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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ㄹ...

일개 플레이어,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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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게을러
작품등록일 :
2024.01.20 23:13
최근연재일 :
2024.03.22 11:37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53
추천수 :
6
글자수 :
39,310

작성
24.01.2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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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누구냐 넌?

DUMMY

“혀, 형이요?”


친분 가득해 보이는 호칭에 길드원은 디버프라도 걸린 듯 행동과 사고가 멈췄다.


손님이었다면 대접했을 것이고, 침입자라면 당장 내쫓거나 죽여서 보내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길드장님을 친한 듯이 말하는 호칭에 길드원은 그 어느 쪽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의혹에 힘을 더해주는 것은 이 날파리 같은 녀석이 길드하우스의 화장실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진짜 날파리라 변소에서 나온 것도 아닐 테고, 대체 어떻게 화장실에서 나왔단 말인가?

화장실에 비밀통로가 있긴 하지만, 간부 정도나 되는 고위 길드원들만 사용하는 곳으로 저 외부인이 그걸 알 턱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슬쩍 정문을 확인해 보니, 역시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외부인 출입 금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고, 자신 또한 직접 보고 있었기에 정문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밖에 있는 수많은 인파가 하우스 안으로 들이닥치지 못하고 있는 게 증거가 아닌가.


“그래서 지금 렉스 있어? 없어?”


“그게···.”


“없구나? 있었으면 쪼르르 가서 물어보기라도 했겠지.”


“크흠.”


아무개의 정확한 추측에 길드원은 차마 답할 수 없는 불편함을 헛기침으로 대신했다.


아무개의 말대로 현재 길드하우스에는 플렉스는 물론이고, 길드원 대부분이 없었다.

불과 엊그제가 공성전이었기에 길드의 주력들은 전부 대도시 루 오에즈에 있었고, 차출되지 못한 전력 외 길드원들 몇몇만이 길드하우스를 관리하는 중이었다.


“루 오에즈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이틀이면 이미 돌아왔을 줄 알았더니.”


공성전이라는 것은 영지 단위의 대규모 전투.

그렇기에 보통 공성전이 치러지고 나면 영지의 시설복구나 행정 명령, 논공행상 등등 후속 처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밖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던 거였구나.”


후속 처리를 하는 동안에는 영주성에 박혀서 나오질 않았고, 영지는 복구 공사로 산만하고 바쁘니, 외부인들이 길드를 만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지금의 아무개처럼 길드를 만나고 싶은 이들은 보통 길드하우스로의 복귀 때를 노렸다.


“예. 그러니까 일단···.”


“그럼 기다릴게.”


“예? 언제쯤 돌아오실지도 모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올 때까지 아주 편하게 기다릴게. 어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너도 너 할 일 해.”


길드원은 손님이든 침입자든 일단 길드하우스에서 내보내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눈치를 챈 아무개는 길드원의 말을 잘라내더니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아니, 지금 이게 제 일···.”


황당함이 묻어있는 길드원의 말을 뒤로 한 아무개는 자연스럽게 길드하우스 내의 어디론가 향했는데, 화장실에서 옆옆옆칸에 있는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아무개의 손에는 과자와 음료가 들려있었다.


“그건 어떻게 알고···.”


길드원들만 사용하는 휴게실에서 다과를 꺼내 온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아무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로비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아니 누웠다.


“이게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휴게실의 냉장 마법이 걸린 상자에서 꺼내 온 음료.

파란 음료가 든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마나 에이드’의 효과로 마나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1시간)]


“캬아.”


소다처럼 달콤한 맛에 톡 쏘는 청량감까지 가득한 맛에 아무개는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힘쎈에이드’에 라임과 시럽을 잔뜩 추가한 다음 소다 탄산을 꽉꽉 채운 맛이랄까.


이어서 음료와 함께 가져온 과자를 아그작!


[‘리자드 맨 껍질 칩’의 효과로 체력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1시간)]


“크, 오랜만이야, 오랜만.”


오랜만에 맛보는 일개 시절 가장 좋아했던 간식들에 아무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지···?.”


남의 길드하우스였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더 원 길드의 길드하우스.

