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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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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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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글자수 :
803,544

작성
16.07.28 13:41
조회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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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3.

DUMMY

"저기, 제대로 된 장비를 달라고 하는 것도 잘못인지...“


중년의 노동자들에게 험한 눈빛을 집중적으로 받은 젊은이는 자신의 잘못을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경험이 있는 중년들에게 있어서 이는 매우 큰 실수로밖에 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빡빡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사흘간 아무 기계 없이 수동 도구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편을 야기했기에, 그런 불편의 책임자인 그 역시 굉장한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물론 원래대로라면 최소한의 설비라도 갖추고 있어야 일을 하든가 말든가 할 테고 그게 상식이지만, 안타깝게도 아키로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를 아는 주엽은 그에게 조용히 일렀다.


“아무래도 한 보름 동안은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냥 이런 말 하지 마.”

그 말에 젊은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유야 따돌림에 대한 공포 때문이리라. 현장의 막내가 일주일만에 이런 수습 안 되는 사고를 쳤으니 두려움이 몰려올 만도 하다.


한편, 이런 벌칙을 내린 당사자인 정경석은 다 들으란 듯 대놓고 피식대더니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곤 조금 떨어지 곳에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 막내가 얼마나 따돌림 당하는지 어디 볼까, 하고 즐기는 것 같은 태도였다.


“쳇, 또 저러고 있네. 진짜...”


주엽은 저런 감독관의 태도를 경멸했다. 남이 따돌리는 것을 감독관, 그 중에서도 서열 1순위인 책임관이 말리지는 못할망정, 직장 내 따돌림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조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정경석의 악취미를 모르고 완전히 걸려들어간 그는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하,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이거 널 저렇게 울리려고 그러는 거니까. 아, 여러분, 애가 잘못한 건 맞지만, 너무 몰지는 말아 주세요.”


결국 보다 못한 주엽이 신참을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선배들을 중재했다. 선배격의 중년 노동자들이 그 말에 화가 누그러졌는지 일단은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앞으로 또 실수하면 봐주지 않겠다는 듯, 경계 가득한 눈빛은 풀지 않았다.


주엽은 저 상황이 경멸스러웠지만, 대놓고 화를 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에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보고 설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였다.



“자자, 나쁜 건 잊자고. 너무 화내지만 말고.”


그녀의 위로에 마음을 정리한 주엽은 선배들을 따라 자루가 다 삭은 삽을 들고 현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자신의 후임에 관한 걱정이 앞섰다.


‘저 애가 잘 해줘야 하는데...’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떠도는 소문인 문제의 ‘귀신들린 광산’의 위치는 그들의 시야에 위치한 브라운 산의 중턱에 위치했다. 때문에 가뜩이나 아무도 발 붙이려고 하지 않는 휑한 산이 더 황량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주엽은 심령 같은 것을 원체 별로 믿는 사람이 아니기에, 별로 겁먹지 않고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설희는 걱정되는 건지 주엽의 구질구질한 옷깃을 잡고 망설였다.


“이거 괜찮은 건가?”


“상관없어. 어차피 귀신이 어딨어?”


설희의 걱정에도 주엽은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윤구철 같은 중년들은 그 둘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안 올라오십니까?”


주엽은 왜 이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물었다. 그러나 중년 그룹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인 김동오는 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올라가기는. 저 절벽에서 떨어진 바위 조각 안 보이냐? 저거부터 치워야지. 지난달에 산사태 나서 동굴이 반쯤 꺼졌어. 알잖아?”


‘아이고.’


주엽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설희는 깔깔 웃었다. 구정현은 둘과 중년 그룹 중간에 끼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엽을 바라보았다.


‘나도 후임이 생겼다면서 순간적으로 선배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도 저런 분들에 비하면 초짜구나...’


한순간 ‘신참 가르치는 경험 많은 선배’에서 ‘그래도 아직 초짜’로 격하당한 주엽이었지만, 결국 선배들의 말을 따라 산기슭의 바위와 진흙덩어리를 치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어휴, 그러니까 포크레인 하나라도 달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주엽은 한숨을 쉬었으나 윤구철은 그런 불평을 보이는 그를 나무랐다.


“너무 그렇게 불평하지 마라. 다들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 거 알잖니. 조금만 참아. 힘들게 일하고 나면...”


“그게 문젭니다.”


“뭐?”


평소 투덜투덜 불평이 있었던 주엽은 그의 말을 지적하자 그는 당황한 눈치였다. 하긴, 50줄의 나이인 그의 말을 청년이 가로막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니...그러니까 뭐가 문제냐고?”


윤구철이 한층 긴장하는 듯한 목소리로 묻자 주엽은 그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힘들다고 할 때, 다른 사람들 역시 힘든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맨손으로 폭약 쥐고 산을 타면서 하는 작업이면 누구나 힘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나뿐만 아니라 남들 역시 힘들다고 해서 입 다물고 있으란 건 문젭니다.”


“어째서지? 나는 다들 힘든 거 아니까 협력하자고 한 것 뿐...”


“서로 협력해서 될 것 같았으면 말을 하지 않습니다, 협력했는데도 문제가 계속 생기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는 계속해서 4번대와 5번대의 모든 인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 힘들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물론 그의 말에 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이런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누가 힘들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겠지?”


