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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사마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1.16 18:07
최근연재일 :
2023.05.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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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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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535

작성
23.04.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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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1화

DUMMY

완전히 냉기를 제거하고 독기를 전부 빼내려면 몇 달은 더 요양해야 했다. 그런데도 사마현이 길을 나선 이유가 있었다.


“서찰에 언급했다시피 조만간 회합이 열릴 예정이네.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여기 적혀있으니 확인하고 태우게.”


“감사합니다.”


상걸은 담담하게 서찰을 받는 사마현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사마현과 북궁혜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굳이 찾아가려는 연유라거나 찾아가서 무슨 일을 벌일지 알고 싶었다.


쓸데없는 관심 때문에 명을 재촉한다는 격언도 잘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죽느니 알고 죽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지라 결국 물어보고야 말았다.


“별일 아닙니다. 죽을 뻔해서 죽지 않을 만큼 때려주려고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주게.”


“북궁 소저가 제 목숨을 노리기에 연유를 물어보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독을 쓰시더군요.”


상걸의 채근에 사마현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사마현은 합리적인 사고에 따른 결론이라고 여겼건만 어디까지나 제 딴에 합리적인 사고였고, 사고방식 자체도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에 상걸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복했으니 복수하러 가겠다는 소리인가?”


“복수처럼 거창한 말은 조금 과하니 갚아준다는 정도로 표현해주십시오.”


“엎치나 메치나! 자네가 갚아준다고 표현해도 하오문이 가만히 있겠는가.”


“아마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들도 사람일 테니 말이 통하지 않겠습니까.”


단어의 나열이나 논리의 전개는 합리적이면서도 지극히 정당했다.


하지만 그 합리성이나 정당성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 평범한 상황에서나 통할 법한 말이었기에 상걸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인이라는 족속은 자존심으로 움직였고, 상인은 이익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사마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자존심과 이익이 아니라 합리성이었다.


그 합리성이라는 것이 참으로 모호한지라 일견 양민의 사고방식처럼 보였지만, 설령 양민이더라도 누가 자신을 때렸다면 분노해서 되갚아주려고 할 텐데 사마현은 받은 만큼 되갚아줄 뿐이라고 말하니 더욱더 이상했다.


‘이상한 사람 곁에 이상한 사람이 모인다더니.’


자신이 아는 한 무림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은 충허였다.


도인이면서도 무당 안에서 고기 먹자고 자신을 들들 볶아대던 일처럼 사소한 것들을 전부 제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기행을 펼쳤다.


그때 그 기행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드물고, 기행과 함께하던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다. 하지만 상걸은 그때 그 시절의 충허를 보는 것만 같아서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겠지. 무운을 빌겠네.”


이런 일에 휩쓸리기에는 너무나도 늙은지라 상걸은 사마현을 보내려고 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사마현 주변에 거지들을 보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파헤쳐 오라고 했을 테고, 그보다 더 젊은 시절이라면 이런 흥미로운 일을 두 눈으로 지켜보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라갔으리라.


그리고 더 어린 시절, 후기지수였다면.


후기지수였던 자신이라면 두 눈으로 지켜보는 정도가 아니라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몸으로 겪고 싶어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걸은 문지방을 넘어가려던 사마현을 붙잡았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사마현이 발걸음을 멈추길 기다리기도 전에 상걸은 끈을 잡아당겼다.


“박영(箔英)을 데려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영이 나타났지만, 하는 행동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성격이 소심해서 고개를 숙인 채 상걸과 사마현을 연달아 살피다가도 딱딱하게 굳은 사마현과 눈을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상걸은 사마현을 가리켰다.


“발이 빨라서 어딜 가도 죽지 않을 테니 이놈을 데리고 가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난데없이 이분을 따라가라니요?”


박영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지만, 상걸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정보비 대신이라고 생각하게.”


“저분을 사지로 데려가고 싶지 않습니다만.”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발이 빨라서 자네가 사지로 들어가도 죽지 않을 걸세. 고생 좀 하겠지만 지금까지 호의호식했으면 개방의 제자답게 살 때도 되었지.”


“어르신?”


“제법 싹수가 보여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더니 배가 불러서 드러누운 주제에 말이 많다. 따라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낱낱이 살피고 보고서 써서 여기와 총타에 한 부씩 보내.”


충허가 훗날을 위해 사마현을 데리고 다닌다면 자신에게는 박영이 있었다. 다만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하였기에 답답해하던 찰나, 쓸만한 후기지수 한 명을 사마현에게 붙이면 제법 그림이 좋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혹합니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눈치 보던 모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쫓겨나기는 싫었기에 사마현이 옆에 있다는 점을 잊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처음부터 이길 가망이 없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떠날래. 아니면 새외에서 떠돌래.”


방주보다 한 항렬 높은 장로에게 덤벼든 후기지수의 난은 너무나도 가볍게 진압당했다. 하지만 상걸은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혹여나 이놈이 도망치려고 든다면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서 근처 나무에 묶어두게.”


충허와 함께 다닌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사마현은 복수를 위해 호구(虎口)에 머리를 들이미는 미친 작자였다. 그렇기에 정말 다리 몽둥이를 분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관없었다.


“어르신···.”


