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5,898
추천수 :
72
글자수 :
650,447

작성
24.02.16 15:10
조회
24
추천
1
글자
12쪽

45화. 따돌림

DUMMY

유송이 오자마자 그렇게 중얼댔다.


“학생이 많아서 잘 될 듯합니다.”

“그래? 도시락이라도 파는 건가?”

“없진 않겠지만, 생각하시는 느낌은 아닐 겁니다. 요즘엔 죄다 급식입니다.”


지레짐작해서 설명했다.

지하에서 본 문학으로 세상을 판단하니, 이런 간극이 생겼을 거라 여겼겠지.

녹호도 크게 부정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럼 학교 근처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이점이라곤, 주택가라는 것뿐인데.”

“원래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편법이 존재하기 마련이잖습니까?”

“편법?”


유송은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다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입구에서 배달원이 들어온다.


“사장님! 여고 앞 담벼락에 배달 갔다 왔어요!”

“안 걸리고 갔다 왔어?”

“아휴, 내가 하루 이틀 해요? 안 걸리는 포인트가 찾아놨죠.”

“베테랑 다 됐네?”


마침이라고 할까?

꼭 이런 대화를 할 때, 예시가 툭툭 들어오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평소에 흔하게 나오는 얘기가, 인식하고 나서야 귀에 잘 들어오는 걸지도 모른다.


“···예, 저런 경우가 많습니다.”

“너도 그럴 정도로?” “아니, 전 저렇게는···. 음, 돈 모아서 한 번···. 두 번···, 세 번 해봤습니다.”


녹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앞을 빤히 바라볼 뿐이다.


“생각해보니, 네 번까진···”

“그럼 저러기도 하나?”

“예?”


유송이 뒤늦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아···.”


그곳엔 여학생 한 명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왔는지, 먹다 남은 그릇이 주변에 가득했다.


“점심시간에 몰래 나왔나 봅니다.”

“급식이라며? 신청 안 했으면 저렇게 나와도 되나 봐?”

“그건···. 정말 특이한 학교라면 모를까, 보통은 아닐 겁니다. 몰래 나와서 먹고 돌아갈 생각이지 싶습니다.”

“걸리면 혼나겠네?”

“예, 정말 크게···.”


소위 말하는 ‘노는 애’가 할 법한 행동이다.

유송은 눈이 마주치려고 하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당연한 행동이다.

요즘 애들 무섭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흐음···.”


물론,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이 눈앞에 있었다.


“괜히 얽히면 곤란해집니다.”

“내가?”

“원래 어리면 겁이 없습니다. 자해공갈이라도 하듯이 달라붙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업도 하시려는 중 아닙니까?”


합당한 조언이다.

점심시간에 학교를 뛰쳐나온 불량아와 얽혀서 좋을 게 없었다.

구설수에 얽히기라도 한다면, 후에 있을 계획이 어그러질지도 모른다.


“겁 많아 보이는데?”

“예?”


하지만 녹호는 그 말에 딴지를 걸었다.


“지금도 안절부절못하잖아. 꼭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유송은 돌아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그만큼 간이 크진 않았다.


“돈을 안 내고 도망치려는 걸 수도 있습니다.”

“저 빈 자리는 뭐지? 분명 같이 식사했다는 말인데.”

“빈 자리···, 말씀이십니까?”


중얼대던 한 마디.

그 말을 듣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녹호 역시도 짐작이 간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먹고 튀었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저런 방법으로 따돌리는구나? 나가자고 꼬셔서 같이 밥 먹은 다음에, 계산도 안 하고 튀는 식으로.”


화를 내는 기색은 아니다.

오히려 흥미로워하는 것만 같았다.


“나서서 계산해주실 생각은 없습니까?”

“내가 왜?”

“어차피 돈도 많으시니까 무리도 아니잖습니까?”


