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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uan0720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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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uan0720
작품등록일 :
2020.11.30 14:59
최근연재일 :
2021.01.24 18:0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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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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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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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시선(25~26세)(5)

DUMMY

오랜만에 만난 오경수는 외형뿐 아니라 성격까지 변한 듯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았던 그가 사사로운 것들 까지 공유하고 대화하려고 했다. 이성수는 그것이 자신에게 필시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왠지 그런 대화들이 그녀 역시 싫지 않았다. 오경수가 떠나고 나서 처음 찾는 카페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달라진 저을 찾자고 하면 나무로 만든 가구들의 색이 조금 바랬다는 것 정도였다. 어항에는 여전히 물고기는 없었다.




그녀는 오경수와 대화를 하던 중 '공기'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도현의 말처럼 '공기'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일정한 방법을 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 의도를 파악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근 1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도현과 잦은 대화를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와 함께 있을 때의 습관이 나왔다. 이도현은 그녀가 혼자 생각에 빠질 때면 생각이 정리 될 때까지 기다려 주곤 했지만, 성격이 변한 오경수는 그녀를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오경수와 이도현, 그 둘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했지만,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서로 다른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성격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고, 서른살이 되기 전에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면서 지냈지. 그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이러다할 큰 사건들은 없었어. 오히려 나는 네가 궁금해. 항상 메일로 내 사건에 대해서만 주고받았지 네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이성수는 오경수가 말하는 동안 미묘하게 달라진 그의 행동을 찾아볼 겸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특별한 건 없었어. 타지에서 생활하는 만큼 먹는 게 불편한 것 빼고는 말이야."




"사람들과의 어울리는 것도 크게 문제 없고?"




"응. 내가 언어를 잘 못 한다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아. 우리나라도 외국인이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잖아. 오히려 한국보다 편한 것 같아.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우리 집안이 어떤지도 관심이 없어.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니깐 다가가 가는 게 쉬워. 서로 개인 간의 영역만 침범하지 않는 다면 오히려 좋은 곳이지. 나보다는 너한테 더 잘 맞는 생활일지도 모르지."




"서른이 지나서도, 모든 문제가 해결 된 후에도 나라는 존재가 있다면 나도 해외로 나가서 살아봐야 겠네."




이성수는 담담한 척 말했지만, 오경수는 그녀의 말투와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이 끝이 정해져 있다면, 그리고 그 끝이 비관적일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결코 행복해 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 그때까지 내가 잘 버텨보고 있을 테니 잘 마무리하고 넘어와."




"그나저나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좀 낼 수 있어?"




"음... 모레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왜?"




"가기 전에 밥이라도 함께 할까 해서. 이혜윤의 가게에서."




오경수는 이혜윤의 가게라는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도 먼저 그녀의 가게에 가보고 싶었지만, 이성수의 시간을 빼앗거나 혹은 이혜윤의 가게에 가자고 말을 거는 것이 그녀에게는 부담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성수가 먼저 이혜윤의 가게에 함께 가자고 말을 하자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좋아. 아주 좋은 생각이야. 가기 전에 내가 그녀를 한번 만나본다면, 나중에라도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나도 동감이야. 이번에 다시 돌아가면 언제 올지 모르니깐, 한번 눈으로 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럼 시간하고 장소만 알려줘. 내가 거기로 가도록 할게."




그 이후 오경수는 이성수에게 이도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이와 그에 대한 기본 배경이라던지, 출신학교, 성격 등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던 그에 대해서 몇 가지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것들을 적어두었다. 이도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실제로 만나보면 좋겠다고 서로 생각은 했지만, 오경수의 일정이 빠듯하기도 했고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은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대화를 충분히 나눈 후 둘은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공기'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녀의 주변에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태어나기 전, 모든 것이 암흑속에 감춰져 있고 오로지 작은 빛을 내뿜는 작은 두 개의 별이 존재하던 시절에 '공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상황을 파악하느라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공기'의 마지막 말만큼은 그때의 목소리와 느낌까지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었다.




'언젠가 때가 되었을 때 다시 나에게 돌려줘야해. 그때까지만 너에게 맡길게.'




