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5,906
추천수 :
72
글자수 :
650,447

작성
24.02.22 10:10
조회
17
추천
1
글자
12쪽

50화. 밥

DUMMY

하지만 꺼림칙함과 별개로 반박하긴 힘들었다.

지극히 합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쪽도 감성보다는 이성이 먼저인 사람이라, 거부감보다 납득이 우위를 차지하겠지.


“너랑 결혼할 사람은 이해심이 엄청 깊어야겠다. 아니면 진짜 말도 안 될 정도로 좋아하거나.”

“끼리끼리 논다잖아. 비슷한 인간 하나 끌려오겠지.”

“나라면 그 짓 못 해. 어떻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품에 안겨?”


인정은 하지만, 멀리하고 싶은 일.

딱 그 정도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녹호도 별 관심은 없는지, 여상스레 와인으로 입을 헹궜다.

그다음 고개를 들어 인영을 바라보았다.


“식사를 언제까지 할 셈이야? 손님 온다니까?”


녹호는 아예 식사가 끝났다.

산더미 같이 쌓인 음식이 완전히 바닥을 내보였다.

어느 정도는 기술이기도 하겠지.

입에 음식이 남아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네가 빨리 먹는 거거든! 식도가 소방호스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마시냐!”

“오늘따라 깨작거린 사람이 누군데?”

“손님 오기 전에 끝낼 테니까 기다려 봐봐!”


인영이 막 허겁지겁 먹기 직전, 묵직한 발걸음이 다가왔다.


“도련님, 손님 왔습니다.”

“그래? 여기로 불러 와.”


녹호는 맞은편 접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남은 음식은 많았고, 몇 초 안에 처리하긴 힘들어 보였다.


“···씨이.”


인영은 스테이크 접시 위에 다른 음식을 대충 밀어 넣었다.

그다음, 이 그릇만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장이니까 통과야. 알지?”

“뭐, 그렇다고 쳐줄게.”

“예, 예. 감사하네요.”


잔뜩 토라진 얼굴.

얼른 몸을 돌려서 별관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짧은 칭찬이 들여왔다.


“그래도 음식 안 남기는 모습은 보기 좋아.”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듣긴 한 모양이다.


“······.”


녹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어느새 병은 비었고, 유송 역시 빈 접시를 정리하기 위해 다가왔다.


“와인 한 병 더 가져오고, 손님 식사도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난 동시에, 두오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자그마한 키에 깡마른 체형은 너무나도 여려 보였고, 오밀조밀 이목구비는 인형처럼 균형 잡혔다.

여기서 교복까지 입으니, 그런 면모가 더욱 부각됐다.

혹여 바람이라도 불면 깨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래,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친아버지를 염탐하러 학교에 갔을 때 돈을 줬던, 그 학생이다.


“그래, 오래간만이네.”

“네, 그런데 드릴 말씀이···”

“밥 안 먹었지? 식사 먼저 해.”

“네? 아, 네···.”


유송이 음식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그러다 학생을 바라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송아, 할 일이나 해.”

“예, 연어 전채요리입니다. 레몬을 뿌려 먹으면 입맛을 돋우기 좋습니다.”

“전채···, 요리요?”


학생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한 입을 먹는다.

눈을 굴리는 모습이, 꼭 초식동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녹호는 혼자 와인을 주르륵 따라 마셨다.

평소처럼 벌컥대는 모습이 아니라, 조금씩 입술만 적시듯이.

그 모습은 맛을 음미한다기보다는 꼭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다 먹었는데, 이제 말해도 될까요?”

“아직 음식 남았어.”

“네? 하나도 안 남겼는데···”

“전채요리라고. 아니, 에피타이저라는 말이 더 익숙할까?”


다시 밀려 들어오는 음식 카트.

여학생이 입을 다물고 얼굴을 푹 숙였다.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른 것이, 꼭 부끄러워하는 것만 같았다.


“쪽팔려 할 일은 아니야. 식전 요리라는 개념이, 딱히 한국에 통용되진 않았잖아? 문학 공부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그래도···.”

“사실 쪽팔려야 할 사람은 어른이지. 외래어에 눈이 시뻘게져서는, 학생이 말을 익히기도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유송은 다음 코스 요리를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유난히 친절하십니다.”

“유송아.”

“예?”

“닥쳐.”

“···알겠습니다.”


학교 폭력을 당하던 학생.

지금 이렇게 초대를 해놓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있다.

누가 봐도, 안타까워서 챙겨주는 모습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말이지.


“저기···, 이제 배불러요. 제가 입이 짧은 편이라.”

“···남기겠다고?”

“네, 더 먹기 힘들어요.”


전채요리만 끝냈을 뿐, 스테이크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식탐이 전혀 없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데···.”

“그래, 명함을 받은 이유가 있었지? 빌린 돈을 갚겠다고 말이야.”

“······.”

“얼른 주고 돌아가.”


학생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찾아온 용건이 그 때문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겠지.

돈을 갚는 것도 상황이 나아져야 가능하니까.

오히려 지금도 그때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돈을 더 빌릴 수 있을까요?”


이런 용건이 더 자연스럽다.


“말이 다른데? 갚는다고 안 했나?”

“빌려주시면 언제든 갚을게요.”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이렇게 식사까지 준비했는데 말이야.”


녹호는 딱히 실망한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무심하게 대꾸할 뿐이다.

아마 미리 생각해둔 말쯤 되겠지.


