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2,023
추천수 :
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2.08 23:52
조회
101
추천
3
글자
11쪽

3화 - Who Are U

DUMMY

바스타프의 표정이 흉신악귀마냥 일그러졌다.

백우 시절의 기억들 중에서도 가장 떠올리기 싫었던 것이 바로 가족에 대한 기억 아니었던가.

헌데 기껏 환생까지 했는데 여기서도 가족이라는 게 이 꼴이라니.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두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첫째는 그 시절처럼 백우, 아니 바스타프 자신이 무력하지 않다는 것.

둘째는 눈앞에 있는 말종 새끼가 사람 새끼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번만 기회를 준다. 그 사람 얌전히 내려놓고 일로 와서 대가리 딱 대라. 왕돼지.”

“쿠헤엑! 너야말로 그 흉물스런 주먹을 내려 놓아라 바스타프! 뭘 잘못 먹고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쇄도할 기세를 보이는 바스타프를 보며 족장은 초조해졌다.


기껏 인질을 잡았는데도 놈에게서 망설이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건드린 것인지 아까보다 더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 어이! 꾸륵! 뭘 하려는 거냐! 당장 거기 멈추란 말이다!”

“···네놈이 쥐고 있는 건 인질이 아니다 왕돼지. 네놈이 쥐고 있는 그 사슬 끝에 있는 건···나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브레이크다.”

“······!”


족장은 진심으로 바지에 적실 것 같았다.

놈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지금부터 벌어질 상황이 너무도 기대된다는 듯이.

“네, 네 녀석···!”

“왜 그러지···? 내가 다가가면 그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마치 웃는 얼굴을 앞세운 그가 마치 어서 해보라는 듯,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족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죽이는 것은 그가 바라는 일이었다.

이 인간 여자만 없으면 저 놈은 정말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날뛸 수 있음을 뒤늦게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앞에 내밀어 자신의 안위만이라도 보장받으려 했다.

“꾸이익···! 아, 알겠다! 내가 졌다! 이, 인질은 해방한다. 데리고 가라! 넌 자유다!”


힘없이 바닥에 늘어지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바스타프는, 이내 다시 족장을 올려다보았다.

“······.”

“이, 이, 이걸로 넌 자유다. 어서 데리고 가라···!”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남았다.”


“꾸이익···?”

“네놈 때문에 내가 태어난 거야. 맞지?”

“······그, 그렇다···.”

“근데 난 그게 무척 맘에 안 들거든.”

“자, 잠깐만! 꾸륵! 이, 인간! 인간은 부모에게 감사한다고 들었다!”

“호오, 제법 아는 게 많은 모양이네. 근데 말이지···.”

“······?”


뚜둑.


혼신의 레프트를 날리기 전 손가락을 풀면서, 바스타프는 전에 없이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겁탈해서 낳은 자식은 반드시 지 애비를 찢어 죽이는 법이거든.”

“···꾸히익···?!”

*


망할 놈의 오크들을 쫓아가서 일일이 다 때려죽였다.

빌어먹을 사체들을 모조리 사람을 삶던 솥단지 안에 대충 구겨 넣은 뒤, 놈들이 했던 그대로 삶기 시작했다.


먹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후우···겨우 정리가 되었군.”


손을 툭툭 털고 아직도 기절한 채인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어머니 쪽을 돌아보았다.

젊었을 적엔 제법 괜찮은 여성이었던 것 같지만, 이미 노예 생활로 많이 망가진 몸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그냥 놔두고 가도 상관은 없을 터였다.

바스타프, 아니 백우는 그저 이 하프오크의 육체를 넘겨받았을 뿐인 생판 타인이었으니.

그러나 백우는 자신의 옛 가족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술기운에 가족을 구타하던 난봉꾼 아버지 탓에, 결국 고등학교 시절 가출해서 길거리에서 폭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것을 그의 복싱 코치가 구제해주었던 것이다.


프로복서로서 어느 정도 성공한 후 그는 필사적으로 가족을 찾아갔지만, 결국 어머니는 구타에 못 이겨 자살하고 그의 아버지 역시 알콜 중독으로 사망한 후였다.


어머니를 그 똥통 같은 집에서 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역린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으음···.”

간신히 의식을 차린 그녀가 눈을 뜨고 보인 풍경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자신이 알던 왜소한 체구가 아닌, 벌크업 된 육체를 가진 아들놈이 죽은 오크 사체를 토막 내어 솥에 넣어놓고 끓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국자를 쥐고 있는 모습.


너무 놀라 신음성을 내며 다시 기절해버렸다.

왜 그러지? 하고 잠시 자신과 솥단지를 번갈아 본 바스타프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날 아침.

부락 안을 돌며 쓸법한 것은 전부 쓸어 담았다.

여기서 사람 사는 동네가 얼마나 먼지 감도 안 잡히는 만큼, 챙길 수 있는 것은 전부 챙겨야 했다.


단지 무기 종류는 바스타프 자신이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적당한 나이프 몇 자루만 챙겨서 한 자루는 어머니의 곁에 던져두고 자신의 허리춤의 벨트에 단단히 매었다.


오크들이 생전 입던 의류도 박박 긁어모아 자루에 우겨넣었다.

