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C.J 님의 서재입니다.

개같은 이세계 탈출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C.J
작품등록일 :
2020.09.19 15:23
최근연재일 :
2020.11.03 21:52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34,822
추천수 :
1,442
글자수 :
226,377

작성
20.09.19 15:25
조회
3,070
추천
84
글자
21쪽

0. 그 시선

DUMMY

성격이 꼼꼼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야 일을 할 때는 꼼꼼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실수해서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겉보기와 다르게 세심하다는 말도 종종 꼬리에 따라붙는다.


당연히 중요한 관계의 사람은 최대한 신경 써서 세심하게 대한다. 대개는 잘 보여야 내가 잘되니까.



솔직히 누구나 이렇지 않은가?


다들 필요한 자리에서는 꼼꼼하고, 세심하고, 궁극적으로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기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럴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다들 대충 되는 대로 살 테고.



어쨌거나 종수는 주변에서 자신을 한 마디로 나타내는 말들이 썩 와닿지 않는다.


꼼꼼하니 세심하니 어쩌니 하는 식의 때에 따라 누구에게나 들어맞을 말보다, 차라리 무개성적이라고 불리는 쪽이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딱 하나.


남들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종수도 이제 와서야 스스로 인정하게 된 수식어가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종수는 예민하다.



성격이 히스테릭하다는 게 아니라, 감각이 예민하다.


특히 시선에 매우 민감하다.


마치 피부 곳곳에 감광세포가 달린 듯 시선 자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서로 눈을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를 주시하는 시선이 발생하는 그 순간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게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도 즉시 찾을 수 있다.



언제부터 이토록 예민한 사람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 마치 눈에 보이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더욱 예민해진 것 같다.


아마도 종수를 맴도는 ‘그 시선’이 점점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시선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종수를 찾기 시작했고, 동시에 종수는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감각을 깊숙이 실감하게 되었다.


주목받는 인생과 거리가 멀었던 종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비록 초반 잠시뿐이었지만 자기가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는 듯해서 괜스레 기분이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선이 매 순간 그림자처럼 쫓아온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그것이 오직 불쾌감으로 다가왔다.


종수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비에 젖은 발자국처럼 축축한 시선이 뒤통수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착각일 거라고, 잠깐 이러고 말 거라고 애써 무시한 게 잘못이었을까.


방치하는 사이에 그 시선은 시간을 먹고 자랐다. 쌓인 기름기가 떡지는 듯 갈수록 끈적거리는 느낌이 심해지는 듯했다.


일단 그 눈에 띄면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심지어는 늦은 밤 집에 혼자 있을 때마저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방 안의 빛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전부 막아도 소용없었다.


문을 닫아도 바깥의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시선이 벽 너머에서 자욱하게 들려왔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겪는 입장에서는 현실성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스트레스보다도 두렵다는 감정이 앞설 때쯤 정신의학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으나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다.


전문가의 맞춤 솔루션도 처방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항정신성 약물도 그 시선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끝내 한 상담사에게서 자의식 과잉이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종수는 그 말을 통해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 네 착각일 뿐이라는 빈정거림을 면전에서 듣고 있는 그 순간조차도, 누군가가 뒤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가장 괴로운 것은 종수가 그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마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곧바로 시선의 주인을 찾는 일, 예민하게 날이 선 감각으로 이미 수백 번은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종수가 시선을 겹치려는 순간, 언제나 그 자리에는 스스로의 눈길만이 싸늘하게 남았다. 그 아무리 빠르게 반응하더라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솔직히, 포기한 것이다.


게다가 그 시선을 의식하고 쫓을 때마다 다시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치 감당하지 못할 순간이 스멀스멀 기어오는 듯해서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끝내 일상도 직장도 모두 빼앗긴 채 낭떠러지의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있는 이 순간조차도, 종수는 누군가의 시선에 사로잡힌 채였다.


