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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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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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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작가가 누구야(1)

DUMMY

[영혼 정세희의 원한이 풀어졌습니다. 귀기 ‘10’이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영혼 이영훈의 원한이 풀어졌습니다. 귀기 ‘10’이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악귀 박대만이 제령되었습니다. 귀기 ‘30’이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줄줄이 떠오른 메시지. 영혼의 한을 풀어주고 악귀를 제령했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귀기를 ‘50’이나 받았다는 흥분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당분간은 귀기 걱정 없이 대본을 쭉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귀기도 충분히 얻었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쓰면 <보이지 않는 사랑> 16부작을 한 달도 걸리지 않아 다 쓸 수 있을 것 같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사랑>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행복한 상상들이 머릿속에 등등 떠다녔다.


부산에서 분식집을 하며 고생하는 엄마와 여동생 희정이 드라마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 작가료를 받아 엄마와 희정의 분식집을 서울에서 열어주는 상상. 박주희가 <보이지 않는 사랑>이 드라마로 만들어진 걸 보고 내게 했던 말을 후회하는 상상까지.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주희는 정확하게 판단한 거야. 이전 버전은 쓰레기였어. 그걸 가지고 원망하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지. 더구나 검증도 받지 않은 대본인데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며 바람이나 들고. 진범이가 재미있다고 하긴 했지만 개가 드라마 감독도 아니잖아.’


대본을 빨리 쓴다고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보장도 없다. 요즘 이쪽 업계도 분위기가 안 좋아서 창고 대본이 엄청 쌓였다고 하던데. 다음 공모전은 넉 달 후에나 열린다. 그 마저도 규모가 너무나 작은 공모전이라 당선된다고 해도 드라마로 제작될지 알 수 없고.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렇다고 아무 제작사나 불쑥 찾아가 대본을 들이밀 수도 없다. 업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신인작가는 자칫 아이템만 빼앗길 수 있다. 신인작가의 대본이 드라마로 제작되기 위해서는 전생의 운을 다 끌어 모아도 될까 말까 하니까.


‘그래. 괜히 들떠서 설치다가 아이템만 뺏기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공모전에 내는 걸로 하자. 그동안 편의점 알바하며 대본수정이나 열심히 하고.’


국도에서 택시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퇴마에 방해가 될까 봐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놨더니 부재중 전화가 10통도 넘게 와있었다.


‘나한테 전화 올 곳이 별로 없는데 무슨 전화가 이렇게 많이··· 잉? 전부 이진범한테 온 전화잖아? 얘가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지? 학교 때도 안 하던 전화를...’


뚜르르르~


신호가 가기가 무섭게 진범이 전화를 받았다.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목소리를 들어보니 무척이나 급한 일인 모양.


‘얘가 나한테 다급한 용무 있을 게 있나?’

[너 지금 어디야?]


진범에게 악귀를 퇴마하러 왔다고 할 수는 없고.


“무슨 일인데?”

[일단 나하고 좀 만나자.]

“언제?”

[지금 당장.]


시간을 보니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어제는 내가 이 시간에 전화했다고 예의가 있네 없네 난리를 치던 녀석이 지금은 다짜고짜 만나자니. 내가 집 근처로 가겠다고 했더니 굳이 내 쪽으로 오겠다고 한다.


‘이진범 답지 않은데?’


*


‘헐~ 벌써 왔어?’


내가 호프집에 들어서자마자 진범이 손을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냐? 니가 날 이렇게 애타게 찾는 날이 다 있네?”

“친구가 친구 찾아오는 게 뭐 별 일이라고.”


진범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 엄청 어색했다. 게다가 평소 하지 않던 의례적인 인사말까지.


“얼굴 좋아 보인다? 일단 한 잔 하자.”


다짜고짜 건배부터 건넨 진범이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대본 있잖아, 보이지 않는 사랑. 내가 드라마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나하고 딜 좀 하자.”


