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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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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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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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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83. 별 것 아닌 아이템들

DUMMY

제냐는 주변을 둘러본다. 뱀이 지나감으로 인해서 생겨난 빈 공간이 아주 넓었다. 어지간한 대학교 건물이 들어와도 될 정도의 부지가 아닌가 싶다. 흑사는 지독하게 질겼고 또 종래에는 죽었다.


띠링, 하는 알람음이 들렸다.


캐릭터 인터페이스의 감각으로 그것이 칭호에 관련된 알림이라는 걸 깨달았다. 당장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다른 곳으로 행동 인터페이스를 바꿔둔 창이었다. 제냐는 오른쪽 허벅지의 옆을 엄지 손가락으로 3초 이상 꾸욱 눌렀다. 달칵, 거리면서 눈 앞에 깜박이는 인터페이스 창이 뜬다.


그대로 시야를 집중해 촛점을 맞추자 불투명했던 인터페이스 창이 조금 더 색을 얻으면서 또렷해진다. 그래도 그 창 너머의 시야가 유지되는 정도였다. 인터페이스 창은 서바이벌 게임인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서 지나치게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대개는 불투명한 정도가 최대 선명도였다. 그래도 보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캐릭터 인터페이스의 여러 부분들 중 칭호 따위와 관련된 창이 열렸다. 간단한 텍스트 메세지가 떠 있었다.


‘어둠숲의 흑사를 잡은 자(B671).’


라는 칭호가 떠 있었다. 유일 급의 칭호였으나, 뒤에 떠 있는 식별 번호는 지금 제냐가 잡은 해당 개체를 사냥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칭호다. 똑같은 칭호명과 효과를 가진 것을 다른 이들도 얻을 수 있었다. 어둠숲 내에 서식하는 다른 지역의 흑사를 잡는다거나, 리젠(몬스터가 일정 시간이 지나 부활하는 것. 사냥 컨텐츠를 위해서 계속해서 몹이 생성된다)시간을 기다려 나중에 이 자리에 뜨게 될 흑사를 잡으면 얻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 제냐가 잡아 죽인 흑사의 개체 번호로 인한 칭호는 이게 유일했다. 보통 일반과 희귀, 까지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칭호던 스킬이던 얻는 데 수의 제한은 없었다. 유니크 급부터는 이렇게 개체수나 조건에 제한이 걸려 있어 무한정 모든 이들이 얻을 수는 없었다.


칭호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열어보았다.


[산슈카 왕국, 사르삿 남부에 위치한 어둠숲. 고대로부터 산슈카의 용사들도 다 점령하지 못한 미개발지역의 흑사는 유명하고 또 오래된 괴수 중 하나이다. 끝없는 정력과 생명력의 현현같은 뱀을 잡아 죽인 자는 전투사로서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뱀 종류의 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

-스테미나 소량 증가

-체력 소량 증가

-유연성 소량 증가

-뱀 종류의 피어의 면역력 증가

-어둠숲의 생물들에게 위압감을 주며 선제 공격의 성공 확률 증가]


일단 설명과 함께 보여지는 칭호의 효과는 그 정도였다.


칭호나 아이템, 스킬은 각기 인터페이스 창을 열어 시스템이 제공하는 설명들을 볼 수 있었지만, 거기에 쓰여져 있는 문장이 전부는 아니었다. 도리어 문장간의 숨겨진 의미와 효과들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련의 시나리오는 무엇이든 쉽게 얻게 해주고, 쉽게 알려주는 법이 없는 게임이었다. 스킬 하나를 얻었더래도 자신이 그 스킬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치고, 진정한 효과에 대해서 심도 있게 알아보아야 제대로 된 능력을 써먹을 수 있는 법이다.


무한에 가까운 가짓수로 뻗어 나가는 각종 스킬군과 칭호, 아이템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깊이 들어가는 탐구의 묘리는 비련의 시나리오를 오래도록 즐길만한 게임으로 만든다. 그건, 현실을 닮아 있었다.


우리네 삶이 그런 깊이감과 방대한 넓이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시나리오 온라인의 개발자들은 현실을 최대한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모든 게임의 제작자들, 창조자들이 원했던 이상이었으나 닿지 못했다. 단순히, 용량과 연산의 한계로 말이다. 그만큼 현실감 있는 오브제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서, 디테일하게 파고 들다 보면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원, 시간이 들게 되는 법이었다.