충분히 불쾌하지만 그나마 이 시선이 그 시선이 아니라는 게 위안일까?


그 시선은 이러한 보통의 것과는 달라서 바로 알 수 있다.


그것은 결코 흘끔거리듯 스치지 않는다. 인기척을 띄지도 않는다. 그것은 문득 깨닫는 순간 이미 숨통을 죄듯 뒷덜미에 달라붙어 있어서, 종수가 의식을 놓기까지 갈고리를 걸고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그 시선을 떠올리니 이마 언저리가 쪼개질 것처럼 지끈거린다. 이놈이든 저놈이든, 이래서 이제 보이는 느낌은 싹 다 질색이다.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간 양미간을 꾹 누르고서, 종수는 등 뒤에다 들으라는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하...”


곧 문제의 시선이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하는 게 느껴진다. 후. 이것은 안도의 한숨이다.


“종수 형. 무슨 한숨을 막 연속으로 쉬어요?”


“왜. 문제 있냐?”


“그럼 복 달아난다고 하던데요?”


“달아날 복이 남았겠냐? 진작에 다 꺼지고 없다.”


자조를 담아서 피식거린 종수는 시선의 빈자리에 대고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가운데 손가락만 빼놓고 곱게 접은 손을.


그 뜻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맞은편에 앉은 직장 동료, 이제는 전 직장 동료 성빈이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형은 가끔 보면 너무 쿨한 척을 하는 것 같아요.”


“너는 가끔 보면 너무 아는 척을 하는 것 같고.”


“에이, 그래도 거의 한 달을 부사수로 딱 붙어서 일했는데. 이제 알 만큼 알지 말입니다.”


“알기는 개뿔. 우리 엄마도 날 아직 모르겠다고 하는데?”


“형, 어머니랑 한 달 동안 둘이서 근무 선 적 있어요?”


“...지랄. 됐다. 말을 말자.”


“허허. 또 쿨한 척하네.”


임성빈, 이 친구는 참 강적이다. 나이는 두 살이나 어린 주제에 도량이 어찌나 넓은지, 종수가 아무리 욕하고 비꼬듯 말해도 언제나 슬슬 흘리거나 웃어 넘기곤 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는 화를 못 내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설마 한 달째 그 말을 지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막 제대해서 짬내도 안 빠진 까까머리 놈이.



하필 그 시선과 비슷한 시기에 만나서 늘 짜증 부리듯 대화로 치고 패는 사이가 되었지만, 종수는 솔직히 친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성빈과 같이 있으면 묘하게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해야 할까? 그 시선에서 의식이 멀어지고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심적으로 굉장히 의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이토록 빨리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도 종수를 챙기는 사람은 오로지 성빈뿐이라, 지금의 종수에게는 이 능글맞은 동생놈이 어느 친구보다도 더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형, 표정이 이상하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그냥. 피곤해.”


“어허, 피곤할 리가 있나? 오늘 마지막 인수인계까지 마쳤으니, 형은 내일부터 출근 안 해도 되는데요? 솔직히 신나죠?”


“누구 놀리냐? 말이 퇴사지, 사실상 모가지 당한 건데.”


“어쨌든 내일부터는 마음껏 쉬어도 되잖아요! 이 상황을 즐깁시다!”


성빈은 불쑥 의자를 종수 쪽으로 당겨 앉았다.


귓속말하듯 고개를 들이밀더니 새카만 스냅백 밑으로 더 시커먼 미소를 내밀며 팔꿈치를 툭툭 흔들었다.


“종수 형. 이런 날이 살면서 또 언제 있겠습니까? 오늘 아주, 이 밤을 같이 찢어버립시다! 형님!”


“이 미친놈이... 너는 내일 출근 안 하냐?”


“걱정 딱 붙들어 매십쇼. 저는 노는 게 쉬는 거니까. 일단 퇴사 축하주 한 잔 시원하게 때리러 가시죠?”


“아냐... 난 됐다.”