“지금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뭡니까? 다들 불평하지 말고 이대로 참고 있는 겁니까, 모두가 힘들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지금 상황을 고치는 겁니까? 굳이 아저씨가 참으라고만 하겠다면 저도 참겠습니다. 아무 말 없이 하루하루 일하고 있겠다고요.”


그가 울화 치밀어 내뱉은 말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모두 말없이 만들기는 충분한 말이었다.


당장 장비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감독들이 안전에 대한 상식조차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아무 말 없이, 그저 노예처럼 일할 수 있을까.


윤구철 역시 이 말에 무언가 깨닫는 게 있었는지, 고개를 숙여 주엽의 귀에 갖다 대고 소곤거렸다.


“지금 너의 말은 잘 들었다. 맞는 말이야. 모두 힘들지 않게 문제를 고치는 것.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금 하나 있어. 뭔 줄 알아?”


뭡니까? 라며 주엽이 되묻기도 전에 윤구철은 그의 귀에 대고 엄청난 소리로 고함을 쳤다.


“바로 정경석이 오고 있단 거지!!”


“으아아악!”


갑작스레 귀청을 정면으로 때리는 고함소리에 주엽은 너무 놀라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더니 윤구철이 소리를 친 방향의 귀를 두 손으로 잡고 쓰러졌다.


“이놈들이!”


윤구철의 고함소리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이미 저 멀리서 시커먼 삼단봉 하나를 들고 해병대 모자를 쓴 정경석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붉은 해병대 모자가 그의 머리에서 벗겨져 그의 새치 섞인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돌격하기만 할 뿐이었다.


“튀어라!”


윤구철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삽과 곡괭이 등의 장비를 하나씩 들었다.


그러고는 당장 저 절벽 아래의 흙과 바위 더미를 치우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장 저 바위 더미를 오늘 내로 치워 놔! 다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경석은 이들을 아주 요절 낼 것처럼 고함치며 돌아갔다.


결국, 그의 짧은 사상은 책임관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이뤄지지 않았다. 뭐, 애초에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한바탕 하루가 지나가고, 거의 저녁 8시가 다 될 무렵, 드디어 모든 인부들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바로 오늘의 일과를 마치는 종 소리였다. 하지만 오늘의 할당량을 모두 채운 인원들에게만 반가울 뿐,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굉장히 절망적인 소리였다.


일단 할당량을 못 채우면 돌아오는 것은 잔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해당 번대는 저녁식사 이후 남아서 나머지 작업을 해야 하고, 또한 5번 이상 걸린 번대는 그대로 지하실 2일 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하실은 공포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그들의 지하실 처분에 대한 두려움은 단순히 어두컴컴한 어둠 때문이 아니었다. 일단 하루 세 끼 주던 밥이 두 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질이 더 떨어진다. 밥과 제대로 된 한 가지 반찬만 나온다면 고마워해야 할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숙소 내에서는 아무 난방장치가 없어도 그나마 담요를 주기에 조금이나마 덜 춥게 잘 수 있는데 반해 지하실은 아무 덮을 것도 없이 그냥 자야 한다.


아키로스 행성의 기후가 1년 내내 10도에서 0도 사이를 오가는 추운 기후고, 밤이 되면 영하 두 자릿수 단위까지 떨어지는 때가 있음을 감안해 보면 그 추운 곳에서 아무 난방수단도 없다는 것은 사실상 자다 얼어 죽으란 소리였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조는 4번대와 5번대의 광산 작업이 유일했다.


“그래, 오전 때부터 어쩐지 늑장피운다 싶더니, 이럴 줄 알았다. 알았어.”


정경석은 평소의 그 찌푸린 표정을 짓더니 더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인부들을 광산으로 내보냈다. 그나마 4번대와 5번대 모두 이제 두 번째로 남는 것이기에 당장 지하실로 처박히지 않는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결국 밤에서까지 일해야 하는 건가.”


저녁으로 나온 밥을 씹던 주엽이 허탈한 듯 말했다.


“음, 나는 솔직히 좀 겁난다. 사람 셋이 매장당한 광산에, 그것도 밤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라고.”


“아하, 아저씨가요?”


주엽이 살짝 몸을 떠는 윤구철을 보고 의외라는 듯 받아쳤다. 그는 자신은 별로 겁내지도 않은 것을 50에 가까운 중년이 겁을 낸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넌 이 야밤에 음침하고 나갈 곳도 하나밖에 없는 그런 곳에 기어들어가는 것이 좋냐? 이 자식이.’


“어차피 광산 안에 들어가면 어둡잖아요. 밖이 낮이 되든 밤이 되든. 그러니까 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주엽은 마치 윤구철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그들이 광산의 귀신들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을 먹는 사이, 이번엔 좀 더 날카로운 고음의 소리가 퀴퀴한 식당 내부에 울려퍼졌다. 작업을 마친 사람들에게는 잠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밤일을 알리는 소리였다.


“자, 시간 됐다. 나가자.”


거의 도합 40명이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우루루 식당 건물을 나가자 식당 내부는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하, 이제 다시 노가다인가. 매점은 문 안 연대?”


“응. 예전부터 어째선지 밤에까지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점을 안 열어. 쳇, 밤에 죽도록 일하고 나서 배도 못 채우나?”


“어쩔 수 없지.”


주엽 역시 매점이 없다는 것이 개의치는 않았지만 다시 녹슨 삽을 들고 광산 안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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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 글먹
    작성일
    16.07.28 15:18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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