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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범 님의 서재입니다.

위대한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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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범
작품등록일 :
2020.05.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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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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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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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48. 왕의 유산 (5)

DUMMY

"휘르토드손......뤼엘......레반세르니크."


페르시온은 책에 새겨진 그 이름을 따라 읽었다.


휘르토드손, 뤼엘, 레반세르니크.


생전 본 적도 없는 이름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구석이 있었다. 이런 이름을 전에 본 적이 있던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책에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갔다.


- 왕국이 멸망하던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최후의 태자. 제국의 서슬 퍼런 침공 속에서 무너져가는 왕국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부왕의 실정과 제후들의 분열,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의 실종으로 이미 파국으로 치달아버린 망국의 운명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중략)......결국 제국의 대군 앞에 수도가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국토 전체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자 격분한 태자는 무능한 제후들과 제국을 향해 준열한 저주를 퍼붓고는 홀연히 잠적해 버렸다. 그 후로 태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왕국은 끝내 멸망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태자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왕령이 폐허로 변해......


그러나 독서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샌가 그의 곁으로 온 콰리안이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었냐? 한참 동안 찾아다녔네."


페르시온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그를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지 호흡이 조금 불규칙해진 그륜과 콰리안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너희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책 구경하다가 중간에 사서를 만나서 이야기를 조금 듣고 왔지. 지하에 가면 고문헌 보존서고라는 곳이 있는데......"


한창 말을 하던 콰리안의 시선이 페르시온이 펼쳐놓은 『왕국의 몰락』에 닿았다. 그러자 그는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마냥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너 혹시 어디 아파?"


페르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네가 책을 읽어? 그것도 천 페이지는 족히 될 것 같은 이 두꺼운 책을?"


그러더니 그륜과 콰리안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냐?"


"아냐, 서쪽은 확실히 아니었어."


"그럼 북쪽인가?"


"내가 봤는데, 일단 해는 제대로 뜬 것 같아. 분명 동쪽이었어."


"그런데 페르시온이 저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고? 나도 반 정도 읽다가 때려칠 것 같은 저런 책을?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물론 나도 입에서 내뱉는다고 다 말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어떡하니."


"아아, 알그레시안 씨. 변화에 대비하라는 당신의 말이 이런 것이었습니까."


오자마자 헛소리를 일삼는 그들의 모습에 페르시온이 얼굴을 찡그리며 타박했다.


"되도 않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그래서, 고문헌 보존서고가 뭐하는 곳인데?"


"뭐하는 곳이긴, 아주 옛날에 기록된 문서들 보관해놓은 곳이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니까, 거기 가면 이 두루마리에 대한 것도 밝혀낼 수 있을 거야."



* * *



"고문헌 보존서고를 찾으신다구요?"


사서의 질문에 그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곳에 가면 고대 언어로 된 문서들을 해석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그들은 사서를 따라 좁다란 통로 속을 걸어갔다. 통로는 꽤나 복잡했다. 비스듬히 내려가다가 어쩔 때는 올라가고, 나선형으로 놓인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 정도 걸었을까, 그들의 눈앞에 곧 문이 하나 나타났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다소 낡은 듯한 나무문이었다.

문의 높이도 페르시온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그냥 일반적인 집 대문과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아주 평범한 문이었다.


"서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 앞에 있는 분의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럼 이만."


사서는 목례를 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사서가 사라진 후, 그륜이 문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을 턱끝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사람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나 봐."


문 앞에 다가서자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모험 중에 문서를 하나 발견했는데, 여기에 적힌 문자가 상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어 해독하기 위해 왔습니다."


상고시대라는 말에 노인의 얼굴이 꿈틀했다.


"흐음......우선 모험가패를 보여주시오."


그들은 지체 없이 모험가패를 제시했다. 노인은 세 개의 모험가패를 한꺼번에 받아든 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잠시 후 노인은 모험가패를 돌려주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좋소."


노인의 말이 떨어지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 듯 열린 문에 그들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문을 밀고 들어간 후 열댓 걸음 정도 되는 좁은 통로를 지나자 커다란 원통형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둘레는 적어도 오십 큐빗은 되어 보이는 이 방에는 벽면을 따라 층층이 쌓인 서고가 수십 큐빗 높이까지 뻗어 천장 근처까지 닿아 있었다.

서고 중앙에는 위아래가 뾰족한 기둥 모양의 길다란 다면체가 10큐빗쯤 되는 높이에 있었고, 바닥에서 솟아나온 아주 굵은 나무넝쿨이 다면체를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색으로 빛나는 기둥면에는 각종 도형이 난무하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와......이게 다 뭐냐?"


낯설기 그지없는 풍경에 감탄한 콰리안이 중얼거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엄청난 건 확실한 것 같아."


그때 어디선가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이 옛 문자를 해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남자는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천천천히 걸어왔다.