얼마나 할지는 모르지만, 어찌됐든 가죽제품이니 인간 마을에서 팔면 푼돈이나마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자신도 족장이 입고 있던 옷을 입었다.


맘에는 안 들지만 당장 입을 것이 마뜩찮으니 별 수 있나.

원래 입고 있던 옷은 벌크업이 되면서 거의 찢어진데다가 오크들의 피로 떡칠이 되어 도저히 쓸 물건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도 적당한 옷을 찾아주려고 했지만 오크들의 허리통이라는 것이 인간 여성의 그것과 궤를 달리하다보니, 적당한 가죽을 통짜로 가죽끈으로 감아 원피스 흉내를 낸 것을 건네주었다.


대강 준비가 끝난 듯하자 3자루나 되는 등짐을 대충 떠메고 이미 솥을 치워버린 모닥불 앞에서 쉬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가시죠. 어머니가 원래 살던 곳으로.”

“······.”


답은 하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그의 얼굴만 바라보는 모습에, 바스타프, 아니 백우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눈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어머니.”


힘겹게 입을 떼어, 평생 다시 입에 올릴 일이 없을 것 같던 그 단어를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당신은 내가 아는 바스타프가 아니예요.”

“······!”


단호하게 그를 부정하는 어머니.

백우는 가슴 어딘가 미어지는 감정을 느끼고 메고 있던 자루를 무심코 내려놓아 버렸다.

“···그것이···.”

“···당신은 누구죠?”

“바, 바스타프 입니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백우는 모르고 있었다.

원래의 바스타프가 평소에 자신을 바프라 부르며 어머니에게 애교를 부리던 것을.

“내가 아무리 오랜 노예 생활로 피폐해졌어도, 자기 배로 낳은 아들을 헷갈릴 정도로 우둔하지 않답니다.”

“···크음···.”


입술을 씹으며 곤란해 하는 바스타프를 보며, 그녀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 진짜 아들은 어디 있죠?”

“그러니까, 그···.”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백우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어떻게든 화제를 바꿔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하핫! 어, 어머니! 이, 이이걸 보시죠! 제가 족장한테서 빼앗은···.”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들의 생사였다.

“족장이라고 부르는군요. 바스타프는 그래도 꼬박꼬박 아버지라고 불렀었는데.”

“쿨럭···!”


예상외의 사태에 기침까지 하며 당황했다.

아니, 기침을 하는 척을 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얼버무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서, 진짜 바스타프는 어디 있나요?”


정말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그녀의 한없이 진중한 눈동자가 그를 한없이 압박해왔다.

“···당신이 죽인 건가요? 다른 오크들처럼?”

“그, 그건 아닙니다.”

“······.”


다시 말없이 그의 눈동자를 응시해오는 모습에 바스타프는 오히려 당당하게 마주 보았다.

분명 자신의 자아는 그녀가 알던 바스타프는 아니다.

다만, 그것이 수치스럽거나 숨겨야 할 일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도망쳤나요?”

“···아닙니다.”


또다시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결국 압박감을 못 이긴 바스타프는 다시 등짐을 지고서 일어난다.

“그런 것보다, 어서 사람 사는 마을로···.”

“···안 돼요.”

“······!”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기 전에는 안 돼요.”


곤란한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짐을 내려놓고 주저앉는 바스타프.

계속해서 시선을 보내오는 그녀를 보며 결국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바스타프는 어디···.”

“···접니다. 제가 바스타프 맞습니다.”

“······.”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설명해보라는 듯 눈짓하는 그녀를 마주 바라보며, 최대한 그녀가 알아듣기 쉽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 상황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더 걱정이었다.


“그러니까, 이 몸은 그···바스타프가 맞아요.”

“···그건 보면 알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이, 일단 지금은 그걸로 납득해주시면···.”


갑자기 무언가 결심한 듯, 그녀가 모닥불에 손을 뻗어 불이 붙은 나무조각 하나를 꺼내 자신의 턱 아래에 슥 하고 들이밀어 보였다.


깜짝 놀란 바스타프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제지하려 하자 오히려 더 가까이 대면서,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어서.”

“아아아, 그러니까 그거 좀 내려놓으세요! 지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 중이었다고요!”

“말 하면 내려놓을게요.”

“으그극···.”


아무래도 어중간한 둘러대기나 포장도 통하지 않을 모양이다.

환장할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 머릿속으로 그 망할 신인지 뭔지를 불러 보았지만 답이 없는 것을 보면 사실대로 말해도 별 문제는 없을 모양.


“후우-. 좀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식사라던가···.”

“이미 오랜 노예생활로 단련되어 있는 몸인걸요.”

“끄응···.”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바스타프, 아니 백우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어머니가 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3화 END-


작가의말

오늘 일이 있어서 어제 밤에 자려던 시간에 급하게 예약으로 밀어넣다보니 회차가 꼬여있어서 재업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3화 - Who Are U 21.02.08 102 3 11쪽
3 2화 - 뚝배기 깨는 남자 21.02.08 125 3 10쪽
2 1화 - 전생을 할 때는 신중히! +2 21.02.08 153 4 11쪽
1 프롤로그 21.02.08 209 5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