드라엔은 적잖게 놀랐다.


“나를 왜? 난 말만 신이지, 그런 식으로 내세울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오히려 이 왕국의 위상을 해칠 수 있어.”


벨드라엔은 손사래 치며 아주 엄청 심각하게 말하고 있었는데,

국왕 레이쉴의 표정은 모두 계획이 있다는 듯 평온했다.


‘뭐지? 왜 불안하지?’


벨드라엔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오랜만(?)에 흐르지 않는 식은땀을 느꼈다.


“벨드라엔 님이 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저 자리만 빛내주시면 됩니다.”


레이쉴이 다시 말을 높여 말하는 것에 더 불안감이 몰려왔다.


“신께 부탁드리오니,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부탁의 말을 들은 벨드라엔은 슬쩍 옆에 앉아 있는 쌍둥이 둘을 봤다.

평소라면 ‘도망자 신세인데 터무니없다.’라는 식으로 윽박지를 아이들이 조용했다.

아니,

오히려 두 쌍의 눈을 반짝거리며 어서 허락하라는 듯이 압박하고 있었다.


‘뭐야, 얘들이 왜 이래? 이런 식으로 드러나거나 눈에 띄는 것 싫어하지 않았나?’


쌍둥이의 두 쌍의 초롱초롱한 눈빛의 압박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벨드라엔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는 와중에

그 눈빛의 압박을 결국 이기지 못했다.


“······어, 음 알았어, 허락···하겠어.”


“감사합니다. 벨드라엔 님.”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안 해. 아니,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 알고는 있는 것이겠지?”


벨드라엔은 다급히 말했고,


“예, 압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저 있어만 주시면 됩니다.”


레이쉴은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어··· 그럼, 나한테 할 얘기는 끝났지?”


“네, 끝났습니다. 여기 편안히 계셔도 되고, 나가셔도 됩니다.”


벨드라엔은 아무 말 없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얼떨결에 받아들인 이 상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그의 뒤를

쌍둥이 둘은 흐뭇한 표정으로 따라 나갔다.


루카테르는 레이쉴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손가락으로 집무실 문을 가리켰다.

레이쉴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테르는 활짝 핀 표정으로 후다닥 집무실을 나갔다.


애초에 벨드라엔이 류안을 끌고 와 오게 된 것이기에 볼일이 없는 리아인도 류안을 데리고 나가기 위해 일어서고 있었는데,


“이왕 온 김에 나와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리아인은 레이쉴을 바라봤다.


“자네가 제안한 ‘가림막’이 맘에 들어서 말이야. 얘기를 좀 더 해보고 싶어졌거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리아인은 자리에 다시 앉았다.


“정말 기발한 제안이었어.”


리아인은 어제 류안과 산책 삼아 정원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레이쉴한테 넌지시 ‘가림막’을 제안했었다.


“도망자 신을 ‘힘을 숨긴 신’으로 내세울 줄이야.”


레이쉴은 리아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런 신이 신의 영역싸움이나 검은 옷의 조직으로부터 이곳 레쉬아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시발점[始發點]으로 내일 합동 장례가 끝날쯤 왕국민한테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여 준다.”


레이쉴의 얼굴에 흡족함이 충만했다.


“그래, 불안해하는 민심을 달래는데 이만한 것이 없지. 아주 맘에 들어!”


레이쉴은 사실 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했다.

예전 누님 세이지의 일도 있고······

걸핏하면 영역싸움 해대고 있는 꼴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용하는 것은 다르다.

왕국을 위해 신을 이용을 한다.

당연히 해야지!!!


그리고,

‘가림막’의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레이쉴은 류안을 슬쩍 봤다.


축제 마지막 날에 벌어진 사태.

차원의 틈에 나타난 하얀 창의 기괴한 기류를 멈춰졌을 뿐 아니라

기류에 먹힌 사람들을 잠시나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제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 소년.


저 소년을 가리기 위한 것.


그 가려주는 존재로 신이란 존재는 가장 적절할 것이다.


“자넨 가만 보면 어려 보이는 것에 비해 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보이더군.”


“그거야 벨드라엔 님이 곁에서 많이 알려주셔서 그렇습니다.”


“그래?”


“네, 그렇습니다.”


리아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아주 천연덕스럽게 잘하는군.’


레이쉴은 리아인을 더 지그시 응시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뭡니까? 전하.”


“벨드라엔 님도 ‘가림막’에 대해 알고 계신 건가?”


