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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J 님의 서재입니다.

개같은 이세계 탈출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C.J
작품등록일 :
2020.09.19 15:23
최근연재일 :
2020.11.03 21:52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3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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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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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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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 대가 (1)

DUMMY

#5


오전에 비해 느릿느릿한 비행을 마치고, 네 사람은 마침내 집 앞마당에 착지했다.


“.........”


날이 저물기 전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그 누구도 기쁘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그 자리에 발을 붙인 채, 각자의 무거운 마음을 피곤한 표정으로 꺼내보일 뿐이었다.


“음.”


결국 현이 나서서 긴 침묵을 깼다.


“피곤할 테니 이만 쉬도록 하라. 식사는 곧 내가 차리겠다.”


나직하게 전할 내용만 전한 뒤, 현은 산을 안아들고서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광호 사제의 의식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일까?


두 사람 다 기운이 빠진 것처럼 보였지만, 산보다도 현이 유독 저기압인 듯했다.


본의 아니게 준과 밀담을 나눈 종수의 입장에서는 혹시 들킨 게 아닐지 엄청나게 눈치가 보였다.



“...종수.”


현을 따라서 들어갈지 말지 종수가 고민하는 그때였다.


등 뒤에서 꼼지락거리는 느낌과 함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주면 좋을지도.”


어느새 정신이 들었는지 노채가 업힌 상태로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아, 알겠어. 잠깐만.”


그제서야 노채의 존재를 의식한 종수가 몸을 숙이자마자, 노채는 곧바로 내려와 기지개를 쭈욱 폈다.


“...으응. 감사.”


나른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 흔들고는 그대로 집에 들어가버리는 노채.



현뿐만 아니라 노채의 미적지근한 태도도 신경이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준과 만났을 당시, 사실은 기절한 게 아니었다거나...?


설마 기절한 척을 하고서 이야기를 다 엿들은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아, 헷갈리네. 진짜..."


새삼스럽지만 노채의 저 자기 주장이 약한 듯 강한 성격은 정말로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멍한 태도나, 엉뚱하게 느릿느릿한 행동이나, 리듬이 이상한 말투나... 노채는 모든 면에서 특이한 사람이었다. 종수가 살면서 저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기한 느낌이었다.


물론 희한한 성격은 사도 세 사람 전부에게 해당되는 내용이긴 했다.


특히 세 사람의 '이상한 말투'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설마하니 자신만의 말버릇이 사도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도 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쩌다 셋 모두 그토록 개성 넘치는 말투를 지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 어떡하지.”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의 성격이나 말투 문제가 아니었다.


사도들 사이에서 흐르는, 묘하게 싸늘한 분위기를 피해 눈치만 살피다 집 밖에 서있기를 벌써 몇 분째.


종수는 초조한 마음에 주머니 안에서 괜히 돌만 굴렸다.


그리고 보니 준에게서 받아온 이 돌과 목걸이가 종수의 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것들을 숨겨야 할지, 아니면 준에게 들은 내용까지 포함해서 전부 공개해야 할지... 준의 말은 또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준과 관련된 모든 게 고민의 대상이 되었다.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니 곳곳에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러다 곧 해가 저물 듯했다.


숲인 만큼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질 텐데 계속 밖에서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피곤하기도 하겠다, 종수는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방심한 상태에서 대화를 섞는 것만 피한다면, 솔직히 찔릴 일도 들킬 일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 지레 겁먹지 말자.

속으로 생각하며 억지로나마 걱정을 떨쳐 낸 종수는 그 즉시 계단을 올랐다. 소리가 안 나게 조심조심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기척을 최대한 감춘 채 거실로 향하는 그 순간이었다.



“왜!!! 대체 왜...! 말을 안 했어?”



비명에 가깝게 들릴 만큼 새된 고함이 귀청을 울렸다.


처음에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하지 못했을 정도로 낯선 울림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 이해해주라.”


“아니!!! 나는 이해 못 해!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떡하라고?”


“떼쓰지 마. 언젠가는... 아니, 곧 이렇게 될 줄... 솔직히 너도 알았잖아?”


