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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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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비
작품등록일 :
2024.08.22 18:11
최근연재일 :
2024.09.11 15:0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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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35

작성
24.09.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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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6. 서장, 황건적의 난 - 경국지색(傾國之色). -5

DUMMY

오래전 한 고조가 걸어갔던 길을 향해 유비는 발걸음을 옮겼다.


천하를 향해 한걸음.


다음 걸음을 내딛기 전 유비는 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만일 그녀를 얻게 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으로 사람을 얻는다.


유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한 가지 오산이 있었다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각의 힘은 사람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각은 표정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만약 각의 얼굴에 조금이라도 표정이 남아있었더라면 공손찬은 애향과 함께 떠나지 못했을 것이고 유비는 자신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희망의 시간은 아주 짧았다.


이루어지지 않기에 꿈일까?


주변을 둘러본 각은 이 짧은 시간조차도 실은 긴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자신을 싫어하는 기녀조차도 지금은 자신에게 빠져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적의를 품은 이들의 적의는 애정처럼 더 강해져 살의로 바뀌었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각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나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는구나······.’


각의 눈이라도 마주친 사람은 남녀를 불구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에게 있어 각은 애정을 넘어 신(神)적 존재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각의 말은 진리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각은 이미 오래전에 경험한 것이었기에 지금의 광경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죽어주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는 각이었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은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쨍그랑.


술잔, 접시, 술주전자 등 도기로 된 물건을 부순 사람들은 그중 가장 날카로운 조각을 손에 집어 들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스윽, 스스스슥, 스윽, 슥, 스스슥, 스윽.


아무도 비명을 내뱉지 않았다.


목을 긋고 손목을 그으며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랑한다고······.


그런 그들에게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각은 돌아섰다.


그런 각의 뒷모습조차도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 여기며 그들은 외치고 또 외치며 죽어갔다.


-툭, 투두두두두두두두, 툭, 툭, 툭.


난간에 천을 매달아 기녀들은 몸을 던졌고 그대로 몸을 달려 뛰어내린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각은 그들에게 조금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각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였다.


그들의 목숨이 확실하게 끊어졌는지였다.


각은 그들의 목숨이 다 끊어질 때까지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각도 처음에는 이렇게 된 사람들을 피해 마을을 떠났었다.


일주일이 흘렀을 무렵에야 각은 그들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금 그들을 보았을 때, 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규했다.


그들의 몸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굶어 죽은 이도 있었고 넘어져 다친 것인지 상처가 심해져 죽은 자도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각의 시선이 닿자, 그들은 바닥에 엎으려 머리를 조아렸다.


아마도 그들의 눈이 남아있었더라면 강을 바다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그들이 소리를 낼 수 있었더라면 온 천하에 울려 퍼질 만큼 각을 향해 울부짖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저주가 분명했다.


“···이제, 그만 죽어······.”


세상에 대한 희망과 함께 눈물은 각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죽어도 죽지 못하고 죽어서도 육신에 영혼이 매여 있던 그들은 각의 허락을 받고서야 겨우 떠날 수 있었다.


“···하늘은 죽었다.”


각은 더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녀가 되었다.


돈만 쥐여준다면 그 누구에게도 열려있는 곳이 기방이지만 우습게도 그렇기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각의 마지막 희망은 바로 주색잡기(死嫖滥赌, 술과 여자와 노름)에 능한 화화공자(花花公子, 바람둥이)였다.


평범한 사람은 틀렸다는 역발상의 사고.


그러나 이마저도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각은 깨달았다.


각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랐다.


기녀가 되어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고 그중의 하나가 술이었다.


술잔에 술을 채운 각은 맞은편에 앉아서 여전히 넋이 빠진 상태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은 아직도 살아 있는 거죠?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


유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떨리는 손으로 잡은 술잔을 쥔 상태 그대로 식탁 위로 내리쳤다.


술잔이 부서지며 술잔을 쥔 유비의 손도 함께 찢었다.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핏물 속에서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날카로운 조각 하나를 손에 쥐었다.


손바닥을 적시는 붉은 피.


그것을 유비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유비처럼, 그의 작디작은 손의 손바닥에 피어오르는 붉은 꽃을 바라다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자경(劉子敬)으로 유비의 숙부되는 사람이었다.


숙부의 인기척을 느끼고 어린 유비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보는 유비의 두 눈에 비친 것은 숙부 유자경이 아닌 유자경의 복장을 한 각이었다.


유자경의 모습은 각으로 변하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변하지 않았다.


각의 모습을 하고 그녀의 목소리로 유자경은 어린 유비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손에 상처가 생긴 것이냐?”


각의 물음에 어린 유비는 자기 집 동남쪽 앞마당에 있는 아주 큰 뽕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무에 올라가려다 다친 상처구나.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장차 크게 되겠구나.’