그 물음에 리아인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히 알고 계시죠. 벨드라엔 님께서 먼저 저희를 위해 가림막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뭐? 신이 먼저 제안했다고?’


의외였다.

당연히 이 리아인이라는 소년이 뒤에서 몰래 계획한 것이라 여겼으니까.


“호오, 그렇군. 그럼, 그 가림막을 위해 내가 따로 해야 할 것이 있는가?”


“아뇨, 전하께서 따로 하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벨드라엔 님을 적절한 때에 내세우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 신이신 분이 고생하시겠군.”


“고생이라니요? 이 정도 갖고. 벨드라엔 님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리아인의 말에

레이쉴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 녀석도 신이란 것들을 싫어하고 있군.’


신을 싫어하는 동류라 알 수 있었다.


“류안 군, 자네 생각은 어떻지?”


리아인의 미소짓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뭐야? 갑자기 류안한테는 왜 묻는 거지?’


“벨드라엔 님의 가림막··· 아니, 수호신으로서 어떠한지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


“음··· 수호신으로는 차고 넘칠걸?”


류안의 망설임 없는 말에

리아인과 레이쉴이 멈칫했다.


“스스로 제약을 걸어 힘을 숨긴 것도 맞고, 그 제약을 풀고 자신의 권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웬만한 신들은 괜히 덤볐다간 본전도 못 찾을··· 응? 두 사람 표정이 왜 그래?”


리아인과 레이쉴이 얼이 빠진 듯이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리아인은 류안이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힘을 숨긴 것이 맞다···고?’


“둘 다 알고 얘기하던 것 아니었어? 세이지의 꿰뚫어 보는 힘으로 알고 있지 않았나?”


“하··· 하. 하.”


레이쉴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하하, 벨드라엔 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보군. 이거 수호신으로 제대로 모셔야겠어.”


레이쉴이 호탕하게 웃고 있을 때,

리아인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그럼, 가림막 외에 방패로도 이용할 수 있으려나··· 아니, 아니지! 가림막으로도 충분해!!! 이 왕궁에 떨구고 얼른 류안과 단둘이 떠나야겠어.’


리아인은 하루빨리 떠나자고 다짐하고 입을 열었다.


“전하, 내일 합동 장례식이 끝나면 저희 둘은 다시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뭐? 여행? 떠나겠다고?”


“네, 전하. 왕궁의 수호신으로 벨드라엔 님과 그분의 아이인 쌍둥이가 이곳에 남아 계실 테니 굳이 저희 둘도 여기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어서요.”


“여행 다니면서 뭘 할 예정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네, 평범하게 여행 다니며 세상을 구경하고 사회경험을 할까 합니다.”


정보는 무슨 류안하고 여행만 다닐 리아인 이었다.


“평범하게 여행을 다니겠다고?”


“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미처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지 않겠습니까?”


“평범하게 말이지?”


‘뭐야? 짜증 나게 같은 말을 왜 계속 반복하는 거야?’


리아인은 레이쉴의 표정을 봤다.

평범? 네가? 농담이지? 라는 표정이었다.


레이쉴은 리아인의 ‘평범’하게 여행 다니겠다는 말에 뭐라고 해줘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뒤틀린 아이.


리아인이 신의 손길로 뒤틀린 아이라는 것은 누님 세이지를 통해 알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누님 세이지도 신의 손길을 받아 뒤틀린 적이 있었기에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단지,

눈앞의 소년, 리아인의 경우

무언가가 뒤틀린 것을 가리고 있어 뒤틀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했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능력을 감출 생각 없이 발휘하고,

원한 것은 아니겠지만··· 검은 옷의 무리인지 조직인지 하고 부딪치고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거기에 저 미스터리 한 소년.

류안을 데리고 평범하게 여행을 다니겠다고?


레이쉴은 정말 농담이 아니라

진심인가 싶었다.


당연 리아인은 진심이었다.


이제껏 리아인의 행보를 보면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인지 의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리아인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이곳 판타지 세계 ‘가쉬’에 맞혀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조용한 도서관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시끄럽게 하면 당연히 시선이 집중될 것이고 쫓겨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다들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추는 무대에서 혼자 멀뚱히 가만히 있으면 이 또한, 눈에 띌 것이고 분위기 흐리지 말라면서 쫓겨나게 되기 일쑤다.


