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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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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491
추천수 :
267
글자수 :
88,755

작성
24.09.11 23:32
조회
181
추천
14
글자
10쪽

안 어색했냐고?

DUMMY

‘저어기 검은 소와 누런 소 중에 누가 더 일을 잘 하오?’


누군가 홍세라 작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검은 소가 성질은 드러워도 밭은 잘 간다’고 대답할 위인이었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게다가 지금은 박기호 작가의 콧등을 눌러주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건 내 실수.’


홍세라는 윤준호가 잽을 날리자 쿨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음이 급했다.


사극을 찰떡같이 받아먹는 배우는 언제나 귀하다.

현대극은 웬만치 하는 성인 배우도 연기력 밑천을 탈탈 털리는 판이 사극이니까.


발성, 발음, 기본기.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지는 배우를 캐스팅한다?

첫 방 다음 날 배우의 발연기 기사가 포털 사이트를 뒤덮는 진풍경이 벌어질 테다.


더군다나 그녀가 찾는 아역은 조건이 더 까다로웠다.


“시놉시스에 적힌 대로 1인 2역을 소화해 주셔야 합니다.” 


왕세자 ‘이겸’과 그의 쌍둥이 ‘바우’.

외모는 똑같지만 이들이 전혀 다른 캐릭터임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홍세라가 원하는 건 시청자가 채널을 휙휙 돌리면서 봐도 두 사람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가제 : 쌍생]


잠시 회의실에는 락원이 사락사락 대본 넘기는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졌다. 


“준비됐어요.” 

“그럼 이겸부터 먼저 갑시다. 21번 씬 괜찮아요?”


남경모 PD의 말에 여기저기서 대본이 넘어갔고.


“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시작하면 됩니다.” 


락원이 눈을 감았다.

큐 싸인도, 슬레이트 소리도 없었지만 홍세라는 연기가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바마마.”


닫혀있던 눈이 천천히 열렸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남경모 PD가 왕의 대사를 읽는 사이 홍세라는 락원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어린애 눈이···’ 


깊다. 말도 못 하게 깊었다. 

찰랑이는 호수 안에 감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어진 천성과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그리고 왕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아바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 늘 소자의 부족함을 염려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입가에 슬며시 번졌던 미소는 찰나에 사라졌다.

마치 누가 볼까 무섭다는 듯이.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작은 입꼬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소자, 아바마마와··· 이 나라를 위해 정진하겠사옵니다.”


‘이겸’은 더 이상 왕에게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가 흔들릴 때마다 수없이 되뇌었던 다짐을 입 밖으로 낸 것이다.


‘톤이 좋아.’


‘이겸’의 대사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풀풀 날리지도 않았다.


대하사극은 정극톤에 맞추면 되지만 퓨전사극은 이야기가 다르다.

등장하는 씬마다 정극톤으로 대사를 뱉으면 고루해 보이기 십상이다. 

다른 배우들과 있을 때 혼자 둥둥 떠 보이는 건 보너스고.


‘딱 미묘한 톤을 잘 잡았네.’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극처럼 발성을 뱉으면 극이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녀도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선.

유락원은 그 선 위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러면 바우가 기대되는데.’


약초꾼이 거둬 키운 ‘바우’.

부모도, 이름도 없이 자란 소년은 오늘 치의 약초를 캐고 얼른 드러누울 생각밖에 없는 아이다.

높으신 분들의 삶은 너무 먼 이야기요, 하등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이건 버리고 저건 애지중지하고··· 하여튼.”


마치 그녀의 눈앞에서 락원이 보여주는 모습처럼. 


“이 풀이나 저 풀이나 먹으면 약 되는 거지, 뭐. 안 그래요?”

“안 그렇다고 몇 번 말해, 이놈아!” 


홍세라 작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인물은 작가가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물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에게 달렸다.


“여기까지 하죠.”


홍세라는 대본을 덮었다.


‘왜! 왜!!!’


다음 대사를 눈으로 읽어 내리던 남경모 PD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방금까지 분위기 좋았잖아···’


이 미팅 파토내면 캐스팅될 때까지 단식 시위한다. 그가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스케줄은 괜찮아요?”


홍세라가 처음으로 유락원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유락원은 씩 웃기만 할 뿐,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옆을 쳐다봤다. 


“차차 조정해 보시죠.”  


윤준호 대표가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잠시 후, 회의실 문이 열렸고.

유락원과 윤준호가 자리를 뜨자마자 다른 회의실에 있던 조연출이 후다닥 달려왔다.


“어떻게 됐어요? 확정이에요?”