헌데 무슨 제집인 양 드러누워 과자를 씹고 있는 행태라니?

그것도 방금 시작한 초보자들이나 입고 다니는, 아무런 성능도 효과도 없는 천 옷 거적때기나 입은 녀석이 말이다.

길드원은 도무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왔다.


하지만 이 꼬라지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이러다 길드가 복귀라도 해서 이 광경을 봤다간···.


“저기···.”


“응? 난 괜찮다니까, 안 불편해.”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지금 저희 길드에 이목이 많이 쏠린 상태라 외부인 출입 금지령인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길드장 님의 지인이라고 하셔도 이런 식으로 기다리는 건 안 됩니다.”


혼란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보이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단호한 길드원의 태도에 아무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쳇.”


플렉스가 돌아올 때까지 있을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더는 힘들 것 같았다.


“대신 용무와 성함을 알려주시면 제가 길드장 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용건은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됐고, 내일···이면 되겠지? 내일 이 시간쯤에 다시 오겠다고 전해줘. 내일도 안 오면 모레 또 오지 뭐.”


“전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식의 시간 약속은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복귀하신다고 해도 길드장님께서 다른 스케줄이 있으시다면···.”


“괜찮아. 듣고 나면 기다릴 거야. 내기할래?”


확신하는 아무개의 말에 길드원은 조금 아득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행동들과 내뱉는 저 말들이 진짜인 건지, 허풍인 건지···.

이제는 구별하고자 고민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지고, 손님이든 침입자든 아무튼 간에 그냥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길드원은 그저 입술을 깨물어 한 번 더 삭혔다.


“아닙니다. 길드장 님께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어···, 그러게? 뭐라고 할까?”


“그걸 왜 제게 물어보···.”


“찐개?”


“네?”


“진짜 일개라고 전해줘.”


“개소리!”


일개라는 이름에 결국 길드원의 쌓고 쌓인 조심성과 참을성이 터지고 말았다.


스르릉.


쌓여있던 만큼 순식간에 조심성은 경계심이 되었고, 참을성은 적대심이 된 길드원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양날 전투 도끼를 꺼내 들었다.


“일개 님이 복귀하시고 말살된 줄 알았더니, 또 일개 님을 사칭하는 똥파리였냐!”


순식간에 목을 겨누는 도끼의 강단 있는 날.

아무개의 목에는 아직은 옅은 붉은 선이 그려졌다.


“헉.”


아무개는 놀랐다.

일개의 사칭범이 많다는 사실에.


“일개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었나?”


“웬 초보 새끼가 길드장 님을 언급할 때부터 이상했지. 마지막이다. 뒤지기 싫으면 당장 나가.”


“아니, 렉스한테 전하면 알아서 이해할 거라니까?”


“이 똥파리가 끝까지···. PK 페널티 때문에 살려 보내주려고 했더니, 그 가증스러운 입으로 기회를 걷어차는구나.”


“오? 그러면 말만 안 하면 봐주나? 읍.”


빠직.


길드원은 아무개의 목에 대고 있던 도끼를 회수하더니, 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곱게 목을 잘라버리는 게 아니라 누워있는 소파와 함께 아무개를 아예 두 동강 내버릴 생각이었으니.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솟아오른 도끼날이 내려쳐지기 직전.


와아-!!


길드하우스 밖에서 갑자기 환호가 실린 소란이 들려왔다.


“왔나 봐?”


아무개는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굳게 닫혀있던 길드하우스의 정문이 열렸다.


각종 질문과 고백들, 그리고 맹목적인 환호의 배경 속에서 ‘더 원 길드’의 모습이 보였고, 그들은 한마디의 대답 없이 그들만의 고요를 간직한 채 홍해처럼 갈라진 인파 사이를 지나 길드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인파 중 몇몇은 길드를 쫓아 하우스 안으로 팔과 발을 들이밀기도 했지만, 하우스 문은 인정 없이 닫히며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치 않았다.



“뭐지?”


하필 아무개와 길드원이 있던 곳은 정문이 가장 잘 보이는 로비의 한 소파.

