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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46,275
추천수 :
73
글자수 :
803,544

작성
16.07.28 13:36
조회
1,635
추천
10
글자
11쪽

2.

DUMMY

“모두 기상!”


새벽 다섯 시, 모든 노동자 숙소에서 요란하게 기상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방의 복도에서 노란 완장과 남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 굵은 목소리로 고함을 쳐댔다.


“기상이다! 기상!”


보통 사람이라면 소음 공해로 민원을 넣을 수준의 귀청 떨어지는 소리였지만, 이미 7년 가까이 이곳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는 이들 노동자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끄러운 것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어서인지, 자고 있는 노동자 사이로 머리가 다 헝클어진 젊은 여자가 기지개를 켜며 불평했다.


“아, 정말 시끄럽다...”


그러자 여자의 옆구리를 끼고 자던 청년 역시 누운 채로 눈 한 쪽만 뜬 채로 거들었다. 그는 얼굴에서부터 젊은 티가 났지만, 워낙 얼굴에 때가 끼어 모습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뭐, 그렇다곤 해도 이곳의 베테랑들보다는 나은 수준이었지만.


“저놈들은 매일 ‘기상이다! 기상!’ 이런 소리밖에 못하나 보지? 17개월 동안 이 소리를 들었어. 누가 보면 알람시계라도 맞춘 줄 알겠다.”


“그러게 말이에요. 돼지 멱따는 소리로 백날을 짖어 봤자 목소리는 나아지지 않거든?”


밖에서 고함이나 쳐대는 인간들의 뒷담화를 까며 두 남녀가 낄낄거리고 있는 사이, 이곳의 다른 노동자들 역시 일어나 침상의 자기 구역에 놓여 있는 침구류를 개면서 움직였다.


두 젊은 남녀 역시 자기 자리를 정리하던 도중, 방금까지 복도에서 알람시계처럼 똑같은 소리만 반복한다던 그 인간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가 차고 있는 ‘감독’이란 글자가 쓰인 완장은 오래되어 누렇게 때가 탔으며, 역시 만만찮게 때가 낀 이름표에는 ‘정경석’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으며, 머리에는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우스꽝스러운 시뻘건 해병대 모자까지 썼다.


‘아, 아침부터 기분 잡친다. 이놈이 왜 여기까지 오고 그래...’


젊은 남자는 웃기게도 생긴 모자를 쓴 남자가 하필 자기와 애인이 있는 방에 들어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유야 물론 그는 이 감독들 중에서도 굉장히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데다 모든 감독관들을 통솔하는 ‘책임관’의 위치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지저분한 중년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일’이라는 글자만 박혀 있는 듯했다.


“침구 정리 끝났으며 빨리 튀어나와 줄 선다. 실시.”


마치 자기가 진짜 해병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처럼 잔뜩 분위기를 잡는 그였지만 1년, 2년 혹은 이 공사가 시작될 무렵인 7년차 근속 노동자까지 고루 모여 있는 이 방에서 그의 말에 겁먹는 이는 없었다.


단지 가장 최근인 1주일 전 들어온 한 신참만이 똥군기를 잡으려는 그를 보고 겁난 나머지 다른 이들 뒤에 숨었을 뿐.


그 불쌍한 젊은이는 이제 나이가 20밖에 안 되는,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은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다. 워낙 경험도 없이 여기에 무턱대고 들어오니 힘들어하는 때가 많아서, 그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것저것 배우며 일하는 중이었다.


사시나무마냥 떠는 청년을 본 그는 정경석이 보지 못하도록 살짝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걱정 마. 똥군기 잡는다고 겁낼 필요 없다. 어차피 감독 완장 떼고 붙으면 지니까 저러고 있는 건데,”


이렇게 말하는 자신 역시 정말 저 감독과 싸운다면 이기는 보장은 없었지만.


“자! 복도에 한 줄로 서서 대기한다! 3번대가 나가면 나가!”