소프트웨어 상의 혁명은, 결국 깊이 탐구하면 하드웨어의 혁명으로도 이루어진다.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결정하는 것이 하드웨어였으니 말이다.

압도적인 효율과 성능을 자랑하는 시간의 절약자, ‘만물박사’의 발명은 프로그램의 성능 향상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무수한 희귀 광물들, 반도체나 전도체 등 복잡한 기계 구조에 쓰일 재료들에 대한 절약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는 유저들은 그저 ‘와, 말도 안되는 그래픽과 현실감의 게임이군!’하고 넘어갈 뿐이었지만, 그 너머에 있는 의미는 그런 사실이었다. 만물박사는 종래에는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각종 분야에 쓰이며 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리라.


아직은, 그것을 제냐가 직접 듣고 느끼기에는 이른 시점이었다.


게임의 개발진들이 본격적으로 만물박사를 활용해서 각종 분야의 연구 발전, 개발에 쓰려고 하는 건 적어도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의 테스트 플레이가 끝나고 난 뒤였으니 말이다.


이 방대한 게임과 어마어마한 유저들을 끌어들인 플레이는 AI의 개발진들이 하고 있는 일종의 테스트였고, 결국은 끝에 다다르게 되어 있었다.

정확한 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으나 대강의 미래는 점치고 있었다. 조금 더 늦을 수도 있고 이를 수도 있지만,


서바이벌 게임이기도 한 시나리오 온라인의 접속자가 1명, 혹은 0명이 될 때 끝이다.

혹은 어떤 플레이어, 나 플레이어 집단이 메인 스토리 급의 퀘스트 시나리오에 접촉해서 어떤 형태로든 콘란드 대륙이라는 세계의 일단의 결말을 장식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계관의 대미를 장식할만한 대사건에는, 대륙 정벌, 몬스터 군의 궤멸, 혹은 인류 집단의 궤멸, 혹은 기술 발전으로 중세 즈음의 기술에 다양한 초현실적 스킬들이 횡행하는 세계관에서 다음 시대에 진입을 한다던가.

적어도 전 대륙적, 세계관 내 전 인류적인 규모의 스토리 진행들이 있었다.


제냐가 흑사를 잡아낸 것도 크게 보면 몬스터의 궤멸에 일각의 일각에 포함된 것이었다. 이만한 흑사는 나름대로 네임드 몬스터였고, 리젠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어둠숲 역시 몬스터들의 비율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그 부분이 전체적으로 ‘평화’ 상태로 바뀌게 된다. 점진적인 변화였으나 몬스터의 리젠률이 떨어지고, 리젠 시간이 길어지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 평화 상태의 지역이 어둠숲 전체를 덮고 나면, 종래에는 전투직 플레이어들의 사냥터이자 경험치 수급처였던 어둠숲 필드는 사라지고, 안전한 땅이 생겨나는 것이다.


몬스터들이 ‘고여 있다’라고 표현해야 할만한 장소였으나 적어도 다른 산슈카 국내의 황야와 비슷한 장소가 된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충분히 인류의 영토로 적극적으로 개발해 자원지대로 써먹고 또 살아가는 터전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이미 산슈카 국내의 영토이기는 했지만, 몬스터들이 워낙 드글거리고 그것들을 치워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소모되어 남겨두고 있는 실정이다. 어차피 몬스터들은 대단한 기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둠숲 내부에만 머무르게 되어 있으니까.

현재 콘란드 대륙은, 주민들의 인식에 유례 없는 모험가, 용병들의 호황이었으므로 그들이 알아서 몬스터들의 개체수를 줄이며 조정해주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용병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을 땐, 정기적으로 산슈카 국에서 토벌군이 형성되어 사냥을 했던 역사가 있다.