"상고시대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이들이 당신들이오?"


남자가 재차 질문하자 그륜이 답했다.


"예. 상고시대 자료는 아니지만, 상고시대에 쓰던 문자가 적힌 문서는 가지고 있지요."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찾아오셨소?"


"그렇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남자는 그들을 오색빛 다면체 앞으로 이끌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커 보이는 다면체 앞에는 활짝 펼쳐져 있는 아주 커다란 책이 놓여져 있었다.


"문서를 보여주시겠소?"


콰리안은 고개를 끄덕인 후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남자는 건네받은 두루마리를 활짝 펼친 다음 찬찬히 훑었다.


"허허......정말 상고시대의 문자로구먼."


놀라움이 가득 담긴 어조로 중얼거린 그는 하얗게 빛나는 책 위에 문서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문서가 놓인 책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허공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떠오른 글자는 문서에 적혀 있던 바로 그 고대 문자였고, 전혀 알 수 없는 희한한 문자였던 그것은 이리저리 바뀌기 시작하더니 , 이윽고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글로 변했다.


검은 태양이 떠오르는 날

이 땅에 다시 왕이 돌아오리라

일곱 가지의 검과

번개를 부르는 방패

하늘을 머금은 갑옷이 한 곳에 모일 때

떠나버린 옥새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열두 형제들의 의지가 하나로 이어져

이 땅에 다시 왕이 돌아오리라

그는 동녘 저편에서 용을 타고 내려와

속박된 자유를 해방시키고

사라진 변화를 되찾아내고

빛바랜 혁명을 되살려내니

칠흑 같은 장막이 걷히고

해묵은 전설은 스러질 것이며

이 땅에 다시금 왕의 은총이 피어나리라

그리하여 장벽은 무너지고

왕국은 폐허 속에서 살아나

마침내 황혼의 세계로 뻗어 나가리라



* * *



마침내 푸른 들장미 호 선장에게 선물받은 고문서의 뜻모를 글을 해독한 그들은 여관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바로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핀보가손을 향해 외쳤다.


"주인장! 여기 맥주 세 잔이요! 식사는 돼지 뒷다리구이와 튀긴 양파로. 나중에 안주로 먹게 구운 치즈도 조금 가져다 주시구요."


그러자 핀보가손이 곧 청동 술잔 네 개를 내왔다.


"오늘은 아쿠아비트 안 드시오?"


"하하, 너무 자주 마시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원래 좋은 것은 조금씩 맛봐야 하는 법이지요."


"좋은 태도로구먼.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그날 왕창 들이붓지 않았소?"


그들은 그저께 아쿠아비트의 향미에 감화되어 사정없이 목젖을 술로 적셨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 실컷 마셨으니, 이제 적당히 마셔야죠. 주머니 사정이 그리 녹록치는 않거든요."


핀보가손은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눈앞에 놓인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잔을 가장 먼저 내려놓은 그륜이 입을 열었다.


"그 글은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고문서를 해독해 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40여 일에 걸친 수백 펜큐빗 거리의 여정 끝에 밝혀낸 것 치고는 그리 시원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그 해독했다는 글마저 수수께끼나 다름없었으니까.

거대섬에 얽힌 역사와 전설이 뼈대를 이루는 각종 아리송한 표현으로 버무려진 이 함축성 가득한 글귀 속에 숨겨진 의미를 외지인인 그들이 제대로 알 턱이 없었다.

이것은 마치 잠긴 상자를 기껏 열었더니 똑같은 게 하나 더 나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일곱 가지의 칼, 번개를 부르는 방패, 하늘을 머금은 갑옷.

뭔진 모르겠지만 신비한 힘을 가진 무구를 지칭하는 건 맞는 것 같아."


"동녁 저편에서 용을 타고 내려올 왕의 재목? 사람이 하늘에서 용을 타고 여기로 온다는 소린가?"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가 왕이 될 거라는 소리인 것 같아."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여 보았지만 그닥 값어치 있는 결과를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의문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풀렸다.


"어라, 이미 와 계셨군요?"


콰리안이 윗층에서 내려오는 헤로토스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을 표했다.


"네. 방에서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도착했어요. 배가 고파서 그냥 바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죠."


헤로토스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합류했다.


"그나저나 일은 잘 마무리되었습니까?"


"예. 다행히 그리 어렵지 않게 끝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그륜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혹 이상한 거라도 써져 있었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곧 마법도서관에서 밝혀낸 두루마리의 해석문을 건네주었다. 헤로토스는 조용히 해석본과 원본에 적힌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이윽고 다 읽은 듯 그가 몸을 뒤로 빼자 그륜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글이야 읽을 수 있다지만, 이걸 해석한 거라고 봐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읽을 수 없는 암호와 읽을 수 있는 암호의 차이밖에는 없는 것 같군요."


그러나 헤로토스는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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