“이런 식사, 가격만 얼만지 알아? 뒤에 준비된 식재료랑 사람만 해도 수십만 원이야. 다른 사람 같으면 작정하고 사치를 부려야 한 번 누려볼 호사지.”

“아···.”

“차고도 남을 정도로 퍼준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렸나?”


애초에 이 순간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했을까?

반박할 수 없는 압박이 쏟아져 나왔다.

학생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고, 계속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밥 대신 차라리 돈으로 주셨으면···.”


궁핍한 부탁이다.

누가 듣더라도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당사자는 그마저도 눈치채지 못한 얼굴이지만.


“내가 X으로 보여?”


그렇기에 나긋하게 뱉은 분노는 훨씬 파급력이 있었다.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어디까지 기어올라도 되나 확인이라도 할 셈이야?”

“그런 게···” “지금 상황이랑 아까 한 말도 되새김질 못 할 정도로 멍청하나?”


학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곤, 상상도 못 한 모양이다.

보다 못한 유송이 입을 열어야 했을 정도다.


“녹호 씨···”

“닥치라고 했을 텐데?”

“학생한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녹호의 나른했던 얼굴에 점점 사나운 기색이 서렸다.


“글쎄, 그게 면죄부가 되나 봐?”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그러십니까?”

“방금도 봤잖아. 만만하게 굴어주니까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거. 기껏 밥 먹여 놨더니, 돈으로 달라고?”

“궁지에 몰려서 한 말 아닙니까. 누구나 저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학생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상황은 머릿속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래, 맞는 얘기야. 다 똑같은 인간이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굳이 마음 쓸 필요 없잖아? 만만하니까 애들이 괴롭혔겠지, 저 애가 나한테 그러고 있듯이. 자기가 한 짓을 그대로 받고 있는 건데, 내가 왜 동정해줘야 해?”


뭐라고 할 말이 안 떠오를 테지.

‘만만하니까 무례하게 대한다.’

어쩌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소위 잘나가는 애들은 만만하니까 자길 괴롭혔고, 본인 역시도 만만했기에 지금 녹호에게 아쉬운 소릴 해댔다.


“궁지에 몰려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것과 재미로 남을 괴롭히는 일이 어떻게 같습니까?”

“유송아.”

“예.”

“넌 기억력이 없냐?”

“···예?”

“사정을 모르면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는 말, 저번에 했을 텐데? 걔네가 궁지에 몰렸는지 아닌지, 알고는 있어?”


욥 이야기를 했을 때 나온 주제다.

결국, 가해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지 않냐고.

그럼 설령 그 끝에 진부한 결론이 있더라도, 그전까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전혀 반박하지 못했던 논지였다.


“그래도 남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사정이란 게 있을 리가···.”


유송은 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저번과 다를 바 없는.

녹호가 와인잔을 집어던진 것도 그 순간이었다.

그렇게 날아간 얇은 유리는 곧장 머리에 부딪혔다.


쨍그랑!


“꺄아악···!”


파편은 새하얗게 터져나가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게 다치진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바짝 얼어서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공기에 서리라도 낀 듯 이물감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한 사람이 상당히 언짢아하고 있다는 점뿐.

다른 두 사람이 한껏 긴장하는 와중, 녹호는 와인병을 들어 라벨을 읽어내렸다.

그러다 돌연 유송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콰차창···!


“꺄아아아악···!”


색 짙은 유리가 벽에 부딪혀서 산산조각 났다.

안에 든 포도주는 난잡하게 튀었고, 그 붉은빛 때문에 핏물 같은 불안함마저 느껴졌다.

상황은 어딘가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왜···.”

“그냥. 넌 맞아도 싼 년 같아서.”

“그게 무슨···.”

“지레짐작. 이유로 쓰기엔 충분하잖아?”


유송은 그 말에 바들바들 떨기만 했고, 학생도 불안한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해요···. 제 편을 들다가 그런 거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이건 네 잘못 아니니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녹호는 드물게도 학생을 다독였다.

방금 유리잔과 와인병을 집어던진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돼.”

“······.”

“몇 번이나 주의를 준 내용이거든.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 털지 말라고. 막상 그 상황에 그대로 집어넣으면, 본인도 똑같이 극복 못 할 거면서 말이야.”


학생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설령 사실이더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은 존재했다.

언제든 방금처럼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


“그 외에도 이 말, 저 말 많이 했지. 정말 어떤 일을 정의라고 생각하면 자기 차례가 와도 받아들이라고.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럼 아무리 처맞아도 불만 없지? 네가 그랬듯이, 나도 적당한 지레짐작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뿐이니까.”


유송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하면 만족할까?

방금도 봤다시피, 난폭하기 그지없는 사람인데?


“대답이 의미가 있습니까.”


두려움에 떨면서 물었다.

그렇다는 말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그건 언제든 자신을 때려도 된다는 소리니까.


“이젠 없어졌지.”

“왜···.”

“자기는 억울해 미칠 일을, 남한테는 그따위로 해댔으니 말이야.”

“······.”

“아직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지?”


녹호는 짙은 경멸이 서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버러지 같은 년.”


작가의말

밥을 남기는 건, 중죄....

여러분은 편식하지 마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17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19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2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24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1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0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4.02.25 19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18 0 11쪽
55 55화. 재회 24.02.24 20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7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0 0 13쪽
» 50화. 밥 +2 24.02.22 18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2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5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25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3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1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7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38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36 36화. 끊긴 필름 +1 24.02.05 42 1 13쪽
35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0 1 12쪽
34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1 24.02.01 4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