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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검 님의 서재입니다.

강해도 너무 강한 좌충우돌 막내제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지중검
작품등록일 :
2023.08.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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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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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591

작성
23.12.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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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4. 예측할 수 없는 인물

DUMMY

이층 특실의 식탁은 원탁이었다.

원래는 안쪽으로 긴 직사각형의 탁자였는데 원탁으로 교체한 것은 천무대공자를 위한 당무정의 섬세한 배려였다.

직사각형의 식탁은 위치에 따라 신분과 지위의 고하가 바로 드러난다.

가장 안쪽 중앙에 최고 신분이 앉고 최고위와 가까운 좌우 양쪽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신분과 지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기련칠마를 격살한 영웅을 초대해 수하 취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를 상좌에 앉힐 수도 없으니 부득불 식탁을 원탁으로 바꾸고 가장 안쪽을 비운 채 마주 앉은 것이다.

원탁 왼쪽 중앙에 당무정이 앉았고 그의 좌우 양쪽으로 당룡과 당약란이 앉았으며 당무정 맞은편에 서문진천에 앉은 상태에서 내가 들어선 상황이다.

사람을 불렀으면 자리부터 권해야 되는 거 아냐?

나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태도였지만 저들에게는 뜻밖이었을 반발에 당황한 당무정이 곧 평온한 안색을 회복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과연, 호락호락한 친구가 아니었군. 미안하이. 호기심이 앞서는 바람에 깜빡 결례를 범했네. 그리 앉지.”


당무정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서문진천의 옆자리 의자가 저절로 스르르 밀려나왔는데 그것은 거물다운 배포와 무공수위를 자연스럽게 보여준 행위였다.

일가의 주인이자 사천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사람이 자식뻘로 보이는 청년의 도발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과하고 요구대로 싹싹하게 자리를 권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나는 당연한 결과지만 그를 살짝 인정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찻잔 하나가 둥실 떠올라 천천히 나를 향해 날아왔는데 찻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멀쩡해 보이는 찻잔은 불덩어리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결례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날아온 찻잔을 태연하게 잡아 천천히 찻물을 음미한 다음 탁자에 내려놓으니 만족한 듯 손뼉을 친 당무정이 서문진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 공자의 말이 맞구려. 그는 확실히 사천에서 볼 수 없는 고수요.”


열화진기(熱火眞氣)를 주입한 찻잔은 식은 찻물을 단숨에 끓게 만들 만큼 뜨거운데 그런 찻잔을 쥐고 찻물까지 마신 행위는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어했다는 뜻이다.

남자인 내가 봐도 절로 호감이 일어날 만큼 잘 생긴 서문진천은 신비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당무정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묻겠네. 자넨 누군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당가타를 찾을 예정이었으므로 솔직하게 말했다.


“무림말학 이청풍이 사천당가주님과 여러 선배들께 인사드립니다.”


저 입에서 어떤 이름이 튀어나올까 잔뜩 기대하고 있던 당무정과 당룡의 얼굴에 실망이 역력한 표정이 떠올랐으나 오직 한 사람 당약란의 두 눈은 동그래졌다.


“어머, 일권무적?”


자신들이 모르는 별호가 어리고 강호경험 적은 당약란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당무정과 당룡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그려졌는데 의외로 서문진천은 담담했다.


“일권무적? 네가 어떻게 그를 알고 있는 것이냐?”


흠모해온 천무대공자 앞에서 모처럼 발언기회를 잡은 당약란이 생글생글 웃었다.


“그는 절강성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해요. 귀면해적의 수괴를 한주먹으로 때려잡아 일권무적이란 별호가 붙었다는데 저 말총머리가 특징이랍니다.”


그제야 당룡도 머리를 주억거리며 기억이 났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아, 말총머리 일권무적! 요즘 청년무인들 사이에서 제법 화제가 되고 있어요. 근데 듣던 것보다 더 어린 거 같군요. 그렇게 무지막지해 보이지도 않는데···.”


당룡이 새삼스럽다는 듯 내 아래위를 훑어본다.

아니, 무슨 얘기를 들었기에 저 따위 표정을 짓는 걸까.


“역시 무명소졸이 아니었군. 그래, 이 소협은 무슨 일로 사천에 온 것인가?”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서문진천을 힐끗, 쳐다본 뒤 찻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밖에 제 일행이 있고 우리는 당가타를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호- 그랬나? 당가타엔 무슨 일로?”


