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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검 님의 서재입니다.

강해도 너무 강한 좌충우돌 막내제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지중검
작품등록일 :
2023.08.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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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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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2.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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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 무영지독은 독이 아니오

DUMMY

당가타의 빈객청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릉강.

함박눈 퍼붓는 가릉강변의 풍치는 절경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웠고 내가 살았던 장백산에서는 볼 수 없는 별미(別美)였기에 창밖에 시선을 빼앗긴 채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일찌감치도 일어났구나. 뭘 그리 오래도록 쳐다보느냐?”


돌아보니 공야박이 림소소, 수린을 거느리고 빈객청으로 들어서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당무정과 당룡, 당약란도 거의 동시에 얼굴을 비쳤다.


“사전 약속도 없이 이렇게 거의 같은 시간에 모인 걸 보니 우리의 공조는 꽤 순탄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구려.”


당무정이 공야박을 향해 두 손을 맞잡으며 아침인사를 건넸고 양측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아침식사가 이어졌다.

당가타의 아침은 담백하고 뜨거운 국물과 소채, 만두 위주의 가벼운 식단이었다.


“오랜 습관이라 아침식사는 가볍게 하고 있는데 혹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부담 없이 얘기해주시기 바라오. 이곳에 있는 동안 한 식구처럼 지냅시다.”


공야박을 향해 예를 갖춘 당무정이 마주앉은 우리들의 얼굴을 두 눈에 새겨넣기라도 하겠다는 듯 일일이 직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당무정이 원래 이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나?

그렇다면 애초 이름을 유정(有情)이라고 지었겠지, 공조를 약속했으니 가깝게 지내는 게 좋긴 하지만 이건 좀 유별난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나를 향해 물었다.


“내, 따로 알아보니 일권무적은 무공뿐 아니라 지략도 뛰어나다고 들었네. 우리의 공조에 임해서 묻고 싶은 것은 없나?”


응? 그새 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고?

왜애? 미인이라면 모를까, 어르신들의 관심은 그닥 반갑지 않은데 왜 이러실까.

물론, 궁금한 건 있었다.

몇 가지 추측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한 일이다.


“말씀하시니 편하게 묻죠. 가주께선 무영지독의 유출을 아시고도 우려를 드러냈을 뿐 크게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당무정의 두 눈이 이채를 띄었고 당룡과 당약란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본다.


“호- 그런 차이를 살피다니, 한주먹으로 배를 때려부수는 호쾌한 기질 속에 그렇게 섬세한 눈을 감추고 있었나?”

“과찬이십니다.”

“오래 지켜온 비밀 중 하나지만 굳이 감출 생각은 없네. 혹시 왜 그런지 추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말해보게.”


나는 마음속에 있던 의문과 추정을 끄집어냈다.


“무영지독은 독전의 제조비법만으로는 만들 수 없지 않나요? 무영지독 제조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오직 당가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헛!”

“헉!”

“앗!”


당무정은 너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당룡과 당약란도 크게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는데 세 사람 모두 벌린 입을 쉽게 다물지 못했다.

내가 알아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실태를 깨닫고 얼굴을 붉힌 당무정이 황급히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인가?”


사실, 찬찬히 당가의 태도를 관찰했다면 누구나 추측이 가능한 일이다.


“보타산의 변고 이후 무영지독이 강호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정할 수 있죠. 범인이 더 이상 무영지독을 살포할 생각이 없거나 무영지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당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일단, 보타산의 참변을 일으킨 자가 더 이상 무영지독을 살포할 생각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만큼 효과적인 대량 살상 수단은 찾기 어려우니까요.”

“계속 해보게.”

“그럼, 두 번째 이유만 남죠. 그건, 무영지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그것도 말이 안 됩니다. 보타산의 변고가 곧 당가에서 무영지독 제조법이 유출됐다는 증거니까요.”


당무정이 피식, 웃었다.


“그 주장은 좀 무리 아닌가? 범인이 당가에서 훔친 무영지독이 떨어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가릉객잔에서 가주님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아마 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가주님은 가릉객잔에서 전대가주님의 실종으로 무영지독 제조법이 절전됐다고 말씀하셨지요.”


