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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495_lee103702 1 님의 서재입니다.

로봇천사 허무한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시우단1
작품등록일 :
2020.04.17 14:03
최근연재일 :
2020.04.17 14:28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82
추천수 :
4
글자수 :
20,946

작성
20.04.17 14:22
조회
70
추천
1
글자
11쪽

조문객

단편소설입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단편소설로 간단하게 썼습니다.




DUMMY

마누라가 복권을 받아들고 바라보았다.


“맞춰보셨나요?”

“아뇨. 맞춰볼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사장님이 쓰러진 이유가 분명 이 복권하고 연관이 있겠다 싶어서 가져온 겁니다.”

“아, 네..감사합니다. 식사하셔야죠.”

“저녁은 아까 먹었고요, 술이나 한잔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저쪽으로..”


짜식들이 그래도 의리는 있나보다. 그런데 ‘일은 제대로 마치고 온건가?’ 묻고 싶었지만 물을 방법이 없었다.

둘이 앉은 앞으로 술과 반찬이 날라왔다.

소주, 김치, 홍어회무침, 육개장, 절편, 편육, 고추무침, 마른안주. 꼬마토마토.


‘뭐야, 잔치해? 장례식 음식이 뭐 이리 진수성찬이야. 저 여자가 돈이 썩어나나. 야 반찬 반으로 줄여 !’


소리쳐봤지만 소용없었다. 내 말이 들리지도 않을 테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입술을 깨물고 김대리 옆에 앉았다. 이놈들이 내가 있는 걸 알려나. 둘은 내가 자기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대화를 나눴다.


“김대리님, 복권 한번 맞춰보지 그랬어요. 혹시 알아요 당첨됐으면..”

“야, 당첨됐으면 내가 그 복권을 갖다 줬겠냐? 벌써 공항으로 갔지. 흐흐흐..”“그럼 맞춰본거예요 ?”

“당연하지..분명 복권 때문에 쓰러진거 같은데 내가 짱구냐 ? 안맞춰보게 ?”

“어쩐지..크크크”

‘이런 썩을 놈!’한대 패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김대리의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근데 복권 맞춰보니까 진짜 죽을 만하더라. 하필이면 단 단위 하나가 쏙 빠져나가냐. 크크크..재수 드럽게 없지. 최소한 1등 옆에 숫자만 맞았어도 2등으로 상금이 1억인데..크크크..시팔 좃나 골때려. 복권은 끝번호가 7번부터 8,9,0,1 이 있는데 하필 당첨번호가 5번이야.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크크크..버릴려다가 갖다줬다. 크크”

“아..진짜 죽을만하네요.”

‘이것들이 지금 뭔 소릴 하는거야. 야~’하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날 볼 수도 내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으니까.

“김대리님 근데 진짜 거래처에 문자 다 보냈어요?”

“보내긴 뭘 보내. 보내봐야 오지도 않을 텐데. 거래처를 한두번 바꿨어야지. 툭하면 맨날 거래처하고 돈 때문에 싸우는데 너 같으면 이런데 오고 싶겠냐?”

“하긴, 나 같아도 안오죠. 흐흐..”

“이런 처 죽일 놈들이..아 내 이런 놈들을 직원이라고 월급 주며 데리고 있었다니. 어휴 내가 미쳤지.”

“김대리님, 근데 이제 우린 어떡하죠? 퇴직금도 못 받는거 아녜요?”

“그러게..아..진작에 옮기는 건데. 월급 올려준다는 거에 속아서 벌써 몇 개월째..어휴 내가 진짜 미쳤지.”

“전 내일 사표내려고 했는데..저 사실 1일부터 장원상사로 출근하기로 했어요. 어떡하죠?”

“뭐? 아..씨팔..그럼 난 뭐야.”

“죄송해요. 근데 솔직히 여기 있는 시간이 손해예요. 월급도 쥐꼬리에 맨날 야근에 점심먹는 것도 아까워서 벌벌떨고, 명절에 떡값을 주나, 월차가 있나. 여름 휴가비도 안주고, 아주 노랭이도 이런 노랭이가 없어요.”

