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ujuan0720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의 흔적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yujuan0720
작품등록일 :
2020.11.30 14:59
최근연재일 :
2021.01.24 18: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696
추천수 :
1
글자수 :
127,359

작성
20.12.01 06:00
조회
40
추천
0
글자
12쪽

공기(17~20세)(1)

DUMMY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을 부를만한 적당한 이름을 짓기 위해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왕 이름을 짓는 거 그럴싸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너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네 이름을 물어보거나, 아니면 네가 원하는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쉬워."




그녀의 방은 또래의 여자아이들의 방과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여자 이면서도 남자 이기도 했기 때문인지 방이 화려하거나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녀의 방은 평범했다. 창문 아래로 침대의 머리맡이 놓여 있었고, 침대의 오른쪽에는 1m가 되지 않는 작은 서랍, 그 옆으로는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깔끔했다.




방에는 그 흔한 시계 조차도 없었다. 평소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해 그녀의 키만 한 높이의 책장에 책이 가득 찬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 없는 소박한 방이었다. 그녀는 방을 꾸미는 것보다는 책장을 채워가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녀의 방은 책으로 가득했다. 책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었는데, 소설, 자소서, 역사, 추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래서 그녀의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녀가 책을 읽는 모습 기억했다. 쉬는 시간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점심시간 식사를 하고 도서관에 가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녀가 유독 책을 많이 읽게 된 이유는 남자였던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던 습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금 자신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가까이 두었다. 그녀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의 원인을 찾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나는 전생에 남자였어. 아, 물론 특정한 종교를 믿는 건 아닌데, 지금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단어가 없는 거 같아서. 아니면 환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려 나? 아무튼."




그녀는 마우스를 잡고 스크롤을 내리면서 어울릴만한 단어를 고르고 골랐지만, 딱히 그녀 마음에 드는 표현이 없었다. 그러다 그녀는 검색 창에 또 다른 그녀에 대해 느껴지는 것을 적고 엔터키를 눌렀다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러자 그녀 화면 제일 상단에 뜬 글을 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질문을 누군가 했고, 거기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가 나왔다.




"딱 너의 상황에 맞는 두 가지가 있네. 바람 하고 공기. 둘 중에 뭐가 마음에 들어?"




그녀는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허공에 질문을 하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는 스스로 결론을 지었다.




"아무래도 공기가 좋겠어. 바람은 있는 날도, 없는 날도 있지만 공기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 하잖아. 네가 언제나 내 주변에서 서성이는 것 처럼 말이야. 어때 괜찮지?"




대답은 없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족해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너도 들을 수 있는 건 맞겠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눴던 것 처럼 말이야."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긍정을 표하기 위해서인지 부정을 표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공기'가 그녀 주변의 공기를 변화 시키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했고 그것만으로도 대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이미 한번 배워본 것이었기 때문에 집중하여 수업을 듣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수업시간 중 그녀가 집중하고 듣는 수업은 윤리 수업이었는데, 같은 반 친구가 그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윤리 수업을 그렇게 열심히 들어? 수능 볼 때 윤리 시험 볼 거야?"




"아니. 나는 딱히 수능을 염두에 두고 듣는 건 아닌데. 그냥, 다른 수업은 어떤 지식을 쌓는 거라고 한다면 윤리는 삶을 지혜롭게 살아 가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서."




"지식을 쌓는 거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건 비슷한 거 아니야?"




"아니지. 미묘하게 틀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어떻게?"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던 친구는 그녀가 하는 말이 신기하다는 듯 관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들어봐. 네가 수리를 공부해서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뭐 이런 기본 사칙연산을 제외하고, 미분 적분을 배워서 어디에 쓸 수 있지? 관련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쓸 곳이 없지 않나?"




"음... 아무래도 그렇긴 하지? 그럼 윤리는 쓸 만 하다는 거야?"




"당연하지. 윤리는 역사적인 성인들에 대해 배우는 거잖아. 그들이 제시한 삶의 철학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내가 살아 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방향성을 배울 수 있는 거지. 가치관을 성립하는 대에도 도움이 되고 말이야."




반 친구는 그녀의 말에 완전히 동의 할 수는 없지만 일리는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자리는 교실 창가 바로 옆에 있는 책상이었다. 3월의 봄바람이 조금 열려 있는 교실 창문을 통해 커튼을 지나 그녀의 볼에 닿은 후 미끄러지든 교실의 뒤로 향했다.




바람은 사물함을 지나고 게시판에 붙어있는 종이들을 사이사이를 빠져 나가 교실 천장에 달려 있는 선풍기에 도착했다. 천장에는 5개의 사용하지 않는 선풍기가 있었는데,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 두었다. 바람은 천에 쌓인 먼지의 냄새를 머금고, 칠판으로 날아가 분필의 냄새도 머금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교실 밖의 흙냄새, 꽃향기, 풀 냄새와 옅은 먼지와 분필 냄새, 종이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냄새를 가진 따스한 봄바람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그 안에 품어져 있는 냄새들이 어우러져 그녀의 기분을 한층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그녀가 바람의 냄새에 취해 마음이 바람을 따라 창문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윤리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녀를 다시 교실로 불러들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현자들은 크게 세 가지 기질로 나눠서 보았어요. 맹자가 주장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 순자의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 고자의 ‘인간의 본성이 선과 불선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치 물이 동서로 나뉘어 있지 않은 것과 같다’라고 하는 성무선악설이 이에요.


