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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2,020
추천수 :
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2.08 20:00
조회
152
추천
4
글자
11쪽

1화 - 전생을 할 때는 신중히!

DUMMY

정신이 들자마자 느껴진 것은 온 몸의 격통이었다.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 살피면···.


“···이런 육시랄 놈의···.”


난장판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러 명의 상대에게 화끈하게 집단구타를 당한 듯, 팔다리 중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 병신 같은 피부색은 또 왜이래?”


미묘하게 연두색 빛을 내는 피부가 맘에 안 들어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쉬는데, 묘하게 숨결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마의 손을 아래로 가져가 턱 어림을 만져보면 거기에는 있어선 안 될 것이 느껴졌다.


“잠깐만, 야! 신인가 뭔가 하는 새끼! 아직 있냐?!”

[···무슨 일이지?]

“야 이 사기꾼 놈아! 내 피부랑 턱주가리가 왜 이따위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그가 길길이 날뛰다가 부러진 다리의 통증 때문에 바르작거리자, 신은 조용히 읊조렸다.

[그대는 나의 사도로서, 죽어가던 하프 오크의 육체를 이어받도록 했다.]

“하프···뭐?!”

[하프 오크. 자네도 오크 정도는 알고 있지 않나?]


학창 시절 잠깐 했던 게임에서 오크라는 몬스터가 나오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린 백우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장난하냐?! 제대로 인간으로 환생 시켜야지 새끼야! 이게 뭐냐고!?”

[그대는 나의 사도. 그리고 나는 본래 오크들의 신. 하지만 자네의 영혼이 인간이었음을 배려한 배치였다만···.]

“지랄하고 있네! 보디, 체-인지!!!”


바락바락 악을 쓰다가 기어이 피까지 토하는 백우.

“쿨럭···!! 당장, 인간 몸뚱아리로 바꾸라고···!”

[무리다. 전생은 이미 완료되었다. 그대는 이제부터···.]

“씨바아아아아알!!”


[······.]

“너 이새끼···! 어디서 뭐하는 놈인지 잘은 모르겠다만, 언제가 되었건 딱 기다리고 있으라고···면상이 걸레짝이 되도록 두들겨 주마!”

[···그것은 있을 수 없다.]

“시끄러! 아무튼 난 이대로 죽을 거니까 나머진 알아서 잘 해보라고.”


이를 악물고 바닥에 드러눕는 백우의 선언에 흠칫한 신은 그제서야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직감했다.

모처럼 찾은 우수한 투사의 영혼이다.

게다가 신으로서 위상을 잃어가는 그로서는 이 이상 이세계에서 혼을 가져다 전생시키는 일도 하기 힘든 상황.


[사도여, 진정하시게.]

“······.”

과감하게 혀를 앞니 사이에 끼우는 모습을 본 신은 필사적으로 얼마 없는 위상을 동원해 그의 자살 시도를 뜯어말려야만 했다.


“썅! 왜 말려! 난 이딴 몸뚱이 필요 없다고! 사도인지 사발인지도 관심 없어!”

[일단 이쪽의 이야기도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떤가.]

“···내 조건은 하나뿐이다. 인간으로 바꿔 줘. 이상.”

[······.]


그의 요구가 들어주기 불가능한 것이기에, 신은 한참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일단 어떻게든 이 투사를 구슬려서 사도로서 활동하게 해야 하는데···.


[사도여,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네.]

“나한텐 중대한 문제라고. 이 꼬라지를 보란 말이다! 이 꼬라지로 어디 가서 헌팅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냐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으르렁대는 백우를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신은 조곤조곤히 폴리모프 마법부터 시작해서 외모를 보강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그에게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자네에게 있어 중요치 않네.]

“···그럼, 폴리모프인지 뭔지 나한테 걸어줄 수 있다는 거야?”

[······.]

“이 새끼가···.”


