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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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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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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61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5.3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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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4화

DUMMY





야구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경우 엄청난 몸값 상승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내가 있는 이 바닥은 의외로 그렇지가 않다.

쌈마이 인터넷 시사프로를 전전하던 내가 중구난방이라는 공중파 최고 인기 토론프로그램에 턱 하니 내 의자 하나를 가져다놓게 되었지만, 수입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뭐 워낙 요즘 불경기에다 매체 다변화로 방송국 수익이 확 줄어 구조조정까지 하는 마당이라고 하지만, 공중파 출연료가 은근히 짜다.

반면 인터넷 방송, 예를 들어 시사팩폭쇼 같은 경우 조회수 대박이라도 나는 날이면 최웅이 곧바로 협찬 물품들을 쏴 주기까지 하는데 중구난방은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외에도 인터넷 방송이 의외의 장점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시간 약속 엄수를 꼭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공중파에서는 출연자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을 경우 애초 큐 사인을 내리지도 못하는 데 반해,

인터넷 방송은 그런 거 없다.

출연자 오기를 기다리면서 방송한다.

출연자가 늦게 오는 것도 컨텐츠 일부가 되어서 동접자들이랑 지각하는 출연자 뒷담화 까면서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아예 빵꾸내도 큰 타격이나 후폭풍 같은 거 별로 없다.


주말이다.

평일날 방송하는 시사팩폭쇼와 함께 내 인터넷 방송 거점 쌍두마차 중 하나인 저품격 토크쇼 방송이 있는 날.

시사 문제를 주로 다루는 시사팩폭쇼보다는 보다 라이트하게 연예계, 스포츠계, 이성문제, 이도 뺀 성문제 등등을 건드리는 프로다.


사실 이번 주는 출연할까 말까 꽤 고민을 해야 했다.

중요한 결혼식이 있고 그 이후에 저녁 모임 약속이 있어서 방송 시간이 약간 어중간해 보였다.

중구난방 출연 이전에는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의무감이나 집착 같은 게 있었지만,

이제는 꼭 그런 것도 없는 터이니.


차가 막히는 바람에 방송 시작 시간에 무려 45분이나 지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막 도착한 스튜디오 분위기가 많이 좀 이상해 보였다.


예전에도 이렇게 지각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문을 열면 에이, 나 좀 더 나아가 씨발, 뭐 이런 야유 욕설 같은 게 들려왔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 짜식들, 중구난방 출연자 처음 봐? 사인해 줘?’’


시 덥지 않은 드립 하나 날리면서 자리에 앉으려는데, 이상하게 나를 향한 환호성과 박수소리에 대한 부연설명이 없었다.

가만 보니 옆자리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았다.

아울러 앞자리도.

그러니까 나를 향한 환호성과 박수소리는 뭔가 기존 분위기를 무마하고 전환시키려는 일종의 핑계거리 같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은 동년배 영화평론가 고형.

앞에 앉아 있는 인물은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바로 오늘 방송에 실시간 접속해 보니 영화감독이라고 한다.


으잉? ‘사랑 심폐소생술’을 만들었던 오재식 감독?

이거 나 존나 잼 있게 봤었는데.

보기 전에는 제목 열라 유치해 보였는데 막상 트니까 깨알 같이 웃기다 마지막에 눈물방울까지 흘리게 만든 정말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였는데.


‘‘내가 누구보다도 당신 같은 평론가 부류를 잘 알지. 어떻게든 잘 나가는 사람들한테 악담 퍼붓고 독설 퍼부어서 자기 존재감 드러나게 해 보려는 거. 남들이 다 칭찬하는 작품 까 내리면서 튀어보려는 부류 말이야.’’


바로 그 순간 맞은편에서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의 오감독이 역시 그 못지않게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옆 자리 고형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일갈했다.

그 순간, 나는 곧바로 실시간 방송 채팅창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요? 당신 말 다했어?’’

‘‘내 말이 틀려. 실력이 안 되면 꼼수 부리지 말고 업종 변경하시지.’’


일촉즉발의 분위기.