”허허. 지금 커피나 홀짝거릴 때가 아니지 말입니다? 이제 형은 백수니까, 오늘은 제가 싹 쏘겠습니다! 더 늘어지기 전에 냉큼 일어납시다! 자!”


속도 모르고 혼자서 신이 난 성빈이 벌떡 일어나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달한 종수로서는 도저히 어울릴 상태가 아니었다.


“아, 진짜 힘들다니까. 좀 꺼지라고.”


덩치도 거의 두 배나 커다란 놈이 당겨대는 것을 겨우 밀어내고, 종수는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야야... 가만히 있기도 지친다... 제발 내버려 둬.”


“아니, 뭐예요? 이럴 거면 왜 같이 퇴근하자고 했대? 괜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집에나 가지.”


성빈은 평소에도 가느다란 실눈을 아예 보이지도 않을 만큼 찌푸리고서는 불퉁거렸다.


사실 종수도 알고 있다.


성빈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기껏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해놓고, 카페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면 당연히 답답하겠지.


하지만 종수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 시선이 언제 쫓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가뜩이나 일까지 잘리고 불안한 가운데 절대로 혼자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형? 뭐라 말좀 해봐요. 대체 왜 그래요?”


무슨 부적이나 토템처럼 액막이로 써먹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마땅히 대답을 찾기가 힘들었지만, 이어지는 재촉에 종수는 별 수 없이 대충 지껄였다.


“그냥 힘들고, 맘이 착잡해서 그런다니까. 쉬는 건 안 되겠냐?”


“알았어요. 돼요. 되는데. 그니까 뭐가, 왜 힘드냐고요. 말해봐요.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


“와,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고요! 형님, 우리 이야기를 합시다! 예?”


성빈이 언성을 높인 탓에 순간적으로 주위의 모든 눈이 이쪽을 주목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관심의 중앙에 놓이자 종수는 자기도 모르게 그 시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한구석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 게 느껴진다.


이 중에 그 시선이 기어들기라도 했다면?


만약을 가정했을 뿐인데도 숨길이 쪼그라드는 듯하다.


소름이 그어진 피부 아래로 얼음이 흐른다. 이 상황을 어서 정리해야 한다고,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아, 알았어. 소리지르지 말고 일단 앉아.”


종수가 시키는대로 자리에는 앉았지만 고집스레 입을 앙다물고 노려보는 성빈.


쌍심지가 선 눈이 불을 뿜고 있다.


이러다 한 달만에 처음으로 화내는 모습을 목격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님 한 대 맞거나.



결국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종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 시선 때문에.”


“시선?”


성빈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곧이어 물었다.


“그 누가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거요? 전에도 얘기한 그것?”


“그래. 그 시선...”


2주 전쯤, 종수는 그 시선에 대한 것을 성빈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종수도 일하는 중에 지나가듯 말했고, 성빈 또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그래요? 형,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누가 좀 볼 수도 있지.”


지금은 그때와 비교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성빈의 반응은 저번과 다르지 않았다.


딱히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심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성빈은 남들과 다를 거라고,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헛된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종수는 픽 웃음을 떨구며 웅얼대듯 말했다.


“그치? 조금 볼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럼요. 허허. 본다고 어디 닳습니까?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죠.”


“맞아. 다 내가 문제지. 내가...”


“예? 아, 아뇨. 그 말이 아니라.”


끝을 흐리는 종수의 말투에서 무언가 느낀 걸까. 성빈은 말하다 말고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멋쩍다는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에이, 형을 탓하는 게 아니고요. 예? 그야 형이 잘생겨서 보는 거겠지만 그게 형 탓은 아니죠.”


“...개소리 마.”


“아니, 그런데 형님? 제 쪽에서는 누가 형을 쳐다보고 있으면 다 보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아무도 안 보고 있는데요?”


“지금 말고. 아까.”


“그러니까, 아까 전에도 없었다니까요? 진짜로요.”


“하아....”