몬스터들이 영토 바깥으로 나올 정도의 개체수라는 건 상당히, 있기 힘들 정도의 과밀함이 필요한 일이었으므로 산슈카 국은 어둠숲을 결국 완전히 토벌하지 않고 쭈욱 내버려두고 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는 사냥의 터전이 되고 또 성장의 발판이 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이곳 말고도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 데슈칸 산맥이 있어 그곳 역시 쓸만한 사냥터였다. 제냐도 어둠숲을 충분히 탐험하고 난다면 ‘로멜리아 가문’의 일이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데슈칸 산맥을 들러 사냥을 할까, 도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호아킨과 릿샤 역시 데슈칸 산맥에서 경험을 쌓았었으니까. 데슈칸의 심처에서 몬스터들을 도륙하며 전투직으로서 성장하는 것도 분명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넉넉한 사냥터가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제냐가 충분히 뱀이 죽은 자리 앞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나무 등치에 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자 거대한 뱀의 사체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 말단부부터 점차 제냐의 눈에 빛의 광채로 뒤덮이더니, 결국 입자화가 되어 천천히 흩날리는 것이다. 그리고 뱀이 죽은 그 사체 위, 몇 미터 허공을 날지도 못하고 공기 중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흑사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사라져간다. 프로그램 내이다 보니, 데이터가 소멸하는 식이었다. 현실이라면 천천히 그 사체가 썩고 다른 방향으로 물질이 순환될 테였지만. 콘란드 대륙에서도 플레이어들이 관측하지 않는, NPC들의 삶만이 있는 곳에서는 그런 자연계 시스템을 모방해서 부패가 된다거나 하게 되어있다.


지금은 제냐가 개입했으므로, 흑사는 그대로 사라지고 아마 나중에 시스템 AI의 조율에 따라 리젠되거나 할 테였다.


흑사가 만들어낸 거대한 공터는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연지형, 오브제에 영향을 준 것은 변하지 않는 편이었다. 막강한 자유도를 갖고 있었고, 그만큼이나 막대한 상호작용을 보장하는 게임이었으니.


아마 플레이어들이나 NPC들에 의해 알음알음 알려져서, 어둠숲의 흑사 잡이, 제냐의 이름이 인근 도시에서 알려질 지도 모를 일이었다.


흑사를 잡은 자, 같은 유니크 급의 칭호들은 세계관 내에 나름대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때의 호칭이었다. 지금처럼 한 지역에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큰 몬스터를 잡는다거나 말이다. 칭호의 설명에는 쓰여있지 않았지만, 이 칭호와 그 행위로 인한 파급이 명예 점수의 획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양한 퀘스트 파생으로 이어지기도 할 테였고.

이런 식으로 유니크 칭호로 얻어내는 다양한 시나리오 퀘스트의 루트들이 있었지만 제냐가 외우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흑사잡이에 대해서도 그렇다.


밤하늘의 별이나, 경치를 즐기며 주저 앉아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숨 좀 몰아쉬고 나니 뱀의 거대했던 몸뚱이가 어느새 다 사라져 있었다.


아마 이 정도의 난리였다면 사냥을 왔던 타 플레이어나 NPC들도 눈치를 챘었을 텐데. 굳이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다가오지 않았으리라. 대개는 흑사의 심기를 건드린 어느 멍청한 사냥꾼이 죽었으리라고 예상하고 멀리 피해갔을지 모른다. 결과는 흑사가 죽은 것으로 났지만.


흑사가 사라지고 나자 정말로 너른 공터 뿐이었다. 거기에 뱀이 단단한 비늘과 제 몸무게로 갈아버리듯 부쉈던 목재의 부스러기, 숲의 토사물, 바윗덩이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어쨌든 그런 평평한 땅 위, 저 먼 곳에 작은 박스 하나가 보였다.


푸른 색이었는데, 어둠 가운데 제냐의 눈에 한 번에 들어오는 밝기의 빛을 내고 있었다. 현실감 있는 그래픽 속에 이질적인 모습이나. 현실에 일부러 그렇게 조형을 하고 조명을 설치한 디지털 형상의 예술품이 놓여진 것 같다.


제냐는 거기까지 가기가 귀찮았으므로, ‘끙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한 돌 하나를 주웠다. 마침 딱 던지기 좋고 무게감도 괜찮은 놈이 나무뿌리 근처에 있었다. 한 손에 쥘만하게 들어오며 묵직한 차돌이었다. 둥근 그것을 들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하면서 ‘투척’ 스킬의 인도에 따라 저 먼 곳의 박스를 향해 날렸다.


심지어 그렇게 던지는 데 기력술마저 사용했다. 돌은 팽, 하고 매서운 파공성을 내며 일직선으로 낮게 난다. 투척 스킬은 깨나 자주 사용하는 류의 공격법이었으므로, 다행히 먼 거리였으나 한 번에 돌이 박스를 맞추었다.

직접 공격용으로 던져낸 돌 역시 제냐의 의사에 따른 ‘터치’로 인식이 되었다. 흑사를 잡은 건 제냐였고, 그에게 오롯이 독점권이 있었으므로 제냐가 건드리자 박스는 바닥에서 곧 사라진다.