정경석의 명령대로 그들은 앞 번대 방의 노동자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1번대가 빠져나가고 2번대가 그들의 뒤를 밟고 있는데, 그들 4번대가 대기하던 중 신참이 자기 선배의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저기...아까 저한테 이야기하신 분 맞죠?”


“그렇다만?”


“성함이...”


“종알거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들의 말허리를 자른 것은 물론 정경석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목에 힘줄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저런 위협 따위 익숙해진 지가 오래인 남자는 멈추지 않고, 정경석이 눈을 돌리자마자 다시 남자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궁금하댔지? 나는 주엽이다. 그런데 왜?”


“아...그게,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직접 다른 분들께도 물어서 지금 4번대 분들 이름 외우고 있어요.”


‘어쩐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붙더라니...친하게 지내려고 그런 거네. 하긴, 신입은 다른 선임들 눈에 잘 들어서 이쁨받는 게 좋은 편이기도 하고.’


그의 첫 후임자가 별로 나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은 그는 안심했다. 그 이유야 이런 질 나쁜 일자리에는 그만큼 질 나쁜 인간이 오기 십상이라 잘못하면 물들거나 자신이 고생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자기 앞의 젊은이는 적어도 그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은 인간이었다.


“자, 빨리 출발!”


정경석의 출발 명령에 따라 3번대의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장비 하나를 들고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장의 모습은 언제나 똑같았다.


이제 너무 많아져 셀 수 없는 사람들과, 익숙한 기계음, 이미 공사가 끝나 깔끔하게 세워진 건물들과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잘 닦인 도로와 아스팔트를 한참 쏟아붓고 있는 도로가 공존했다.


대기가 존재하는 덕에 숨도 쉴 수 있었고, 하늘 역시 까맣지 않고 푸르기 그지없는데다 구름까지 껴 있어 진짜 하늘과도 같았다.


뭐, 반쯤은 자연이고 반쯤은 인공이니 그럴 수도 있다.


2173년 7월쯤, 라쿠이 사의 우주 조사대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곳 은하의 이 행성은 굉장히 초라했다. 지구의 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크기와 중력, 어느 정도의 대기층이 존재한 덕에 식물이 살긴 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형성되지 않은 대기 덕에 매우 제한적이었다. 희박한 산소 덕에 매우 적은 식물만이 자생 가능했고, 그마저도 그나마 산소가 많이 있는 지대에 몰려서 번식한 탓에 대부분의 땅이 칙칙했다.


그런 곳에 이들은 잘도 들어와 대기층을 지구의 수준과 동일하게 하는, 일개 기업그룹이 할 것 같지 않은 짓을 실제로 해내고야 말았다. 그것도 타 기업의 협력이 있었다지만, 겨우 25년밖에 소모되지 않았다! 지구 크기만한 행성도 정복하려면 1세기가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던 시절의 그들은 이 행성을 이렇게나 빨리 정복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도대체 무슨 공법을 사용한 걸까. 무식한 노동자인 주엽의 머리에선 알 수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최첨단 기술이라느니, 사실은 원래부터 살 만한 땅이었는데 자신들의 기술력 과시를 위해 일부러 과장된 소문을 퍼뜨렸느니 하는 말만 돌고 있었다.


주엽의 입장에선 그저 자신들보다 훨씬 똑똑한 인간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빨랐다.


여튼, 그렇게 정복한 행성에 본격적으로 그들이 채용한 노동자들이 내려가 밭을 일구고, 건물을 세우고, 아스팔트를 부어 도로를 만들었다.


이곳, 아키로스는 사람의 손에 의해 가꾸어진 행성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이라고는 없었던 곳.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행성, 그들은 이곳을 손수 만들어왔다.


그들이 이 행성의 주인인 것이다.


'아니, 주인이었어야 했다.'


적어도 주엽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작업을 배정하겠다!”


