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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찌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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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루찌
작품등록일 :
2023.01.01 15:39
최근연재일 :
2023.05.12 20:00
연재수 :
1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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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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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
글자수 :
80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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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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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시즌5 14화

DUMMY

저벅저벅.




나를 포함해 심판자로 위장한 다섯 명의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인기척을 느낀 몇몇의 심판자가 우리를 발견한 듯하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긴장감은 배로 짙어진다.




헬멧을 써서 그런가.




나름 자신감 있던 나조차도 땀이 흘러나와 머리가 간지럽다.




면접을 앞뒀을 때만큼이나 손이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청심환도, 냉수조차도 없다.




스스로가 그 긴장과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 누구지?"




"순찰 돌던 녀석들이 있었나?"




선뜻 말을 걸어오는 이는 없지만 어느 정도 경계를 하는 심판자들.




이들의 반응으로 밖에 순찰을 돌거나 경계를 서는 심판자들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말은 큰 변수는 없을 거라는 뜻.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최대한 능청스레 이들의 의심을 피해 가야 하는 것이었다.




"저쪽에서 왔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본거지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 영철님이 보내신 건가?"




심판자들은 잠시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되물었다.




영철.




그래, 이들의 미친 지도자의 이름이 영철이었지.




그 위스키 변태 남자 말이다.




"그래, 작업 현황을 확인하라고 하시더군."




한 번 더 능청을.




"거의 다 되어가는 중이야. 사람만 많이 죽었지, 부서진 건 크게 없어서. 그런데..."




나와 대화를 이어가던 한 심판자는 갑자기 말 끝을 흐리며 우리를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 거 확인한다고 이렇게 많이 오나? 다섯이나?"




이런 질문 정도는 어떻게 둘러대도 그럴듯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의 유형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런 작은 부분까지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저쪽에서도 꽤나 소란이 있었던 건 알지? 공격을 했던 놈들이 우리를 노리는 모양이야. 그래서 못해도 네다섯 명씩은 붙어 다니라고 하더군."




의도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노출시킨다.




어차피 이놈들은 우리가 그놈들인 줄은 꿈에도 모를 테니까.




나의 이 답변은 이들에게 긴장감을 유발할 것이고, 그 긴장감은 잠시 뒤에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심판자들이 극한의 자기 방어를 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놈들이 하는 자기 방어가 뭐가 있겠는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지.




"그래, 이야기는 들었어. 김규태라고 하는 놈이던데. 보이면 곧바로 죽이고 사지를 찢어놓으라더군."




오 이런 젠장.




내가 심판자들 사이에서 그 정도까지 유명해졌다니.




왠지 모를 소름이 끼쳤다.




"그... 그렇지. 역시 그런 놈들은 심판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 심판받아야 마땅한 녀석이지. 우리 기지를 그렇게 만든 것도 그 녀석이라더군."




역시 이들은 심판이라는 것에 미쳐 있었다.




내가 나를 심판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자,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심판자들도 갑자기 끼어들며 호응했다.




이것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다음 계획으로 이어가기 좋은 타이밍이 나왔다.




"김... 규태라고 했나? 김규태를 심판하라!"




나는 스스로를 심판하라며 조금씩 흥이 오르는 심판자들을 부추겼다.




"심판하라!!"




그들은 나를 따라 소리치며 일어섰다.




멍청한 놈들.




자신들이 죽는 외침인지도 모르고.




자, 다시 한번 더!




"김규태를!! 심판~~~~~~ 하라아아!!!!"




"우아아아!!! 심판...!!"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그들이 나를 따라 소리치기 무섭게 앙옆, 그리고 앞뒤에서 무수히 많은 총알들이 쏟아졌다.




그렇다.




내 신호는 '심판하라'였다.




그것도 길게 늘이는 심판 하라.




멍청한 심판자들은 그 사실도 모르고 따라 외쳤고,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총알에 여기저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이다!!!"




종종 우리에게도 총알이 튀는 듯하였으나 다행히 신호와 동시에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긴 우리는 아군이 쏘는 총알로부터 안전했다.




"빨리!! 무기 가져와!! 우리가 버티고 있을게!!"




타타탕!! 탕!!




나는 살아남은 심판자들에게 소리치며 대응 사격을 하는 척 아무도 없는 허공에 총질을 해댔다.