둘 중 누구 하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대방에게 의자를 내던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

그 사이 나는 우샤인 볼트급으로 채팅창을 훑으며 마침내 두 사람이 이토록 험악한 분위기에 이르게 된 저간의 사정을 다 알아내 버렸다.


오늘 특별 초대 손님인 오재식 감독.

물론 출연의 목적은 신작 홍보다.

지난 작품 ‘사랑 심폐소생술’이 꽤 히트를 친 덕에 금세 또 투자를 받아 신작을 들고 나온 모양이다.


‘사랑 심폐소생술’이 흥행도 흥행이지만 전문가들로부터 요 근래 가장 신박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호평을 얻어낸데 이어서,

차기작인 이번 작품 역시 대다수 영화평론가로부터 오재식표 로맨틱 코미디가 하나의 장르 브랜드가 되다, 라는 극찬을 이끌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오로지 영화평론가들 중 내 옆에 앉아 있는 고형만히 딴지를 걸고 있는 듯했다.

가만, 근데 내가 아는 고형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요 몇 년 간 수십여 차례 함께 방송을 해 본 고형은 실지로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평론계의 휴머니스트라는 별칭을 가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는 독립영화 같은 걸 발굴해 내고 소개하는데 주력을 해 온 인물이다.

그렇다고 재야 스피릿을 가지고 블록버스터 급 대자본 영화를 속물의 부산물 취급하고 그러는 사람도 더더욱 아니었다.

영화계 전체 파이가 커야 독립영화도 산다며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대로 추천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한 번은 보다 못해 내가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아니 고형은 무슨 평론가가 매일 세상이 한가위만 같아라야. 나처럼 좀 간드러지게 깔 건 까 줘야 평론가 핏이 살지, 하하하.’’


이런 타박 아닌 타박을 한 기억도 있을 정도였다.


평소 그런 양반이 신작 홍보를 들고 온 감독과 얼굴을 붉히며 싸움질을 하고 있다라.

그것도 다른 평론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을 가지고 혼자 어깃장을 놓으면서.

정말 내가 아는 그 양반이 맞는가, 하며 그의 이목구비를 잠시 훑는데, 다시 오감독과 고형 사이에 불이 붙었다.


‘‘아니, 비판도 어느 정도 핀트가 맞아야 들어주지. 세상에 작품에 진정성이 없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 그대로에요. 당신 작품에는 진정성이 전혀 안 보여요!’’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영화평론가면 뭐 배우 연기가 어설프다, 시나리오에 인과성이 결여되어 있다, 미장센이 세련되지 못하다, 편집이 후지다, 뭐 이런 구체적인 걸 지적해야 정상 아닌가.’’

‘‘그것보다도 작품 전체에 진정성이 부족하다고요.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고요. 영혼이 안 느껴진다고요.’’

‘‘하, 참나. 나 원 말이 안 통해서.’’


오감독이 마침내 실소를 터뜨렸다.

그가 방금 말한 대로 진짜 고형과 말이 안통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막 도착하신 됐구 오빠!’’


마가 뜨려 하자 여자 MC인 홍일점이 황급히 나를 호명했다.


‘‘야! 이 씨이. 언제 적 내가 걍됐구야. 강대구, 아니 깡다구가 된 지가 언제인데.’’

‘‘호호호. 아이, 그건 우리가 너무 잘 알죠. 지금 오빠가 이 바닥 최고 라이징 스타인 거.’’

‘‘어험! 왜 불렀수?’’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두 분의 지금 이 격렬한 썰전에 대해서.’’


홍일점이 오감독과 고형을 번갈아 가리키며 질문했다.

의도는 뻔했다.

나보고 알아서 분위기 추스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거였다.


이전 같으면, 야 이 씨이 꼭 왜 이런 3D 업종 쪽은 나한테 맡겨? 라고 투덜대겠지만,

음, 생각해 보면 좋은 훈련 기회다.