맞는 얘기다.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일 년 밥값도 일시불로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유송아, 몇 달이나 나를 보좌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예?”

“해야 할 이유를 대라고. 그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돈이 많다는 건, 해야 할 이유가 아니다.

그저 거리낄 게 없다는 뜻일 뿐.

인영이라면 바로 포착했겠지.

했을 때 이득을 말해주거나, 하지 않았을 때 손해를 꼬집거나.


“그래도 애한테···. 계산이 귀찮으신 거면 제가 경비 카드로 해결하겠습니다.”


녹호는 아예 듣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에 빠진 듯이 턱을 매만지고 있을 뿐이다.

유송은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앉아.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고.”

“정말 금방···”

“다리를 부러뜨려줄까?”

“···아닙니다.”

그 사이,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왔다.

그릇이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모두 내려놓고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가 여학생을 보고 입을 열었다.


“학생?”

“네, 네?”

“곧 있으면 수업 시간 돼요. 얼른 계산하고 뛰어가요.”

“아···.”


꾸물대면서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결국, 정리하면서도 동작이 점점 느려졌다.


“녹호 씨···.”

“그래, 쓸모가 있겠어.”


녹호는 그 모습을 차분히 바라만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여학생 앞으로 가서 입을 열었다.


“도와줄까?”


바짝 긴장하고 있던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인형처럼 작고 예쁜 얼굴이다.

키도 작고 깡말라서 그런지,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네.”

“깔끔해서 좋네. 그 대신 계산 끝나고 얘기나 하지. 물어볼 게 있거든.”


학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호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인 후, 유송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계산해.”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당장···”

“아냐, 먹고 차에서 기다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유송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뭔가가 거슬리는 듯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되지. 안 그래?”


친어머니가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한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이렇게 두고 가려고 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됐다.

본인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녹호에게 어머니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얘 학교 데려다주고 올 테니까 알아서 대기해.”

“알겠습니다.”


녹호는 차가운 얼굴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여학생을 데리고 식당 밖으로 나섰다.


“저 근데 수업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불편함이 역력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왜···.”

“너를 두고 간 애들도 마냥 편하진 않을 거거든. 일 커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니까.”


녹호는 그 말에 편안히 대꾸했다.


“아마 변명거리도 마련해뒀겠지. 한 시간 정도는 말이야. 뭐, 추측일 뿐이지만.”

“그래도···.”

“지금 달려가도 도착 못 하잖아? 그럴 바에는 느긋하게 가서 기회를 보는 편이 낫지 않겠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급하게 뛰어간다면, 오히려 몰래 나온 사실을 들킬 확률이 높다.


“잘은 모르지만, 수업 시간이랑 쉬는 시간이 번갈아서 있다고 들었는데”

“네, 50분 수업하고 10분 쉬어요. 그동안 화장실이나 매점을 가기도 하고요.”

“딱 좋네. 다들 수업하느라 바쁠 때 담을 넘고, 끝나고 어수선할 때 섞여들면 되잖아?”


역시 나쁜 짓도 베테랑이 하면 달랐다.

학교에 대한 지식이 없어 헤맸지만, 단서만 주면 바로 해결책이 나왔다.


“어···, 음. 그렇긴 한데···.”

“결론 나왔네. 그럼 결정도, 결심도 쉽지?”

“······.”

“이제 얘기나 하지. 그러려고 내가 밥값 내준 거잖아?”


학생이 움찔했다.

애써 무시했던 일이 성큼 다가왔다.

낯선 어른이 갑자기 돈을 지불했다면 의심 먼저 해보아야 한다.

혹여 무언가 끔찍한 일을 요구한다면···.


“이 짓거리, 자주 당했어?”


놀랍게도 녹호는 속사정 먼저 물어보았다.

이럴 인간이 아닌데.


“그냥···, 친구끼리···.”

“친구는 최소한 같은 편을 말하는 단어일 텐데? 단체로 너 하나 조지려는 애들이 아니라.”

