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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b 님의 서재입니다.

미친 인성을 가진 세계관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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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1.16 18:27
최근연재일 :
2022.07.3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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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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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글자수 :
12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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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3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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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

DUMMY

가프의 손이 책장에 닿았다. 그리고는 책장에 있는 책들을 쓸어내리듯 손으로 훑으며 지나갔다.


'어떤 책을 뽑을 거냐. 원소 공격계열? 아니면 방어계열? 그것도 아니면 정신계열?'


에르켈은 가프가 뽑을 책들의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그리고 약 5초 후에 가프가 책을 뽑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르켈의 예상대로 가프는 곧 책을 뽑아 들었다.


'저건?'


고급스러운 표지의 책이었다. 에르켈은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책?'


도서관에는 수백만권의 책이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에르켈은 자신이 거의 모든 책들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런 그조차 모르는 책이라니.

약간은 자존심을 상할 수밖에 없는 에르켈이었다.


'내 기억에 없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겠군.'


쓸모없는 쓰레기거나 아니면 자신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보안이 걸려있는 책.

개인적으로 에르켈은 후자이길 바랐다. 자존심과는 별개로 지식에 굶주려있는 마도사에겐 새로운 마법 그 자체가 하나의 오아시스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가프가 책을 펼쳤다.


"!"


그리고 그 직후 모든 이들이 놀라워했다. 가프가 펼친 책 안에는 오직 백지만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허.'


에르켈 또한 예상하지 못한 전개. 그의 얼굴에 몇 십년만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에르켈이 이러할 진데, 아이들의 당혹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첫 번째로 탈락한 애와 똑같잖아?"

"가프가 여기서 탈락이라고?"


점점 커지는 목소리.


"조용."


에르켈의 말 한마디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결국 소문은 소문이었나. 그 남자를 뛰어넘을 이는 아직 없나보군.'


에르켈은 크게 실망하며 말했다.


"가프, 책이 거부하였으니..."


그때


파앗!


환한 빛이 책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황금빛의 향연.

아이들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이 황금빛은 마법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일견 이상했다.

마법진의 중앙 부분에 또 다른 형태의 마법진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저건, 이중마법진?'


마도사들이 자신의 마법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마법진.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그대로 안의 내용이 소멸 되어버리는 무자비한 마법진으로 호기심 넘치는 마도사들에겐 눈앞에 생긴 공격 마법진보다 더 무서운 마법진이었다.


"피를 보여라."


마법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이중마법진을 푸는 방법일터.


'황금빛 마법진...'


에르켈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가 처음 황금빛 마법진을 본 것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일이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천재인 자신이 뛰어넘지 못하는 단 한 명만이 사용하고 있는 마법진이었다.


'황금 시대의 유산... 레이먼드...'


"피를 보여라"


이중마법진은 계속해서 조건을 얘기하고 있었다.


"원한다면."


가프는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뒤지더니 고급스러운 단검을 꺼내었다. 화려한 무늬도 있는 것이 아티팩트인 것 같았다.


가프는 단검을 살짝 손가락에 대었다. 그러자 피가 손가락에 방울지더니 이내 책 위로 떨어졌다.


"..."


아이들은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야?"

"몰라. 나도..."

"분명 엄청난..."


그때


화악!


다시 한 번 황금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빛에 둘러싸인 가프.

그의 모습은 일견 신성하여 모두가 입을 뗄 수 없었다.


찰칵찰칵


떠오른 이중 마법진이 황금빛 가루를 흩뿌리며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그 가루들이 책에 닿더니 글자들이 적히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락!


순식간에 적혀지는 글자들과 그림.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가프의 손에 완성된 책이 들려졌다. 그리고 그 책속에서 나온 기운이 가프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가프는 책의 기운을 거절하지 않은 채 온전히 받아들였다.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가프의 입이 열렸다.


"•••의 힘이여."


가프의 손바닥에 황금빛이 맞물리며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책 속에 그려진 마법진과 똑같은 마법진은 고대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직 유산에 인정받은 이만 사용할 수 있는 술식.

다른 이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성이 되었다.


"주인을 따라라."


그림들 속에서 검은색의 구체가 생성되어 가프의 손바다 위에 얹어졌다.