박영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기세였으나 상걸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싫으면 여기서 다리 몽둥이가 부러지고 나무에 내걸리던가. 아니면 자네가 이놈을 한 대만 때려주게. 털끝만 다쳐도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충만한지라 박영은 포기했다. 그와 동시에 사마현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쫓겨날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했기에 노려봤다.


하지만 사마현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머리가 어떻게 되먹어야 이 상황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을 수 있지?’


자신에게는 어마어마한 비극이지만, 남에게는 물 마시다가 흘린 일보다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마현에게 따졌다가는 정말 다리가 부러져 나무에 걸릴 수도 있다고 여겼기에 박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알겠습니다.”


“진즉 그럴 것이지. 혹시라도 무슨 변화가 생기면 저놈을 통해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한 편의 촌극이 끝나고 나서야 사마현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박영은 두 사람을 힐긋 훔쳐보다가도 자신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을 듣고서는 대경했다.


“어째서 일이 늘어납니까.”


“네가 보고하러 분타에 들르는 김에 새 소식도 전해주려는데 불만이냐.”


두 번 연달아 찍어누른 만큼 다음에도 찍어누르면 반항하며 날뛸 것만 같았기에 상걸은 두 사람을 쫓아내듯 축객령을 내걸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항주로 갑니다.”


사천이나 복건처럼 가는 데만 몇 달이 걸리는 거리가 아니라 안도했다. 하지만 사마현이라는 작자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박영은 금세 결론을 도출했다.


“너무 무모하지 않습니까?”


“저도 정면에서 들이받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충돌이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겠군요.”


회합이 끝나고 북궁혜가 몸을 감추기 전에 급습해서 북궁혜를 흠씬 때려줄 생각이었다. 때리는 것이 목적인지라 후에 벌어질 일은 훗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해결방안이랍시고 떠올린 것들이 대화라거나 가벼운 충돌처럼 하나 같이 비합리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사마현에게는 합리적일지언정 박연에게는 비합리의 극치였다.


“무조건 충돌이 생깁니다.”


“그렇습니까.”


하오문 안에도 이런저런 파벌이 있을 테니 모두가 북궁혜와 한 패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박연이 단언하는 이유가 궁금했기에 사마현은 짧게 말했고, 박연은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사마현이 정말 회합 장소에 쳐들어갈까 봐 겁나서 잽싸게 말했다.


“옆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집주인은 어떤 식으로든 대처하시겠지요?”


“도둑이라. 제법 마음에 듭니다.”


옆집에 도둑 들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다른 도둑이 제집을 털 수도 있는 만큼 대처해야만 했다.


즉, 사마현을 때려잡지 않으면 하오문의 위상이 무너지기에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돌려서 말했다. 하지만 사마현이 마음에 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연은 눈앞이 아찔해져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눈앞이 깜깜하고 복잡하던 머리가 하얗게 변한 데다가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무어라고 말해도 들을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모로 봐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지라 사마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금 걷기 시작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손뼉을 쳤다.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가장 뛰어난 도둑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박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미친 사람의 생각을 범인이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무런 노력도 안 한 채 죽을 수도 있는 상황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 숨어들어서 보물을 가져온다면 가장 훌륭한 도둑질이겠지요. 사람을 한 명도 죽이지 않거나, 예고한 다음에 도둑질한다면 더더욱 훌륭한 솜씨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하오문도들에게 들키지 않고, 북궁혜만 찾아서 사과받고 조용히 나오는 일이야말로 사마현에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돌려 말했다.


사마현도 그런 비유라는 점을 알아들었으나, 조용히 사과받고 물러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최악의 도둑질은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겠군요.”


집안 살림 모조리 거덜 나고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오는 그런 상황이야말로 최악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사마현은 굳이 그 방법을 고수할 생각이었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굳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사과받으셔야겠습니까.”


“비효율이라는 말은 알지만 어째서 비효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사일생으로 건진 목숨을 던지고 계시잖습니까. 이토록 비효율적인 일은 없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사마현은 잠시 고민했다. 죽을 뻔했는데 그냥 넘어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궁혜처럼 독을 쓴다는 선택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쳐들어가서 확실하게 때려눕히는 것만이 해답이었건만 그냥 말한다면 들어주지 않을 것만 같았기에 사마현은 담담히 말했다.


“아까 도둑 이야기를 하셨잖습니까.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집주인이 되었군요.”


“과연 그렇군요. 그냥 넘어간다면 훗날 더 큰 위협이 되어 돌아오겠군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내를 자세히 살피면 무작정 수긍한 것만은 아니었다.


박영은 지금껏 활자로만 접하던 정보와 현실의 차이를 실감했고, 그에 실망하는 대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바빴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더라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은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던 수준의 광기를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하지만 광기가 그만큼 지독하기에 오히려 멋있다고 여겼다.


여전히 사마현을 이해할 수 없었고, 광기에 짓눌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박영은 사마현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땅만 보고 걸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뜻을 세웠으니 물러나지 않는 뚝심이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뜻대로 움직이는 미치광이는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사마현 같은 미치광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기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멋대로 치솟은 입꼬리를 진정시키고자 볼을 꾹꾹 눌렀다.


‘근묵자흑이라더니 아무래도 나까지 미쳐버린 모양이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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