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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A.J.A)의 서재입니다.

빛과 어둠 속 뒤틀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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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aja
작품등록일 :
2022.05.11 11:27
최근연재일 :
2022.12.21 20:12
연재수 :
232 회
조회수 :
19,161
추천수 :
970
글자수 :
1,384,956

작성
22.05.26 09:47
조회
94
추천
7
글자
20쪽

- 제 28 화 – 뒤틀린 자···.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DUMMY

- 제 28 화 – 뒤틀린 자···.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어두운 밤.


수도 서쪽 성벽 문에서 성인의 보통 걸음으로 한나절 걸리는 곳.

그곳에 ‘마수의 숲’만큼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간 큰 모험가나 개척정신이 투철한 몇몇만이 찾는 ‘미지의 숲’이 있다.


그 숲에서 붉은 눈동자에 백발의 남성이 고통에 괴로워하며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남자의 몸에서는 탁하고 거친 뒤틀린 기운이 흘러나와 휘감기고 있었다.


“크으으윽──!”


백발의 남성은 고통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양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몸 전체에 은색 빛이 감돌더니 탁하고 거친 뒤틀린 기운을 가리며 억눌렀다.


“하아··· 하아······.”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백발의 남성은 보이지 않지만,

수도 서쪽 성벽 문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그는 다리에 힘을 주면 쓰러질 듯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거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바라봤다.

달이 보이지 않는 까만 밤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레쉬아 왕국의 수호신.

부디, 수호신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자신을 비춰주기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백발의 남성은 떨리는 다리와 발을 움직여 성벽 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해가 뜨고 어둠이 사라지는 이른 아침.


리아인은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크흡─!”


리아인은 또다시 동양 귀신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마주했다.


류안이 검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은 저번보다 더 무서웠다.


“류··· 류안 왜?”


“할 말이 있어.”


“응?”


리아인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놀라 쪼그라들었던 몸을 일으켜 침대맡에 앉았다.

류안도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평소와 달리 할 말이 있다는 진지한 류안의 모습에 긴장이 되었다.


“뒤틀린 자가 오고 있어.”


그 말에 리아인의 눈이 커졌다.


“뒤틀···린 자라고?”


리아인은 떨리는 입술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돌연변이···인 거야?”


“음, 돌연변이이기도 한데.”


리아인은 그 말에 안도하려는 순간,


“신의 손길로 인해 심하게 뒤틀렸어.”


‘신의 손길’이란 말에 리아인은 후두부를 쇠망치로 강타당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

다시 심연 밑에 묻어두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뒤틀린 자라고?

-괜찮겠냐? 이러다 잘못하면 ㅃ···.


리아인은 가슴팍을 움켜잡으며 목소리를 심연 밑으로 밀어 넣었다.


-크크크─크─······.


목소리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며 사라졌다.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어.”


리아인은 미소지어 보이는 류안을 봤고

그 모습에 가슴팍을 움켜잡았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보여서 봤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도 되는데···. 무시해도 되나 싶어서.”


류안은 턱에 손을 대고 갸웃거리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난 무시해도 상관이 없지만, 그러면 수도가 작살날 것이 분명해서 말이야.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리아인의 눈이 아까보다 더 커졌다.


“어··· 어, 그러니까 그··· 레이쉴하고 얘기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리아인은 말을 더듬으며 겨우 대답을 했다.


그렇게 그 의견에 따라

류안은 리아인과 같이 국왕 레이쉴이 회의하고 있는 회의실로 왔고,

마침 문이 열리며 레이쉴과 마주하게 되었다.


* * *


“크흠, 류안 군. 할 말이라니 무엇인가?”


류안을 고개를 살짝 기우려 회의실 안 재상들을 한번 보고 다시 레이쉴을 봤다.


“내 집무실로 가서 얘기해야겠군.”


레이쉴의 말에 류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쉴, 류안과 리아이은 집무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류안이 발을 멈추고 레이쉴을 봤다.


“벨드라엔도 같이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레이쉴은 시종한테 손짓을 보였고

시종은 바로 움직였다.


국왕 레이쉴의 집무실.


레이쉴, 류안과 리아인,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인간 모습의 루카테르.

그리고 꿰뚫어 보는 힘으로 뒤틀린 자가 수도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세이지도 있었다.


“그래, 류안 할 얘기가 뭐지?”


“조금 있으면 뒤틀린 백발의 남자가 서쪽 성벽 문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돼. 지금은 뒤틀린 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뒤틀림을 억누르고 있지만, 곧 한계라서 억눌려 있던 뒤틀림이 폭주하면서 그 주변도 뒤틀어 버리게 될 거야.”


