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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관악구 산신령 도봉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아라운
작품등록일 :
2020.02.09 14:38
최근연재일 :
2021.02.17 20:10
연재수 :
1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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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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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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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8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3)

DUMMY

"네 녀석의 얼굴은 참 신기해. 매번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거든."

"그 말, 그대로 되돌려줄게.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미려. 네 녀석이 관리하는 북한강은 크다고 하나 지류에 불과하다는 걸."

"하, 그 레퍼토리밖에 없니?"

"엄연히 한강의 원류는 나, 하랑이 다스리는 남한강이지. 태백의 검룡소에서 기원하여 장장 수백 킬로미터를 흘러 이곳 두물머리까지 오는 남한강이 한강의 본류란 말이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결국, 아랑 님은 나를 더 중용하셨단 소리다. 이해했나?"

"그 입 다물어, 하랑."


미려라 불린 여성이 거칠게 손을 휘저으며 남성에게 바람을 날렸다. 거친 삭풍이 살을 에일 듯이 밀려들었다.

허나 이미 익숙한 것인지 남성은 코웃음을 치며 허공에 손을 가로로 그었다.

세로로 몰아치는 바람이 손짓에 가로막히며 힘을 잃었다.

방향을 잃은 바람이 사방으로 퍼지며 마지막 기세를 떨쳤고, 이에 두 사람의 옷깃이 강풍을 만난 연처럼 펄럭였다.


"너도 이렇게 화를 내는 걸 보면 이미 마음 속에선 인정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흥. 실력이 없는 놈들이나 본류, 원조를 따지고 앉았지."

"하지만 결국 너도 따지고 있잖아. 누가 더 아랑 님에게 이쁨을 받는지 말이야."

"다시 한번 설명해줄 테니 귀나 좀 씻고 들어라. 아, 네가 귀를 씻으면 한강물이 더러워지니 화장실이나 가서 씻던지."


미려가 벤치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본디 한반도는 하나지만 인간들이 DMZ라 하여 남북을 가르고 출입을 막았지. 그 이후로 이 땅의 신령들이 남북을 오가는 것이 어려워졌어."

"어차피 천계를 통하면 될 일이야."

"그건 시간이 꽤나 걸리잖아. 무슨 일로 하늘관문을 이용하는지를 밝혀야 하고, 내야 하는 서류도 수가 제법 되니까.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이 북한강은 본디 금강산에서 발원한 몸. 인간들이 만들어낸 경계와 상관없이 물은 흐르고 흘러. 그래서 나는 아랑 님의 명을 받아 금강산의 산신님과 아랑 님 사이의 연락책 역할을 하지."

"..."

"사실상 나는 분단을 잇는 통로이자 외무를 담당하는 역할.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길 그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건 유능한 자들뿐. 신임이 없다면 임명될 수 없는 자리다, 이 말이야."

"그건 임진강의 그 놈도 마찬가지 아닌가? 걔도 시작은 저쪽 위에서 흘러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음침한 녀석은 생각지도 않았어. 모이는 자리에도 안 나오는 걸 보면 말 다했지. 아랑 님이 직접 찾아가야 겨우 얼굴을 비치는 정도잖아?"

"그래서 결국."

"누가 더 아랑 님의 총애를 받는가는, 우리 둘 사이에서 결정될 일이라는 거."


어느새 주변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외의 두 존재가 설전을 펼치며 발산하는 무형의 기세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에 발을 들이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놀러 온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나루터 쪽에서 몸이 멀어졌다.

저곳을 피하고 싶다는 무의식이 그들의 발을 붙잡은 것이리라.

그런고로.


"이솜 님에게 들은 바가 있어 혹시 그럴까 했는데, 역시나 두 분끼리만 계시면 싸움이 나는군요."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인간은, 결코 평범한 자가 아니었다.


"너는 누구냐?"


미려와 하랑이 동시에 불청객에게 쏘아붙였다.

남자는 헛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던 혼령과 같이 그들에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도봉구. 아랑 님 대신 이곳에 온 관악산 산신령이죠."


* * *


2호선을 타고 사당까지. 그리고 4호선을 타고 이수로. 거기서 다시 경의중앙선을 타고 1시간쯤 쭉 달리면 나오는 곳이 양수역이다.

낙성대학교 입구역이랑 마찬가지로 역과 실제 목적지 사이의 거리가 제법 되었다. 적어도 20여 분 정도는 꼬박 걸어야 물이랑 섬을 볼 수가 있더라고.

그러니까, 고작 두 신선의 싸움을 보자고 두어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것이다.


"평소에도 이렇게까지 두 분이 언쟁을 하셨으면."

