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C.J 님의 서재입니다.

개같은 이세계 탈출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C.J
작품등록일 :
2020.09.19 15:23
최근연재일 :
2020.11.03 21:52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34,820
추천수 :
1,442
글자수 :
226,377

작성
20.09.19 15:27
조회
2,023
추천
77
글자
11쪽

1. 두 괴집단 (1)

DUMMY

그 후로 모든 시간 내내 성빈을 동반해서 행동한 덕분일까.


성빈의 방에 와서 씻고 마시고 놀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맥주를 조금 마시는 중에도 행여나 싶어서 긴장의 끈을 꽉 붙들고 있었는데, 결국 모든 잔을 비우기까지 작은 낌새조차 느낄 수 없었다.



손님을 바닥에서 재울 수 없다는 성빈의 고집에 유일한 침대는 종수 몫이 되었다.


남의 잠자리인데도 어찌나 편안한지 금세 몸이 늘어졌다.


술기운이 얼큰하게 오른데다가 정신적인 피로가 겹치니 몰려오는 졸음을 막기가 어려웠다. 그 시선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면 아마도 진작에 잠들었을 것이다.



어느덧 하루 끝을 한 시간 앞두고 있었다.


종수는 무의미하게 만지작대던 휴대폰을 옆에 놓고 머릿속을 되감았다.



돌이켜 볼수록 참으로 긴 하루였다.


까딱하면 오늘로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평온했다.


이것만큼은 따질 필요도 없이 전부 성빈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빙그르 구른 종수는 침대 아래를 향해서 말했다.


“자냐.”


“아직 안 자지 말입니다.”


빛이 조금씩 반짝거리는 것으로 보아 성빈은 휴대폰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 끝에 종수는 입가에 맴도는 말들을 한 마디로 압축해서 뱉었다.


“고맙다.”


“어허. 징그럽게 왜 그래요. 이상한 소리 말고 이만 자도록 합시다.”


“그래. 너는?”


“형이 먼저 자야 나도 잘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쩐지 기분이 그러네.”


“...그래.”


종수는 다시 몸을 반듯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공간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집에서 혼자 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할 행동이었다.


딱히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게 아닌데도, 그저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그 시선에게 시달린 뒤로는 언제나 발 아래가 천길 낭떠러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드넓은 대지 한가운데를 딛고 있는 듯 든든했다. 다른 누군가와 같이 있는다는 게 이렇게나 큰 힘이 될 줄이야.



더는 혼자 있고 싶지 않다.



문득 마음이 그런 기분으로 가득 찼다. 종수는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기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


가족들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그들과 함께 지내면, 더는 괴롭지 않겠지. 괜히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 무슨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왜 서울에 오려고 애를 썼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데.


어쩌면 로망만 가지고 타향살이를 시작했다가,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나 홀로 고독을 견디며 생긴 불만과 불안이 쌓여서 그 시선이라는 착각을 만든 것은 아닐까?


냉정한 가운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스스로가 빚고 덧붙여낸 괴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모두 다 떨치고 고향으로 가자.


정겨운 고향, 부모님, 동네 친구들... 중고등학교 동창들......?



고향......이 어디더라...? 친구... 학교...? 어딜 나왔지...?



자욱한 안개 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풀려났다.


그러나 채 답을 찾아낼 겨를도 없이, 어느새 독한 잠기운이 머리 끝까지 퍼졌다.


종수는 물음표만 남기고 금세 잠이 들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귀를 간질거린다. 무슨 소리인지 의문이 차오르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눈이 번쩍 뜨인다.


“윽!”


아직 흐릿한 시야 속 낯선 방의 내부를 보고 흠칫 놀랐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아래쪽에 등을 돌린 채 자고 있는 성빈이 보였다.


그제서야 종수는 이곳이 성빈의 방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되기는 했으나, 닫힌 문 밖에서 여전히 무언가의 존재가 느껴졌다.



성빈의 누나가 집에 들어온 것일까?


그럼. 당연히 그렇겠지.



현실성과 합리성을 두루 갖춘 만점짜리 자문자답이었다.


하지만 종수는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바깥쪽의 기척에도 신경이 갔지만, 그보다 묘하게 익숙하고 껄끄러운 감각이 계속 피부 위를 기어다니기 때문이었다.


물속으로 팔을 휘젓는데 미끌거리는 바닷말 따위가 감기는 느낌... 아님 반대로 저쪽이 거대한 팔인 동시에 세찬 물살이고, 이쪽이 소용돌이에 걸려드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끝끝내 적중하고야 말았다.



