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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케이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생존한 이웃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알렉스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24 15:03
최근연재일 :
2020.0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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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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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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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다른 세상(2)

DUMMY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며 버스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남자의 손에는 길쭉한 소방 도끼가 들려있었고, 인상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에, 싸움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그럴 방법이 없어 머뭇거리고만 있는 중이었다.


똑똑!


“겁먹지 말고, 열어 보세요! 해치려는 거 아닙니다.”


그가 거듭해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어차피 문을 안 열고 버틴다 해도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손 쉽게 버스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었고, 남자가 버스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안을 살펴보았다.


“총 다섯 분이네요. 일단 좀 내리시죠.”


“저, 저희는 그냥 먹고 잘 곳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딱히 가진 것도 없으니 그냥 보내만 주시면······.”


한부장이 실낱같은 희망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으나,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응수했다.


“그러니까 내리시라는 겁니다. 내려서 얘기하죠.”


그의 다그침에, 차례로 버스 밖으로 나왔다.

당황스럽고,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그가 사람들을 면밀히 훑어보더니 말했다.


“흠, 거동이 불편한 분은 없는 것 같고, 혹시 좀비한테 긁히거나 물린 작은 상처라도 있는 분?”


“없어요. 모두 멀쩡합니다.”


“그럼 일단은 괜찮군요. 자세한 건 가보면 알 테고······ 자! 그럼 저 차에 타세요.”


강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있는 승합차를 가리켰다.


“아니, 저희 차가 있는데 왜······?”


강준이 이건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표정으로 따져 묻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동요 없는 일관된 말투로 대응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먹고 잘 곳 찾는다면서요? 제대로 찾았고, 하나의 절차입니다. 버스는 우리가 챙겨 갈 테니, 걱정 말고 타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명의 남자가 달려와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한 승합차에 그들과 섞여 앉게 되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요동쳤다.

건장한 여러 남자들 사이의 그들은, 맹수 앞의 토끼들처럼, 목숨은 그들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우월한 체격조건을 가진 강준만은 예외였으나, 그 또한 이렇게 많은 수의 사내들과 상대해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렇게 극도의 긴장 상태로 고작 200미터 남짓 움직인 차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 입구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단단히 무장을 한 또 다른 남자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이 차를 확인하고는 바퀴가 달린 바리케이드를 옆으로 밀었다.

어두운 주차장 통로를 내려와 지하 3층에 다시 차가 멈췄고, 소방 도끼를 들었던 그 남자가 그들을 주차장 구석에 있는 작은 창고 같은 곳으로 이끌었다.


“남자 분들은 왼쪽 문, 여자 분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잠시 대기하세요.”


이제 이 안에 들어온 이상,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다.

어찌될지는 운명에 맡기고 순순히 그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의자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그들이 숨죽여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한 남자와 여자가 각각 그 문으로 들어섰다.


여자 칸으로 들어온 한 중년의 여자가 대뜸 말했다.


“옷 다 벗으세요. 속옷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네? 그게 무슨······?”


미정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투의 말이 튀어나왔고, 연주도 마찬가지로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라셨나요? 이곳에서는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감염자는 절대로 머물 수 없어요. 모두의 안전을 위한 원칙이니 따라주시죠.”


안전 때문이란 그녀의 말에,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도 없었다.

민망하고 수치스러웠지만, 미정이 먼저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고, 연주도 그녀를 따라 옷을 벗었다.



* * *



그 남녀는 각각의 방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아무 이상이 없음이 확인되자 다시 옷을 입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지하 1층까지 올라오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장에 하이힐, 얼굴엔 풀 메이크업을 하고서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지금 세상과 동떨어진 그녀의 차림새에, 다들 어이가 없는 얼굴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홍정선이라고 합니다. 이 공동체의 매니저를 맡고 있으니 홍매니저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공동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기에, 홍매니저가 그들을 보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호호호! 신체검사 받느라 난감하셨죠? 누구나 거치는 관문이니 이해해주시고······ 그동안 고생 많으셨겠지만 이제 끝났어요. 이곳엔 현재 52명의 인원들이 안전하게 생활 중입니다. 이제 여러분까지 합치면 57명이 되겠네요.”


“52명이 이미 살고 있다고요?”


대식의 입에서 놀람의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마트로 쳐들어왔던 놈들이고, 다른 이들이고 간에, 좀비 떼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인원수를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제 길에서 만난 그 남자가 말했던 대규모로 모여 지낸다는 곳이 여기를 말하는 건가 싶었다.


“안으로 걸으면서 차근차근 설명 드리지요. 자! 보시다시피 우리나라 최대의 할인점이라 할 수 있는 C마트가 이렇게 지하 1층에 입점해 있으니 음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죠. 위로 올라가면 층마다 해외명품 잡화, 화장품부터 캐주얼, 정장, 스포츠 웨어, 주방용품, 가구, 침구류까지 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죠. 또한 이곳엔 빗물 정화 시스템이 설치된 대형 물탱크가 있어서 수도꼭지만 틀면 늘 물이 나온답니다.”


“허어, 여기는 수도를 쓸 수 있다니······.”


한부장의 감탄에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비상발전기도 있어서 원한다면 전기도 쓸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비상이니까 아껴두고 있고요. 건물 한 면이 대부분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채광이 좋으니, 낮에는 조명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밤에는 건전지형 LED등을 사용하고요.”


그녀가 설명을 하면서 멈춰진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위로 걸어 올라갔다.

건물 모퉁이 곳곳에 계단이 있었지만, 중앙을 관통하는 에스컬레이터가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최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이동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저, 그런데······ 저희가 여기에서 살아도 되는 겁니까?”