“맞다. 에이 씨팔..나도 몰라. 나도 낼부터 출근 안할란다. 사모가 나중에 뭐라 그러면 아파서 그랬다고 하지 뭐.”

“으아아아-”


난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상을 발로 차버렸지만 발은 상을 통과해버리고 말았다. 음식상에 파묻혀 혼자 욕하고 소리치고 팔딱거리며 뛰다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내 빈소쪽에서 아들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 !”


무슨 일인가 바라보니 마누라가 김대리가 준 복권을 쥐고 쓰러져있었다. ‘설마 마누라까지 쇼크로 심장마비로 죽는 건가 ?’ 은근 걱정이 됐는데 마누라는 잠시후 정신을 차리고 헛웃음을 웃었다.


“세상에 내 팔자가 그렇지..아이고..”마누라가 복권을 신경질적으로 찢어서 아들에게 주었다.

“이거 쓰레기통에 갖다버려.”


난 씁쓸한 표정이 되어 한숨을 쉬고 밖으로 나갔다.

밖의 공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제야 좀 숨을 쉬는 거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는데 흰옷의 사내가 말했다.


“그러게 직원들에게 좀 잘하지 그러셨어요?”

“아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해!”


흰 옷의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내 눈꼬리가 땅바닥을 기어다녔다.


“..요?”


차갑고 싸늘한 눈매에 주눅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아. 시팔..진짜 욕나오네..’


속 터지는 이것을 어디 풀길이 없으니 더 미쳐서 죽을 거 같았다. 죽지도 못하니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 그냥 저승으로 갈래요.”

“안됩니다. 삼일장 치르고 가야합니다.”

“왜요?”

“육신이 관에 들어가서 완전히 땅에 묻히든가 화장을 해서 없어져야 미련을 없앨 수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 원귀가 될 수 있거든요. 불만이 가득하면 심사받을 때 영혼등급이 안 좋게 나옵니다. 죽음을 인정하고 영혼을 맑게 해야 등급도 올라가고 나중에 환생하더라도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가 있습니다.”

“에이 젠장.”


모든 게 귀찮아져버렸다. 될대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벤치에 누워버렸다.

빌딩에 박혀있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나니 별빛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뿌려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별들이었다.


어릴 적에 보고 몇 십년동안 이 아름다운 광경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이내 직원들이 한 말이 생각이 나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나보다 30분 먼저 연금복권을 사간 놈은 지금쯤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그놈이 하필이면 다섯 장을 뽑아가는 바람에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랐다.

자다보니 한기를 느껴서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흰 사내도 내가 누웠던 벤치 끝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다가 나를 따라 들어왔다.


실내등이 꺼진 빈소는 귀신나올 것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향마저 다 타들어가서 말라버린 옥수수잎처럼 힘없이 향로로 떨어져 내렸다. 무거운 침묵이 빈소를 눌러댔다. 마누라와 아들은 내 영정사진 앞에 새우처럼 꼬부라져 잠들어 있었다.

내 무뚝뚝한 표정의 영정사진과 새우잠 자는 마누라. 상복 입은 고등학생 아들. 불 꺼진 텅 빈 객실. 마치 현실이 아닌 암울한 정물화를 보는 것 같았다. 벽시계는 새벽3시를 가리켰다. 난 접객실의 구석으로 가서 다시 눈을 붙였다.


한참을 자다보니 소란스러움에 눈을 떴다. 형하고 누나 내외가 들어왔고, 처가 식구들이 몰려와 있었다. 모두가 갑작스런 비보에 황당한 표정들이었다. 날 알아보지도 못할 테니 일어서기도 귀찮았고, 그대로 구석에 앉아 구경만 했다.

형 얘기로는 엄마한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 생각도 연로하신 노인네가 충격 받으시면 안 좋을 것 같아서 안 알리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은 섭섭했다.