갑자기 전혀 예상을 못했던 주제가 튀어나와 나는 눈만 껌뻑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이지 않는 사랑> 연출을 나한테 맡겨주면 내가 제작사 찾아서 드라마로 만들어주겠다고.”

“니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드라마로 만들어준다고?”

“너 왜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해? 한국말 어렵냐?”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러지. 그런 제작사가 있어?”

“벌써 있을 리가 있겠냐? 지금부터 내가 찾아봐야지. 업계에 아는 선배가 있는데 대본 주고 의견 좀 들어보려고.”


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이전범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런 생각이라면 이렇게 급하게 날 찾을 이유가 있나? 부재중 전화를 10통도 넘게 하면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자기가 연출하는 조건이라고?’ 모니터링해달라고 대본 보내줬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나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학교 때부터 내 작품이라면 한 번도 좋은 평을 해준 적이 없는 놈이다. 요즘 사람들은 착한 이야기나 손해보는 캐릭터 싫어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사랑>은 니 감성 아니잖아. 너 원래 이런 착한 이야기 싫어하는데?”

“뭔 소리야? 나 이런 이야기 엄청 좋아하거든? 내가 진짜 제대로 연출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나한테 맡겨. 진짜 오랜만에 확신이 팍 왔다고.”


진범이 ‘확신’이란 단어까지 쓰며 열변을 토하니 마음이 저도 모르게 끌려갔다. 진범은 이미 자신이 드라마를 연출하기로 한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이미 주조연 배우도 누구로 할지 다 생각해 뒀어.”

“캐스팅을 벌써 생각해 놨다고?”


배우 이야기가 나오자 정말 드라마로 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진범이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더욱 강하게 말했다.


“일단 영찬은 무조건 톱스타로 가야 해. 내가 알아보니까 조정호가 작년 음주운전 때문에 자숙하느라 스케줄 비었다고 하더라. 사고 낸 것도 아니고 음주측정에 걸린 정도라서 요즘 슬슬 복귀 준비하는 모양인데 큰 작품은 부담스러울 테고. 영찬이 캐릭터가 이미지 세탁하기에 딱 좋잖아.”


벌써 배우 스케줄까지 체크했다는 진범의 말에 놀랐다. 진범의 말대로 조정호는 당대의 스타다. 문제는 연기는 잘하는데 늘 크고 작은 스캔들을 달고 다닌다. 게다가 스태프와 후배 연기자에게 갑질하는 걸로 유명하고 인성이 안 좋다는 소문이 연예계에 파다하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그런 배우한테 영찬역할을 맡기고 싶진 않은데.’


진범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리고 영찬의 아내 혜정은 수동적인 캐릭터니까 적당히 오디션으로 뽑으면 될 것 같아. 누가 연기해도 편차가 크지 않은 역할이거든.”

“난 혜정 캐스팅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의 아내와 다른 남자를 맺어주는 영찬의 선택이 시청자의 지지를 받으려면 혜정한테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야, 요즘 매력적이고 얼굴 예쁜 배우들 널렸어. 그건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 매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진범은 자신의 말에 도취되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빵집주인 이한영이 재밌는 캐릭터야. 이한영은···”


진범이 캐릭터와 자신의 연출 방향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혜정은 <비 오는 날>에 나왔던 이수연 같은 배우다. 비록 인지도 없는 무명이긴 하지만 눈빛이 진솔해서 시청자들도 영찬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어지는.


“아무튼 나영찬과 이한영은 확실한 스타로 가는 게 맞아. 내가 저예산 영화 찍어보니까 인지도 있는 배우 없으면 아무리 작품 잘 찍어도 흥행이 어려워. 어쨌든···”


진범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읽어봐, 계약서야.”