이처럼 조용한 곳에서는 조용히

시끄러운 곳에서는 그에 맞혀 적당히 시끄럽게 있는 것이 리아인이 생각하는 평범하게 적응해서 사는 것이었다.


참고로 리아인은 이곳으로 오기 전,

이전 세계에서는 능력의 ‘능’자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전 세계에서

정전기를 기본으로 이용한 능력을 실수로라도 사용했다가는 바로 연구실로 잡혀 끌려가 실험 쥐가 될 것이 뻔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전자화, 디지털 시대였던 그곳에서 정전기로 기계가 망가진다거나···

망가지기만 하면 다행이고,

그 안에 있던 중요한 자료들이 깡그리 날아가는 사태가 생기기라도 하면 리아인은 그쪽 분야의 사람들한테 척살 1호가 될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그런 세계답게 정전기 방지 패치 같은 것이 잘 발전되어 있어서 능력을 숨기는 것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하기에

이런 판타지 세계에선 능력자들이 많이 있는 만큼 능력을 맘껏 써재껴도 딱히 눈에 띄는 행동이 아니며,

사건, 사고에 엮이지 않기 위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모험가인 척하면서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에 엮이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알아서 가림막이 되어 준다는 신이 있으니 실컷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신이란 것들과 엮이지 않게 조심하는 것.

그 신이란 것들 때문에 겪은 그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리아인이었다.


리아인은 레이쉴한테 진지하게 말했다.


“네, 제가 한곳에 정착하면 좀이 쑤시는 체질이라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 말에 레이쉴의 시선이 류안한테로 향했다.


“류안은 제가 보호자이고, 류안도 동의한 것입니다.”


“그런가?”


류안을 향한 물음이었다.


“응.”


“······그래, 둘 다 여행 갈 거라 하니 내가 막을 권리도 이유도 없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게 준비해 줄 테니까. 그런데, 언제 떠날 생각인가?”


“합동 장례식에 얼굴만 살짝 비추고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그렇군, 여행 준비를 해야 할 테니 더 이상 시간을 뺏을 수 없지. 이만 나가도 좋네.”


“네, 감사합니다. 전하.”


리아인과 류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 후 집무실 문 쪽으로 향했고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여는 순간.


“아, 여행을 다니면서 간간이 소식은 전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해줄 수 있나?”


리아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네, 전하. 간간이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리아인은 가뭄에 콩 나듯 소식을 전할 생각이었다.


탁─!


리아인과 류안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집무실에 혼자 남은 레이쉴은 소파 등받이에 눕듯이 기대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해야 할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곳에 다시 오겠지···.”


천장을 보던 레이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수도 광장 기념탑 앞.


그 앞에 대형 나무 탑이 쌓여가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하얀 창의 투명한 돌에 의해 생명과 영혼이 잃고 빈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의 관이 자리해 있었다.


합동 장례 화장식.


화장 준비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나무 탑 앞에 꽃을 놓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왕 레이쉴이 나무 탑 앞에 마련된 단상 위로 천천히 발을 움직여 자리했다.


숙연한 분위기에 그 어떤 환호도 없이 조용했다.


국왕 레이쉴의 붉은 머리카락이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불길이 온몸을 감싸았다.


레이쉴은 나무 탑에 천천히 조심히 손을 뻗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불길이 손으로 모이면서 나무 탑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나무 탑은 삽시간에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비록 장례를 위한 화장이었지만,

거대한 붉은 불길에 휩싸인 나무 탑은 가히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불타는 나무 탑을 보며 두 손을 모아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레이쉴은 불타는 나무 탑이 연기도 재도 남기지 않고 모두 타 사라질 때까지 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무 탑을 태운 불길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불길이 모두 사라진 그곳에는 그 어떤 흔적도 그을음조차 남지 않았다.


레이쉴은 단상 위에서 몸을 돌려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엄숙히 외쳤다.


“나, 레이쉴 에피아는 국왕으로서 그대들한테 약속한다. 두 번 다시 그대들을 해하는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


사람들의 시선이 국왕 레이쉴로 집중되었다.


“그러기 위해 이 왕국 레쉬아를 수호해줄 위대한 두 존재를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레이쉴은 오른손을 들어 옆을 향해 펼쳤다.


“레쉬아 왕국의 수호 드래곤 루카테르.”


그런 뒤,

왼손을 마저 들어 옆을 향해 펼쳤다.


“수호신 벨드라엔.”