그런 연기 덕분인지 심판자들은 전혀 의심을 하지 못하고 곧장 무기고를 향해 전부 달려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다시 한번 일행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버텨!!! 좀만 더 버텨!!!"




잠시 사격을 줄이라는 뜻이었다.




심판자들은 우리가 죽이기 좋게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으니까.




적당히 공격을 하는 척만 하면 됐다.




"갑시다. 빨리!"




나는 함께 잠입한 인원들에게 손짓을 하며 심판자들의 무기고로 함께 달려갔다.




타타타타탕!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리며 우리를 위협했지만, 사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군 또한 우리가 아닌 근처 벽이나 허공, 바닥을 향해 쏘고 있었으니까.




심판자들의 무기고는 공터에 임시로 지은 작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아, 이렇게 예쁜 구도가 나올 줄이야.




살아남은 열댓 명의 심판자들은 작은 창고에 우르르 몰려 들어가 한 명씩 총을 꺼내 장전을 하고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훤히 그려졌다.




미치광이 살인마들에게는 똑같은 죽음을 선사해 줄 것이다.




"죽여!!!"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뭣...!"




"커헉!!"




"아아악!!"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우리가 자신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알을 갈겨대자 당황해하는 심판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황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좁은 창고에 있던 심판자들은 순식간에 죽어나갔고,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더 이상 이 공터에는 살아있는 심판자는 없었다.




즉, 우리의 두 번째 승리였다.




"후우...!"




텅!




상황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압박감은 만만치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헬멧을 땅에 벗어던지며 깊게 막혀 있던 숨을 크게 내뱉었다.




정말 헬멧을 써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만큼 긴장을 심하게 한 것인지 헬멧을 벗자 땀이 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뺨을 스쳐 지나가는 선선한 새벽 공기가 또 한 번 승리의 쾌감을 배로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와아아아아아!!!"




상황이 끝났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공터로 모여들기 시작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전만큼의 짜릿함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챙길 거 먼저 다 챙깁시다!"




기뻐할 시간도 잠시.




우리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언제 또 총성을 들은 심판자들이나 좀비들이 몰려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 전투의 승리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반드시 찾아오는 전리품.




우리는 심판자들에게서 단순히 총과 총알을 얻은 게 아니었다.




수류탄과 크레모아 같은 다양한 무기들과 잡다한 물건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식량을 챙길 수 있었다.




이 식량의 양이라면 우리 사람들이 일주일은 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먹을 것을 한 아름 안고 뛰어온 마가리타였다.




"완벽한 계획이었어!! 음!!"




그는 내 계획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싱글벙글한 얼굴을 하며 소시지 하나를 건넸다.




"다들 잘해준 거지. 치즈맛이네."




그가 건넨 치즈맛 소시지를 바로 입에 넣은 나는 오래간만에 맛의 기쁨을 느꼈다.




"다음은 어디로 갈 건가? 무기도 많이 생겼다네!"




그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다른 일행들처럼, 나를 리더로 생각하고 나의 계획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려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봤을 때 두려움 가득했던 그들의 표정에는 이제 어떤 적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요, 바로 갑시다. 놈들을 소탕해야죠!!"




승리의 기쁨을 두 번이나 만끽한 이들은 나의 다음 계획을 궁금해했고, 열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아뇨. 오늘은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피에 굶주린 전사들이 아니었다.




싸울수록 강해지는 광전사가 아니었다.




다들 싸움을 하고 승리를 하며 잊고 지낸 것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루라도 빨리 놈들을..."




"심판자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없애고 싶은 것 압니다. 하지만 다들 너무 지쳤어요. 감옥에 있을 때도 거의 먹지 못했는데, 빠져나오고 나서부터도 전혀 쉬지 못하고 싸웠어요. 그것도 두 번이 나요."




우리는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감옥에 있던 사람들은 더더욱.




그들은 그렇다 할 휴식을 전혀 취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 컨디션으로 이렇게 싸워온 것이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병사들의 상태였다.




그것은 무장의 정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질병이 있는지, 잠을 잘 잤는지, 잘 먹었는지.




이런 것들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마침 우리는 식량과 야영지를 구축할 수 있는 물건들을 꽤 많이 얻었다.