빛이 꺼지듯 사라진 박스였다. 그대로, 인벤토리가 무엇인가가 들어온 듯했다. 인벤토리에 다 들어가지 않는 크기나 용량의 무엇이라면 제냐의 바로 앞에 현물화가 되어 떨어지거나 했을 테니까 말이다.


“IV."


제냐가 낮게 중얼거리며 인벤토리 창을 띄워 살폈다.


[흑사의 어금니x5, 흑사의 비늘 무더기, 흑사의 독액 3L, 흑사의 숨결, 어둠숲의 날카로운 눈]


여러 아이템들이 그의 인벤토리 창 내부를 새롭게 채웠다. 사냥을 하느라 소모용의 아이템들을 거진 다 비워내고, 또 무구들 역시 잔뜩 버리고 부숴 먹었기에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어금니니 무엇이니 하는 것들은, 대개 재료용의 아이템들이다. 거대한 체구와 강력한 힘을 가졌던 흑사의 신체 조직들이니 제련을 한다거나 하면 제법 쓸만한 아이템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템 목록에 뜨는 단편적인 이름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건 두 종류 뿐이었다.


[흑사의 숨결]


을 손가락을 가져가 건드리자 볼록 튀어나왔고, 몇 번 더 톡톡 건드리자 추가로 창이 뜨며 상세 설명이 나온다.


[흑사의 숨결 - 어둠숲에 사는 흑사의 숨결이 담긴 결정. 오랜 시간 살아왔고, 비현실적인 체구를 자랑하는 흑사에게는 SP를 사역하는 체내 기관이 존재한다. 흑사의 힘을 담은 신체 기관 중 한 개, 그 일부. 흑사가 사용하던 MP가 상당량 들어 있다.]


마치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굴곡진 겉면을 가진 주먹 반 개만한 보석이었다. 제냐는 꺼내어 현실화시켜 손 안에서 굴려봤는데,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그 광물 자체는 특별한 힘이 있지는 않은 듯했다. 단단함 역시 짐작이지만 대단할 것 같지 않았고.


다만 MP를 운용하고 기력술을 사용해 그 내부의 SP를 살펴보았다. 결국 SP를 건드릴 수 있는 건 같은 초상력이었다. 제냐에게 사역된 그의 MP가 내부를 타진하자 그 안에 있는 흑사의 MP, 숨결이라 할만한 그 잔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왜인지 그 외형과 흑사의 생김새가 떠올랐고, 확장된 촉각으로 느껴지는 질감에서 연상하자니 검은 색의 MP처럼 느껴진다. 상당한 양이었고, 고밀도였다. 이것 자체로도 깨나 가치가 있는 물건 같았다.


제냐의 MP에 적대적이지 않고 호의적이었으며,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빨아들여 사용할 수도 있어 보인다.

전문적인, 또 고도로 단련된 초상술사들이 이런 류의 아이템들을 갖고 다니는 걸 보았다. 로웰 드버나 릿샤 애드윈 말이다. 추가적인 MP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셈이었고, 포션을 마시는 것보다 더 간편하게 다량을 쓸 수 있었다.


같은 1,000의 MP를 추가로 얻는다고 하더라도 포션으로 얻는 건 그 상승세가 느렸고, 이런 류의 아이템에서 직접 뽑아내어 사역하는 건 훨씬 빨랐다.


거기다 흑사의 MP이니, 흑사가 직접 단련시킨 병사라고 비유할 수 있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SP들은 각 술사들에 의해 개인화된 MP가 되는데, 이 MP들은 술사의 성격과 성질에 따라 특색이 갈린다. 기력술사가 정련한 MP는 기력술에 적합한, 기력으로 빚어내기 좋은 에너지가 되고, 불의 술을 사용하는 화염술사의 MP는 화염술을 쓰기에 더 용이한 것이다.


큰 차이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고도로 정련된 경우에는 상당한 위력이나 효율 상의 차이를 보인다.

어떤 훈련을 받아서 전문화된 사병들이냐, 하는 문제와도 같았다.

흑사의 MP는, 제냐가 어림짐작 하기에 기력술에 적합해 보였고, 또 빙결 계열의 초상 스킬에 적합해 보였다. 첫번째 것은 거의 확신이었고, 두 번째 것은 반쯤은 넘겨 짚기였다. 제냐가 익숙한 MP의 사용법 중, 화염술의 그것과 상극이라는 느낌이 들었기에 말이다.