지금까지 보았던 원소마법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마법이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인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프를 쳐다보았다.

단, 에르켈은 호기심이 아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검은 구체를 보고, 어떤 황금시대의 마법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프는 손 위에 얹어진 구체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었다.


톡.


아마 물방울이었다면 이런 소리가 났을 터였다. 허나


쿠구구.


땅에 닿은 검은 구체는 놀랍게도 땅바닥을 원형으로 움푹 파이게 만들었다.


'...'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전율감을 느꼈다. 울 또한 왠지 모를 몸의 떨림을 느꼈다.

헤아릴 수 없는 미지의 힘을 목도한 탓이었다.


절대로 기존의 땅의 마법은 아니었다. 영창이라도 제대로 들었다면 나았겠지만, 무슨 언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에르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력마법. 오래전 시조의 마법을 네가 가져가게 됐구나. 가프, 너는 합격이다."


착.


가프가 말없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에르켈에게 작게 고개를 숙인 뒤 시작의 책장을 나섰다.


꿀꺽


아이들은 침음만을 삼켰다. 그만큼 황금시대의 유산이란 엄청난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재밌게 됐군.'


에르켈은 미소지었다. 이런 기분을 가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레이먼드를 이길 다른 천재의 등장이라...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 기대가 되겠어. 그런데...'


오랜만에 즐거운 기분이었던 에르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는 정말 어중이 떠중이들만 남았군.'


가프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해 하는 아이.

시험이 끝나가는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는 아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지만, 자질은 없어 보이는 아이.

가프처럼 무언가 있는 줄 알고 모든 책장을 다 뒤져보는 미련한 아이.


이 시험을 통과할 것처럼 보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버러지들을 보자 즐거웠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에르켈은 시계를 보았다. 시험 시간은 20분 정도 남았지만, 더 이상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저 버러지들을 지켜보는 것보다 앞으로 일어날 반향에 대해 분석하는 게 중요했다.


에르켈이 입을 뗐다.


"너희들 꼴을 보니 아주 한심하구나. 더 이상 시간을 주는 것도 아깝다. 앞으로 1분. 그게 너희들이 가지는 마지막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에르켈의 말에 아이들은 당황해하며 허둥지둥 되었다. 하지만 1분 사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에르켈은 조금 뒤 말했다.


"이제 이것으로 시험을 종료..."


그때, 그의 생각을 뒤집듯 한 곳에서 빛이 샘솟기 시작했다.


***


'혈통빨, 될놈될 역겨운 세상.'


울은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진짜 어디까지 잘해야 속이 찰 지경인지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아,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어차피 갈 놈은 간 것이었다.


'아까 그놈처럼 시험에 집중해야 한다.'


몇 분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시험시간은 이제 20분도 남지 않았을 터였다.


'빨리 찾아야.'


그때


에르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1분. 그게 너희들이 가지는 마지막 시간이다."


'뭐?'


울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속으로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입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울은 황급히 책장을 둘러보았다. 허나, 울을 원하는 책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유혹하는 책조차도 없었다.


[야, 너는 저런 애를 유혹하려고 했었어? 너무 맛없어 보이는데?]

[에휴, 몇 년만에 본 인간이라... 나도 눈이 삐었지...]


'...'


저편에서 속을 거슬리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끓어올랐지만, 울은 그것에 대꾸할 시간조차 없었다.


'제발, 아무 책이라도 좋으니까.'


울은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한 번쯤은 요행이라도 걸렸으면 했으니까.


그런데 문뜩.


한 책이 눈에 띄었다.

고급스러운 책들만 있던 책장에서 오직 낡은 책 하나.


'저건...'


울은 손을 뻗었다. 그러는 중에도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죽어있는 책 같아 보였다.


울은 손쉽게 책을 뽑았다. 다행히 책은 어떠한 거부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미 죽어있는 책이라 거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울은 책의 제목을 읽었다.


[푸른 불꽃의 전설]


'이게 뭐야?'


울은 책을 펼쳐 보았다. 그러자 적힌 것은 마법에 관한 것이 아닌, 소설. 아니 어쩌면 수필 일지도 모를 글이었다.


