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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동휘 입니다.

유준하 단편선

웹소설 > 작가연재 > 중·단편

유준하
작품등록일 :
2020.01.16 12:21
최근연재일 :
2024.03.22 18:41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715
추천수 :
20
글자수 :
45,519

작성
21.06.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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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단편 - 파일럿] 살아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

단편 - 파일럿 화(프롤로그)

<살아있다.> - 동휘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뭘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몇 가지 답이 떠오른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호흡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피! 피가!"

"어서 지혈을!"

"의무병!"

"눌러! 이 병신아! 누르라고!"

"하, 하지만! 하사님!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잖아! 어떻게든 살려야 할 거 아냐! 의무병! 아직이야!"


-펑!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흙무더기가 하늘을 덮었다.

나는 의식이 멀어져가는 가운데 내 상처부위를 누르며 소리치고 있는 박 하사를 바라봤다.

그는 연신 땀을 흘리며 철모가 벗겨진지도 모른채 의무병을 찾고 있었다.


"박 하사님..."

"소위님! 정신이 드십니까?"


소위.

그래, 저게 내 직함이지.

대한민국 육군.

9819부대 , 소위 유강한.

그게 내 이름이자 사회적인 위치였다.


"의무병! 어딨어!"

"박 하사님! 우리도 피해야 합니다! 본부에서 후퇴 명령이!"

"그렇다고 유 소위님을 버리고 갈 거야? 아직 숨이 붙어 계시다고!"


날 두고 떠드는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쓰러진 이유가 곧 내 시선으로 들어왔다.

13인치 노트북 크기 정도 되려나?

철갑 파편이 내 배를 뚫고 박혀있었다.

나는 남은 힘을 모두 동원해 울분을 토하는 박 하사의 팔을 잡았다.


"하사님."

"예! 소위님!"

"저는 괜찮으니, 부대원들만이라도 살아서 나가주세요."

"하지만!"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이미... 늦었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박 하사와 함께 옆에서 계속 울부짖던 이등병 김한철이 외쳤다.


"그럴 순 없습니다! 소위 님이 아니었으면, 누워있는 건 저였어요! 제가 업겠습니다!"

"멍청아! 이런 상처인 소위님을 업고 가면 가는 중에 돌아가실 거다!"

"그럼 어쩝니까? 적은 벌써 코 앞까지 왔습니다!"


-쾅!

우리가 떠드는 도중에도 포탄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쿠궁!

그때, 누워있는 땅이 울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포탄이 떨어지는 울림과는 달랐다.

죽음 앞에서 민감해진 오감과 직감이 더 큰 것이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멍청이들아! 컥!"

"소위님! 큰 소리를 내시면!"

"알아! 그러니까 먼저 도망가라고! 후퇴 명령을 어길 셈이야?!"


나보다 먼저 임관한 박 하사는 나이도 형뻘이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그에게 존대를 해왔다.

하지만,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 닥치니 평소 부대원들에게도 안하던 윽박지름을 하게 된다.

나도 놀랐다.

놀란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하지만, 이 울림.

직감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인간 병사 여섯이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박 하사! 나를 챙기려다가 부대원들까지 잃은 불명예로 길이 남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나는 최후의 발악으로 외쳤다.

박 하사는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 동료를 버리고 가야 한다는 갈등.

그 순간의 도덕적 관념과 살을 에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박 하사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눈빛을 통해 느껴졌다.


"뛰어! 이놈들아! 무거운 건 모두 버리고 뛰어! 살아라! 살아 남아! 그게 내 마지막 명령이다!"


나 조차도 내가 그런 힘이 남아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때문에 배에 힘이 들어가 당장에라도 생명줄을 놓을 것 같았지만.

사람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의식은 순간 놓아도 생명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주변에 남아 있는 놈들은 없었다.

당연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의식이 끊기기전 목 부근이 당겨진 느낌이 들었었는데, 아마 박 하사가 내 군번줄을 끊어 갔으리라.

전사자 명단에도 내 이름이 올라가겠지.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죽음을 기다렸다.


-쿠궁!


아까의 땅울림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다들 잘 도망갔을까?


-쿵!


이젠 땅 울림 뿐만이 아니라 귀청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만큼 가까워진 거겠지.


-키기기깅!


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멋지군."


내가 생각해도 죽음의 순간과는 맞지 않는 대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멋지다.'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뛰게 할 기갑이 내 위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아래에 있는 나는 개미 만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기갑이었다.

그 기갑은 무기가 장착된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있었다.

무기에 에너지가 모이는 것이 보였다.

이제 저 팔에서 거대한 빔이 나아가겠지.

그럼, 전방의 부대는 초전박살이 날 것이다.

나야 어차피 죽는 다지만, 지금 이순간 신이 있다면 단 한 가지 부탁하고 싶었다.

'제발, 우리 부대원들이라도 살려줘라.'

그렇게 기도했던 것 같다.


-쿠과가가각!


그리고 기갑의 무기에서 나간 밝은 빛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 *


"89번 훈련병!"

"89번 훈련병! 유.강.한!"

"하강!"

"하강!"


복명복창과 함께 드넓은 창공에 내 몸을 맡겼다.

유강한.

부모님이 지어주신 강한이란 이름은 미숙아로 태어난 나에게 붙은 부담의 꼬리표였다.

