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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거 님의 서재입니다.

선 넘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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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거
작품등록일 :
2022.12.05 19:12
최근연재일 :
2023.02.0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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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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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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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글자수 :
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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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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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 진실(2)

DUMMY

“엄마!”

“지, 지혈을!”

“깔깔깔!”


혼란의 도가니다. 아이의 찢어지는 비명, 오춘식의 다급한 목소리, 그 소리를 온전히 즐기며 깔깔 웃는 지아연, 여전히 그녀의 턱을 꽉 움켜쥔 공기헌.


당장이라도 힘을 꽉 주어 턱뼈를 산산조각 내고 목숨을 단번에 앗아가고 싶은 충동이 덮쳐왔다.


공기헌은 충동을 가까스로 잠재우고 일어서서 장강찬이 준 희귀 물약을 꺼냈다.


【불사조의 눈물】

- 내용: 불사조는 태어나서 단 한 번 웁니다. 눈물은 탑에 존재하는 어떤 회복 물약보다 강력합니다.

- 효과: 완전한 치료


그의 맥박이 고동쳤다. 혹여나 지아연이 자살 시도를 하면 살릴 목적으로 준비한 물약이다. 그런데 맞은 편에 구슬피 우는 아이와 가슴팍이 피로 물들어 가까스로 숨을 토하는 여자를 보니 갈등이 일었다.


이걸 눈에 부으면 지아연의 눈은 되살아나고, 이능으로 진실을 알 수 있다.


“형님, 형님 혹시 회복 물약 같은 거 있습니까? 아, 좀비존 사람도 나처럼 효과가 없으려나···.”


오춘식이 방독면까지 벗어 던지고 자신의 양복을 찢어 지혈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망울이 애처롭고 필사적이었다.


“엄마, 미안해. 내가 부적응자라서 미안해.”

「엄마, 내가 미안해. 내가 친구 때려서 미안해. 그냥 참았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빠···.」


장례식에서 부모님의 해맑은 사진을 보며 어린 공기헌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기억이 어린 소년과 겹쳐 보인다.


“시발···.”


눈앞에 지아연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눈알이 없어졌으니 마음껏 바라보겠다는 조롱 섞인 의미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약해졌을까. 냉철하게 고문하던 공기헌은 사라졌는가?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야.’


물론 첩자로서 정보를 제공하고 도와준 건 감사하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아연에게서 존의 진실을 알아내고 존을 해방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누나에 관한 진실도···. 어떻게 죽였는지도 알고 싶다.


‘시발, 좋았어.’


하지만 다른 방법 또한 있다.


공기헌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천천히 침잠했다. 초록빛이 깃든 연갈색 눈동자가 차갑게 지아연을 훑었다.


“소장님.”

“흐흐, 네?”


공기헌이 예의를 차리며 말하는데도 지아연은 공기헌을 조롱했단 사실에 집착하여 눈치채지 못했다.


공기헌이 움직였다. 투명한 물약이 출렁였다. 오춘식이 콧물을 턱 끝에 매단 채로 공기헌을 올려다봤다. 오춘식의 팔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손은 온통 피범벅이다. 여자의 가슴이 헐떡인다.


공기헌이 물약의 뚜껑을 열었다.


뽕.


청아한 소리가 연구소를 채웠다.


“원래는 당신의 눈을 이 액체로 되살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이 그러셨죠. 다른 방식도 꽤 효율적이라고.”

“...무슨 헛소리죠?”


공기헌이 오춘식의 손을 부드럽게 치웠다.


“고동칠의 어머니를 죽이면서 한 말씀이요.”


「팀장님의 능력이 우리 연구를 안전하게 지킬 중요한 자산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신 자체가 불순하다면 쓸모가 없죠. 그리고 이런 방식도 꽤···. 효율적이란 걸 알았고요. 공기헌 씨, 당신의 역할은 끝났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지아연이 입술을 비틀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군요.”


쪼르르.


투명한 액체가 여자의 가슴팍에 흘렀다. 하얀 거품이 일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쓰고 공기헌은 차분하게 소년을 바라봤다.


“엄마는 살아날 거야.”