반대로 말하자면 정문에서도 가장 먼저 보이는 장소.

소파에서 반쯤 누워있는 남자와 그 위를 노리는 남자··· 라는 보기 불편한 광경.


복귀의 행렬에서 가장 앞서있던 이가 길드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검은색의 긴 워커 부츠.

보통의 검사나 전사들이 장비하는 중장갑이 아니라, 간편한 검은 바지와 허리를 조금 넘어가는 짧은 흑색 코트.

코트의 끝자락 바로 아래, 허벅지와 골반에 매달린 검집.

자칫 잘못하면 그림자가 되어버릴 뿐인, 검사라기보다 모델의 장비에 가까운 이런 차림새를 겉보기 좋게 만드는 긴 신장.

그리고 여전히 앳됨이 가시지 않은 이목구비.

과거 세계 1위 일개 길드의 막내이자 현재 대한민국 1위 더 원 길드의 길드 마스터, 플렉스.


“기, 길드장 님.”


당황스러운 플렉스의 등장에 길드원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내려찍으려던 도끼를 숨기듯이 내려놓았다.


“저쪽은 우리 길드원은 아닌 것 같은데?”


플렉스는 아직도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낯선 놈을 발견하고는 다시 길드원에게 시선이 꽂혔다.

이 상황의 파악을 요하는 플렉스의 눈빛에 길드원은 움츠러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이 자가 일개 님을 사칭하면서 길드장 님을 뵙고 싶다고 하길래···.”


길드원의 말에 플렉스의 시선은 다시 아무개로 향했고, 아무개는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듯 손을 들어 손바닥을 흔들었다.


인사를 하건 말건, 아무개를 살핀 플렉스의 눈빛에는 귀찮음과 하찮음이 보였다.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는 초보자용 의복.

본 적이 없는 건지 기억이 없는 건지, 아무튼 중요했던 사람이 아닐 게 분명한 낯선 얼굴.


“하, 제가 좀 바빠서.”


대충 파악이 끝난 플렉스는 길드원에게 치우라는 손짓과 함께 문제의 소파를 지나쳐 갔다.


“어른이 됐네? 싸늘하다 싸늘해.”


마치 사춘기가 된 조카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명절날의 삼촌 같은 느낌을 받은 아무개였지만, 자신을 지나치는 플렉스를 붙잡으려 굳이 몸을 일으키지도, 손을 뻗지도 않았다.

어차피 곧 멈춰 설 것이었으니.


“막내야. 그 짭개는 어디서 구했냐?”


멈칫.


역시나.

소파 너머에서 들려오던 플렉스의 발소리가 멈췄고, 플렉스를 따르던 다른 길드원들도 멈춰 섰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말을 하네?”


플렉스는 몸을 돌렸고, 돌아온 그의 눈빛에는 귀찮음과 하찮음을 대신해 꽤 많은 관심이 담겨있었다.

문제는 그 관심의 종류가 호의적인 게 아니라 적대적인 살기라는 것.


“대체 누구시길래 감히 그런 말을 겁도 없이 함부로 뱉는 거지?”


정체를 물어오는 플렉스의 말에 아무개는 그제야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활짝 웃음을 보였다.


“이 집 전주인.”


아무개의 대답을 들은 플렉스는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순수하게 하는군. 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나조차도 헷갈릴 지경이야. 그런데 이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나? 너 같은 쓰레기 녀석이 일개 형이라는 증거 말이야.”


“증거? 없지. 당연히.”


캐릭터를 지웠으니, 증거가 있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증거 같은 게 있었으면 이렇게 직접 물어보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대신 진실을 알고 있는 증인은 적어도 둘이나 있지. 아, 셋인가?”


“증인?”


“나, 너, 짭개. 본인들은 알고 있잖아?”


하아.

플렉스는 한숨을 쉬더니, 지나쳤던 걸음을 되돌렸다.


“일개 형이 사라지고, 수많은 일개들이 나를 괴롭혔다.”


아무개가 앉아있는 소파 앞으로 도달한 플렉스는 손을 뻗었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목소리, 비슷한 말투, 비슷한 행동, 비슷한 아이템과 검술까지. 비슷한 모습을 장착한 수많은 가짜들이 말이야.”