'공기'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따뜻했다. 날카롭지만 부드러웠다. 그녀를 향한 분노가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서른살 이후 자신의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세상의 빛을 처음본 그 순간부터 서른살까지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삶이 십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은 덤덤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서른살 이후의 자신이 세상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그와 동시에 전생에서 자신이 어떠한 연유로 서른살밖에 살지 못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서른살을 넘기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인생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혀 언덕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그러다 그녀는 편의점 안에 있는 냉장고 앞에서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군지 기억할 틈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 번도 본적 없는 야간 아르바이트 생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곧장 냉장고 앞으로 향했지만, 이미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맞은편 구석 상단에 있는 오목거울을 통해 편의점 안을 둘러보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편의점 입구와 계산대를 보았지만, 처음 인사를 했던 아르바이트생 뿐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고, 편의점 안에는 다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었다. 이성수는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곤하거나 술을 마셨거나 정신이 모호해서 헛것을 볼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한캔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아르바이트생은 그녀가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계산을 했다. 이성수는 그가 읽고 있던 책을 슬쩍 보았다. 미술사 관련 서적이었는데, 제법 두꺼워 보이는 것이 관련 전공자가 읽을 법한 전문서적인 듯했다.




이성수는 카드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생은 그녀의 인사에 당황한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제가 들어온 후에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간 사람은 없었나요?"




그는 그녀의 이상한 질문에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그녀가 누구인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인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인지를 판단하려는 듯 한 기운이 돌았다. 하지만, 딱히 그래 보이지 않았는지 그는 나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니요. 원래 이시간대에는 사람들 잘 안 와요. 간혹 이렇게 맥주 사러 오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거의 1시간에 한두명 정도에요. 그래서 웬만하면 오가는 사람들은 다 기억하는데, 마지막 손님이 나가시고 거진 40분 만에 그쪽이 처음이에요."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 거짓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해 보면 굳이 그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녀가 편의점에 들어올 때 '공기'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관련된 무언가 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가볍게 미소를 짓고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을 나온 후 그녀는 다시 한번 익숙한 얼굴이 보였던 곳을 쳐다보았지만, 냉장고만 보일 뿐이었다. 어느새 '공기'는 다시 그녀의 주변으로 돌아왔다.




"너도 저 안에서 무언가를 느낀 거지?"




'공기'의 밀도가 변했다. 그녀는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최대한 집중해서 몸에 기억했다. 이번 '공기'의 반응은 분명 긍정의 의미일 거라는 판단이 섰다.




"저 안에서 내가 보았던 물체가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 형상을 한 무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와 관련된 것일 거야. 그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어?"




이번의 '공기'의 밀도 변화는 방금전과는 달랐다. 그녀는 지금의 느낌을 부정의 의미라고 기억해 두었다. 이도현과 오경수의 말 처럼 '공기'의 미세한 변화를 찾고 기억하는 것이 분명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다면 지금은 좀 더 지켜볼 수 밖에 없겠네. 내 생각에는 얼마 전에 꾸었던 꿈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해."




'공기'는 반응이 없었다. '공기'라고 할지라도 그녀가 꾼 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그녀는 오경수에게 이혜윤의 가게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그녀는 문자를 보내면서 이혜윤을 처음 만난 날 이도현은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느낌을 오경수는 느낄 수 있을지 기대해 보았다. 만약 오경수도 느끼지 못한다면 적은 확률로 '공기'와 관련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성수는 일단은 이도현에게는 오경수와 이혜윤을 만나게 한 것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녀는 맥주를 마시고 인터넷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을 찾아봤다. 과거 자신이 살았던 때와 달라진 것이 있는지를 비교해 보기 위해 매일 꾸준히 하고 일상 중 하나였다.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뉴스에 나올 정도의 큰 사건들 위주로 비교를 했다. 그동안 그녀가 알아 낸 것은 세상에 영향을 미칠만한 큰일들은 변화 없이 일어났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몇몇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변화가 있었다.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그녀라는 인물이 태어나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했다.




이틀 후 오경수와 약속한 날이 되었다. 그들은 이혜윤의 가게 앞에 있는 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오경수는 이성수를 만나자마자 질문을 했다.




"여기 유명한 곳이던데? 알고 있었어?"




"아니. 전혀."




이성수는 이혜윤의 가게 유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오경수는 핸드폰으로 무언가 검색을 하더니 이성수에게 보여주었다. 몇몇 블로그를 통해 이혜윤이 운영 중인 가게가 숨겨진 맛집이라는 글들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네가 주소를 보내주고 찾아보려고 주소를 검색했는데, 몇몇 관련 자료들이라고 해야 하나? 정보들이 뜨더라고."