한부장이 그녀를 따라 올라가면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호호호! 물론이죠! 그러려고 오신 거 아니었나요? 저희는 감염자만 아니라면 환영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해주어야만 공동체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테니까요.”


“맡은 일이요? 그게 뭡니까?”


강준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대단한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얼토당토않은 무언가를 요구할까 싶어서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일부분은 보셨을 텐데······ 경비를 서거나 신체검사를 하는 일, 또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하고, 세탁, 청소를 하거나 고장난 무언가를 고칠 사람도 필요하겠죠.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하셨던 일이나 특기에 맞게 공동체를 위한 약간의 기여를 하게 되실 겁니다. 그렇게 서로 맡은 일을 하면서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것과 안전을 제공받게 되는 거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것조차도 지금 당장은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일단 며칠은 푹 쉬세요. 휴식 겸 적응기간을 거친 후에 배치될 테니까요.”


“아······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그것도 모르고 괜한 걱정을 했었나보네요. 허허허!”


한부장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그는 어느 정도 긴장을 풀어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섣불리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는 듯이 어색한 미소로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자! 이제 숙소로 안내 할게요. 원래 3층부터 6층까지는 의류매장이었는데, 의류는 모두 7, 8층에 모아두고, 9층에 있던 가구, 침구 등을 가지고 내려와 숙소로 꾸몄어요. 식사는 지하 1층 마트와 붙어있는 푸드코트에 차려지는데, 잠자리와 식당이 너무 멀면 불편하니까요. 옷이 필요하면 위로 올라가서 골라 입으시면 됩니다. 다른 생필품들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8층까지입니다. 9층부터는 통제구역이니 절대로 출입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만 명심해주세요.”


“통제구역은 왜······?”


“이곳의 리더가 계시는 곳이라서······ 호호! 곧 인사하시게 될 겁니다.”


웃는 그녀를 바라보는 강준의 한쪽 눈썹이 위로 살짝 올라갔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이 난장판인 세상에서 50명이 넘는 인원을 이끌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인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독하고 악랄한 사람이거나, 그 반대로 모두가 따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그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 * *



“와! 세상에! 이 와중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었네요.”


대식이 푹신한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허어, 옷장이며 침대도 정말 비싸 보이는데, 멀쩡한 세상에서도 써보지 못한 것들을······.”


한부장이 옷장을 열어보고는 감탄을 하면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방금 전 홍매니저는 그들을 3층 매장으로 데려왔다.

그곳은 조금씩 다른 크기의 여러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공간마다 침대와 여분의 매트리스, 침구, 옷장, 테이블, 소파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가구들이 칸막이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일행이나 가족별로 지내기에 환상적이라 할 만큼 잘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가장 널찍한 공간을 그들에게 내주었으니,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이 어리둥절한 상황에 다들 쭈뼛쭈뼛 서 있었지만, 홍매니저가 푹 쉬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뜨자, 조금씩 새 보금자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블 침대가 두 개나 있으니, 미정씨와 연주씨가 그 쪽 침대를 쓰시죠.”


한부장이 여자들이 서 있는 곳에서 가까운 흰색 프레임의 침대를 가리켰다.


“네. 그럴게요. 일단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네요. 모처럼 물이 나오는 세면대에서 손도 씻고······ 연주씨도 같이 갈래?”


미정이 한부장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연주와 함께 다른 칸들을 구경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럼, 한부장님과 사장님이 다른 침대를 쓰세요. 저는 매트리스를 쓰겠습니다.”


강준이 소파에 있던 쿠션 하나를 집어 들고 매트리스로 다가갔다.


“야, 인마! 어깨도 아프면서 왜 그래? 내가 거기서 잘 테니, 넌 침대 써.”


“사장님, 저 어깨 멀쩡하고요. 혼자 넓게 자고 싶어서 그러니, 넘보지 마시죠.”


대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준은 매트리스에 벌렁 드러누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의류 매장으로 쓰던 곳이라 그런지, 상품을 돋보이게 했을 여러 종류의 조명들이 천장에 가득했다.

홍매니저의 말대로 그것들이 모두 꺼져 있음에도 밝았고, 벽 군데군데에 있는 장식들도 반짝였다.

천장, 벽, 바닥, 하물며 공기까지도······ 모두 깨끗하고, 쾌적했다.

재고 창고에서 나던 쾌쾌한 곰팡이 냄새도, 벽과 계단 구석마다 있던 거미줄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우연찮게 횡재를 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마음 한쪽에 여전히 남아있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잘 된 일일까?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과연 이곳은 안전한 거처가 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자꾸 뭔가가 걸리는 것 같지? 이런 내 느낌이 틀려야만 하는데, 그저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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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디데이(4) +2 20.01.29 250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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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전야(2) +1 20.01.17 264 8 11쪽
46 전야(1) 20.01.16 257 6 14쪽
45 증오 20.01.15 267 7 14쪽
44 노예(2) +3 20.01.10 310 6 14쪽
43 노예(1) 20.01.09 304 5 14쪽
42 등장(2) 20.01.08 286 8 14쪽
41 등장(1) 20.01.03 316 6 13쪽
40 조우 20.01.02 314 7 13쪽
39 다른 세상(3) 20.01.01 315 9 14쪽
» 다른 세상(2) 19.12.27 340 10 13쪽
37 다른 세상(1) +2 19.12.26 355 7 13쪽
36 이탈(2) +3 19.12.25 340 9 14쪽
35 이탈(1) 19.12.20 346 11 13쪽
34 폭주(3) +3 19.12.19 345 8 13쪽
33 폭주(2) +1 19.12.18 358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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