이어지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현과 산의 대화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화 속 두 사람의 말투가 평소답지 않은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매우 흥분한 듯한 현은 한껏 높인 목소리로 고성을 질러댔고, 특유의 명령하는 어조 대신 평범한 언어를 사용했다.


반대로 산의 경우에는 아주 차분한 톤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정신 사납게 어구를 반복하는 일 없이, 감정을 추스르며 조용조용 말을 잇는 모습이었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종수는 일단 숨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래!!! 알았지! 그래도...! 미리 말을 해주었다면, 우리가 준비할 시간이라도...!”


“현아. 나도 노력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왜 그런 고생까지 하면서 종수를 데려오자고 했겠어? 만약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그치만 실패했잖아! 그냥 말을 하지! 그 노력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의미가 있어. 적어도 두 사람이 새로 올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까.”


“의미 없어! 이 마당에 하나든 둘이든 뭐가 달라!”


“달라! 너도 알면서 왜 그래, 자꾸! 어린애야?”


“그래! 내가 언니보다는 어린애 맞지!!!”


“야! 현! 계속 막 나갈래? 정신 안 차려?”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현이 씩씩거릴 때마다 산도 언성을 높이다보니, 이쯤 되면 싸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행여나 불똥이 튈까봐 듣고 있기도 불편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저게 무슨 내용이 되었든 간에 자리를 비켜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종수?”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한 마음이 차올라서 발을 못 떼는 그때, 노채가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종수를 불렀다.


눈이 마주치자 검지로 종수를 가리킨 뒤, 다음으로는 문을 가리키는 노채.


말하지 않아도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끄덕 흔든 종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하...”


난간에 등을 기대고 선 종수는 꼭 담배 연기를 뿜어내듯 숨을 모아서 내쉬었다.


슬슬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묵직한 피로가 몰려들었다. 눈앞에 침대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니, 지금이라면 맨바닥에 이불 없이 누워서도 십 초 안에 잠들 자신이 있었다.


현과 산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가 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긴장이 싹 풀리면서 피곤한 느낌이 더해진 것 같았다.



그 후로 서늘한 바람을 쐬며 그나마 정신을 지탱하는 중, 건물 안쪽에서부터 문이 열렸다.


“...종수.”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노채였다.


보통 때의 멍한 표정과 다르게, 억지로 감정을 숨긴 것처럼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노채는 이어서 말했다.


“...산에게 가봐.”


그런데 희한하게도 노채 또한 자신만의 이상한 말투를 안 쓰고 있었다.


어색하면서도 신기해서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노채의 주위를 흐르는 공기의 무게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종수는 얌전히 노채의 말에 따라 산의 방으로 향했다.



똑. 똑.


“들어가도 되냐?”


종수가 천천히 노크를 하고 묻자 곧 안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응. 들어와.”


예상대로 산 역시 말투가 뒤바뀌어 있었다.


말을 이상하게 반복하지 않았고, 과하게 톤을 높이지도 않았다. 억양이 사라진 소녀의 목소리에서는 오히려 단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정도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수준이라 종수는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종수야. 편하게 들어와.”


이때 종수의 마음을 무슨 수로 알았는지 산이 먼저 배려하듯 말해주었다.


물론 편하게 하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수는 비교적 친근한 기분으로 문을 열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산이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인사를 건넸다.


“미안해. 오늘은 내가 좀 누울게? 저기 의자에 앉을래?”


“그래. 니 방인데, 니 맘이지.”


“하하.”


종수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어디가 웃겼는지 산은 혼자서 피식 웃는 모습이었다.


웃기만 하고 딱히 말은 없었던 만큼, 대화는 여기서 바로 끊기고 말았다.


“.........”


종수는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산이 날뛰듯 말을 쏘아댈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만난 지 오래된 사이는 아니었을지라도, 산의 성격만큼은 뚜렷하게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침묵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해서 뭐라고 말을 꺼내고는 싶었지만, 먼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말문을 여는 역할은 늘 산이 맡았기 때문이었다.



“종수야.”