"언쟁이라니, 실제로 몇 번 겨뤄보기도 했다. 물론 아랑 님이게 혼쭐났지만."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지. 결국 내 승리로 끝이 났었지, 아마?"

"최소 반반이었다, 하랑. 내가 봐준 것만 해도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다."

"어유, 저를 봐주셨어요? 거 참, 제가 아주 몰라뵈었습니다그려."

"...아랑 님이 골치가 아프실 만도 했네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싸움구경이라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수십, 수백 년은 더 나이를 드셨을 분들이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싶다.


"이게 정말!"


결국 여성 분께서 화가 나도 단단히 나셨다. 이솜에게 듣기론 '미려'라는 분이셨는데, 이거 말리지 않으면 또 싸움이 벌어질 판이다.

나는 황급히 북한강을 담당하는 분의 팔을 붙잡았다. 보기에는 가녀렸지만 붙잡고 보니 억세기가 그지없는 팔이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끌려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기, 좀만 참으시고 제 이야기 좀 들어보시겠어요? 네?"

"하아... 너, 보기보다 힘이 센 사람이네?"


결국 보통 사람, 그 이상의 힘을 쓰고 나서야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진짜 모아두면 빠져나가고, 또 모아두면 금새 썰물처럼 사라지고.

무슨 통장도 아니고 힘을 비축할 시간을 안 주냐. 나중에 정말 텅텅 비면 마이너스도 개설해주지 않을 거면서.

나와 미려를 보고 있던 하랑이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약 올렸다.


"미려, 아까 이야기는 아예 무시한 거냐? 관악산의 신령이라 했잖아. 이쪽에서는 제법 퍼져나간 소문이다만, 금강산에 주로 머물던 너는 듣지 못했나 보지? 거기만 북한강이 아니다. 아래 쪽도 좀 신경 쓰고 그래라."

"저 영깽이가 정말!"

"연하야, 영깽이가 뭔 말이야?"

"...기억나는 걸로는 대충 여우. 강원도 사투리인가 그럴 거야."

"저기도 여우 신선이었어?"


호선(狐仙)이 많네. 그만큼 한반도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는 증거일까.

가휴도, 가람도 그렇고. 이제는 저 하랑이라는 자까지. 하기야 술법을 다룰 수 있는 영물이 얼마나 되겠어.

구미호나 여우불 같은 단어가 있는 걸 보면, 당연히 이쪽 일과 연관이 깊을 수 밖에 없지. 안 그래?


"다들 진정하시고요. 두분 다 여기에 오신 건 이솜 님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그래. 이솜 고 년이 웬일로 연락을 했나 하고 봤더니만, 아랑 님과 만나던 장소로 와달라는 말만 끊고 싹 사라지더라."

"너도 그랬냐? 나도 오랜만에 태백산에 들렀었는데, 태백산신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전화가 걸려왔지 뭐냐.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받았더니만 갑자기 나보고 여기로 오라는 말만 하네?"


화합을 도모하는 방법 중 하나가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동이 되면 된다 했던가. 딱 그 짝이다.

하나되어 이솜의 이름을 거론하며 구시렁구시렁 뒷담화를 하는데, 나는 여기서 일에 치여 살고 있는 한 비서의 상황을 일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모르고 계신 모양이네요."

"무엇을?"

"지금, 아랑 님이 많이 아프신 상태입니다."


만약에 지금의 광경이 만화 속 한 장면이었다면 분명히 저들의 뒤에는 쿠궁! 하는 효과음이 그려졌을 것이다.

미려와 하랑, 두 신선은 전혀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덜컥 내 어깨를 꽉 쥐고선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져댔다.

얼마나 힘을 주신 거야. 겁나게 아프다.


"편찮으시다고? 얼마나? 언제부터? 쓰러지셨나?"

"지금 그런 걸 물어볼 때냐, 미려? 당장 발을 돌려 한강으로 가야지!"

"여기도 한강이다, 멍청아."

"아, 그래. 그렇군. 도 산신께서는 아랑 님이 계신 곳을 알고 있겠지?"

"모르는데요."

"뭐?"

"그보다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시죠. 정말 아프거든요."


오늘 밤은 양 어깨에 파스 각이다. 집에 가기 전에 약국에 들러야겠다.

팔을 뗀 나는 어깨를 매만지며 천천히 설명에 들어갔다. 저들이 최대한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이솜 님께서 두 분께 자세한 연락을 못 드린 건 그것도 못할 정도로 바쁘시기 때문이에요. 아시죠? 아랑 님은 한강 수역의 관리자일 뿐만 아니라, 수도권 신령의 좌장을 맡고 계시기도 하다는 것을."

"산이 있는 자리엔 물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군."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미려, 넌 모르고 있었구나?"