잠시 으르렁대던 백우는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몸을 뒤척였다. 아직 여기저기 아프긴 했지만···아니, 잠깐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팔다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면 어느새 구타의 흔적은 사라지고, 벌크업을 몇 십 년은 해온 듯 빵빵한 근육질의 육체가 보였다.


물론 여전히 피부색은 연두색이었고, 주걱턱에는 아래쪽 송곳니가 조금이지만 삐져나온 오크 면상이었지만, 적어도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진짜였다.


[···얼마 없는 위상을 모두 동원하여 자네를 사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투사로 강화했다.]

“호오.”


가볍게 스탭을 밟으며 복싱의 기본인 원투 펀치를 가볍게 날려 본 백우의 눈빛이 변했다.

챔피언이 막 되고 난 후의, 전성기 시절 자신의 몸보다 더 강력한 육체임은 곧바로 알아챘다.

[어떤가.]

“끝내주는군. 이거라면 뭐가 됐든 다 때려죽일 수 있겠어.”


그가 짖궂은 미소를 보이며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풀기 시작했다.

환생 기념으로 로드워크라도 해볼까 생각하던 찰나,


“뭐야? 바스타프 너 이 자식, 아직도 살아 있었냐? 취익.”

“꾸헤헤, 피가 섞인 더러운 종자 치곤 제법 생명력이 강한 모양인데?”


척 봐도 추잡스러운 얼굴을 한데다 덩치까지 땅딸막한, 한마디로 글러먹은 외견의 두 젊은 오크가 백우의 앞에 나타났다.

“···죽여도 되냐?”

[······.]


신은 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도가 되기로 한 모양이니, 이 이후는 그저 그가 바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살던 간에, 그의 등에 자리 잡은 사도의 증표가 있는 이상 그가 강해질수록 자신의 위상이 높아질 터였다.


“뭐야?! 뀌익! 바스타프 너 이 새끼, 방금 뭐라고 지껄였냐?”

“뭘 잘못 쳐 먹었는지는 몰라도, 꾸헬···! 너 까불면 또 걸레처럼 두들겨 주는 수가 있어···?”

백우, 아니 바스타프는 아주 상쾌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이 쓰레기들은 죽어도 되는 놈들인가 보구나.


스윽.


가볍게 양 손을 턱 근처에 올려 복싱 자세를 취하고, 금방이라도 앞으로 쇄도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뀌이? 뭐야, 어쩌려고? 덤빌려고? 꾸헤헬! 너 같은 더러운 피···!”


스팟.


간격은 6미터.

전생에 헤비급 프로복서였던 바스타프의 최대 특기는, 압도적인 돌진력과 거기서 이어지는 괴력을 살린 난타전이었다.


그런 그에게 6미터라는 간격은 없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하물며, 지금 그의 육체는 하프 오크의 육체에 사도로서 각인까지 받은 최상급의 상태.


거의 빛의 속도마냥 슉 하고 쇄도한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펀치, 레프트 훅을 냅다 웃고 있는 오크의 관자놀이에 직격시켰다.


빠각-!!


힘 조절을 하지 않고 힘껏 내지른 주먹이 마치 쇳덩어리마냥 오크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머리 안까지 뚫고 들어간다.

“······!!”

“꾸억?!”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머리가 뚫린 오크의 눈알이 튀어나오며 바닥에 널브러지고, 옆에서 같이 웃고 있던 오크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꾸히익···?!”

“···아 개 같은, 아직 충분히 못 때렸는데 홀라당 뒈졌잖아.”

분명 두개골을 작살내는 감촉은 바지에 지릴 정도로 끝내주었다.


다만 시체를 패는 취미가 없는 그로서는 이미 바닥에서 움찔거리며 죽어버린 오크 놈을 보며 입맛을 다셔야 했다.


젠장, 아직 부족해.

좀 더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게···.

그렇게 생각한 바스타프의 시선이 슥 하고 도망치려고 뒷걸음질 중인 다른 오크에게 향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꾸힉?! 자, 잠깐만! 바, 바스타프! 기다려!”