“······그런.”


세이지가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막을 방법이 무엇이지?”


레이쉴은 류안은 막을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뒤틀림이 폭주하기 전에 하얀 창의 먹이로 주면 돼.”


“그럼, 그 뒤틀린 자는······.”


“죽음을 맞이하겠지.”


집무실에 일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음, 빈 껍데기가 되지는 않아. 뒤틀림만 먹이로 주는 것이니까.”


류안은 레이쉴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고 싶어?”


“···무엇을 도와주면 되지?”


레이쉴의 말에 류안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도와줄 것은 없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


류안은 고개를 돌려 벨드라엔을 바라봤다.


“가림막 잘 부탁해.”


류안은 그러면서 묘한 미소가 아닌 산뜻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벨드라엔은 그 미소에 오싹함이 밀려왔다.


류안이 말한 가림막.

뒤틀린 자에 관해 은밀히 처리하겠지만

행여나 그것이 어딘가로 알려지게 될 경우,

‘수호신’ 벨드라엔의 이름 아래 행해진 일이라 하는 것이었다.


‘가림막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날 죽이려나···?’


벨드라엔은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여기고 있지만, 불안감에 드는 엉뚱한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 * *


서쪽 성벽 문 안쪽에서 조금 떨어진

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조용히 생겼다.

그 마법진에서 류안과 리아인,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루카테르가 차례대로 모습을 보였고,

마지막으로 상황을 직접보고 싶다는 국왕 레이쉴이 모습을 보였다.


루카테르와 쌍둥이 네우가 합작으로 만든 투명화 막과 방음용 막이 모두를 감싸았다.

그들은 조심히 서쪽 성벽 문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이동해서 성벽 문밖을 지키고 있는 병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왔을 때,

그들의 눈앞에 한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많이 지쳐 보이는,

곧 쓰러질 것 같은 백발의 남성이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오고 있었다.


루카테르와 네우는 투명화 막과 방음용 막을 거뒀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을 본 백발 남자의 눈이 커지며 놀랐다.

레쉬아 왕국의 수호신 벨드라엔이 보였지만,

뒤틀렸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인지

백발 남성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자신처럼 뒤틀린 소년.


그리고

뒤이어 백발의 남자는 밤하늘에서 봤던 별빛 같은 희망이 눈동자에 자리했다.


소년의 뒤틀림을 가려준 존재.

자신의 뒤틀림도 가려줄지 모르는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백발의 남성은 더 이상 힘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를 발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엎어지듯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백발의 남성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뒤틀림이 폭주할 것 같은 그의 눈에 희망의 존재가 쭈그려 앉는 것이 보였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


“조금 더 버틸 수 있어?”


백발의 남성은 힘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류안은 미소를 보이며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음─ 아직 엿보는 자는 없네. 은신 잘하고 있었나 봐.”


류안의 칭찬에 백발의 남성은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를 뒤틀림에 불안했던 맘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럼, 먼저 할 것부터 하고.”


류안은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동자 색이 투명하다 싶을 정도의 옅은 청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내가 지켜보는 이곳은 나의 영역. 나의 허락 없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불허한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류안 주위로 강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그곳에 있는 모두는 눈을 감고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벨드라엔은 인지했다.

류안이 권능의 힘을 사용해 영역을 펼쳤다는 것을.


“눈 떠도 돼.”


다들 귀를 막고 있었지만,

류안의 말에 감았던 눈을 뜨고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변화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좀 전에 느껴졌던 강한 기운은 착각이었다는 듯이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말없이 류안을 봤다.


류안은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백발의 남성 앞에 다시 쭈그려 앉았다.


백발의 남성은 간절함에

자신도 모르게 류안 쪽으로 손을 뻗었다.

류안은 그 손을 피해 쭈그린 자세 그대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미안, 난 누구도 받아줄 생각 없어.”


백발 남자의 손을 떨리기 시작했다.

희망을 줄 존재라고 여겼던 류안의 말에 절망감이 밀려왔는지 뒤틀림을 억누르고 있던 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으윽──!”


백발의 남성은 몸을 웅크렸다.

비록 자신은 이렇지만,

희망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소년, 이곳에 있는 자들이 뒤틀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백발의 남성은 안간힘을 쓰며 뒤틀림을 막고자 했으나

뒤틀림은 꿈틀거리며 특유의 기괴한 기운을 뿜어내려 하고 있었다.


백발의 남성은 류안 너머 보이는

자신과 같은 뒤틀린 소년.