소년의 머리를 푹 누르고 일어났다.


“다른 방법을 쓰겠다고요. 속을 읽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이지만, 다른 효율적인 방법도 있다는 걸 당신이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그가 지아연을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접착 넝쿨로 그녀를 묶었다.


“그리고 제 역할이 끝났다고 했는데, 그 역할이 뭐였는지 기억나십니까?


지아연의 입가가 떨렸다.


“부적응자들이 저를 지독히도 싫어했죠.”


그가 지아연의 신발을 천천히 벗겼다.


“경계 단속팀 팀장 공기헌, 공식적인 직함은 그거였지만, 진짜는.”


양말까지 벗기고 공기헌이 그녀의 손톱과 발톱을 훑었다.


“고문 기술자.”


공기헌이 지아연의 앞 머리칼을 움켜쥐고 뒤로 젖히며 말했다.


“지금부터 고문을 시작해보죠. 진실을 말할 때까지.”


목젖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지아연의 목소리가 염소처럼 지저분하게 흔들리며 흘러나왔다.


“이러지 말죠? 지금쯤이면 개조 좀비가 떼로 몰려올 테니까. 사방에서.”

“춘식 씨. 피신하세요.”

“형, 형님은요?”

“몰려오기 전까지 고문해야죠.”


오춘식이 방독면을 쓰고 여자를 안았다. 아이가 오춘식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살아서 봬요, 형님!”


공기헌이 손짓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우당탕,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만 남았네요. 소장님.”


지아연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


“5분도 안 돼서 도착할 거에요. 아무리 기헌 씨가 헌터여도 그 모든 좀비를 죽일 순 없을 겁니다.”


공기헌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차분히 헌터 생활 키트를 꺼냈다. 탑에 오래 머물 경우, 노숙하며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기에 생활 키트는 필수였다. 그리고 그 중 옷을 기우는 데 필요한 바늘이 눈에 띄었다. 그중 가장 굵은 바늘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중지를 꽉 잡았다.


“이러지 마, 제발 이러지 마요!”


안 보여도 무슨 상황인지 단박에 깨달은 지아연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다급하게 말했다.


‘남을 파멸시킬 때는 그렇게 비정하더니 본인 몸은 소중한가 보군.’


보잘것없이 벌벌 떠는 지아연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게 너무 짜증 났다.


“그러면 아까 하려던 말 해봐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던데.”

“내가, 내가 죽으면 존이 멸망합니다!”


바늘로 손톱 끝을 누르기도 전에 나온 말.


“거짓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손톱 안쪽 살 깊숙이 바늘을 찔러 넣는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반대편 손이 찢어질 듯 벌려진다.


“내가 죽으면, 죽으면 모든 게 끝나.”

“어떻게 끝나는데요?”


그가 약지를 꽉 쥐자,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다른 존에 먹힌다고!”

“그것뿐?”


손톱 끝에 살짝 닿자 그녀가 경기를 일으키며 내장까지 토하듯 성토했다.


“그것뿐이라니! 내가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지겠지. 좀비도, 붉은 선도!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다른 존의 주인들이 가만히 있을까?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릴 거야. 그러면 좀비존 적응자 모두 부적응자 꼴 나는 거지. 아, 기헌 씨 당신은 상관없는 일이라 큰일도 아닌가?”

“이죽거릴 힘이 남았나 보군.”


그가 약지 손톱에 바늘을 밀어 넣자 또다시 악에 받친 비명이 연구소를 뒤흔들었다. 그녀가 분노하여 소리 질렀다.


“날 죽이면 네 능력도 사라지는 거야! 그 진실을 보는 눈을 잃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중요한가? 앞으로 여기서 살아가든 다른 존에서 살아가든 너는 그 능력이 그리울 거야. 모든 걸 확신할 수 있는 그 굉장한 능력이 없어지면 너는 평생 의심하며 살아갈 거다. 가장 친한 사람마저도. 평생 의심하고 살며 불행할 거라고!”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지아연은 느낄 수 없었다. 흔들리는 공기헌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없으니까.


“어째서 존이 생겨났는지 말해요.”