“아직, 손이 덜 풀렸거든···잠시 이쪽으로 좀 와줄래?”

“꾸히이익?! 바, 바스타프! 기다려! 나는 너의···!”


무언가 말하려는 오크의 입에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꽂아 말 하는 것을 막았다.

“안 돼. 안 된다고. 샌드백은 떠드는 거 아니야. 알았어? 샌드백이 할 일은···.”

“꾸헤윽···! 헤엑···! 나, 나는···!”

“쉬이이-.”


상냥하게 웃으며 이미 이빨이 마구 깨지고 빠져버린 오크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말을 막은 바스타프가, 그 부드러운 미소와는 정 반대의 말투로 속삭였다.

“···그냥 맞는 거야.”

“······!!”


이번엔 아까와 달리 완력을 조절해가며, 이 추악한 오크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얼굴과 복부를 좋을 대로 두들겨 주었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촉이 그를 한껏 고양시킨 것은 당연했다.

“아-···. 이 맛이야···역시 글러브는 좀 그렇다니까.”


프로복서로서 살았던 그였지만, 늘 답답한 복싱 글러브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에 만족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런 야만적인 세계에서라면 맨손이든, 주먹에 무언가 흉기가 될 만한 것을 달고 두들기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아마추어 시절 생각했던 이런저런 살인 글러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생각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양감에 몸을 떨며 기뻐하기를 한참.

잠시 후 머리가 맑아진 그가 바닥에 널브러진 두 오크 시체를 보며 무언가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는 듯 표정이 멍해졌다.

“···난 어디서 살면 되지?”


생각해보면 지금 그는 바스타프라고 불리는, 아마도 주변에서 핍박받는 하프 오크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오크가 사는 부락이 있다는 소린데···.

정작 백우 시절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그로서는 그 곳이 어딘지 알 턱이 없었다.

“···새됐네. 어떻게 하지?”


그제서야 아까 그 오크를 죽이지 말고 반만 죽일 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망할, 그러고보니 이 시체는 어떻게 한다···.”


오크 놈들이 부락의 동료를 죽인 걸 보고 뭐라고 할지도 신경 쓰였다.

물론 달려든다면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일이 되겠지만, 당장 사람 사는 곳으로 갈 때까지는 의식주를 그들에게 의탁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한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며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던 때,


“부루코-. 꾸로크-. 꾸엑! 식사 시간이다-! 멀건 놈 그만 괴롭히고 돌아와라-!”

멀리서 들리는 오크의 소리에 히죽 웃으며 바스타프는 큼직한 손으로 두 시체의 머리채를 잡아다 끌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혹시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든다면 우두머리 놈만 때려죽이고 나머지를 적당히 패면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겠지.


한 5분 정도 풀숲을 걷자 왠지 모르게 아늑해 보이는 오크 깡촌의 전경이 드러났다.

척 봐도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짐승 가죽과 나뭇가지를 이용한 천막과 중앙의 커다란 모닥불까지.


모닥불 위의 커다란 솥에서 무언가 끓고 있었고, 그가 죽인 오크를 불렀던 한 오크 여성은 풀숲에서 걸어 나오는 바스타프를 보고 얼굴이 굳어 버렸다.

바스타프는 아주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양 손에 각각 든 사체를 번쩍 들어 보이며,

“그래서, 이 둘 중 어느 쪽이 부루코고, 어느 쪽이 꾸로크야?”

“꾸히익?!”


-1화 END-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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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자손e
    작성일
    21.04.06 16:10
    No. 1

    재밌는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구선장
    작성일
    21.04.07 22:48
    No. 2

    목표가 프로 데뷔인 만큼 좀 더 독자층이 두터워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게 힘들어서 고민중입니다.
    당장은 현생 문제가 있어서 집필을 중단중입니다만, 이후에 어떻게 할지를 차차 생각해 봐야겠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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