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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님의 서재입니다.

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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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최근연재일 :
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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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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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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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78,318

작성
20.07.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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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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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78화

DUMMY

이때 미나모토 신이치 중위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선배님들. 안녕하셨습니까?”


“여, 신이치! 고생 많았다!”


우에스기 중위가 후배를 격려해준다. 혼조 사령관의 비서진 중 한 명으로써 사령부 전속부관의 명령을 받으며 각종 잡일을 하던 미나모토 중위는 영 지친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아우아우아우! 신쨩!”하고 벌떡 일어나 달려들다시피 그의 품속에 달려든 타마코를 보고, 그의 몸에 바로 몸에 넘칠듯한 생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인다.


“오오! 내 사랑 타마쨩!”


그러며 미나모토 중위는, 약혼녀의 아기 피부처럼 부드러운 볼살에 쪽쪽 입을 맞추고 뺨을 비비는 것이었다.


“나 보고 싶었어요, 안 보고 싶었어요?”라고 타마코가 혀 짧은 목소리로 물씬 애교를 풍기자, 미나모토 중위가 “타마쨩도 나 보고 싶었어, 안 보고 싶었어?”라고 어린아이 말투로 말한다.


주리는 그 광경이 진정으로 흐뭇하였다. 나이에 비해 체구도 작고 얼굴도 동안인 미나모토 중위는 마찬가지로 어려 보이는 타마코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바로 친해진 타마코와 애정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미나모토 중위를 보고, 이전에 가진 악감정도 사라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이 성숙함이라고는 없는 애정 장면을 보며,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손발이 오그라지는 것 같은 느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어째 자기가 다 부끄러웠다. 정우와 연애하는 거 보고 오라버니들도 저렇게 느꼈으려나?


게다가 타마코가 젓가락으로 자기 그릇의 초밥을 잡아서 “신쨩. 아, 하는 거예요. 아우아우.”하고 입을 벌리니, 미나모토가 좋다고 눈 감고는 입 벌리며 “아.”하는 걸 보고 전신의 오글거림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리는, 자기도 타마코처럼 음식을 정우의 입속에 “아.”하고 넣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들어서 얼굴이 화끈해진다.


타마코가 넣어준 초밥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만끽하던 미나모토는, 그제야 여전히 멍한 표정의 아오야기 중위에게 말을 건다.


“저, 선배님. 총독 각하께서 제게 말씀하시길, 아까 말씀은 그저 장난삼아 한 말이었으니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선배님께 불이익이 가진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리는 아오야기 중위를 좋아하지도 않고 노망난 아오야기 장군은 혐오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중위를 동정했다. 그리고 한참 높은 계급의 우가키 총독이 농담이라도 까마득한 하급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 초에 유진만 동지와 이덕주 동지의 거사가 성공했어야 한다니깐!


아오야기 중위는 그저 “그래. 알았다.”라고만 하고 더 말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총독 앞에서 부친을 부정한 것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위로라도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때, 타마코가 약혼자에게 주리가 자신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재잘거린다.


미나모토 중위는 대번에 주리에게 백배돈수 감사를 표하였다. 그러고는 타마코가 일본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애고, 그런 타마코와 약혼한 자신은 희대의 행운아라고 큰 목소리로 말하며 주리와 나름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때 쿠스노기 부인의 뒤에 안면이 있는 듯한 다른 장교 부인이 다가온 것을 보았다. 부인은 뭐라 대화를 나눈 후,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사령관 부인께서 따로 다도회를 연다고 하시네요. 잠깐 자리 좀 비울게요.”


“아. 그러시오.”


쿠스노기 부인과 우에스기 부인이 일어난다. 쿠스노기 부인은 여전히 부채로 입을 가리면서도, 타마코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후루데카 양. 우리와 같이 가시는 건 어때요? 다른 부인들께서도 후루데카 양을 귀여워해 주실 거예요. 미나모토 중위님께도 도움이 될 거고요.”


그 말에 타마코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아우아우! 신쨩이랑 더 있고 싶은 거예요!”라며 미나모토 중위 옆을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중위는 매위 아쉽다는 얼굴이면서도 “결혼하면 여러 차례 보게 될 분들이니 미리 만나두는 게 좋아.”라며 약혼녀의 등을 살짝 떠민다.