"이게 정말..."

"두분 다 그만 하세요. 제가 정말 이대로 지쳐서 돌아가는 걸 바라는 겁니까?"


아랑 님의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는 여기서 내가 유일하다. 아, 연하를 제외한다면.


"아니지, 아니야. 그러니까 말해주게나. 언제부터 아랑 님께서 아프신 거지?"

"정확한 건 저도 모르고 이솜 님도 모릅니다. 다만 전에 아랑 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신 게 있는데."

"아랑 님이랑 친하다고? 네가?"

"미려.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말씀해주신 게?"

"지금으로부터 몇 개월 전, 두물머리서 두 분을 만난 이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 눈이 침침하시다 들었거든요. 그렇다는 건 필시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그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제가 온 겁니다."


두 신선 모두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과연 여기서 바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미안. 떠오르지 않아. 그 이후로도 워낙 일이 많았어야지. 하랑, 너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군요..."

"하지만 도움을 줄 이를 알고 있지. 모두들 이 쪽으로 와라. 그분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니까."


확신을 가졌는지 남한강의 신령 하랑은 보무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먼 곳인가 싶었는데, 만나기로 했던 나루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물가에는 여럿의 사람들이 겨울경치를 만끽하며 한적함을 즐기는 가운데, 그곳엔 조경석과 벤치, 그리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주변에 심어진, 혹은 자연적으로 뿌리를 튼 나무들과 다르게, 나무기둥과 줄로 보호받고 있는 큰 나무에는 평범치 않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저런 나무를 무어라 부르냐 하면.


"당나무. 여기에 당나무가 있었군요."


마을 어귀에 자리잡아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나무.


"맞아. 두물머리에는 당산나무가 있어.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오래된 도당할머니지."

"두물머리야 예로부터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는, 말 그대로 교통의 요충지였으니 사람들이야 훨씬 옛날부터 살았을 터. 도당할매의 수령이 아마 못해도 4백은 우습게 넘겼지?"

"그럴걸."


미려와 하랑이 번갈아 가며 도당나무에 관한 정보를 일러주었다.

자세히 보니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서 제를 지내는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여기서 이분을 부르시겠다고요?"

"걱정 마. 주변에 널린 게 물이고, 나와 하랑 모두 강물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도록 다룬 신령이다."

"진절머리가 난다니. 미려, 아랑 님에게 나중에 고할 거야."

"쳇. 일름보 자식."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린 북한강의 신령이 강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아아-

파도가 해변가 모래에 부딪히며 나는 자잘한 소리와 함께 옅은 물안개가 미려의 손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사람의 이목을 가리는 데에는 안개만한 게 없지. 그리고 그 안개 또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말엔 동감한다."

"혹시 나중에 따로 술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무진의 안개와도 닮은 그것을 꼭 알아둬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안개 자체도 보이지 않는다면, 거의 투명망토나 다름없다는 의미잖아.


"일이 잘 풀린다면. 하랑, 할머니는 네가 불러."

"할머이. 하랑이 왔어요. 잠시만 뵐 수 있을까요?"


남한강의 신령이 당나무를 두들기며 고했다.


"우리 하랑이 왔어?"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소리는 참으로 따뜻했다.


작가의말

두물머리의 당산나무가 도당할머니, 아니면 도당할아버지인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본 글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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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4화. 어둠 속 아이는 웃고 있었다(3) +2 21.02.01 84 6 12쪽
124 123화. 어둠 속 아이는 웃고 있었다(2) +2 21.01.29 10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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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20화. 전화위복, 금상첨화(1) +1 21.01.22 120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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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8화. 오랜 기억의 꿈(3) +3 21.01.18 105 5 11쪽
118 117화. 오랜 기억의 꿈(2) +2 21.01.15 111 7 11쪽
117 116화. 오랜 기억의 꿈(1) +3 21.01.13 120 7 13쪽
116 115화. 아랑(3) +3 21.01.11 120 8 12쪽
115 114화. 아랑(2) +3 21.01.08 121 7 13쪽
114 113화. 아랑(1) +3 21.01.06 128 10 12쪽
113 112화. 몽랑(3) +5 21.01.04 150 10 12쪽
112 111화. 몽랑(2) +1 21.01.01 157 12 11쪽
111 110화. 몽랑(1) +1 20.12.30 151 9 12쪽
110 109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4) +1 20.12.28 144 9 12쪽
» 108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3) +1 20.12.25 148 8 12쪽
108 107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2) +5 20.12.23 153 7 12쪽
107 106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1) +1 20.12.21 142 10 12쪽
106 105화. 다시 피어나는 산 +3 20.12.18 14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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