마누라는 직원에게 들었던 연금복권 얘기를 마치 무용담을 떠벌리듯이 보는 사람마다 해댔다. 그때마다 듣는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입을 막을 수도 없고, 그저 내 귀를 막고 잠자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가 식구들은 처음에만 슬픈 표정을 지었을 뿐 자리에 앉은 이후로는 어디 가족 외식 나온 거 같았다. 내 얘기는 없고 전부 자기들 사는 얘기들뿐이었다.

날 조문하러 온 건지 지들 가족모임을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래..이왕 왔으니 즐겁게 놀다 가라. 조금만 먹고.’


저녁이 되자 드디어 반가운 친구들이 나타났다. 고등학교 동창인 똥개와 혹성.


‘그래 너희들이 안오면 안되지.’


마누라는 역시나 자랑스럽지 못한 나의 죽음의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친구들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친구들 얼굴 본지도 아마 일년도 넘은 거 같았다. 오랜만에 얼굴 보는게 영원한 작별이라니 씁쓸하긴 했다. 둘은 내가 있던 구석진 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동창회에선 안 오나 보네?”

“너 같으면 오겠냐? 오죽하면 별명이 바이러스겠어. 동창회에서 강퇴시키려다 말았는데.”

“하긴, 동창들 경조사에 얼굴 한번 디밀지 않았지, 모임에도 어쩌다 한번 나와서 회비도 안내고 빈대처럼 빌붙기나 하고, 후배한테 전화해서 오랜만에 술 산다고 나오라해서 나갔더니 지갑 안가져 왔다고 술값 좀 내달라고 했데. 그게 한두번이면 말을 안하지..그렇게 당한 애들이 여러명 있어서, 이젠 이놈이 술 산다고 해도 믿는 놈 하나 없다. 그냥 또 덤택이 쓰는거지. 소문이 쫙 나버려서 그냥 왕따됐잖아. 동창이건 선후배건 좋아할 리가 있겠냐? 그런데 무한이는 조명가게 그래도 잘 되지 않았나? 돈 좀 벌었을 텐데, 왜 그렇게 짠돌이 노릇이냐?”

“너 몰랐냐? 그놈 몇 년 전에 대박낸다고 주식에 몰빵했다가 다 날렸잖아. 자기 거래처에 누가 특급정보라고 말해서 믿고 했는데 회사 상폐당해서 주식이 휴지 조각됐데. 크크..아마 그동안 벌어뒀던 돈 3억 넘게 날렸을껄”

“그랬어? 헐..그 돈으로 동창회에 기부 좀 했으면..에휴..”

“그러게 말이다. 야 이제 그런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여기서 먹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가서 먹자. 내가 좋은데 가서 쏠게.”

“그럴까?”


둘은 마치 나 들으라고 떠벌리고는 휙하고 나가버렸다.


‘저런 개새끼들이 내 장례식장에 나 험담하러 왔나.’


저런 새끼들을 친구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다. 친구들이 나가고 나서 뭐가 이리 소란스럽나 했더니

‘이런 젠장할 !’

내 접객실에는 날 조문하러 온 손님보다 장례식장에 망자를 데리고 온 저승사자들만이 바글바글거렸다. 마치 저승사자 회식하는 것 같았다. 저승사자들은 자신이 데리고 온 망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신나게 떠벌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접시물에 코박고 질식해 죽었다는 사람. 누군가는 아파트에서 이불털다 떨어진다고 시범보이다가 진짜 떨어져서 죽었다는 사람. 죽을 일도 아닌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하게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구석에 처박힌 나는 저승사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킥킥거리고 웃었는데 내 존재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내 장례식장에서 나는 진짜 유령이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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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2의 인생(완결) 20.04.17 65 0 13쪽
3 오타 20.04.17 55 1 11쪽
» 조문객 20.04.17 71 1 11쪽
1 죽음 20.04.17 19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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