그런데 이때 우에스기 중위가 부인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세츠코 씨도 데려가 주는 게 어때?”


그 말에 우에스기 부인의 얼굴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장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일순간 쏠린다. 이때 쿠스노기 중위가 “아, 그래. 남겨두는 것도 좀 그렇고······.”라고 한순간, 부채 너머로 쏘아지는 부인의 눈빛에 움츠러든다.


“당신 생각은?”


후지무라 중위가 부인에게 나직이 물은 순간, 부인은 나긋나긋한 웃음을 띤 채 “제가 딱히 어울리는 자리는 아닐 것 같네요.”라고 대답한다.


타마코는 전혀 바뀐 분위기를 모르는 채 주리에게 “아우아우! 언니도 가시는 거예요!”라고 소매를 잡아당긴다.


주리는 보나마나 조선 여자라고 시비가 걸리고 조리돌림을 당할 게 뻔한 자리에 갈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타마코를 실망시키진 않고 싶어서 “나중에 갈게. 화장실 좀 갔다가.”라고 해준다.


결국, 장교 부인 중 셋이 다도회 자리로 가고, 장교들 사이에는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세츠코 씨. 죄송합니다. 토비. 너에게도 미안하고.”


우에스기 중위는 진심으로 미안하단 표정이었다. 쿠스노기 중위 또한 “미안합니다.”라고 부끄럽단 기색을 보인다.


아오야기 중위는 쿠스노기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듯했으나, 남의 가정사라 생각했는지 입을 다문다. 후지무라 중위는 특유의 은은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괜찮아. 신경 안 써.”라고만 대꾸한다. 후지무라의 태도가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같아서, 주리는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했으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를 하는 걸까?


이때 후지무라 부인이 일어나더니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라고 하며 일어난다. 이때 주리는, 계속 타마코와 수다를 떠느라 후지무라 부인과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신경이 쓰여서 “화장실 갔다 올게요.”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리는 후지무라 부인의 뒤를 따라 강당 밖으로 나갔다. 4월이라도 밤공기가 스산하게 맴돌았다. 떠들썩한 연회장 밖에는 순찰도는 헌병 병사들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없다.


주리는 후지무라 부인이 어슴푸레한 그림작 속에서 무언가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는 입술을 꽉 다문 것을 보았다. 흡사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주리는 혹시 말을 걸었다가는 방해되진 않을까 걱정되어 일단 잠자코 있었다.


강당에서 일렁이는 불빛에 비친 부인의 모습은, 지극히 경건하였다. 주리는 그녀가 안쪽의 불빛에 비춰지는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온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었다. 절에서 본 설법하는 부처님과 주변의 천룡팔부와 사부대중을 그린 불화에서 느껴지는 신성함과는 또 다른 느낌의 신성함이었다.


주리는 왜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지 신기하여 멍하니 보고 있다가, 후지무라 부인이 기도를 끝내고 고개를 들고 자신을 쳐다볼 때야 정신을 차렸다.


“헤헤. 아, 안녕하세요?”


주리가 멋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자신이 아무래도 실례를 한 것 같아서 “저, 훔쳐보려던 건 아니었고요······.”라고 변명을 조금 하려고 한다. 후지무라 부인은 그저 생긋이 웃는다.


“한주리 양이었죠? 아오야기 중위님의 약혼녀.”


“예, 맞아요.”라고 대답한 주리는, 금세 미안해한다.


“방금 전엔 죄송했어요. 제가 타마쨩, 그러니까 후루데카 양이랑 수다 떠느라고 부인과는 한마디 말씀도 나누지 못한 거 있죠? 그게 미안해서 따로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따라왔어요.”


그 말에 후지무라 부인이 후후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한주리 양은 마음씨가 고운 분이군요. 그래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어요.”


주리가 입술을 삐죽댄다.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요? 그 여자들이 그 자리에서 딱 앉아서는, 이 사람과는 말 붙이기 싫다고 대놓고 얼굴에 써서 붙이고 있는데. 대화 자리에서 전혀 입도 못 여는 거, 얼마나 기분나쁜 일인지 잘 알아요.”


후지무라 부인은 대답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과를 한다.


“저도 한주리 양에게 사과드릴 게 있어요.”


“예?”


