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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케이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생존한 이웃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알렉스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24 15:03
최근연재일 :
2020.0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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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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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시작

DUMMY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경기도 외곽의 어느 비포장도로에 탱크로리 한 대가 들어섰다.

허연 실밥이 여기저기 튀어나온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핸들을 잡고 있던 남자는 부슬비로 시야가 흐려지는 게 못마땅한 듯 신경질적으로 와이퍼를 켰다.


덜컹! 드르륵······ 삐이익! 뿌드득, 뿌드득!


어둠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10여 분간 자갈밭을 달린 차는 하천가에 멈춰 섰다.


남자는 차에서 내려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 뒷주머니에서 목장갑을 꺼내어 끼고는

탱크에 연결된 호스를 하천에 드리우고 밸브를 열었다.


걸쭉하고 검푸른 액체와 거품이 하천에 섞여들었다. 그때 멀리서 보이는 불빛을 발견한 남자가 움찔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미간을 찌푸리며 그 불빛을 응시했다.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가까워지고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리자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어이! 오랜만이야.”


남자는 목장갑을 벗어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상의 가슴팍에 있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면서 지금 막 하천에 도착한 또 다른 탱크로리의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형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아직 이 일 하셨군요.”

짧은 스포츠머리인데 정수리는 휑하게 빈 남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나야 뭐, 좀 쉬다가 다시 하는 거야. 회사는 옮겼어.”


“아, 그러셨군요. 지금은 어디 다니세요?”


야구 모자를 쓴 남자는 담배를 꽂은 손가락 두개로 바로 옆에 서있는 자신의 탱크로리에 새겨진 글자를 가리켰다.


“아, 대정화학······ 거긴 규모가 좀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에이, 그래봐야 다 거기서 거기야. 이런 짓거리해서 돈 아끼고, 기사들 수당은 어떻게든 떼먹으려고 드는 건······ 어, 근데 너 머리가 더 심해진 거 같다.”


“네, 포기했습니다. 뭘 바르고, 먹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이렇게 조마조마 하면서도 걸리면 쇠고랑 찰 짓 계속하니 그런지······ 먹고 살아야하는데 다른 일도 없고요.”


“저런, 아직 젊은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가봐. 호스 줘.”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문 채 하천에 호스를 내릴 수 있게 도와주자 다른 남자가 탱크의 밸브를 열었고, 내용물들이 하천으로 쏟아져 나왔다.


“와, 이건 뭔데 이리 냄새도 심하고 시커먼 지. 어휴, 좀 걸릴 테니 앉아서 담배나 피우자고······.”


남자는 바위에 앉아서 야구 모자를 벗어 툭툭 털어 다시 쓰고는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다.

20분 여분 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두 남자는 방류가 끝나자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자갈위로 타이어가 구르는 소리, 낡은 와이퍼 마찰 소리와 함께 네 개의 불빛은 멀리 사라지고 다시 고요해졌다.

그들이 잡담을 나누던 자리엔 담배꽁초가 여러 개 남겨져 있었고, 하천에는 부글거리는 거품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낮, 같은 장소.


매우 탁한 색을 띄는 하천. 그 근처엔 물고기와 조류 등의 사체가 썩어가며 널려있었다. 근처에만 가도 고약한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은 풍경. 그 와중에 들쥐들은 분주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갑자기 들쥐 한 마리가 뒤집어져 몸을 떨며 찍찍거리는 소리를 냈다. 점점 죽어가는 듯 소리가 작아지더니 벌떡 일어나 전체가 하얗게 변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멀리 달려갔다.



***



초가을의 캄캄한 늦은 밤.

서울 강북의 어느 동네 골목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그는 흐트러진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골목 모퉁이에 다다랐을 무렵, 고양이끼리 싸우는 소리가 그의 노래를 방해했다.


“널 만나면~ 끄윽, 말없이 있어도~ 또 하나의 나······”


끼야야야옹! 꺅, 끼야야악!


“아우, 깜짝이야. 짜증나게 썅! 고양이 새끼들이······ 왜 이리 많아. 다 잡아 쳐 죽일 것들······”


“다 죽었어. 이리 와. 어이쿠! 아, 썅!”