각은 어린 유비를 목말 태우고서는 그가 가리킨 앞마당에 있는 뽕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5장(5丈, 약 15m) 높이의 뽕나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과 기세가 느껴졌다.


마을에 이토록 큰 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이한 노릇이었는데 그 생김새 또한 수레 덮개를 닮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뽕나무가 있는 유비의 집을 본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 집에서 귀인(貴人,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나올 것이라 여겼다.


각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각은 어린 유비를 뽕나무 가지 위로 올려주고자 했다.


혹시라도 혼자 올라가다 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을 미리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장차 더 큰 나무에 오르는 꿈을 가지거라.’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목말을 태운 어린 유비를 들어 올려 가까이 있는 뽕나무의 가지에 올려다 주려는 각은 그가 내뱉은 한마디 말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이런 덮개가 달린 수레를 타고 마을을 구경할 거예요. 그때에는 숙부님도 옆에 태워드릴게요.”


“······.”


“숙부님? 숙부님?”


주천자가육(周天子驾六).


주(周)나라 천자(天子)는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탄다(周天子驾六)고 정하였다.


이후로 같은 수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탄다는 것은 같은 신분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만일 천자보다 아랫사람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탄다면 그것은 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되었다.


이는 ‘반역’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5장(5丈, 약 15m) 높이의 뽕나무만 한 덮개가 필요한 수레라면 그것을 끄는 말의 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각은 어린 유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상함을 눈치챈 어린 유비는 각을 바라보았다.


늘 친절하고 상냥하던 숙부의 모습을 어린 유비는 찾아낼 수 없었다.


“너, 너 녀석이 바로 유 가(劉 家)를 망칠 놈이구나!!”


어린 유비는 숙부가 하는 말의 뜻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크게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잘못 했습니다, 숙부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각의 옷자락을 움켜잡으며 어린 유비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했다.


“······.”


각은 어린 유비를 단숨에 뿌리치고는 돌아섰다.


그날을 끝으로 어린 유비는 다시는 숙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런 숙부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린 유비는 깨우쳤다.


한 번 내뱉은 말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매우 성내며 돌아가는 숙부의 모습에 유비의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부엌에서 뛰쳐나와 소리쳐보았다.


“도련님, 도련님!”


“······.”


그녀의 부름에도 숙부는 말없이 계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한참은 결혼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실(正室, 정식 아내)은 두지 않고 첩(妾, 아내 외에 데리고 사는 여자)만 여럿 둔 그의 본심이 냉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홀로 남겨진 어린 유비를 발견한 그녀는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으면서 점차 어린 유비의 앞에 선 어머니의 모습은 유자경처럼 각의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각은 무릎을 꿇어 어린 유비와 시선을 맞추었다.


어린 유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엄지로 닦으며 뺨을 만져주었다.


“숙부의 말을 마음에 담지 말렴.”


“어머니.”


자기 뺨을 어루만져주는 각의 손을 어린 유비가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서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 할 수 없는 걸까요?”


힘없이 내뱉는 어린 유비의 말을 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슬며시 마당에 있는 뽕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미뤄 짐작했다.


이 시대의 교육관 중 하나가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다는 것이었고 이 사실을 각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단다.”


“하지만 전 나무에도 오르지 못하는걸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다.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 하지만 이 어미는 우리 아들이 고작 저런 작은 나무 하나 못 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각은 어린 유비를 다시금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우리 아들은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니,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단다.”


어머니는 굳이 유비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요절(夭折)한 것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고 미신으로 전해지는 아버지가 요절하면 그 아들도 요절한다는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유비의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이름 대신, 늘 중산정왕의 이름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중산정왕처럼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이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과거의 기억에 빠져든 유비는 깨어진 도기 조각을 목에 대고 있었다.


유비의 손은 점차 심하게 떨렸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각의 힘에 잠식당했기에 유비는 공손찬처럼 도망칠 수 없었다.


이것은 커다란 낭패였지만 도리어 유비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어린 시절 유비의 어머니가 한 말이었지만 각의 힘으로 그 말은 각이 말한 것이 되었다.


포기하지 말라는 오래된 각의 명령에 유비의 의지가 더해져 그는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포기하는 그때 비로써 끝나는 법이다. 내 목숨은, 내 하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각의 힘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녀의 의지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비는 겨우 잃은 정신을 차린 것뿐이었다.


여전히 각의 힘은 유비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기 목을 그으려고 하는 것을 막는 것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각은 유비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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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07. 서장, 황건적의 난 - 경국지색(傾國之色). -6 24.09.11 15 0 12쪽
» 006. 서장, 황건적의 난 - 경국지색(傾國之色). -5 24.09.10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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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서장, 황건적의 난 - 경국지색(傾國之色). -2 24.08.31 61 0 11쪽
2 002. 서장, 황건적의 난 - 경국지색(傾國之色). -1 24.08.30 114 0 12쪽
1 001. 서장, 황건적의 난 - 각(角). 24.08.22 25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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