몸 구석구석의 세포 하나까지도 경직하게 만들 만큼 끔찍한 감각이 눈을 떴다.


그 시선이 질리지도 않고 또 기어들어온 것이었다.



침대에서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워있는데도 뒤에서 느낌이 전해진다.


뒤라는 게 그저 매트리스 아래, 침대 밑에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빈 공간과 빈 공간과 다른 무수한 빈 공간들 사이의,

절대로 나뉠 리 없는 그 틈에서 무언가가 종수에게 손을 뻗치고 있었다.


지금까지가 그 틈새를 통해 저쪽에서 이쪽을 몰래 보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확연히 달랐다.


이것은 노려보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직 종수를 목적으로 한 집착이 강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겨우 시선이 오갈 정도의 작은 틈을 찢어서 벌리기라도 할 것처럼 난폭하고 거친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자신의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종수는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숨이 가빠지고 몸은 계속해서 경련을 반복했다. 떨리는 팔다리를 멈추고자 하니 이제 턱이 제멋대로 덜덜거렸다. 진작에 명령에서 벗어난 눈꺼풀은 두려움의 무게를 못 견디고 쉴 새 없이 깜빡댔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할 지경.


잔뜩 겁에 질린 가운데 종수는 뚜렷한 기시감을 느꼈다.


얼마 전, 종수는 언젠가 이와 똑같은 공포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우개가 번진 듯 뿌옇기만 해서 자세히 떠올릴 수가 없었지만 도망쳐서 살아남은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니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상황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했다.


종수가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은 혼자 있지 않는 것이었다.


종수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여 성빈의 등을 발로 툭툭 때려 깨웠다.


“야...! 성빈아...!”


왠지 큰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반쯤 속삭이듯 반쯤 외치듯 성빈을 불렀다.


그래서 듣지 못한 걸까? 성빈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와중에도 그 시선은 차츰 종수가 있는 쪽으로 거리를 좁히는 듯했다.


공간 전체를 옥죄는 압박감 속에서,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뗀 종수는 다시 한 번 성빈을 불렀다.


“임성빈! 일어나...!”


이상하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보아도, 등허리를 밀어보아도 성빈은 대답이 없다. 뒤척거리는 등의 작은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숨이 멎기라도 한 것처럼.


“야... 뭐하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두렵지만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종수는 낼 수 있는 힘을 모두 모아서 상반신을 세웠다. 후들대는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딛었다. 마른침을 어렵사리 삼킨 뒤, 등을 돌리고 있는 성빈의 어깨를 잡고 남은 힘을 짜내 이쪽으로 끌어당겼다.



두 눈을 찢어지게 부릅뜨고 있는 성빈이 보였다.



주위가 온통 캄캄한 가운데 오직 성빈의 눈동자만 번쩍거리고 있었다.


어딘가 초점이 안 맞는 듯한 안광이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그 와중 안면에 힘을 얼마나 주었는지 성빈은 뺨과 목 근처가 거의 찌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안돼싫어여기나는여기제발안돼더는싫어거긴안돼제발날이제내버려둬제발나는나는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난생 처음 보는 괴기스러운 표정을 부자연스럽게 찌푸리며, 성빈은 온 신경을 고막에 집중해야만 들리는 소리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제발제발제발싫어싫어싫어싫어제발......”



종수는 소름끼치는 느낌을 억누르고 성빈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신좀 차리라고, 꽉 움켜쥔 어깨를 마구 흔들며 말을 걸었다.


“너, 너 미쳤냐? 야! 왜 그래......에?”


그러나 종수가 말을 맺는 그 순간.

성빈과 시선이 하나로 모인 그 순간.


성빈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눈에 담게 된 그 순간.


낙뢰와도 같은 무언가에 온몸을 꿰뚫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종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단번에 관통당했다.


신경의 허용 범위를 끔찍이 넘어서는 충격. 그 덕분인지 눈을 감았다 뜨는 일순간이 수백, 수천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멈추다시피 한 시간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어트렸다. 아마도 0.001초 미만일 듯한 모든 때에 그때마다의 감각이,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무수한 염상의 끝판에 남은 것은, 이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는 경고 섞인 감상뿐.


섬뜩한 깨달음과 동시에 시야가 점멸했다.


곧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등 뒤에서 들어본 적 있는 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종수의 목소리였다.





#1


정신이 들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따질 겨를이 없었다.


문자 그대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눈과 귀 사이를 볼트로 조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골이 지끈거렸다.


자기 주량도 모르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 첫 술자리에서 마구 달린 다음 날의 숙취보다도 몇 배나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다.


“으... 우엑...”