남자는 고양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다가 쓰레기봉투 더미 위에 넘어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피범벅을 한 고양이 한 마리가 흰자로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뭐야, 끄윽······ 이 재수 없는 게 어딜 감히 사람을 노려봐! 이거나 처먹어!”


당황한 남자는 쓰레기봉투 하나를 집어 고양이에게 던져보았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꺄야야야옹!


“아! 아악! 이런 미친! 놔, 놔! 아악!”


퍽! 퍽!


“죽어! 죽어! 죽으라고 씨발!”


고양이는 앙칼진 소리를 내며 달려들어 남자의 다리를 물고 늘어졌고,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른 남자는 사력을 다해 서류가방으로 고양이를 내리쳤다.

수차례를 내리친 끝에야 겨우 고양이를 떼어낸 남자는 축 늘어진 고양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고, 고양이는 담벼락에 부딪쳐 나동그라졌다.


“아우 아파, 아,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양복바지를 걷어 보니 종아리에 약간 패인 두 개의 이빨자국에서 긁힌 방향으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카악, 퉤!

담벼락 아래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고양이를 향해 침을 뱉은 남자는 다리를 살짝 절뚝거리며 가던 길을 향했다.



* * *



다음 날 아침 10시 30분, 한산한 시내버스 안.

앞 쪽 자리엔 노인 몇 명, 중간쯤엔 대학생 차림의 남녀 한 쌍, 그리고 일곱 살 정도의 아이 하나와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버스 맨 뒷자리에는 정장 차림의 연주가 앉아있었다.


아이가 의자에 무릎을 대고 거꾸로 앉아 연주 쪽에 관심을 보였다. 창밖을 바라보던 연주가 그런 아이를 발견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자 아이가 수줍게 어머니 어깨에 숨듯이 기대면서 웃었다.

연주는 가방을 열어 노트와 연필을 꺼내들고, 그런 아이의 모습과 버스 안 풍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지방에 있는 미대를 졸업하고 3년째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행복이었으나, 집안도 넉넉지 못하고 어머니도 편찮은 상황이라 무엇보다도 돈을 버는 것이 급했다.

그러나 지방대 졸업생인 그녀에게 취업은 만만치가 않았다. 수많은 입사지원을 하였으나 번번이 탈락했고,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마저도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오늘도 한군데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었지만, 면접관의 표정이 별로였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잠시 후, 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스케치에 열중하고 있던 연주는 허겁지겁 노트와 연필을 가방에 챙기고 버스에서 내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촉박한 것을 깨닫고는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가방을 둘러메고 또각또각 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바쁘게 달리고 있는데, 이때 배달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연주 가까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누나! 알바 늦었나 봐요?”


“어, 상수야. 어휴, 면접 한군데 보고 오느라 이렇게 됐네. 늦으면 사장님한테 엄청 깨질 텐데······.”


“태워줄까요?”


“아냐, 거의 다 왔잖아. 짜장면 불기 전에 얼른 가.”


“그럼, 다음에 봐요. 수고!”


상수가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자신의 헬멧을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는 연주를 앞질러 멀리 사라져갔다.


연주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와서 자취방을 구했고, 낯선 이 동네에서 짐 가방을 여러 개 끌고 끙끙거릴 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상수가 가방을 오토바이에 실어 준 것을 계기로 둘은 친하게 지내오고 있었다.


연주는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하고 숨을 몰아쉬며 속도를 냈지만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지라 마음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차! 운동화 빨아 둔거 챙겨 온다는 걸 깜박 했구나. 바지는 사물함에 있는데······ 하, 오늘 일할 때 고생 좀 하겠네.’



* * *



동네 중형 마트.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스마일 마트’ 라는 간판 위에 폐업세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상품 진열대는 드문드문 비어있고, 손님 몇 명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3개의 계산대 중 두 곳은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엎어서 쌓아 두어 폐쇄된 상태였고, 유일하게 계산이 가능한 한 계산대에서 아까와는 다른 차림의 연주가 서 있었다. 푸른색의 상의와 바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상의 가슴에는 ‘서연주’ 라는 플라스틱 명찰이 붙어있었다.


연주 앞에 한 할머니가 소주 한 병을 내려놓고는 치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워낙 고령이라 손도 너무 느리고, 셈도 어두워 자꾸만 동전을 다시 세자 뒤에 서 있던 손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을 본 연주가 웃으면서 친절하게 자신이 세겠다고 동전을 받아들었다.