당무정은 감탄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고 호기심천국 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범인에게 무영지독이 없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말과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늘 하던 버릇대로 수린의 볼을 콕, 찔렀다.


“바보야, 방금 가주께서 당가의 전대가주님 실종으로 무영지독 제조법이 절전됐다고 말씀하셨잖아.”

“글쎄, 그게 어쨌다고?”

“이런, 평소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쌍심지를 켜고 나서는 녀석이 왜 이래? 묻지 말고 그 좋은 머리를 굴려봐.”


장난스러운 내 핀잔에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던 수린의 귀여운 얼굴이 곧 붉게 달아올랐다.


“아! 범인이 제조비법을 입수했는데도 무영지독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네.”


그렇췌, 바로 수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가 그냥 손뼉만 쳐줬다.


“바로 그거야. 무영지독의 제조비법을 갖고 있는데 무영지독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 가정은 바로 가주님의 말씀과 연결되지. 어제 가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나는 짐짓, 목소리를 굵고 낮게 가다듬고 당무정처럼 말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자가 사천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최신 독약의 재료 중 가장 중요한 일부가 당가타에만 존재하기 때문인데 나는 그자가 귀의와 관계가 있을 거라 확신하오.”


짝짝짝, 짝짝짝짝-


당무정이 박수를 보냈고 뒤이어 당룡과 당약란도 손뼉을 쳤다.


“대단하군.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니 더 이상 감출 의미가 없겠어. 맞았네. 무영지독의 제조비법을 안다고 해서 바로 무영지독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사천당가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놀라운 비밀 하나가 밝혀졌다.

대대로 사천당가의 가주가 머물고 있는 천독전(天毒殿) 지하에 신지(神池)라는 연못이 있고 이 연못의 물 즉, 신수(神水)가 무영지독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것이다.

당무정은 곧 더 놀라운 사실을 공개했다.


“강호에 알려진 사천당가의 무영지독은 독이 아니고 신지의 물이며 우리는 신수라고 부르오. 그 신수에 독을 섞어야 비로소 무색, 무취, 무미한 무영지독이 된다오.”


또 신지를 떠난 신수의 무색, 무취, 무미한 효능은 두 시진 정도만 유지돼 두 시진 안에 독과 섞이지 않으면 평범한 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말은 다시, 당무정이 장담한 대로 신수를 노리는 자는 당가타에서 두 시진 이상의 거리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공야박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잃어버렸다 회수한 독전에 실렸다는 무영지독의 제조법은 뭡니까?”


당무정이 약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뭘 더 감추겠소? 그건 각기 성질이 다른 독에 섞는 신수의 배합비율이요. 사실, 당가의 독뿐 아니라 천하의 어떤 독도 신수와 섞이면 무영지독이 될 수 있소.”


모두가 깜짝 놀랐고 전율했으며 비로소 무영지독은 해독제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우선, 천하의 모든 독을 무영지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광범위한 살상과 활용성에 전율했으며 해독제가 있어도 쓸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를테면 당가의 독 오보탈명(五步奪命)과 칠보추혼(七步追魂)은 해독약이 존재하지만 신수와 섞으면 무영지독이 되어 실체가 감춰지므로 맞는 해독제를 찾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가주께서 우리를 한 식구로 생각하신다는 말씀은 하셨어도 당가의 오랜 비밀을 이렇게 소상히 밝힐 줄은 몰랐소이다. 혹,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노회한 공야박의 말에 한바탕 호탕하게 웃은 당무정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가? 이번에도 내 생각을 맞춰보지 않겠나?”


아, 이거 참 쑥스럽구만.

집중된 시선에 얼굴이 뜨끈뜨끈해졌다.


“은인자중, 참고 웅크리자니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거 같고 떨치고 일어서자니 주변 상황들이 절묘하게 누군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결국, 진퇴양난이라는 뜻인데 당무정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재촉했다.


“그래서? 내가 어쩔 것 같은가?”

“그거야 가주님 마음이라 제가 알 순 없지만···, 저라면 귀의부터 때려잡겠죠.”