기력술을 사용할 때 MP의 감각이 있는데, 일반적인 초상 스킬들을 쓸 때의 모양보다는 체감적으로 훨씬 촘촘하고 밀도 있는, 단단한 질감이 연상되곤 했다. 흑사의 MP역시 그러하다. 어디 주머니 따위에 달아두고, 전투 시에 보조 MP배터리로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새로운 아티팩트 류를 만들 때의 재료로 써먹을 수도 있었고.


일단 아이템의 희귀도는 7급이었고, 깨나 만만찮은 희귀도였다. 비스트 슬레이어처럼 계속해서 써먹을 수 있는 류가 아닌듯 해보였는데 그 효용만으로 이 정도라니.

물론 아이템의 효능과 희귀도는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가늠하는 척도로는 늘 쓰인다. 정확한 정보가 없을 때는 더더욱 말이다.


거기에 [어둠숲의 날카로운 눈]을 보았다.


[어둠숲의 날카로운 눈 - 흑사의 체내에 생성되는 MP가 결정화되어 특별한 강도의 보석화되었다. 희귀한 재료로 일류 장인이 가다듬은 것으로, 흑색의 매끈한 보석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펜던트 형의 목걸이.

인챈터의 솜씨가 깃들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은밀, 혹은 은엄폐 류의 스킬을 무효화하고 감지하는 능력을 착용자에게 부여한다. 암살자의 기습을 일찌감치 눈치채는 오감과, 육감의 약간 향상을 주인에게 늘 선사하고, 하루에 세 번 사용 가능한 스킬은 사용자를 반경으로 200여 미터 이내의 숨은 자들을 찾아낼 수 있게 해준다.]


반경 200여 미터, 면 상당히 넓은 범위였다. 적어도 전투 중에는 확실하게 한 번 상대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는 스킬이다. 아이템의 희귀도는 5등급이었다. 희귀한 재료로 희소한 장인과 인챈터가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등급이 올라간 모양이다.

거기에 오래도록 탐구하며 잘 써먹다 보면 숨겨진 기능이 발견될 지도 몰랐고.


아마 이전에 몇 번 고생을 했던, 투명화 스킬이나 혹은 바로 직전에 있었던 암살자의 기습 따위에 보다 잘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제냐는 망설임 없이, 은빛의 줄에 흑색 보석이 박힌 펜던트 목걸이를 꺼내어 목에다 찼고, 경갑옷의 안쪽으로 밀어넣어 보이지 않게 감추었다.

굳이 눈에 띄게 악세사리, 보석류의 착용을 보여줄 이유는 없었다. 천연의 희귀한 광물들은 MP를 담기 아주 좋은 그릇들이었고, 플레이어가 그런 걸 차고 있다는 건 필시 어떤 효능이 있는 아티팩트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럭저럭, 썩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아이템 자체는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았다만. 지루하고 또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었던 고된 사냥은 캐릭터에게 충분한 양의 경험치를 주었으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스킬 등에 가산되어 전투력의 증가로 표시가 날 것이다.


제냐는 일단 귀환하기 위해, 잠시간 어둔 밤하늘 아래서 혼자 쉬다가 천천히 걸음을 걸었다. 숲 보행을 사용해 최대한 은밀하게 걷고 또 기력술로 감각을 높여 몬스터나 의도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들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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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5. 귀족제 23.10.10 26 3 17쪽
105 104. 리액션 23.10.08 28 3 34쪽
104 103. 마무리, 재회 23.10.06 30 3 23쪽
103 102. 게임 오버 23.10.06 26 3 17쪽
102 101. 4대1 23.10.05 23 2 24쪽
101 100. 1대1 23.10.05 25 3 19쪽
100 99. 3대1(3) 23.10.04 27 3 24쪽
99 98. 3대1(2) 23.10.02 31 3 26쪽
98 97. 3대1 23.10.01 32 3 17쪽
97 96. 습격 23.09.28 33 3 15쪽
96 95. 이모저모 23.09.27 31 3 27쪽
95 94. 수습 23.09.27 25 3 17쪽
94 93. 연전連戰 23.09.26 29 3 15쪽
93 92. 파이어 볼, 궁술 23.09.26 26 3 24쪽
92 91. 김세인 23.09.25 32 3 29쪽
91 90. 각자의 싸움 23.09.24 31 3 24쪽
90 89. 틈새 23.09.24 27 3 34쪽
89 88. 포격 23.09.24 25 3 25쪽
88 87. 레드 오크 부락 23.09.22 27 3 20쪽
87 86. 주변인들 23.09.22 29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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