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판타지를 찾습니다, 라는 캐치프레이를 내건 대형 공모전이 있습니다.
비단 그 공모전 말고도 많은 매체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한국적] 혹은 [한국형]이라는 수식을 남용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한국형 XXX라는 게 뭔지 진지한 담론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전에 잠시 짬을 내서 심사위원 아르바이트를 다녀왔습니다.
응모작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한국형 판타지]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이었는데
막상 정말로 그런가 하고 뜯어보니 단 한 작품도 [한국형 판타지]라고 할 만한 응모작이 없었습니다.
참 갑갑한 것이, 젊은 사람들은 너무 외형적인 것에 신경쓰는 경향이 큰 듯합니다.
담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철학,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선 전혀 고민이 없어보였습니다.
한국형 판타지?
무조건 도깨비가 나오고, 도술이 소재로 쓰이며, 캐릭터들의 이름을 어색하게 순우리말로 바꾸면 그만인 줄 압니다.
하지만 그런 외피를 가지고 정작 이끌어가는 이야기나 정서는 전혀 '우리 것'이 아니니 참 난감합니다.
그만큼 사고의 고착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죠.
항상 말을 하지만 창작자는 늘 유연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해보았으면 합니다.
여기 김철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나 30년을 한국에서만 자랐습니다.
그런 김철수가 외국에서 수입한 커피를 마시고 최신 뉴욕스타일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뉴요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반면이 김철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에서만 자랐습니다. 교포입니다.
그는 한국어를 곧잘 하고 집에서는 한식만 먹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인 사회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직장윽 가졌습니다.
과연 이 김철희가 순수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 그는 미국의 정서와 관습에 익숙한 미국 시민입니다.
다소 비약이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그 안에 담겨진 것이 '어떤' 형질의 것이냐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 허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했던 어느 감독의 데뷔작이 바로 좋은 예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는 [식스 센스]리는 영화입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같은 허리우드 배우에,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의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진 영화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영화의 화법이나 정서는 기존의 영미권 공포영화는 완전히 다른, 동양의 정서와 이야기입니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가 어릴 때부 봐왔던 [전설의 고향]과 많이 유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고민을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
무엇이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이야기인가.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이 어떤 것이가?
과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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