애초 같은 의도로 떠난 공야박과 수린, 림소소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당가의 선택이라기엔 어쩐지 거리가 먼 말 같은데 당무정은 얼굴아 깨져라 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푸하하하하하- 좋아, 좋아. 근데 그건 나보다 자네 일행이 원하는 일 같은데 왜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어제, 오늘 나눈 대화가 답이죠. 당부용의 치정사건, 보타산의 무영지독 그리고 전대가주님의 유품이 회수된 일까지 모두 우연이 아니고 하나로 연결된 음모라 생각하고 계시니까요.”


당무정이 웃음을 그치고 정색을 했다.


“갑자기 자네 무공이 궁금해지는군. 어쩐지 자넨 무공보다 그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더 무서운 사람 같아.”


기다렸다는 듯 당룡이 끼어들었다.


“이 소협에게 아버님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가 나서고 싶소만···.”


나는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여보슈, 누구에게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돈도 안 되는 일에 무식하게 힘을 쓰는 사람이 아니오.


“아니죠. 순서가 결정됐으니 지금부터는 귀의를 어떻게 찾아 때려잡을 것인지 그걸 연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천의 지배자로 군림 중인 당가의 정보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당무정은 이미 귀의가 사천으로 들어왔으며 어느 곳에 은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꿰뚫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 떠보고 있었다.

우리는 심야를 기다려 가릉강변 숲속에 있는 귀의와 곽 장로의 은신처를 덮치기로 하고 당가에서 연락을 줄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용아, 란아.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빈객청에 남아있던 당무정이 당룡과 당약란에게 물었다.


“아버님, 제가 들은 말은 다 헛소문이었어요. 무공만 뛰어난 천방지축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앳된 외모만 겨우 비슷하게 전했을 뿐 전혀 다릅니다.”


당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이제야 가릉객잔에서 서문진천이 갑자기 그를 초대한 이유를 알 것 같구나.”

“그렇다면 서문 공자는···?”

“그래, 그가 일부러 존재감을 지우고 나타난 서문진천을 한눈에 알아본 것처럼 서문진천 역시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을 게다.”


당약란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이미 십대고수를 뛰어넘었다는 말을 듣고 있는 서문 공자님이 그를 호적수로 의식하고 있다는 말이세요?”

“글쎄다.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구나. 오늘 밤 그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가 있으니 우리도 알게 되겠지.”

“소문으로는 무지막지한 싸움꾼이라던데···. 오늘 보니 꼭 그런 거 같지도 않아요.”


소문보다 더 어려 보이는 외모, 무지막지하다는 풍문과 달리 격장지계에 걸려들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기억을 되살린 당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허나 일권무적이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것은 아닐 거야. 떠도는 강호의 소문이 다 엉터리는 아니지 않느냐?”


당무정은 남매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당부용의 일로 손상된 가풍을 일신할 기회로 삼고자 귀의의 생포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훌륭한 조력자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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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5. 삼초를 양보한 대가 +2 24.01.01 594 25 12쪽
105 4. 내가 해결하겠소 +2 23.12.30 675 23 12쪽
104 3. 주먹만 스쳐도 불구라던데 +2 23.12.29 644 23 12쪽
103 2. 도군의 천양진기를 버티다 +2 23.12.28 680 25 12쪽
102 제4장 폭주강호(暴走江湖) +2 23.12.27 696 25 12쪽
101 30. 춤추는 몽둥이 +2 23.12.26 732 24 12쪽
100 29. 무지막지하다는 말은 취소다 +2 23.12.23 855 23 12쪽
99 28. 호랑이를 산에서 내몰다 +1 23.12.22 799 23 12쪽
98 27. 인간은 생각이 너무 많아 +3 23.12.21 752 24 12쪽
» 26. 무영지독은 독이 아니오 +1 23.12.20 765 25 12쪽
96 25. 사천당가의 기막힌 속사정 +2 23.12.19 775 24 11쪽
95 24. 예측할 수 없는 인물 +2 23.12.18 795 25 12쪽
94 23.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는 경지 +3 23.12.16 849 25 12쪽
93 22. 어차피 계산은 돈 많은 공주님이 +2 23.12.15 838 24 12쪽
92 21. 단숨에 십대고수를 뛰어넘었다 +3 23.12.14 893 24 12쪽
91 20. 괴물은 괴물이 상대해야지 +2 23.12.13 896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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