주리는 후지무라 중위가 자신을 비꼬고 몰아붙이던 그것 때문인가 하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거기에 덧붙여진 게 있었다.


“제 남편 때문에 곤란하셨던 것도 그렇고, 제가 한주리 양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후지무라 부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남편에게 듣기로, 한주리 양이 아오야기 중위님과 약혼한 몸인데도 바람을 피웠다고 들어서요.”


주리는 그 말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생각해 보니, 후지무라 중위가 부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에는 한주리 양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씀을 나누어 보니 제 단견이었던 것 같네요.”


“아우우······. 아니에요. 그때 제가 잘못된 처신을 한 건 사실이니깐요.”


주리는 속으로 매우 찔리는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새삼 아오야기 중위에게 못내 가지고 있던 죄책감이 떠올랐다. 고모 한자청 여사가 경성에 올라와서 대백루이 같은 방에서 잠자리를 할 때, 자신이 아오야기 테츠오 중위와 약혼한 상태인데도 정우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고백했었던 때처럼. 고모는 한 참의가 멋대로 주리를 왜놈 군인과 맺어주려 한다며 화를 냈고 또 왜놈보다는 정우가 백배천배 나은 신랑감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충고했었다.


“주리야. 비록 독립운동을 위해서이고 너도 그 왜놈에게 정이 하나도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자에게는 큰 상처를 줄 일을 하고 있는 거란다. 너의 대의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사람의 믿음을 이용한 뒤 배신하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거라다. 그자가 왜놈이라도 말이다. 일이 모두 마무리된다면, 편지를 쓰던가 해서 진실을 밝히고 사과를 구하거라.”


주리는 그 충고에 급격히 침울해졌었다가, 고모부와 고모가 연애한 이야기 들려달라고 해서 분위기를 바꾸었었다. 지금은 호감을 가진 후지무라 부인이 바로 그 점을 정면으로 말하니, 마음 한편으로 치워놓았던 감정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후지무라 부인은 주리의 얼굴이 침통해진 것을 바로 눈치채고는, 달래는 말을 한다.


“괜찮아요. 사람은 누구나 죄악에 빠질 수 있는걸요. 한때의 잘못이었을 뿐이고 잘못된 걸 돌이키셨는데, 제가 괜히 좋지 않은 생각을 했던 거예요.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잠깐 망각하고요. 그래서 그런 저를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고 있었어요.”


주님? 그러고 보니 주리는 그제야 세츠코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알았다. 나무로 깎아 만든 십자가 묵주였다.


“그리스도교 교인이신 거예요?”


“그래요. 제 삶은 주님과 떨어질 수 없답니다.”


주리는 후지무라 부인이 자신에게 준 호감에도, 순간 기꺼운 감정을 느꼈다. 교회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설교를 하며 총독부의 지배를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지옥에 갈 무신론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매도하던 지형직 목사, 그리고 그 목사 말끝마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열성적으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다가 종국에 괴상망측한 말로 광적인 기도를 하던 신도.


이것이 주리의 머리 속에 밖힌 그리스도교의 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리는 그래도 바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리스도교인의 모습을 그런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잘못임을 아는데, 후지무라 부인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그럼에도 주리는, 후지무라 부인이 부처님 법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후지무라 부인은 주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는 채, 계속해서 사과한다.


“제 남편에 대해서도 다시 사과드릴게요. 그 사람은 자기 추리에 빠지면 남의 감정은 생각 않는 버릇이 있어요. 그 때문에 여러 사람 곤란하게 했는데 한주리 양에게도 그렇게 했네요.”


“아니에요, 부인. 제가 잘못한 건 맞는걸요.”


“그 사람이 다른 일도 아니고 아오야기 중위님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너무 나간 것도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흥신소에 뒷조사까지 맡겼다니. 그 때문에 제가 잔소리를 좀 했었죠.”


주리는 저 나긋나긋한 얼굴로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후지무라 중위라면 그런 잔소리를 능글맞게 넘길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두 분 우정이 대단하신 것 같던데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제 남편과 저는 아오야기 중위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는걸요.”


주리의 귀가 쫑긋한다. 은혜를 입었다고? 호기심이 마구 발동하기 시작한다.


“어떤 은혜인가요?”


그때 주리는, 후지무라 부인의 대답에 놀랐다.