“계약서라고? 무슨 계약서?”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이런 건 분명하게 해야지. 나도 내 발품 팔아가면서 제작사 찾아다니는데 최소한 연출에 대한 보장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


뭔가 찜찜하긴 했지만 어쨌든 상업영화로 입봉한 감독이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연출력이 불안하긴 하지만 2번째 작품은 좀 더 잘 만들 것이란 기대도 들고. 무엇보다 나는 이런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계약서는 한 장으로 간단한 내용. <보이지 않는 사랑>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경우 연출은 이진범에게 맡긴다는 내용이다. 만약 계약을 어기면 연출료를 위약금으로 지불한다는 내용도 포함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진범이 변명하듯 말했다.


“솔직히 이번 영화는 제작 환경이 너무 안 좋았어. 너무 저 예산이라 내가 계획한 연출을 하나도 못했다고. <보이지 않는 사랑>은 제대로 연출할 자신 있어. 벌써 머릿속에 영상이 다 그려져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어차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넉 달 후 공모전에 제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공모전까지 넉 달을 불안하게 기다리고 싶지도 않고 만에 하나 공모전에 또 덜어진다면···? 그런 불안은 수없이 공모전에 떨어져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아무리 대본이 자신 있다고 해도.


“여기다 사인하면 돼?”

“응.”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는 순간 기억 한 가지가 떠올랐다. 메시지가 보여준 내용이었다.


[악귀 퇴마로 얻은 귀기는 능력 강화는 물론 예지력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지력이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럼 지금 계약서에 사인하는 게 잘하는 선택인지도 알 수가 있나? 이 계약과 관련된 미래를 알기 위해 예지력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고 눈앞에 스크린이 나타났다. 대본을 쓸 때 영상이 나타나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설마 진짜 미래를 보여주는 건가?’


스크린에 커다랗게 이진범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범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누군가에게 막 화를 내고 있었다.


“시청자들한테 욕먹는 게 왜 내 탓이냐고? 애초에 남편이 자기 와이프를 다른 남자한테 맺어주고 떠난다는 설정 잡았을 때부터 이 작품은 리스크 안고 시작한 거야.”


이번엔 내 모습이 스크린에 하나 가득 나왔다. 미래의 내 모습인 듯하다.


“애초부터 혜정 캐스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잖아. 혜정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야만 영찬의 선택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이수연 같은 배우를 추천했던 거야. 근데 윤하린은 섹시한 이미지가 강해서···”


윤하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나는 초공간에서 미래의 스크린을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소리를 질렀다.


“미친. 혜정 역할에 윤하린을 캐스팅했다고?”


윤하린은 섹시한 이미지의 술 광고로 인기를 얻어 최근 조연급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배우다. 진범은 혜정 역을 캐스팅할 때 가장 피해야 할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한 셈이다.


미래의 스크린에서 내가 진범과 캐스팅 문제로 다투고 있을 때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어떤 여자가 끼어들었다. 처음보는 여자였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윤하린은 진짜 아니었어. 이 감독이 워낙 강하게 주장해서 캐스팅하긴 했지만. 혜정 역할은 시청자에게 진솔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수연 같은 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했어.”

“혜린 선배까지 왜 이래요? 그럼 이게 다 내 책임이란 거예요?”

“지금은 누구 책임을 따질 때가 아냐. 당장 시청자들이 남편이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와 맺어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가 빗발치듯 올라오고 있으니까 문제지. 어떻게든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논란이 점점 커질 거야.”

“난 몰라요. 난 대본에 써 있는 대로 연출한 것뿐이니까. 영화면 몰라도 드라마는 어차피 작가 예술인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나가는 진범을 향해 스크린 속 내가 소리쳤다.


“니가 그랬잖아. <보이지 않는 사랑> 대본 읽어보고 재미있게 연출할 수 있다고.”


스크린 속 진범이 날 보더니 피식 웃음을 날리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내가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자 여자가 말했다.


“캐스팅뿐만 아니라 연출이 대본의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어요. 전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사랑>의 연출을 이진범 감독한테 맡기고 싶지 않았어요. 작가님하고 이 감독 사이에 연출계약만 없었다면 말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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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기가 뭐야?(1) +3 24.01.15 5,692 8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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