유럽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상으로 백지설이 있는데, 이는 인간에게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본유 관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관념은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룩 된다는 로크의 학설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는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썹을 치켜 떴다. 그녀의 친구는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는 윤리 수업을 듣는 것 보다는 주요 과목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수능에 볼 공부를 하느라 윤리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대부분의 학생은 윤리 시간을 선호하지 않는 거 같아. 일단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대부분이었고, 한국 사회에서 윤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치루는 수능의 한 부분일 뿐 이기도 해. 학교에서는 인기 있는 과목을 공부하고 대학은 그것을 토대로 학생을 평가하지. 과거에 내가 살던 세상의 학교나 새로운 세상의 학교나 다른 게 없는 거 같아. 학교는 무엇을 배우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다니는 걸까?’




그녀는 소리를 내어 말하는 대신 머릿속에서 생각하며 '공기'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다.




“각각의 학설 중 옮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평생 헌신과 봉사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각 학설은 주장하는 바는 다르지만 결국 정신적 수양을 통해 도덕적 완성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들 자신들이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중 그녀를 제외하고 수업에 집중하던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저는 성무선악설이 맞는 거 같아요.”




그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평소에 눈에 띄지 않는 아이이었다. 그의 말투와 평소의 행동은 투박하거나 딱딱하지 않았고, 부드럽고 나근나근한 목소리 였다. 동물에 표현하자면 꽃사슴 같았다. 흔히들 알고 있는 동물이지만, 막상 실제로 보면 긴 속눈썹에 매료되어 버리는 꽃사슴.




윤리 선생님은 수업을 가르칠 때와 다름 없는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지만, 자신의 질문에 대답이 돌아왔다는 것이 의외이지만 기쁜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니?”




이번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은 사전에 준비라도 해 온 듯 막힘이 없었다.




“백지설이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주위의 환경에 의해 성격이나 외형적, 내형적 모습이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보고 배우는 게 사람의 특징인데, 태생부터 선한 사람만 있거나 악한 사람만 있다면 인간은 모두 악하거나 선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태생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고, 그 두 분류가 공존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엔 누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느냐가 결정되지 않을까요?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결국 영향을 더 많이 주는 쪽의 모습을 보이겠죠. 그러다 보면 결국 백지설과 일맥상통하게 아닌가요?”




윤리 선생님과 남학생의 대화는 계속되었지만, 그녀는 대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저 남학생이 한 말이 진짜 신기해. 왜냐면 저 아이가 주장한 이야기가 전생에 내가 주장한 것과 똑같아. 혹시 전생의 내가 없어지면서 현생에서 누군가 과거 나의 삶을 대신해서 살고 있는 건가? 물론 너도 모르겠지?'




그녀는 '공기'에게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음... 그러니깐 나라는 물질적인 사람은 없지만 정신은 있는 거야. 또 다른 내가 되어서. 마치 한 사람의 인생에서 슬픔을 마이너스로 기쁨을 플러스로 수치화해서 합하면 인생 마지막에는 0이 된다는 것처럼, 내가 빠진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 채워 넣는 거지.’




그녀는 돌아오는 대답 없는 대화를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그것보다도 내일 남자였던 그녀의 과거의 흔적을 쫓아 여행을 간다는 것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방에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내일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가볼 거야. 내가 예전에 써 놨던 글들을 보면서 장소들을 돌아보고 올 거야. 부모님에게는 이미 계획서를 보여줬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앉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먼저 과거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볼 거고. 그다음에는 과거 나의 부모님을 만나볼 거야. 덤으로 과거 남자였던 나도 만날 수 있다면 더 좋고. 이제 12년 남았어. 여자의 나로서 살 수 있는 인생이 반도 안 남았어."




그녀는 자신의 방 안에 있는 책상에 앉아 틈틈이 자신이 써왔던 글들을 보면서 답사해야 할 장소들을 추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지 않음에 감사했다.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 할 수 있는 정도의 범위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설렘에 쉽게 잘들 수 없었다. 결국 뜬눈으로 새벽까지 누워있다가 4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새벽 7시, 알람을 맞춰 놓은 핸드폰 진동에 그는 눈을 떴다. 밤새 푹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두근거림에 눈은 금세 떠졌다. 그녀는 아침 일찍 미리 꾸려놓은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뒷모습에서 긴장한 그녀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지만, 발걸음에서는 망설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의 흔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재회(25~26세)(9) +2 21.01.24 28 0 15쪽
18 바람(25~26세)(8) 21.01.19 27 0 14쪽
17 그림자(25~26세)(7) 21.01.12 31 0 18쪽
16 분위기(25~26세)(6) 21.01.06 39 0 15쪽
15 시선(25~26세)(5) 21.01.02 29 0 18쪽
14 다른 부류(25~26세)(4) 20.12.31 29 0 17쪽
13 홀수(25~26세)(3) 20.12.27 34 0 17쪽
12 이해(25~26세)(2) 20.12.25 34 0 15쪽
11 무의식(25~26세)(1) 20.12.22 34 0 16쪽
10 일치(20~25세)(5) 20.12.19 50 0 16쪽
9 한숨(20~25세)(4) 20.12.17 29 0 14쪽
8 증명(20~25세)(3) 20.12.17 27 0 14쪽
7 두번째(20~25세)(2) 20.12.13 35 0 14쪽
6 진심(20~25세)(1) 20.12.10 38 0 14쪽
5 연속성(17~20세)(4) 20.12.06 36 0 14쪽
4 조력자(17~20세)(3) 20.12.03 38 0 14쪽
3 이질감(17~20세)(2) 20.12.02 42 0 14쪽
» 공기(17~20세)(1) 20.12.01 41 0 12쪽
1 과거를 기억하는 여자(~17세) +2 20.11.30 76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