“······.”

“뭐, 걔네끼리는 친구일 수 있겠네. 지금은 말이야.”


느리게 학교로 가는 길.

학생은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평소에도 돈 많이 뜯겨?”

“···그냥 빌려주는 거예요.”

“글쎄, 빌려주고 싶었을 것 같진 않은데. 아직 겨울 날씬데 패딩도 없고, 스타킹 없이 맨다리로 다니잖아.”

“아니에요. 진짜 빌려주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 아직 멍 자국은 없네. 그런데 그 빌려주기를 안 했을 때도 그럴까?”


떠보듯이, 확인하듯이.

계속된 질문은 상황을 더욱 확신으로 몰고 간다.

그래, 이 작은 여학생에겐 지갑에 여유가 없었다.

그 누구라도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될 정도로 말이다.


“그건···.”

“앞으로도 기약 없이 빌려줘야겠네? 어떻게 해서든 다달이 마련하고서.”

“······.”

“빌려줄 만큼 남은 용돈은 있어? 내가 보기엔 없을 것 같은데?”


학생이 걸음을 멈췄다.

대답 대신 나온 행동이었다.


“하긴, 앞길이 막막한데 누가 걸을 수 있겠어?”


녹호는 이해한다는 듯이 내뱉었다.

그리고 학생 앞에 서서는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버틸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어가는 법이지. 안 그래?”

“···네?”

“당분간 숨 쉴 수 있게 물거품 좀 밀어주겠다는 소리야. 자, 받아.”


5만 원 지폐 십여 장을 대뜸 내민다.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줄 금액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지.


“이걸 왜···.”


학생이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밥값은 물론, 이렇게 커다란 돈까지 쥐여주다니.


심지어 자신의 약점을 술술 캐내고서 내민 거액이다.

그냥 받기엔 퀴퀴한 냄새가 난다.

고약한 상상을 하기엔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받아도 괜찮아. 받는다고 크게 뭘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럼 믿지 말든가.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거든.”


지폐 더미가 다시 지갑에 들어가려고 했다.

학생은 얼떨떨한 눈으로 돈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계속 그렇게 멈춰 있을 거야?”

“네? 아···.”


두 사람이 다시 움직였다.

학교 담벼락이 코앞까지 왔다.


“학생주임 선생은 성함이 뭐야?”


녹호가 문득 그런 질문을 해왔다.


“‘장현묘’ 선생님이요.”

“······.”

“혹시 아는 분이세요?”


늘 당당한 사람이 잠시 대화에 간격을 주었다.

절대 가벼운 존재감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 시점에서 그럴 만한 인간은 단 한 명뿐이겠지.


“딱히. 아까 저 안에 들여보내야 하니까 물어본 거야.”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직 녹호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나 이질적인 사람을, 어떻게 학생주임 선생님의 아들로 생각할 수 있을까?


“빡빡한 사람이면 여러모로 곤란한데. 점심시간에 몰래 빠져나가는 학생이 있다고 짐작하고 있을 거 아냐?”

“그건 괜찮아요. 되게 착하거든요.”

“그래?”

“네. 다른 애들이 장난을 쳐도 크게 화를 안 내세요.”


녹호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다가 툭 던지듯 내뱉을 뿐이다.


“요새는 학생 때리면 큰일 나니까.”

“예전에도 착했다고 들었는데···.”

“뭐, 그랬다면 다행이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 복수하기로 다짐했으니까.


작가의말

제가 썼지만, 참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괴롭히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17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18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2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24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1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0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4.02.25 19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18 0 11쪽
55 55화. 재회 24.02.24 19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7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0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17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2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4 1 12쪽
» 45화. 따돌림 +1 24.02.16 25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3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0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7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38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36 36화. 끊긴 필름 +1 24.02.05 42 1 13쪽
35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0 1 12쪽
34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1 24.02.01 4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