결국 성빈조차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듯했다.


종수가 느끼는 시선에 대해서는 그 누구와도 말이 안 통했다.

이야기를 해달래서 해주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종수 입장에서는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이었다.



솔직히 기대를 깬 만큼 “네가 뭘 알겠냐.”라고 짜증부리듯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그냥 다 식은 커피만 비우고 말았다. 굳이 얘기해봐야 기운만 더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니가 뭘 알겠냐는 표정이네요. 형님.”


“하. 이거라도 알아주니 퍽이나 고맙다.”


“예? 퍽ㅡ이요?”


“...그래. 퍽 유 임마.”


같잖은 말장난에 짜증을 담아 중지를 척 세우려는 찰나 뒤쪽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쩐지 비릿한 냄새가 풍겨오는 듯, 끈적거리는 액체가 묻은 수백 가닥의 머리카락에 맨살을 감싸이는 듯 불쾌하고도 싸늘한 감각이.


낯설지만 낯익은 자취가 얼어붙은 등줄기를 타고 스며든다.



종수가 잘못 알 리가 없다.



그 시선이다.



“윽.”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에 내뱉던 숨마저 다시 삼키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본 성빈이 슬쩍 목을 빼더니 종수 너머를 살폈다.

그리고 곧 어깨를 으쓱거리며 종수에게 말했다.


“종수 형? 왜 그래요? 지금 아무도 안 보고 있는데?”


“...아냐.”


“예? 지금 제가 확인하고 있다니까요?”


”아니야... 있어...”


“허허. 이거 완전 미칠 노릇이네.”


아니,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바로 종수다.


뒤에 아무도 없다는 성빈의 말을 못 믿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 보통 눈에는 분명 그 무엇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당사자인 종수마저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성빈은 그 시선을 보거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성빈과 같이 있으면 무언가의 이유로 그 시선이 피해갈 거라고 믿었기에, 이로써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고야 말았다.


종수는 덜덜 떨리는 검지를 잇자국이 움푹 팰 정도로 깨물었다. 발음이 새는 소리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대체 어떡해야 하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빈의 표정에는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컨디션이... 정말로 안 좋아 보이지 말입니다. 음. 빨리 들어가는 게 낫겠네요.”


형용하기 힘들 만큼 답답한 기분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은 말투였다.


모자 위로 머리를 벅벅 긁은 성빈은 곧장 남은 음료를 들이키고서 테이블을 정리했다.


“자, 집에 갑시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성빈.


그러나 종수는 따라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미 그 시선이 붙은 이상 모든 게 보이고 있을 것이다.


종수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있는지, 그리고 언제 혼자가 되는지... 놈은 전부 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피하고 싶다. 우선은 지금처럼 사람이 많은 공간에 있어야만 한다.


“형?”


다른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일어날 때, 그들을 따라 지하철 역으로 가야 한다. 역에 도착하면 즉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눈치 챈 사람들이 매번 수상쩍다는 눈으로 경계하듯 보는 것쯤은 알고 있다. 민망해도 참아야 한다. 특히 오늘만큼은.


“종수 형?”


오늘만큼은 절대로, 단 한순간이라도 그 시선과 단둘이 되고 싶지 않다.


왠지 모르게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여느 때와는 다르다.


무슨 느낌이냐 묻는다면, 마치 미지근한 숨결이 뺨에 스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듯하다.


오늘 그 시선 앞에 홀로 남겨질 경우 필연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종수는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놈이 떠날 때까지 계속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해내야만 한다.


“형! 뭐해요? 안 가요?”


출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성빈의 목소리.


이미 일이 터진 이상, 언젠가는 집에 가버릴 성빈을 줄곧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종수는 성빈을 쳐다보지도 않고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허. 이 인간을 두고 갈 수도 없고. 참.”


거의 수십 초 동안, 종수의 고민 속 중얼거림과 침묵이 번갈아 이어지는 사이, 터덜거리는 발걸음이 다시 종수 옆으로 와서 털썩 앉았다.