그렇지만 그 뒤틀림이 가려져 있는 소년.

리아인을 봤다.


부러움이 밀려오던 그때.


“도와줄 수는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백발의 남성은 자신의 뒤틀림이 일시적이나 가려지는 것을 느꼈다.

거칠게 꿈틀거리며 내뿜어지려던 기괴한 기운이 사라졌다.


백발의 남성은 류안을 바라봤고

류안은 그의 귀가 가까이 다가가 그만이 들리도록 속사였다.


“널 뒤틀어 버린 신을 죽일 수 있게 도와줄게.”


류안의 속삭임에서 포근함과 달콤함이 감돌았다.


“그 신을 죽이면 너의 뒤틀림은 사라져.”


“······그게 가능해?”


그 말을 믿기 힘들었던

백발 남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난···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이지?”


류안은 속삭이며 말했다.


“너의 뒤틀림을 내게 주면 돼.”


이 말과 함께 보였다.

눈앞의 소년.

류안의 손에 들린 투명한 돌이 박혀있는 기괴한 모양의 하얀 창촉.


그것을 본 백발의 남성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자신을 뒤틀어 버린 신이 한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너의 영혼과 뒤틀림은 하얀 창의 제물이 될 것이다. 그것으로 너의 존재 가치가 증명될 것이다.’


“이 창촉에 스며들 너의 뒤틀림으로 그 신을 죽여줄게.”


이어진 류안의 말에 백발 남성의 흔들리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며 진정되었다.


“비록 너의 육체는 뒤틀림의 여파로 얼마 가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너의 영혼은 자연의 섭리대로 순리에 맞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


류안은 진실만 말해주긴 했지만,

이참에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백발의 남성으로부터 ‘신을 죽이고 싶다’라는 염원[念願]을 받아내기 위해 교묘히 꼬아 말하며 다른 진실을 숨겼다.

하얀 창의 먹이로 뒤틀림을 전부 주기만 해도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진실을.


류안은 가만히 백발 남성의 눈을 응시했다.


“어때?”


다른 이들이 들었으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몰라도 백발의 남성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뒤틀림을 준 신을 죽이고

자연의 순리대로 죽음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


백발의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안은 그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고

백발 남성의 시선이 그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다가 류안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때,

백발 남성의 머릿속에 소년. 류안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 말을 들어주었으니 너에겐 특별히 알려줄게. 난 신을 ‘□□’하는 자.


백발의 남성은 놀랐다.

그의 입이 뭔가 말하려고 움직이려다 류안이 입에 검지를 댄 모습을 보고는 멈췄다.


백발 남자의 입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다.


곧이어

백발 남자의 몸에서 뒤틀린 기괴함을 품은 거대한 기운이 거칠고 난폭하게 폭주하듯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주위 주변의 모두 것을 뒤틀어 버릴 것 같은 두렵고 암울하면서 슬픔이 가득한 검은 기운.

하지만,

그 기괴한 뒤틀린 기운은 주위로 퍼져나가지 않고 류안의 주위로 모여들면서 원형으로 뭉치고 있었다.

그 형태는 흡사 블랙홀을 연상시켰다.


그렇게 응집된 뒤틀림은 이내 한 곳으로 빠르게 스며 들어갔다.

하얀 창촉에 박혀있는 투명한 돌.

그 돌이 뒤틀림을 모두 빨아들였다.


백발 남성의 뒤틀림은 주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깔끔히 사라졌다.


이 광경을 숨죽이며 조용히 보고 있던 이들.

리아인, 레이쉴,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루카테르 모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리아인은 뭔가 두려움이 밀려와 류안한테 다가가기 위해 발을 움직이려 하다 멈췄다.

뒤돌아 자신과 다른 이들을 보는 류안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지만 평온한 표정의 백발의 남성이 있었다.


“좀 옮겨주면 좋겠는데.”


다들 멍하니 가만히 있는 것을 본 류안은 뒤틀림의 잔재가 있을까 걱정돼서 저러나 싶었다.


“뒤틀림은 이제 없어.”


“어? 어, 어.”


루카테르가 움직여 백발 남성 곁으로 갔다.

정말로 그의 주위에는 뒤틀림은커녕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루카테르는 백발의 남성 몸에 보호막과 비행 마법을 걸었다.

그냥 봐도 건들면 부서질 것 같이 그의 몸 상태는 심히 엉망이었다.


“에휴─······.”


루카테르는 손을 움직였다.