강해지라는 말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강한 친구 대한 육군에 들어오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라는 멍청한 생각까지 갖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 또한 내가 원한 삶이었다.

상층권에서 땅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삶을 원했냐고?

아니, 이건 그냥 고공낙하 훈련일 뿐이다.

내가 정말로 원한건...


-슈아아아앙!


바로 저거였다.

자유 낙하하는 동안 저 멀리 굉음을 내며 고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가 보였다.

내가 원한 게 전투기 조종사였냐고?

아니, 저건 평범한 전투기가 아니다.


-쿠콰과광 끼기기기긱! 철컥! 쾅!


빠르게 날아가던 전투기는 요란스러운 변신과정을 거쳐 거대한 로봇이 되었다.

남자 아이들의 꿈과 희망의 결정체, 변신 로봇.

꿈으로만 존재했던 로봇이 도입된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였다.


2345년, 8월.

그 날 이후로 이 세상은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게 되었다.

국가 비상 사태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뒤바뀐 세상에서도 적응해 나갔다.

각성자들로 이뤄진 '헌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으며,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 되었다.

그 기술의 결정체 중에 하나가 바로 저 변신 로봇이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기갑'이었다.

그래, 흔히들 말하는 서브 컬쳐에서 나오는 기갑물에서 따온 단어가 맞다.

과학자들과 이세계에서 넘어 온 마법사, 드워프들이 고심해서 만든 것.

그 기갑들 중에서도 명칭을 받은 기갑들을 우리는 슈퍼 기갑이라 불렀다.

내 꿈은 그 슈퍼 기갑에 탑승하는 파일럿이 되는 거였다.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것보다는 좀 더 고결한 이유가 있었다.

8월 여름 방학이 한창이던 그때, 우리 가족은 평화로웠고 여행 중이었다.

절벽 아래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창문 밖으로 구경하던 나에게 소설에서나 보던 현상이 보인 것도 그때였다.

바다 한 가운데에 게이트가 열렸고 온갖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다는 순식간에 거대한 괴수들로 가득 찼고 그들은 거침없이 육지를 향해 헤엄치거나 날아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날,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다.


[89번 훈련병! 낙하산 안 피고 뭐해!]


헬멧 안에서 들려오는 무전에 정신을 차렸다.

육지가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

헬멧 앞은 온통 빨간 색으로 번쩍이며 고도를 표시해 주고 있었다.

천오백 미터. 구백미터.

빠르게 내려가는 미터수를 보며 나는 씩 웃었다.

낙하산을 펴야 하는 적정 고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식상한 도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8월, 여름 방학의 그 화창하고도 잔인했던 날 이후.

나는 목숨을 건 도전에 진심인 편이 되었다.


육백미터!

-촤라라라락!


아슬아슬한 단계에서 내 낙하산이 펼쳐지며 나를 다시 하늘 위로 끌고 올라갔다.

그리고 내 앞에 뛰어 내렸던 놈들 보다 먼저 땅에 착지했다.


"미쳤어! 죽고 싶어 환장했지?! 낙하산 해체 한다 실시!"


착지 지점에 도착하자 교관이 달려와 윽박지른다.

나는 빠르게 낙하산을 해체하고 그 앞으로 달려갔다.


"차렷! 열중 쉬어! 차렷! 어쭈 동작은 빠른 것 보니 살아 있다는 거지? 멀쩡 하다는 거지? 그럼 뛰어! 넌 오늘 해질녘까지 이 곳을 뱅뱅 돈다! 실시!"


그는 속사포로 말을 내뱉으며 나에게 30kg짜리 군장을 던졌다.

군장을 메고 착지 지점을 크게 돌며 뛰기 시작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을 겪었냐고?

간단하다.


거대한 기갑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이미 우리가 차로 도망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차 밖으로 나와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기갑은 잠시 고개를 돌려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이라고.

그리곤 아무 말도 없이 바다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가 오른 손의 검을 한 번 휘두르자 거대 괴물 수십마리가 날아갔고.

그가 왼손의 총을 갈겨대자 거대 괴물들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나중에는 괴물들의 수가 너무 많아 육탄전까지 벌이게 되었는데, 그 기갑은 홀로 그 많은 괴물들을 막아서고 게이트가 닫힐 때 까지 안전히 모든 사람을 살려냈다.


인류 최초의 기갑.

기간트 캡틴의 등장이었다.


그때 부터 인류가 그 기갑을 연구하기 시작해 지금의 기갑병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부터 내 진로는 기갑 파일럿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생각 하나?! 속도가 느려졌다! 89번! 제대로 안 뛰면 넌 오늘 저녁 밥 없는 줄 알아라!"


저녘 노을.

해변가의 육군 파일럿 훈련장에서 나는 터질듯이 뛰는 심장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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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단편] 단어 세 개로 쓰는 소설 1탄 24.03.15 27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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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 파일럿] 살아있다. 21.06.19 44 1 10쪽
5 [단편] 물망초 20.09.27 56 1 5쪽
4 [단편],[시나리오] 등대 20.09.13 53 2 14쪽
3 [초단편] 작가의 사색 +1 20.09.13 90 2 3쪽
2 [단편] 엉킨 실과 밀린 단추 (하) 20.01.16 84 5 14쪽
1 [단편] 엉킨 실과 밀린 단추 (상) 20.01.16 228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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