성빈은 한동안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결심한 듯 종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제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형.”


“......”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이라도 해줘요. 상태가 도를 넘게 이상하니까 신경 쓰여서 죽겠네 진짜.”


종수는 힐긋 눈만 움직여서 성빈의 표정을 살폈다.


마주친 눈동자에서 보통 때의 장난기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약간의 긴장, 동시에 종수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빛이 드러났다.


솔직히 아까 그냥 갔어도 됐을 텐데. 다시 돌아온 것은 그만큼 종수를 생각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차피 그 시선에 대한 것들은 벌써 이야기한 판이다. 기왕 맛이 간 놈처럼 보이는 것, 믿져야 본전 아닌가?


비록 성빈에게서 이해를 구하지는 못할지언정 도움을 받을 여지는 남아있는 듯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종수는 속에 있는 마음까지 전부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기 싫어”


“예?”


“나 오늘 집에 가기 싫다고.”


“허, 허허허.”


성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형. 만약에 제가 여자였다면... 아니아니. 형이 여자였다면, 무지하게 설렜을 상황이지 말입니다?”


“지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나 진지해.”


“그럼 진지하게 묻는데 집이 왜 싫어요? 저번에 혼자 산다고 들은 것 같은데?”


종수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성빈은 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아니, 형 혼자 사는 집을 왜 가기가 싫다는 겁니까? 도대체 왜? 설마 무서워서요? 막 방에서 혼자 있어도 누가 보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그 설마가 맞다.”


“에이.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리고 만약에 진짜로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도, 아예 벽을 등지고 있음 되죠.”


“아냐. 그래도 느껴지니까 더 무서워.”


“허...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요?”


“안 해봤겠냐? 무슨 짓을 해도 안 통하니까 이러지.”


“와, 미치겠네. 그럼 뭐 어떡하라는 거죠?”


답답해서 열이 올랐는지 모자를 벗고 마구 부채질하는 성빈.


여기까지는 종수의 의도대로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종수 혼자서 해결책이 안 나온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방법이, 하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예에? 그게 뭔데요?”


종수가 머뭇머뭇 말을 끊어서 흘리자 성빈이 발을 굴러가며 재촉했다.


이에 종수는 흐름에 올라타 또렷한 어조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부탁했다.



“성빈아. 오늘 하루만 재워주라.”



“예? 그러죠 뭐. 이게 그 방법이에요?”


성빈은 대답을 뱉기까지 일순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그야 승낙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솔직히 종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부탁한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종수는 겸연쩍은 느낌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야... 정말로 괜찮겠냐? 내 입으로 말하긴 웃기지만... 요새 내가 좀, 그런데...”


“허허. 거 새삼스럽기도 하네요. 솔직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했지 말입니다?”


“그보다 니 맘대로 막 정해도 돼? 누나랑 같이 산다며?”


“어허. 그년은 날이면 날마다 술 처먹고 노느라 잘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리고 만약에 형을 보더라도 지가 꼬셔서 데리고 온 줄 알 걸요? 뇌가 맨날 알코올에 쩔어 있으니. 쯧쯧.”


“그, 그러냐?”


“예.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갑시다. 자, 여기서 시마이! 얼른 일어나요!”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종수를 번쩍 일으켜 세우고, 성빈은 앞장서서 가게를 나섰다.


세게 밀어서 흔들리는 문 사이로 성빈의 궁시렁대는 소리가 장난스레 들려왔다. 전역하고 나서 또 남자랑 같은 방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다니 어쨌다니.



“하하...”


힘이 쭉 빠지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급하게 마신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이 멍하고 아득했지만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한 기분이었다.


성빈과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어느 틈엔가 그 시선이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특유의 축축하고 질척거리는 흔적도 온데간데 없었다.


모든 게 연기처럼 사라진 그 자리에는 도리어 작은 불씨가 피었다.