그 손짓에 따라 백발의 남성 몸은 공중에 떠올랐고, 루카테르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이봐, 쌍둥이 투명화 막 혼자 할 수 있지?”


“···응.”


쌍둥이 네우는 백발의 남성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그건 보기 흉한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이 자가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쌍둥이 제우는 네우와 백발의 남성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리아인은 유유히 걸어오는 류안을 봤다.

류안은 리아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묘한 표정의 리아인.

그런 리아인을 보며 루카테르가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질투 적당히 해라.”


리아인은 고개를 휙 돌려 루카테르를 봤다.

루카테르는 별말 안 했다는 듯 먼 산을 보며 능청을 떨었다.

네우는 그 둘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투명화 막을 모두의 주위에 펼쳤다.


그런 가운데

류안은 잠시 하늘을 허공을 보고는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엿보게?

난 허락한 적 없어.


챙강─!!!


“으아아아악─────!!!”


검은색에 화려한 금빛 띠무늬가 있는 로브를 입은 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자의 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앞에 세워져 있는 대형거울은 거미줄 같은 금이 가 깨져있었다.


“쯧. 쯧.”


그자의 뒤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너도 쓰임이 다됐나 보네. 엿보는 힘, 다른 녀석한테 양도하고 제물로서 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낮지 않겠어?”


“시끄러워! 난 아직 할 수 있어!!!”


“하─?”


독특한 검은 옷에 기괴한 마스크를 한 남자는 손가락으로 뒤돌아 자신을 보는 그 자의 눈을 가리켰다.


“슈젠, 너의 눈을 보라고 한쪽 눈은 이미 망가졌고, 남은 눈도 그렇게 피를 흘리고 있잖아.”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슈젠은 대충 로브 소매 끝자락으로 눈의 피를 닦아내고는 적회색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는 자신의 오른쪽 눈을 매만졌다.

상처는 없지만,

시력이 망가져 보이지 않는 눈.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왕궁 내를 엿보다가

국왕의 누나인 세이지의 꿰뚫어 보는 힘에 들켜 오른쪽 눈이 꿰뚫리는 충격을 받았고

본질을···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나기 전 피하기는 했지만,

그 반동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엿보기를 시도하다 들키면서 그 반동으로 왼쪽 눈마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에서 흐른 피가 묻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국왕의 누나인 세이지의 꿰뚫어 보는 힘과는 다른 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자.

누군지 볼 수 없어 알 수 없었지만

아무 힘도 느껴지지 않는 그 보는 힘은 자신의 엿보는 힘을 너무나 쉽게 튕겨냈다.


슈젠은 흐릿해진 왼쪽 눈으로 자신 앞에 있는 깨진 대형거울을 봤다.

깨진 거울에는 사람 형태의 검은 잔상이 남아있었다.


자신의 엿보는 힘을 튕겨낸 그 자의 잔상.


‘반드시 알아낸다. 내 모든 것을 걸고 그자의 정체를 밝혀내 제물이 아닌 엿보는 자로서 내 가치를 증명하겠어.’


슈젠은 손등에 핏줄이 드러나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크크크······.”


실성한 듯 낮게 웃음소리를 흘리는 슈젠의 뒷모습을 보는 남자의 눈에는 안쓰러움 따윈 없었다.

그저 쓸모없어진 쓰레기를 보는 시선이었다.


슈젠의 방에는 엿보기 위한 매개체로 수십 개의 거울이 있었으나 대부분 깨져있었다.

그만큼 엿보기가 실패했다는 의미였다.


“쯧. 저 녀석의 기억은 먹어봐야 맛도 없고 알아낼 것도 없겠어.”


남자는 낮게 중얼거리고

더 이상 볼일 없는 슈젠의 방을 나갔다.


* * *


왕궁 내 구석진 곳에 있는 정원 안.

레이쉴과 세이지의 어렸을 적 쉼터였던 2층 구조의 오두막이 있었다.


이 오두막은 레이쉴과 세이지, 루카테르만이 아는 곳으로

2층 계단 바로 옆에 있는 방.

침대에 백발의 남성이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듯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이 사람은 제가 돌볼게요.”


쌍둥이 네우가 백발 남성의 돌보미를 자처했다.


제우는 네우의 행동을 이해했다.

과거 쌍둥이 자신들의 모습과 백발 남성의 모습이 겹쳐 보였으니까.

벨드라엔도 이해하고 있었다.


“음, 그래 준다면 고맙지만, 괜찮겠나?”


“네.”


“···알겠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루카테르 님한테 부탁하면 돼.”