"전혀 몰랐네. 그저 이도현하고 자주 가는 술집 오너가 추천해 준 곳이라서 오게 된 거야."




"이혜윤이라는 여자를 만나는 것도 기대 되지만 음식도 기대 할 만하겠어."




"너무 음식에 빠지지 말고 뭔가 느껴지는 게 있으면 말해줘."




그녀는 이도현과 걸었던 길을 오경수와 똑같은 경로로 걸었다. 아마 그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걷고 있는 방향도 똑같았다. 이도현과 오경수를 그녀의 왼쪽에 둔 채로 비슷한 보폭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무언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가게에 도착하자 이혜윤은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다행히도 이혜윤은 그들을 지난번과 같은 자리로 안내해 주었는데, 안내하면 이혜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친구예요?"




이성수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질문에 놀라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녜요. 유일한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이혜윤 이성수의 대답에서 무엇을 느낀 것인지 더 이상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그녀는 분홍색 바탕에 노란색 흰색 꽃 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이성수는 그런 옷을 입고 요리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어깨에서부터 무릎까지 내려오는 앞치마를 하는 것을 보고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혜윤은 그들을 맞이 하기 위해서 잠시 앞치마를 벗어 두었었다.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온 것 같은데, 손님이 없네요?"




오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부엌 입구는 카운터 뒤에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얇은 대나무로 만든 발뿐이었다. 발의 가운데에는 흰색 동그라미 세 개가 세로로 그려져 있었는데, 동양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아마 그 그림이 아니더라도 대나무로 만든 발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동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오경수의 질문에 발 뒤쪽의 부엌에서 이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가게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귀한 예약손님이 있으면 추가로 손님을 받지 않아요. 성수씨는 저에게 귀한 손님이니깐요."




이성수는 이혜윤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그녀가 짓고 있는 미소가 떠올려졌다.




"아. 그렇구나. 왠지 더 귀한 대접 받는 것 같네요."




오경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이혜윤이 코스요리를 내오기 시작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먹는 속도에 맞춰서 다음 따듯한 다음 음식을 준비해 왔다. 이혜윤은 음식을 내오면서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도 함께 내주었다.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웃는 게 매력적인 사람이야."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서 자연스럽게 빙글빙글 돌리던 오경수가 말했다.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도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야. 특정지을 수는 없는데 그녀의 웃음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거 같아."




"조심해. 네가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고 홀리려는 것일 수도 있어."




오경수는 이성수의 대답의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혜윤씨정도면 나한테는 감지덕지하지."




그녀는 자신이 장난으로 던진 말에 오히려 오경수가 대꾸하자 그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 난 듯 말을 이었다.




"아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뭔데?"




"너 평행우주이론에 대해 알고 있어?"




"어느 정도는? 아마 아이인슈타인의 양자역학의 토대를 만들게 된 이론아닌가?"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의 우주를 이루는 모든 입자가 파동이라고 하다면, 한 입자는 동시에 두 장소에도 있을 수 있다는거지. 즉,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의자에는 우리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 다른 공간에서 앉아 있을 수도 있는 거지.”




“계속해, 듣고 있어.”




오경수는 이성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주변 사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 듯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전생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일지도 몰라. 예컨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인터넷 서버에 빗대서 지구의 첫 번째 서버라면, 전생의 나는 지구의 두 번째 서버에 살았던 거지. 그래서 뭔가 비슷하게 세상이 굴러가지만, 미묘하게 다른것들이 있는 거지. 이해하겠어?”




“그래서?”




“그래서 지금 이 두 서버가 통합되어 가는 중일 수도 있는거야. 그래서 나는 내가 전생이라고 기억하는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것이고. 그러다 결국엔 두 서버중에 한명만이 살아 남는 거지.”




“그래? 그러면 1서버의 너와 2서버의 그 사람이 한명이라는 건 어떤근거로 나오는 거야?




"음... 그건...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오경수와 이성수는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말하는 평행우주이론이 어느 정도는 설명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지. 그보다 말이야."




오경수는 갑자기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성수는 그의 행동의 의미를 몰랐지만, 왠지 따라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가 시키는 대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오경수가 의자에서 상체를 살짝 일으키며 이성수의 귀 쪽 부분까지 다가갔다. 그들의 볼은 종이 한장 차이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네가 말한 평행우주이론보다 더 중요한 건, 왜 혜윤씨는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걸까?"




오경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옆에서 본다면 그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성수는 역시 그녀는 자신의 환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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