종수가 숨이 막혀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생각할 즈음, 드디어 산이 말을 꺼냈다.


“아까 들었어?”


“어? 뭘...?”


“나랑, 현이랑 이야기한 것 말이야.”


엿듣고 있었다는 것을 들켜서 민망한 기분이었으나 종수는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갑자기 산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으.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 쏘리.”


손틈으로 비치는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산은 어울리지 않게도 진심으로 창피해하는 듯했다.


정말로 적응이 안 되는 장면이었지만, 덕분에 굳어 있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종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색한 가운데 겨우 말꼬를 텄으니, 이제부터는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물어볼 차례였다.


“산? 현이랑 왜 싸운 거야?”


종수가 조심스레 묻자 산은 여전히 표정을 가린 채 반문했다.


“응? 다 들은 거 아니었어? 그럼 알 거 아냐?”


“아니, 사실 전부 들은 건 아니라서...”


“아하? 잘됐네. 아직은 몰라도 되는 일이야.”


“야, 그러면 현이 왜 화났는지만 알려주라. 괜히 나까지 혼날 필요는 없잖아?”


“하하. 미안해. 그것도 안 돼.”


이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손을 내리고 키득키득 웃는 산.


말투는 바뀌었어도 장난스러운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저런 식으로 나오는 이상, 현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물어봐봤자 솔직하게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종수는 다음 질문으로 방향을 틀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산, 왜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냐?”


“말투?”


“그래. 말투. 전에는 막 '하하. 미안미안해. 그것그것도 안 돼.'라는 식이었잖아.”


“뭐어? 아하하! 혹시 연습했어? 완전 잘 따라하는데? 하하핫!”


종수의 성대모사에 빵 터진 산은 거의 눈물까지 닦아가면서 크게 웃었다.


종수가 뒤늦게 머쓱해하고 있자 선심쓰듯 말을 잇는 산.


“아, 재밌네. 좋아. 그 정도는 알려줄게.”


그 직후 산은 천장을, 혹은 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는 듯이 멀리 시선을 향하며 물었다.


“종수야. 너는 이번이 첫 번째잖아?”


“어? 뭐가?”


“세상을 넘어온 것 말이야.”


“아아... 응. 아마도.”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는 그래. 너는 처음인 것 같아.”


종수가 애매한 기억을 더듬는 사이, 산은 팔을 들어 머리 위로 손가락을 세면서 말했다.


“나는 말이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 여섯 번? 일곱 번 정도일까?”


작가의말

호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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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5. 대가 (2) +5 20.10.13 653 27 11쪽
» 5. 대가 (1) +7 20.10.11 639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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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 결착, 그리고 결탁 (4) +5 20.10.08 663 28 14쪽
24 4. 결착, 그리고 결탁 (3) +5 20.10.08 694 25 12쪽
23 4. 결착, 그리고 결탁 (2) +5 20.10.06 699 26 11쪽
22 4. 결착, 그리고 결탁 (1) +6 20.10.04 748 29 13쪽
21 3. 거짓과 진실 사이 (7) +11 20.10.02 785 31 13쪽
20 3. 거짓과 진실 사이 (6) +11 20.10.01 780 28 12쪽
19 3. 거짓과 진실 사이 (5) +15 20.09.30 812 34 11쪽
18 3. 거짓과 진실 사이 (4) +10 20.09.29 806 30 12쪽
17 3. 거짓과 진실 사이 (3) +9 20.09.27 804 30 11쪽
16 3. 거짓과 진실 사이 (2) +6 20.09.27 815 40 12쪽
15 3. 거짓과 진실 사이 (1) +8 20.09.26 853 31 12쪽
14 2. 최선의 선택 (7) +9 20.09.24 862 36 12쪽
13 2. 최선의 선택 (6) +8 20.09.24 906 39 12쪽
12 2. 최선의 선택 (5) +8 20.09.23 940 46 13쪽
11 2. 최선의 선택 (4) +12 20.09.23 971 47 17쪽
10 2. 최선의 선택 (3) +8 20.09.22 1,003 4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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