레이쉴의 말에

루카테르는 움찔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때,

류안이 손을 들어 보였다.


“나도 여기서 머물러도 돼?”


“상관없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별 것 아니고, 봐야 할 것이 있어서.”


‘봐야 할 것?’


레이쉴은 궁금증이 들었으며

류안은 물어보면 대답해 줄 것 같았으나

모르는 것이 상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입을 꾹 닫았다.


“그럼, 우린 이만 가지.”


방안을 나가는 레이쉴, 벨드라엔과 쌍둥이 제우, 루카테르를 향해 류안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보였다.


‘류안이 저런 성격이었나?’


네 명 모두 같은 의문이 들 때,


“가림막 잘 부탁해.”


벨드라엔은 크게 움찔했다.

그러다 그냥 류안은 안 보고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네 명이 나가고

네 명이 있는 방.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리아인은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전 세계에서부터 봐왔던 류안이

버려진 신전에 갔다 온 후···

아니,

이곳 세계에 온 이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보이더니 지금의 류안을 보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조용히 가만히 멍하니 보는 것을 즐겼던 류안이 왠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묘한 감정이 잔잔한 수면 위에 물방울 떨어지며 생긴 파장처럼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파장과 함께


-잘 간수 해, 안 그러면······.


심연의 목소리가 들리다 사라졌다.


리아인은 목소리는 이미 사라졌으나,

머리를 가로저으며 잔음[殘音]을 털어내고 있었는데 등을 미는 힘이 느껴졌다.


“네우가 나가래.”


류안이 리아인의 등을 양손으로 밀고 있었고,

그 뒤로 백발의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네우가 있었다.


네우의 눈빛은 확실히 방해되니 얼른 나가라는 눈빛이었다.


“어, 수고··· 해.”


리아인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류안이 떠미는 대로 방을 나갔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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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제 27 화 – 예상하지 못한 사실. +2 22.05.25 94 9 17쪽
27 - 제 26 화 – 원치 않게 받아들였다. 22.05.25 91 5 17쪽
26 - 제 25 화 – 신전을 찾은 후…. 22.05.24 96 7 20쪽
25 - 제 24 화 – 알고 있었다? +2 22.05.24 94 6 20쪽
24 - 제 23 화 – 원치 않게 알게 되었다. 22.05.23 96 7 18쪽
23 - 제 22 화 – 다시 여행을 떠나는데···. 22.05.23 97 6 16쪽
22 - 제 21 화 – 수호자로 내세웠다. 22.05.22 109 6 20쪽
21 - 제 20 화 – 기이한 사태. 22.05.22 102 6 18쪽
20 - 제 19 화 – 건국기념 축제. +1 22.05.21 106 5 18쪽
19 - 제 18 화 – 엮일 것 같아 불길하다···. 22.05.21 113 6 17쪽
18 - 제 17 화 – 수도에 도착했는데···. 22.05.20 113 5 15쪽
17 - 제 16 화 – 찜찜한 뜻밖의 수확. 22.05.20 119 5 16쪽
16 - 제 15 화 – 원치 않은 곳에 왔다···. +2 22.05.19 121 6 16쪽
15 - 제 14 화 - 어딜 가라고···? 22.05.19 122 6 12쪽
14 - 제 13 화 - 드러나기 시작한…. 22.05.18 132 6 21쪽
13 - 제 12 화 – 일이 생겨버렸다. +2 22.05.18 144 6 17쪽
12 - 제 11 화 – 쓸데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22.05.17 140 6 13쪽
11 - 제 10 화 – 주워버렸다. +2 22.05.17 147 8 21쪽
10 - 제 9 화 – 의도하지 않은 의문의 징조. 22.05.16 149 7 14쪽
9 - 제 8 화 – 짜증 나는 만남…. 22.05.16 164 8 17쪽
8 - 제 7 화 – 달갑지 않은 만남. 22.05.15 173 7 13쪽
7 - 제 6 화 – 이동 중 생긴 일들··. 22.05.14 189 7 16쪽
6 - 제 5 화 – 이런 젠장. 22.05.14 230 8 11쪽
5 - 제 4 화 – 평범한 일상. +1 22.05.13 295 11 12쪽
4 - 제 3 화 – 함께 다니게 되었다. +2 22.05.12 363 21 13쪽
3 - 제 2 화 - 차원 이동해 따라왔다. 22.05.12 445 26 16쪽
2 - 제 1 화 - 차원 이동 당했다. 젠장. +6 22.05.11 609 36 18쪽
1 프롤로그 +4 22.05.11 1,018 4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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