정경석이 큰 소리로 인부들을 불러 오늘의 작업 장소와 할당량을 정해 줬다.


“1번대와 2번대는 도로 닦는 작업에 들어가고, 3번대는 철근 운반에 들어간다. 4번대와 5번대는 광산 파기에 들어간다!”


‘으악!’


정경석이 작업 분담 보고를 하자마자 4번대와 5번대의 모든 인원들은 경악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끔찍하게 높은 산 중턱에 있는데다가, 이곳에 대한 불길한 소문이 나돌았다.


대략 4달 전, 이곳 광산을 팔 예정인 브라운 산에서 첫 번째 갱도를 뚫었을 때, 내부가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안전 요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중간에 “여기에 누가 움직입니...”라는 말과 함께 무전이 끊겼고, 두 사람은 그 이후 절대 나오지 못했다. 그 둘을 쫓아 투입된 한 사람 역시 하루가 지나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귀신 들린 갱도라는 소문이 돌자 첫 광산은 폐쇄되었다.


그렇게 방치된 광산은 지난달, 폭우로 인해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고, 결국 입구부터 다시 뚫어버려야 했다.


당연히 그러기엔 중장비가 필요한 상황.


“그럼 작업에 필요한 중장비는 전부...”


그 말과 함께 정경석의 이마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안전모에 가리지 않았지만, 그 특유의 험악한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 가능했다.


동시에, 이 말의 발언자인 한 신출내기 젊은이를 제외한 모든 4번대 소속의 노동자들의 표정이 일시에 바뀌었다.


중년 그룹은 대개 한숨을 푹 쉬었고, 비교적 젊은 노동자들은 풋, 하고 웃음을 참았다.

이런 요구야 물론 정상적인 현장이라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장이 정상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 눈치 없는 젊은이는 자신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하고 있자 정경석의 얼굴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결국 보다 못한 주엽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여기서 중장비 달라고 못해. 가끔 여유 생기면 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안 쓰고 놀고 있을 때나 되는 일이라고. 지금 다른 라인에서 중장비 다 각출해 나가서 없어. 근데 그걸 묻냐?”


주엽은 후임을 질책했지만, 사실 이런 돼먹지 못한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기에 그를 진심으로 탓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에?! 그럼 작업은 어떡하고요?”


순간 놀랐는지 이름 모를 젊은이는 크게 말했고, 그것을 엿들은 정경석은 그들을 대놓고 비웃기 시작했다.


“자, 여기 꼬맹이들아.”


그가 그들을 비웃으며 옆으로 비켰다. 그가 비켜선 자리에는 말라빠진 두 사나이와 그 둘이 낑낑대며 옮겨 놓은 장비 보관함이 있었다.


두 사람 중 키가 크고 머리에 상처가 난 한 사람이 보관함의 덮개를 열었다. 그러자 다 녹슨 삽들이 쏟아졌다.


“중장비가 어디 있긴. 다 가져다 쓰고 없지. 다른 곳에서 사흘은 신나게 쓸 테니까 움직여볼 생각도 하지 마라. 알겠으면 이동해.”


아, 다시 4번대는 사흘 동안 중장비는 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정경석이 흔하게 주는 벌로, 사흘 동안 중장비 사용 일절 없이 사실상 낡은 장비만 가지고 일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결정에 일관적인 기준 따윈 없다. 일정한 처벌 기준이 있긴 하지만, 이곳이 그렇듯 사실상 모든 결정권은 오로지 정경석 자신의 머릿속 생각에게 있었다.


처벌 기준에 없더라도 그가 원하기만 하면 이렇게 즉흥적으로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이런 일을 겪은 4번대의 선배 노동자들의 시선이 젊은이 한 사람을 향해 쏠렸다.


물론 안 좋은 방향으로.


작가의말

잘못된 부분을 올린 탓에 급하게 지우고 새로 넣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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