“숭고한 뜻을 지닌 사람을 하늘이 알아본 거지! 세상이 나를 다시 불렀다고!”

“정신 나간 척하지 마.”


공기헌은 경고도 없이 새끼손가락 밑을 공략했다. 그녀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사지에 쥐가 났는지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진짜야, 진짜라고···. 나는 선택 받았어, 선택.”

“다시 묻겠습니다. 어째서 존이 생겨났는지 말해요.”

“과거의 뜻을 이루라고···. 신께서···. 꺅-!”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어째서 존이 생겨났는지 말해요.”

“진짜라고, 진짜라고. 나는 다른 곳에서 왔어. 십여 년 전에 갑자기 눈을 떴다고.”

“대공진 때?”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찰싹. 그가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정신 차려.”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가 말했다.


“내가 죽으면 넌 평생 진실도 모른 채 살 거야. 그리고 평생 확신하지 못한 채 살 거야.”

“무슨 진실?”

“네 누나···.”


쿵쿵!


세상이 진동했다. 지아연이 쿡쿡 웃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내 새끼들이 오고 있어. 지금 나를 죽이지 않으면 그놈들한테 죽을 거야.”

“누나, 뭐?”


공기헌이 그녀의 손가락을 연달아 꺾었다. 하지만 이젠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고통의 내성이 극에 다다랐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머리를 까닥거렸다.


“나를 풀어주고 내 새끼들 품에 안겨주면 모든 진실을 이야기하지. 그러면 나는 여기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갈게. 이곳은 너희들에게 남겨주겠어. 어때? 남는 장사 아니겠어?”


쿵쿵쿵쿵-! 사방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임박했다.


“누나가 살아있어? 그것만 말해.”

“흐흐흐.”


공기헌이 그녀의 쇄골 안쪽을 꽉 누르고 반대편 손으로 그녀의 발등을 칼로 내리찍었다.


“끄으읍-!”


그녀의 목에 핏줄이 섰다. 하지만 이미 정신이 나간 지아연은 웃으며 말했다.

“봐봐, 벌써 와닿지? 진실을 보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한지 말이야. 그러니까 날 보내줘. 그럼 알려 준다니까?”


쾅-! 문을 부수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누나와 이능, 그리고 사람들. 공기헌은 망설였다.


누나와 이능을 포기하냐, 아니면 지금까지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포기하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공기헌의 신음을 듣고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커 귀가 울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저년을 죽여도 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이능이 없다면?


‘그리고.’


만약, 정말 만약에 누나가 살아있다면? 설사 죽었더라도, 시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공기헌이 가슴팍 아래 묶인 넝쿨을 꽉 잡았다.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기헌 씨.”


그 감각을 느낀 지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


공기헌이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었다.


“기헌 씨답게 행동하세요.”

‘그 여자를 살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물약으로 지아연의 눈을 치료했다면 모든 게 벌써 해결됐을 것이다. 소년의 울음소리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었겠지만.


그 생각까지 치밀자 역겨워졌다. 모든 게 역겨웠다. 이 세상도 자기 자신도.


‘누나···.’

“곧이에요, 곧. 어서 선택해요, 기헌 씨.”


콰광- 쿵! 콰과광- 쿵, 쿵! 지척까지 다가왔다. 더는 고민할 시간도 없다.


“내가···.”


공기헌이 입을 열었다.


쾅-! 온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공기헌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문짝이 유리를 박살 냈다. 그의 이마가 찢겼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살아야겠어.”


변형 좀비 여러 마리가 사방을 에워쌌다. 그녀가 환호하며 무어라 외쳤다. 아무것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누나의 말만 들렸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 꼴리는 대로 살라고, 공기헌.」

“그러니까 미안해, 누나.”


지아연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가 다급히 외쳤다. 변형 좀비 여러 마리가 동시에 공기헌의 머리통을 으깨기 위해 들이닥쳤다.


그 순간 공기헌의 총구가 그녀의 목젖에 향했다.


탕-!


붉게 물든 회백질이 벽을 장식했다.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공기헌의 지척까지 다가온 좀비의 커다란 주먹들에 쩍쩍 금이 가더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모든 게 끝났다.


공기헌의 권총이 땅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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