하루 정도 쉰다고 해서 심판자들의 수가 복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지친 자들을 데리고 억지로 싸우려 한다면 얼마 못 가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그림자들의 답변을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싸우는 도중에 잠들고 말 거예요. 안 그럴 것 같죠?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졸곤 합니다. 휴식도 싸움의 일부예요. 적당한 건물을 찾아서 쉬고, 그다음에 다시 싸우도록 합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기보다는 지금 당장 심판자들과 더 싸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그들도 납득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때문에 우리는 근처에서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쉴만한 건물을 찾았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임시 야영지를 꾸리기 시작했다.




심판자들에게서 가져온 매트리스 같은 것을 깔고 계단과 입구에 좀비들의 공격을 막을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말이다.




이곳저곳 깨진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면 옷가지 같은 것으로 막았고, 점차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뒤늦게 피로감이 몰려온 사람들은 하나둘씩 깊은 잠에 빠져갔다.




"형, 좀 자요."




그럼에도 나는 주변을 살펴야 했기 때문에 잘 수 없었고, 그런 내가 걱정이 됐는지 도훈이 녀석이 다가왔다.




"내가 자면 누가 보초서리?"




"제가 설게요."




"퍽이나. 나보다 더 못 잔 녀석이."




솔직히 나도 워낙 잠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고 굉장한 피로감이 있었기 때문에 잠이 쏟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에게 부담을 더 주고 싶지 않았다.




"..."




약간의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말없이 함께 창밖을 볼 뿐이었다.




"도훈아."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내쪽이었다.




"네?"




"주인아줌마 기억나냐? 그 초딩이랑."




"형 집에 있을 때요? 당연히 기억나죠."




"둘 다 그림자들이랑 있대."




"에엥!? 둘 다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풉... 그런 느낌이 뭔데?"




"약간... 암살자 같은... 그런 거요?"




"싸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래서 그렇지, 그런 집단은 아니더라. 그냥 생존자들끼리 뭉친 곳이었어."




"아하... 형은 거기 가봤다 그랬죠? 그럼 아줌마도 봤겠네요?"




"아니, 아직 얼굴은 못 봤어. 인사라도 할랬는데."




"... 그러게요.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 인사라도 했으면..."




도훈이와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갑자기 형이 생각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부모님에 이어서 형에게도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나에게도 안정이 찾아온 것일까.




긴박한 전투를 벌이느라 미처 전부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슬픔이 또 한 번 밀려오기 시작했다.




울컥함이 높은 파도처럼 감당할 수 없이 나를 한 번에 덮쳐버렸다.




"... 인사... 라도... 큽..."




말을 끝까지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면 곧바로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그저 눈을 감고 생각을 줄이기로 했다.




"저도... 인사도 못 했어요... 끝까지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고요."




아차, 내 감정에 휩쓸려 녀석의 상처를 들춰버리고 말았다.




녀석도 안타깝게 죽은 아줌마와 아저씨 생각이 났는지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근데... 조금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사를 하지 못한 게 어쩌면 더 다행이라는."




그런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을 꽤나 의외였다.




"다... 행...?"




"네... 작별 인사를 안 했다는 건, 그 사람과 마지막이 아니라는 거니까요. 인사를 하려고라도 어떻게든 만나겠죠... 그렇게 생각하길로 했어요."




도훈이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과 마지막이 아니다...




그래...




어쩌면 녀석의 말대로 죽은 그들과의 인연은 이대로 끝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지 않았으니까.




아줌마도, 아저씨도, 그리고 엄마와 아빠.




준원과 로이, 형까지.




언젠가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지 않았으니까...




작가 김루찌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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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시즌5 24화 23.05.10 80 3 16쪽
129 시즌5 23화 23.05.09 72 3 12쪽
128 시즌5 22화 23.05.08 69 3 11쪽
127 시즌5 21화 23.05.07 71 3 11쪽
126 시즌5 20화 23.05.06 74 3 10쪽
125 시즌5 19화 23.05.05 77 2 10쪽
124 시즌5 18화 23.05.04 76 2 10쪽
123 시즌5 17화 23.05.03 72 2 12쪽
122 시즌5 16화 23.05.02 87 3 10쪽
121 시즌5 15화 23.05.01 80 3 11쪽
» 시즌5 14화 23.04.30 91 2 13쪽
119 시즌5 13화 23.04.29 85 3 12쪽
118 시즌5 12화 23.04.28 86 3 10쪽
117 시즌5 11화 23.04.27 85 2 11쪽
116 시즌5 10화 23.04.26 89 3 11쪽
115 시즌5 9화 23.04.25 79 3 10쪽
114 시즌5 8화 23.04.24 8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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