“제 남편이 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하지 않도록 막아 준 사람이, 아오야기 중위님이에요.”


“어머, 정말요?”


“예. 정확히는 아오야기 중위님이 부친 되시는 아오야기 레이지로 장군의 힘을 빌려서요. 당시 사관학교장이 일로전쟁 당시 야오야기 장군의 막하에 있었다고 하네요. 아오야기 중위님은 토비자루 씨가 그런 일로 퇴학당하는 건 인재를 잃는 국가적 손실이라며 부친에게 부탁했고, 장군님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사관학교에 가서 교장을 설득했답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주리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오야기 중위가 항상 후지무라 중위는 자기보다 더 뛰어나고 우수하다고 칭찬을 거듭한 것은 알지만, 이런 도움을 주었다고는 구태여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저, 그런데 무슨 일로 퇴학당할 위기에 쳐하셨던 거예요? 설마······.”


순간 주리는 더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후지무라 부인이 부라쿠민인 것이 원인이냐고 물어볼 뻔했던 것이다. 그럼 너무나도 큰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후지무라 부인은 나긋나긋하게 웃고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설마가 그 설마예요. 토비자루 씨가 저 같은 부라쿠민과 연애한 것을 누가 고변했기 때문에,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퇴학처분이 논의되었지요.”


“세상에······. 그런······.”


겨우 그런 이유로 퇴학이라고? 후지무라 부인은 신분이 그렇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몰렸을 때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정말, 정말 힘드셨겠어요.”


주리는 진심을 담아 말하지만, 후지무라 부인은 고개를 흔든다.


“일본에서 사는 조선 사람들만큼은 아닐 거로 생각해요. 이 정도로 힘들다고 투정 부리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답니다.”


주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후지무라 부인이 그 말을, 그저 흘러간 옛이야기 하듯 무심히 넘기는 모습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부라쿠민이라는 낙인 때문에 이제까지 얼마나 힘든 일을 많이 겪었기에, 앞서 겪은 노골적인 냉대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정도로 무뎌진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넓기에 자신보다 조선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망설임 없이 얘기하는 것일까?


마음 속에 강한 열망이 회오리쳤다. 이 부인이 겪어온 아픔을, 자신도 함께 나누고프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일본제국의 체제 아래서 소외되고 무시당해온 사람의 고난을 같이 나누며, 이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저, 후지무라 부인.”


“뭔가요?”


“후지무라 중위님과 만나게 된 일, 제개 말씀드려 주실 수 있으세요?”

“어머.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요?”


주리는 자기 본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괜히 자기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고난을 겪어 온 후지무라 세츠코 부인 앞에서, 그녀의 아픔을 같이 나누겠다고 하는 것은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연애 얘기는 항상 재밌으니까요.”라고 넘겨 버렸다.


“옛날얘기라······.”


이때 주리는, 후지무라 부인의 얼굴에서, 일말의 씁쓸함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


“괜한 한풀이가 될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그 질문에 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후지무라 부인의 작은 입이 그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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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51 봉산하차장
    작성일
    20.07.28 17:37
    No. 1

    추천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07.28 17:46
    No. 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뷁ㅡ
    작성일
    20.07.29 23:49
    No. 3

    집안 : 아버지가 장성출신
    인성 : 의리 지키고 약자는 보호
    능력 : 촉망받는 청년장교

    아무리 봐도 아오야기는 그놈의 괴상한 사상만 빼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07.30 02:16
    No. 4

    일본군 미화라는 공격이 나올법하죠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PnPd
    작성일
    20.08.04 00:54
    No. 5

    전후에 저렇게 사이좋게? 차별받던 부라쿠민과 재일조선인들이 야쿠자로 많이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요. 참 씁쓸한 현실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08.04 14:13
    No. 6
  • 작성자
    Lv.25 고단풍
    작성일
    20.09.02 17:05
    No. 7

    맞아요.
    기독교인도 착한 사람 많아요.
    저도 기독교에 부정적이었는데 목사가 꿈이었던 어느 착한 분을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뀌었어요.
    토비 부인도 좋은 사람일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09.02 17:49
    No. 8

    맞아요. ㅎㅎ 저도 괜찮은 신학서적을 읽고 기독교에 대한 인상이 좋아졋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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