“어? 할머니, 150원이 모자라는데 더 없으세요?”


연주의 물음에 할머니는 처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소주병을 들어 가슴에 꼭 안았다.


“······ 가져가세요. 모자라는 건 제가 낼게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구요.”


연주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모자라는 금액을 채워서 계산을 했다. 그리고는 웃는 모습으로 다음 손님의 물건을 바구니에서 꺼내 빠르게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계산대가 한산해지자 연주가 재고 창고로 연결되는 직원용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통로 옆에는 협소한 탈의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직원 아주머니 둘의 대화가 들렸다.


“정현 엄마는 다른데 구했어? 여기가 사장 인심은 고약해도 집 앞이라 참고 다녔는데 이젠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래. 사장이 이 자리 대형체인마트에 팔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거 생기면 다시 일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탈의실로 들어가려다가 새어나오는 둘의 대화를 들은 연주는 한숨을 푹 쉬며 통로 벽에 기대어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얼마 전 입사지원을 했던 회사의 합격자 명단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졸이며 한 글자씩 수험번호를 입력했지만, 결과는 늘 겪어오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연주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지만, 이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배는 불룩 튀어나오고 머리가 반백인 남자가 뒤에서 쩌렁쩌렁한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거, 이거 영업시간에 이런 식이지! 그만둘 때 다 됐다고 대충 일하고 남의 돈 받아먹자 이거야? 엉?”


연주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헉, 사장님······ 그게 아니라······.”


“넌 오늘 재고정리 다하고, 날짜 다 된 손질 채소들 바코드갈이 하고 가. 알았어?”


사장은 연주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탈의실에서 숨죽이고 있던 아주머니 둘이 나와 안쓰러운 표정으로 연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매장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연주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고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 * *



지난 밤 고양이에게 공격을 받았던 남자가 끙끙 앓으며 자취방에 누워있었다. 그저 숙취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오한과 발열 때문에 이불을 덮어쓰고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게슴츠레 눈을 떠 창문을 보니 어느덧 캄캄한 저녁이 되어버린걸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약국에 가기위해 간신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남자는 골목에서 연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겹게 걷고 있었다.


‘아, 왜 이렇지? 왜······ 이렇게······ 힘이······.’


털썩! 그는 갑자기 쓰러져 엎드린 상태로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몸을 여기저기 뒤틀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입과 코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고, 고통에 못이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악! 컥! 크윽······ 아아!”


“이봐, 총각 왜 이래? 어디가 다쳤는가?······ 에구머니!”


근처에서 폐지를 줍던 노파가 이 광경을 보고는 다가와 그의 얼굴 쪽을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물러섰다.

남자의 얼굴빛은 옅은 회색에 가까운 듯이 매우 창백하고, 핏줄이 피부에 징그럽게 비쳐 보였다. 또한 검은 눈동자는 사라지고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섬뜩한 눈이 자신을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노파가 앉은 상태에서 뒤로 손을 짚어가며 점점 물러나던 순간 남자는 날쌔게 달려들어 노파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숨통이 끊어진 노파의 살점과 피가 사방에 흩어졌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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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디데이(4) +2 20.01.29 250 8 14쪽
50 디데이(3) +2 20.01.24 265 6 13쪽
49 디데이(2) 20.01.23 245 8 14쪽
48 디데이(1) +2 20.01.22 256 7 14쪽
47 전야(2) +1 20.01.17 264 8 11쪽
46 전야(1) 20.01.16 257 6 14쪽
45 증오 20.01.15 267 7 14쪽
44 노예(2) +3 20.01.10 310 6 14쪽
43 노예(1) 20.01.09 304 5 14쪽
42 등장(2) 20.01.08 286 8 14쪽
41 등장(1) 20.01.03 316 6 13쪽
40 조우 20.01.02 314 7 13쪽
39 다른 세상(3) 20.01.01 315 9 14쪽
38 다른 세상(2) 19.12.27 339 10 13쪽
37 다른 세상(1) +2 19.12.26 355 7 13쪽
36 이탈(2) +3 19.12.25 340 9 14쪽
35 이탈(1) 19.12.20 346 11 13쪽
34 폭주(3) +3 19.12.19 34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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