자기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종수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생각을 이어나가기에는 머릿속의 파도가 너무나도 거칠게 울렁거렸다.


“앗앗! 깼다!”


이때 어딘가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어지러운 감각 속 종수는 소리가 난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앞이 안 보였다.



그제야 종수는 눈이 천 따위로 가려진 것을 깨달았다.


덤으로 자기가 엎드려 있고, 양팔이 뒤쪽으로 묶인 채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덜 돌아온 정신으로도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근처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최소 셋 이상의 사람이 종수를 둘러싼 것 같았다. 그들은 곧장 종수의 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강제로 종수의 몸을 일으키더니 돌처럼 딱딱한 물체 위에 앉도록 이끌었다.


종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는데, 목 근처에 서늘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힉.”


깜짝 놀라 새된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손가락이라는 것을 촉감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두 손가락이 종수의 목 측면을 지그시 압박했다. 그와 함께 진중히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



“무엇이 기억나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개같은 이세계 탈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일정 관련 중요 공지입니다. +3 20.10.25 408 0 -
공지 독자님들께 +7 20.10.17 576 0 -
공지 캐릭터 일러스트입니다. +4 20.10.05 1,166 0 -
40 7. 돼지와 돼지 (4) +5 20.11.03 267 14 12쪽
39 7. 돼지와 돼지 (3) +3 20.11.01 233 14 12쪽
38 7. 돼지와 돼지 (2) +6 20.10.29 281 18 12쪽
37 7. 돼지와 돼지 (1) +7 20.10.26 315 18 12쪽
36 6. 가축 (6) +5 20.10.24 321 14 13쪽
35 6. 가축 (5) +3 20.10.22 372 22 12쪽
34 6. 가축 (4) +7 20.10.21 414 23 12쪽
33 6. 가축 (3) +5 20.10.20 465 25 12쪽
32 6. 가축 (2) +11 20.10.18 540 34 11쪽
31 6. 가축 (1) +7 20.10.17 581 33 11쪽
30 5. 대가 (4) +19 20.10.15 698 43 15쪽
29 5. 대가 (3) +5 20.10.14 603 27 13쪽
28 5. 대가 (2) +5 20.10.13 653 27 11쪽
27 5. 대가 (1) +7 20.10.11 638 23 11쪽
26 4. 결착, 그리고 결탁 (5) +8 20.10.10 677 24 15쪽
25 4. 결착, 그리고 결탁 (4) +5 20.10.08 663 28 14쪽
24 4. 결착, 그리고 결탁 (3) +5 20.10.08 694 25 12쪽
23 4. 결착, 그리고 결탁 (2) +5 20.10.06 699 26 11쪽
22 4. 결착, 그리고 결탁 (1) +6 20.10.04 748 29 13쪽
21 3. 거짓과 진실 사이 (7) +11 20.10.02 785 31 13쪽
20 3. 거짓과 진실 사이 (6) +11 20.10.01 780 28 12쪽
19 3. 거짓과 진실 사이 (5) +15 20.09.30 812 34 11쪽
18 3. 거짓과 진실 사이 (4) +10 20.09.29 806 30 12쪽
17 3. 거짓과 진실 사이 (3) +9 20.09.27 804 30 11쪽
16 3. 거짓과 진실 사이 (2) +6 20.09.27 815 40 12쪽
15 3. 거짓과 진실 사이 (1) +8 20.09.26 853 31 12쪽
14 2. 최선의 선택 (7) +9 20.09.24 862 36 12쪽
13 2. 최선의 선택 (6) +8 20.09.24 906 39 12쪽
12 2. 최선의 선택 (5) +8 20.09.23 940 46 13쪽
11 2. 최선의 선택 (4) +12 20.09.23 971 47 17쪽
10 2. 최선의 선택 (3) +8 20.09.22 1,003 46 11쪽
9 2. 최선의 선택 (2) +15 20.09.22 1,085 50 12쪽
8 2. 최선의 선택 (1) +6 20.09.20 1,156 47 13쪽
7 1. 두 괴집단 (6) +8 20.09.20 1,208 53 13쪽
6 1. 두 괴집단 (5) +7 20.09.20 1,246 50 13쪽
5 1. 두 괴집단 (4) +5 20.09.19 1,354 53 11쪽
4 1. 두 괴집단 (3) +8 20.09.19 1,609 59 13쪽
3 1. 두 괴집단 (2) +8 20.09.19 1,784 64 14쪽
» 1. 두 괴집단 (1) +8 20.09.19 2,024 77 11쪽
1 0. 그 시선 +15 20.09.19 3,070 84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