대화가 자꾸 일방적인 취조형태로 진행되는 게 언짢아서 틀어버렸다.


“가볍게 발설할 수 없는 일이라···. 또 일행 중에 어르신이 계셔서 제가 먼저 함부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저희는 이 자리가 파한 뒤 따로 뵙고 싶습니다만···.”


일행 중에 어르신이 계신다는 말에 당무정이 흠칫, 놀랐고 이번에는 무표정하던 서문진천의 얼굴에도 미미한 변화가 생겼다.

당무정이 무어라고 막 입을 열려는 찰나에 서문진천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용무가 끝난 저는 먼저 일어서야겠군요. 또 다른 곳을 가봐야 해서···. 독왕께선 이 소협과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문진천의 두 눈에 내 얼굴이 담겼다.


“일권무적이랬나? 왠지 여기서 끝날 인연이 아니라는 예감이 드는군. 또 보세.”


돌연한 서문진천의 행동에 독왕이 화들짝, 일어섰고 당룡과 당약란도 덩달아 일어났다.

나? 나는 서문진천을 바라보며 그냥 묵묵히 앉아있었지.

왜, 그런 말 있잖아. 모두가 일어설 때 혼자 앉아있지 마라.

응? 그럼, 너도 일어서는 게 맞지 않냐고?

아니지. 수린의 말에 의하면 난 청개구리거든.


서문진천의 말처럼 용무가 끝난 건 사실이고 또 일을 마친 당사자가 가겠다는데 딱히 만류할 명분도 없었으므로 밖으로 나가는 그를 아무도 잡지 못했다.

당무정은 허탈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고 당룡과 당약란도 또 다른 의미의 허탈한 심정으로 따라 앉았다.


“허,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군.”


느닷없는 연락에 황급히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서문진천의 이름으로 사천당가에서도 일급기밀에 속하는 전대가주 당유정에 대한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정마대전 이후 실종된 독제 당유정이 남겼다는 독전(毒典)과 몇 가지 유품은 도저히 만남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런데 사천당가로서는 도저히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것들을 아무 조건 없이 넘겨준 뒤 일언반구도 남기지 않고 바로 가버리다니.

산전수전 다 겪은 당무정으로서도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유형의 인물, 서문진천의 행동은 실로 정인군자요 대협의 풍모가 분명한데 상황전개가 너무 급박해 적응이 잘 안 된다.

당무정이 허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이 소협 일행의 어르신은 누구신가? 아니, 일이 이렇게 됐으니 아예 일행을 이쪽으로 모시는 게 좋겠군. 어떤가?”

“제 일행의 어르신은 개방의 풍개 공야박 장로이십니다. 귀면해적 토벌 때 함께 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인연이 이어지는군요.”

“음? 개방 공야 장로였다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언제 말할 기회는 줬고?

나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고 곧 공야박과 수린, 림소소가 이층으로 올라왔다.


“공야 장로, 이게 얼마 만이오? 사천에 왔으면 진작 기별을 줄 일이지···.”


흥, 핏, 쳇! 나를 외면하고 새파란 애송이를 초대한 주제에 이제 와서 반가운 척은!

토라진 게 분명하지만 다 늙어가지고 삐진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는지 공야박도 어울리지 않게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당무정의 손을 마주 잡았다.


“하하하- 사천의 지배자께서 이곳에 계신 줄은 미처 몰랐군요. 알았더라면 진작 올라와서 인사라도 드리는 것인데 그랬습니다그려.”


아이고, 가증스럽긴.

얼굴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며?


“자자, 앉읍시다. 그런데 일행이 더 있었군요. 공야 장로는 바람처럼 홀로 떠도는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자리를 권하는 당무정의 시선이 수린과 림소소를 스쳤고 젊은 당룡과 당약란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하하, 늙으면 외로움을 타게 되는 법이지요. 이 아이는 최근에 거둔 제자이고 저 처자는 지인의 여식인데 공교롭게도 사천에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그려.”


공야박 특유의 익살맞은 소개와 인사치레가 끝나고 때마침 주문한 요리와 술이 들어와 곧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잡혔다.


“이것 참, 알고 계신지 모르겠소만 조금 전까지 천무대공자가 공야 장로의 자리에 앉아있었소.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면 다 함께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구려.”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는 공야박은 과장된 표정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런, 이런, 제가 눈이 나빠 명성이 자자한 천무대공자를 만날 기회를 놓쳐버렸군요.”