이대로... 그저 이대로만 성빈과 보낸다면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환하게 들었다.


그리고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부터는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예감이 아른거렸다.



“...제발.”


마지막으로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종수는 서둘러 성빈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말

이 시대에 이딴 글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개같은 이세계 탈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일정 관련 중요 공지입니다. +3 20.10.25 408 0 -
공지 독자님들께 +7 20.10.17 576 0 -
공지 캐릭터 일러스트입니다. +4 20.10.05 1,166 0 -
40 7. 돼지와 돼지 (4) +5 20.11.03 267 14 12쪽
39 7. 돼지와 돼지 (3) +3 20.11.01 233 14 12쪽
38 7. 돼지와 돼지 (2) +6 20.10.29 281 18 12쪽
37 7. 돼지와 돼지 (1) +7 20.10.26 315 18 12쪽
36 6. 가축 (6) +5 20.10.24 321 14 13쪽
35 6. 가축 (5) +3 20.10.22 372 22 12쪽
34 6. 가축 (4) +7 20.10.21 414 23 12쪽
33 6. 가축 (3) +5 20.10.20 465 25 12쪽
32 6. 가축 (2) +11 20.10.18 540 34 11쪽
31 6. 가축 (1) +7 20.10.17 581 33 11쪽
30 5. 대가 (4) +19 20.10.15 698 43 15쪽
29 5. 대가 (3) +5 20.10.14 603 27 13쪽
28 5. 대가 (2) +5 20.10.13 653 27 11쪽
27 5. 대가 (1) +7 20.10.11 638 23 11쪽
26 4. 결착, 그리고 결탁 (5) +8 20.10.10 677 24 15쪽
25 4. 결착, 그리고 결탁 (4) +5 20.10.08 663 28 14쪽
24 4. 결착, 그리고 결탁 (3) +5 20.10.08 694 25 12쪽
23 4. 결착, 그리고 결탁 (2) +5 20.10.06 699 26 11쪽
22 4. 결착, 그리고 결탁 (1) +6 20.10.04 748 29 13쪽
21 3. 거짓과 진실 사이 (7) +11 20.10.02 785 31 13쪽
20 3. 거짓과 진실 사이 (6) +11 20.10.01 780 28 12쪽
19 3. 거짓과 진실 사이 (5) +15 20.09.30 812 34 11쪽
18 3. 거짓과 진실 사이 (4) +10 20.09.29 806 30 12쪽
17 3. 거짓과 진실 사이 (3) +9 20.09.27 804 30 11쪽
16 3. 거짓과 진실 사이 (2) +6 20.09.27 815 40 12쪽
15 3. 거짓과 진실 사이 (1) +8 20.09.26 853 31 12쪽
14 2. 최선의 선택 (7) +9 20.09.24 862 36 12쪽
13 2. 최선의 선택 (6) +8 20.09.24 906 39 12쪽
12 2. 최선의 선택 (5) +8 20.09.23 940 46 13쪽
11 2. 최선의 선택 (4) +12 20.09.23 971 47 17쪽
10 2. 최선의 선택 (3) +8 20.09.22 1,003 46 11쪽
9 2. 최선의 선택 (2) +15 20.09.22 1,085 50 12쪽
8 2. 최선의 선택 (1) +6 20.09.20 1,156 47 13쪽
7 1. 두 괴집단 (6) +8 20.09.20 1,208 53 13쪽
6 1. 두 괴집단 (5) +7 20.09.20 1,247 50 13쪽
5 1. 두 괴집단 (4) +5 20.09.19 1,354 53 11쪽
4 1. 두 괴집단 (3) +8 20.09.19 1,609 59 13쪽
3 1. 두 괴집단 (2) +8 20.09.19 1,784 64 14쪽
2 1. 두 괴집단 (1) +8 20.09.19 2,024 77 11쪽
» 0. 그 시선 +15 20.09.19 3,071 84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