“어. 확정.”

“예쓰, 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회의실에서 나온 남경모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캐스팅 몇 번 더 하면 심장 떨어지겠어···”



*



“······”

“······”


우린 회의실을 나선 후,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약속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문이 닫힙니다.


“형.”

“락원아.”


짝—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하이파이브 했다. 


“잘했어. 진짜 잘했어. 그렇게 연기하는데 캐스팅 안 하면 딴 데서 돈···”


받아 챙긴 거지. 


뒷말을 꿀꺽 삼킨 준호 형이 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못 들은 척 헤헤 웃었다.


그나저나.


“제 연기 안 어색했어요?”

“···안 어색했냐고?”


진심으로 물어본 사람 민망하게 어이없는 표정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다 홀려버렸는데 당연하지. 지금 당장 촬영 들어가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뭐···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었다.

혼자 연구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내심 걱정했는데 조금은 마음을 내려놔도 될 것 같다.


“어머니, 캐스팅 확정됐어요. 미팅도 순조로웠습니다.”

“어머 정말요?”

“네, 다들 락원이한테 홀딱 빠졌어요.”


카페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활짝 웃으면서 날 껴안았다.


“아들 진짜야?”

“······”


진짜냐니요, 어머니.


설사 그렇더라도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한······게 어딨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한테.


“응! 이따 아빠한테도 말해주자.”

“당연하지! 아빠도 진짜 좋아하시겠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문자부터 해야겠네. 어쩜 좋아, 진짜.” 


나는 어머니 품 안에서 짜부가 되어 흔들렸다.

흐뭇하게 지켜보는 준호 형이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할 때까지.



*



“전신 샷은 다 찍었구요, 이제 상반신 컷 가겠습니다.”


어째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MBS에서 미팅을 끝내고 바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촬영 시간만 합치면 3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적어도 여기선 볼콕 포즈나 볼에 바람 넣는 컷은 안 요구하니까.


“락원아, 이따 형이랑 회사 놀러 갈래? 어머니,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저야 감사하죠.”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회사였다.

자유 부인이 된 어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뿐사뿐 사라지셨다.


“음료수 마실래? 아니면 핫 초코?”


널찍한 대표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더니 준호 형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컵을 타고 물방울이 삐질 흘러내렸다.


“···저도 같은 걸로 마실래요.”


그는 내가 뭐에 홀린 듯이 커피를 가리키자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요.”


제발.

부탁이니 제발 한 입만 다오.


“크흐흐, 하긴 형도 어릴 때 궁금해서 부모님 몰래 마시고 그랬어.”


준호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커피를 내밀었다.


“여기, 마셔 봐.”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마도 내가 ‘에잇, 담배 냄새나!’ 하면서 퉤 뱉길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하아아아···”


이게 얼마 만에 마시는 커핀데. 

아깝게 왜 뱉어.


“···락원아?”


한 모금 마시자마자 혈관에 카페인이 사악 돌았다.


“어때?”

“맛있는데요? 저 이거 마셔도 돼요?”

“어? 어··· 어.”


준호 형은 커피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봐도 못 돌려준다.

이미 내가 침 발라놨으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네!”


그가 다시 커피를 내리러 간 사이, 혼자 남겨진 난 대표실을 구경했다.

사실 인테리어가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나쁘게 말하면 뭐가 없어서 볼 것도 많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와.”


책상에 쌓여있는 한 무더기의 책을 발견했다.

천천히, 뒷짐을 지고 눈으로만 표지를 훑어봤다. 


내가 아는 책이었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던,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시절 내가 빠져들었던 영화들의 대본.


쿵쿵.


카페인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흥분해서인지. 심장이 귀에서 뛰었다. 

그때 준호 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형···”

“응?”

“저 여기 있는 책들 읽어봐도 돼요?”

“아, 대본? 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얼마 안 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여기서만 읽어야 돼. 가져가면 안 되고." 

“네!”



*



“그, 락원아···”


그로부터 일주일 후.


“학교는···?”


윤준호는 소파에 털썩 책가방을 내려놓는 유락원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학교 끝나자마자 왔어요!”

“아. 그래···?”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어머니한테 허락 맡고 왔어?”

“네! 저녁 먹기 전까지만 들어오래요.”

“그랬구나···”


그의 배우는 그날 이후로 매일 대표실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락원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다.


“형, 새로 들어온 책 있어요?”

“···어. 있지. 있기야 있지.”


윤준호는 대여점에 온 것 마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책을 뒤지는 유락원을 심란하게 쳐다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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