“조만간 정파 무림의 중심에 서게 될 인물이니 원하지 않아도 만나게 될 겁니다. 한데, 바람처럼 천하를 떠도는 공야 장로께서 이렇게 여러 사람을 몰고 사천에 오신 이유가···?”


공야박이 내게 눈짓을 보냈고,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손발이 잘 맞았는지 나는 은밀하게 기막을 쳐 외부로 흘러나가는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공야박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보타산의 변고와 무영지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갑자기 당무정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당 가주, 왜 그러십니까?”


침중한 표정으로 몇 번을 망설이던 당무정이 긴 한숨을 내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휴- 이게 우연한 일일까. 독전을 되찾은 날 그 비밀을 실토하게 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공야박의 얼굴을 바라보는 당무정의 표정이 착잡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요. 부끄러운 비밀이지만 당가는 정마대전에 참전하신 아버님이 실종되신 이후 무영지독의 제조법을 잃어버렸소. 하니···.”


보타산에서 발견된 무영지독과 사천당가는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잠시 멈칫 했던 당무정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오늘 그 무영지독과 해약제의 제조법이 실린 독전을 회수하게 됐소. 여러분도 짐작하다시피 방금 떠난 천무대공자가 내게 전한 것인데 너무 공교로운 일 아니오?”


당무정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사천당가는 보타산에서 발견된 무영지독과 무관하다는 얘기가 되지만 그 순간 의혹은 독전을 당가에 전해준 서문진천에게로 옮겨진다.

칠대문파의 공동전인임을 자처하며 그들의 유진을 돌려주고 있는 서문진천이 과연 독전의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사천당가로 넘겨주었을까.

또 그렇다고 아무런 물증 없이 의심하기에는 단신으로 기련칠마를 제거하고 절전된 칠대문파의 비급을 대가없이 돌려주고 있는 서문진천의 행위가 너무 광명정대하다.

은혜만 베풀고 돌아서는 사람을 어떻게 의심한단 말인가.


당무정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깊은 시름에 잠길 때 이층 특실이 올려다 보이는 가릉객잔 뒷골목 담벼락에 기댄 한 남자가 피식, 웃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타인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법.


“소리를 차단했어? 제법이군. 이렇게 되면 당분간 지켜보는 수밖에 없나.”


가화어인(嫁禍於人, 화를 타인에게 전가함)의 계교를 펼쳤는데 누군가,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이 대화를 엿듣지 못하도록 소리를 차단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남자가 유유자적 한가한 걸음으로 가릉객잔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 그 뒤로 은밀하게 몇 개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복잡한 골목을 천천히 돌고 돌아 다시 또 하나의 좁은 골목으로 꺾어져 돌았다.


“빌어먹을 놈, 뭘 하려고 이렇게 뱅뱅 돌고 있···.”


나직한 추격자의 목소리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급속하게 잦아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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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5. 삼초를 양보한 대가 +2 24.01.01 616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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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3. 주먹만 스쳐도 불구라던데 +2 23.12.29 662 23 12쪽
103 2. 도군의 천양진기를 버티다 +2 23.12.28 704 25 12쪽
102 제4장 폭주강호(暴走江湖) +2 23.12.27 718 25 12쪽
101 30. 춤추는 몽둥이 +2 23.12.26 751 24 12쪽
100 29. 무지막지하다는 말은 취소다 +2 23.12.23 876 23 12쪽
99 28. 호랑이를 산에서 내몰다 +1 23.12.22 822 23 12쪽
98 27. 인간은 생각이 너무 많아 +3 23.12.21 773 24 12쪽
97 26. 무영지독은 독이 아니오 +1 23.12.20 792 25 12쪽
96 25. 사천당가의 기막힌 속사정 +2 23.12.19 801 24 11쪽
» 24. 예측할 수 없는 인물 +2 23.12.18 824 25 12쪽
94 23.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는 경지 +3 23.12.16 877 25 12쪽
93 22. 어차피 계산은 돈 많은 공주님이 +2 23.12.15 866 24 12쪽
92 21. 단숨에 십대고수를 뛰어넘었다 +3 23.12.14 917 24 12쪽
91 20. 괴물은 괴물이 상대해야지 +2 23.12.13 920 24 12쪽
90 19. 소봉각(素鳳閣)의 신비공주 +2 23.12.12 914 27 12쪽
89 18. 뱃속에서 서글픈 신호가 왔다 +1 23.12.11 915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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