앞으로 중구난방 정원택과 김여중 사이에서 이 비슷한 롤을 맡아야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오재식 감독님! 저 이번 감독님 신작은 아직 못 봤지만, 그 전 작품, 사랑 심폐소생술 진짜 재미있게 봤거든요. 여주인공 진짜 매력적이던데. 홍장미양이죠? 어? 지금 보니 이번 신작도 그 여배우 분이 주연이시네. 와! 사랑 심폐소생술에서 엄청 상큼하게 나오셨던데. 야! 이번 영화도 꼭 봐야겠네요. 아무튼 그래서 질문 드리겠습니다만 .....’’


일순 나는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 아니, 근데 오늘 왜 혼자 나오신 거예요? 차라리 본인이 안 나오고 홍장미 양을 내보내든지 해야지. 이렇게 감각이 없어서야. 대체 감독님 영화사 홍보팀은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물론 나는 빵 터뜨릴 목적으로 한 말이었다.

실지로 엠씨들과 다른 게스트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 목표였던 오감독은 전혀 웃지 않았다.


‘‘당신네들이 악플러랑 다를 바가 뭐가 있냐고? 오히려 악플러보다 더 한 인간들이지. 당신네 영화평론가라는 인간들이 무심코 써 제끼는 이삼 십자 평에 그 영화에 관계된 수백 명 스태프 생계가 얼마나 망가지는지 알기나 해?’’


오감독은 아예 나를 무시했다.

나의 목표는 그였지만, 그의 목표는 여전히 내 옆 고형이었다.

하다하다 뭐 이따위 삼각관계가 다 있냐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막 스쳐지나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푸훗! 웃기고 자빠졌네.’’


내 옆에서 고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 이 양반 진짜 이런 양반이 아닌데.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계속 이어지는 그의 말.


‘‘당신이 감히 스태프를 들먹여? 그러니까 내가 당신 작품들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지난 번 작품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남자 주인공은 지고지순 오매불망 순정남이지? 심지어 주인공 친구가 불법 촬영하니까 그걸 설득해서 경찰에 자진신고하게 만들 정도로 정의롭기까지 하고. 그런데 그걸 만든 감독 당신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맨날 스태프들한테 갑질하고. 특히나 여자 스태프들 중 좀만 틈을 보이는 애는 어떻게든 ......’’


고형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옷소매로 자기 얼굴을 쓱 문질렀다.

눈물이 진짜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종의 퍼포먼스의 일환 같았다.


어쨌든, 고형의 돌발발언으로 순식간에 나의 의문점들이 풀려날 수 있었다.

평상시 절대 이런 캐릭터가 아니던 고형이 왜 이러는 건지.


고형은 한예종 출신이다.

현재는 평론 일에 매진하고 있지만, 곧 중편영화 제작 연출에 들어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영화 현장 인맥이 어느 정도 되는 인물이다.


아마도 그는 여기저기 선후배들로부터 오감독에 대한 현장 추문을 들었나 보다.

어쩌면 오감독 갑질 희생자 중에 그가 아끼는 후배가 직접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평소 고형 성격상 방금 전 그 말까지 직설적으로 내뱉을 요량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이번 신작에 진정성이 없다는 식의 돌려까기가 맥시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가열되었고, 오감독의 반말과 삿대질에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쨌든 간에 고형은 스튜디오 안에 폭탄을 투하한 격이 되어버렸다.


‘‘야! 너 이 씨이. 말 다 했어! 당신 지금 한 말 책임 질 수 있어? 내가 여자 스태프를 뭐 어떻게 성추행이라도 했다는 거야! 새끼야, 나 바로 법적 대응 들어갈 거야!’’


오감독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형에게 욕설까지 내질렀다.

방금 전 상상한 대로 곧바로 오감독이 의자라도 이쪽으로 던질 수 있을 위급상황이었다.


그때였다.

홍일점을 비롯한 저품격 토론쇼 엠씨들이 나에게 윙크를 보내왔다.

나보고 얼른 이 분위기를 해결해달라는 신호였다.


제기랄.

방금 전에는 정원택 김여중 사이 대비훈련, 전초전, 시범경기의 일환이라 생각해 잠깐 개입해 보았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환갑을 눈앞에 둔 그 양반들이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장면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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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1 24.05.23 385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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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24.05.21 399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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