[스승님이 푸른 불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망할,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전설을 들고오신 건지... 푸른 불꽃을 쓰기 위해선 기본 훈련을 더 열심히 해야된다는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리는데, 그냥 나와 빅터, 아멜리아가 더욱더 고통받는 것을 보고 싶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 뿐이다.]


'씨발.'


뭐 이딴 게 책장 안에 있는지 모르겠다.


'일기장은 자기 서랍에 넣어놓으라고. 도서관에 꽂아놓지 말고.'


울은 황급히 책을 덮고 다른 것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책을 덮으려다 문뜩 한 가지 그림을 보았다.


'어? 뭐야? 마법진?'


책의 뒷표지 안쪽에 마법진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울은 급히 마지막 장을 펼쳤다.


바래진 종이에 그려진 마법진 하나.

군데군데 잉크가 번져 마법진 안에 그려진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배울 수 없는...'


그때


훼손된 마법진에서 빛이 희미하게 나기 시작했다.


'아.'


울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 저 마법진에 반응한다면 마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떤 마법인지도 모르는데...'


고민되었다.

첫 마법을 어떤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앞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제시와 가프처럼 상승의 비전 마법이라도 배운다면 앞으로 좋은 스승님을 쉽게 구하는 것은 물론 경지를 뚫는데도 상당히 도움이 될 터였다.

허나, 무협의 삼재검법처럼 아무리 수련해도 그 상승의 끝이 정해진 마법을 배운다면 결국 쓸모없는 마법일 뿐이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에르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이것으로 시험을 종료..."


'에이, 씨발. 푸른 불꽃의 전설 어쩌고 했으니 상승의 마법이겠지!'


울은 마법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화악.


빛이 퍼져나가길 잠시 이내 울의 몸속으로 마법진의 마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건.'


기이한 느낌이었다. 마법진의 도형과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연상이 되었다. 울은 손을 펼쳤다.


리프레팅을 통해 축적되어었던 몸속의 마나가 울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들어있던 모양을 따라 마력이 저절로 움직여 마법진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금세 만들어진 마법진.


'이게 내 첫 마법. 후우, 위험했다.'


몸속에 있던 마나가 대부분 소진되었다. 만약 마법진을 구현하는데 더 많은 마나가 필요했다면, 마법진을 만드는데 실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마력이 든 것치고는 모양이 심플한데?'


울이 만들어낸 마법진은 이전 제시와 가프에 비해서 상당히 단순한 모형이었다.


'이거 어디서 봤던 모양인 것 같기도 하고...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생각에 잠겨있던 울은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에르켈과 다른 이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저... 제가 마법을 배웠습니다!"


급히 말한다고 상당히 얼빠진 목소리로 말하였지만, 어쨌거나 에르켈의 말을 끊을 수 있었다.

에르켈은 자신의 말이 끊긴 것에 심기가 거슬렸지만, 딱히 뭐라 할 수 없었다.


"아직 시험이 끝났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통과이지 않습니까?"

"..."



에르켈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하아, 또 억지 부리는거 아냐? 이건 명백히 통과라고.'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성격대로 일을 처리하니, 울을 그냥 떨어뜨려 버릴지도 몰랐다.


'제발.'


울은 이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조금 뒤 에르켈의 입이 열렸다.


"운이 좋은 놈이군.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걸렸다고 해주지."


다행이었다.


"허나, 아직 마법을 완성한 게 아니니 합격은 아니다. 영창까지 완료해라. 그게 아니면 탈락시키겠다."


에르켈의 협박 아닌 협박. 그래도 기회는 주어졌으니 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교관님."


영창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울은 방금전 흘러들어온 지식을 훑어보고는 마법의 완성하려 했다. 그런데... 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울은 개똥씹은 표정으로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어 말했다.


"불이여... 파이어볼."


하찮은 불의 공 하나가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


모든 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가프 때와는 전혀 다른 놀라움 때문이었다.


"하. 이 시작의 책장에서 그딴 쓰레기 같은 마법을 잘도 찾아내었군."


오늘 하루. 에르켈의 입에서 몇 십년만의 헛웃음이 두 번 지어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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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2 22.05.10 29 1 13쪽
17 17화 22.04.07 36 1 13쪽
16 16화 22.03.16 42 1 14쪽
15 15화 22.03.12 6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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