루카테르와 벨드라엔이 단상 위로 올라와 양팔을 펼친 레이쉴의 양옆에 각각 자리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수호 드래곤 이라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수호신이라니···.”

“드래곤과 신이 우리 왕국을 수호한다는 말인가?”

“···정말인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잠시 멈추더니


“와아아아아─────!!!”


이내 환호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두웠던 사람들의 얼굴에 너나 할 것 없이 밝아져 있었다.

레이쉴은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안심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위대한 존재 둘의 수호가 있으니, 그대들은 근심 걱정은 잊고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이 말을 끝으로 레이쉴은 수호 드래곤 루카테르, 수호신 벨드라엔과 함께 단상을 내려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왕궁으로 향했다.


이 광경을 보일 듯 말 듯 한 곳에서

쌍둥이 둘, 리아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류안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단상에서 내려온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사람들도 기쁨과 안심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 틈 속에 며칠 전 하얀 창의 사태가 일어났던 광장을 여관 3층에서 여유롭게 지켜보던 귀족 금발의 남성도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빛과 어둠 속 뒤틀린 아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 제 34 화 – 안개비 속의 존재들. 22.05.31 87 5 13쪽
34 - 제 33 화 – 말이 씨가 되었나···. 22.05.30 88 5 16쪽
33 - 제 32 화 –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22.05.29 88 6 16쪽
32 - 제 31 화 – 새로 시작하는 자. 22.05.28 90 8 16쪽
31 - 제 30 화 – 귀찮은 부탁··· 에휴. 22.05.27 90 8 20쪽
30 - 제 29 화 – 한밤중의 외출. 22.05.26 92 6 17쪽
29 - 제 28 화 – 뒤틀린 자···. 22.05.26 96 7 20쪽
28 - 제 27 화 – 예상하지 못한 사실. +2 22.05.25 95 9 17쪽
27 - 제 26 화 – 원치 않게 받아들였다. 22.05.25 91 5 17쪽
26 - 제 25 화 – 신전을 찾은 후…. 22.05.24 96 7 20쪽
25 - 제 24 화 – 알고 있었다? +2 22.05.24 95 6 20쪽
24 - 제 23 화 – 원치 않게 알게 되었다. 22.05.23 96 7 18쪽
23 - 제 22 화 – 다시 여행을 떠나는데···. 22.05.23 97 6 16쪽
» - 제 21 화 – 수호자로 내세웠다. 22.05.22 110 6 20쪽
21 - 제 20 화 – 기이한 사태. 22.05.22 102 6 18쪽
20 - 제 19 화 – 건국기념 축제. +1 22.05.21 106 5 18쪽
19 - 제 18 화 – 엮일 것 같아 불길하다···. 22.05.21 113 6 17쪽
18 - 제 17 화 – 수도에 도착했는데···. 22.05.20 113 5 15쪽
17 - 제 16 화 – 찜찜한 뜻밖의 수확. 22.05.20 119 5 16쪽
16 - 제 15 화 – 원치 않은 곳에 왔다···. +2 22.05.19 121 6 16쪽
15 - 제 14 화 - 어딜 가라고···? 22.05.19 122 6 12쪽
14 - 제 13 화 - 드러나기 시작한…. 22.05.18 132 6 21쪽
13 - 제 12 화 – 일이 생겨버렸다. +2 22.05.18 144 6 17쪽
12 - 제 11 화 – 쓸데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22.05.17 140 6 13쪽
11 - 제 10 화 – 주워버렸다. +2 22.05.17 147 8 21쪽
10 - 제 9 화 – 의도하지 않은 의문의 징조. 22.05.16 149 7 14쪽
9 - 제 8 화 – 짜증 나는 만남…. 22.05.16 164 8 17쪽
8 - 제 7 화 – 달갑지 않은 만남. 22.05.15 173 7 13쪽
7 - 제 6 화 – 이동 중 생긴 일들··. 22.05.14 189 7 16쪽
6 - 제 5 화 – 이런 젠장. 22.05.14 230 8 11쪽
5 - 제 4 화 – 평범한 일상. +1 22.05.13 295 11 12쪽
4 - 제 3 화 – 함께 다니게 되었다. +2 22.05.12 363 21 13쪽
3 - 제 2 화 - 차원 이동해 따라왔다. 22.05.12 446 26 16쪽
2 - 제 1 화 - 차원 이동 당했다. 젠장. +6 22.05.11 609 36 18쪽
1 프롤로그 +4 22.05.11 1,019 4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