검지 손가락 끝으로 아무개의 턱을 들어 고개를 올렸고, 서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적은 처음이야. 아예 다른 얼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일개형이라 자칭하는 놈이라.”


얼굴을 마주 시킨 플렉스의 손은 턱 위로 올라가 얼굴로 향했고, 아무개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습을 따라 한다고 해서, 행동을 쫓는다고 해서. 아는 척을 한다고 해서!”


부드럽게 얼굴을 매만지던 플렉스의 손이 대뜸 아귀가 되더니, 아무개의 얼굴을 잡아 삼켰다.


으으윽.

얼굴의 골격이 찌그러지고 뒤틀어질 것만 같은 손아귀의 힘에 통증이 몰려왔고, 비틀어진 입술에선 숨소리와 함께 작은 신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가 될 수는 없지.”


짝!


그러더니 플렉스의 손은 이번엔 채찍과도 같은 따귀가 되었고, 순간적으로 아무개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쿵.


정신을 차린 것은 따귀에 날아간 몸이 소파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허억-

아무개는 깊은 물 속에 잠겼다가 겨우 수면 위로 빠져나온 것처럼 가쁜 숨을 토해냈다.

고작 따귀 한 대에 데미지 과다로 인해 기절했던 것.


“너 같은 쓰레기들이 일개 형을 사칭할 때마다 나는 더 괴로워해야 했다. 내 바로 앞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사라졌던 형을 떠올려야만 했으니까!”


플렉스는 발로 아무개의 목덜미를 밟았다.

아무개는 짓누르는 발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플렉스의 발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점점 막혀오는 숨에 시야가 흐릿해질 때쯤.

플렉스는 발을 떼더니 한 손으로 아무개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고작 한 손임에도 아무개의 몸은 솜털 가득한 인형처럼 쉽게 들렸고, 이내 곧 발이 닿지 않을 만큼 떠올랐다.


“네가 진짜 일개 형이라고?”


플렉스는 아무개를 집어던졌고, 아무개는 헌신짝처럼 또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가 진짜 일개 형이라고 말한다면, 어디 한 번 증명해 봐.”


플렉스는 인벤토리를 열더니 검 하나를 꺼내 아무개 앞에 던졌다.


“진짜 앞에서.”


아무개가 던져져서 날아간 곳에는 한 길드원이 서 있었다.

복귀하는 길드원들의 행렬 중에 가장 끝, 꼬리에 있던 마지막 길드원.


발목을 덮을 정도로 올라오는 검은 가죽 부츠.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새하얗고 긴 코트.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늘 인벤토리에 넣어서 보이지 않던, 무기의 부재.

그리고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이틀 동안 봤던 영상 속의 모습이었고, 착용한 옷차림새와 과거 은퇴했던 날과 모든 게 똑같은 모습.


“크크크큭. 이렇게 만나게 되네. 끄어어- 아 죽겠네, 진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재회한 아무개는 따귀와 던져짐의 데미지 속에서도 웃음을 지었다.


아무개는 플렉스가 던진 검을 쥐고 바닥에 찍더니, 마치 지팡이에 의지하듯 검을 누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대체 누구냐 넌?”


“···.”


일개는 대답 대신 가까운 로비의 의자로 향했다.

그러더니 의자 다리 한쪽을 향해 주먹을···.


콰직.

일개는 의자 다리 하나를 부쉈고, 그저 부러진 각목이 되어버린 의자 다리를 손에 쥐었다.


“어울려 줄게. 사칭범.”


일개는 과거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에 쥔 막대기를 마치 검처럼 아무개에게 겨눴다.


나무 막대기로도 충분하다는 의사표시.

그럼에도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 뿐, 자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이였다면 분명 오만했겠지만, 막대를 쥔 캐릭터가 일개였다면 그럴 만도 했으니까.


“한 합. 한 합이라도 버티면 사칭범 네가 일개 해라. 일개도 하고, 더 원 길드 마스터도 하고, 루 오에즈 영주도 해. 다 줄게.”


피식.

일개의 말을 들은 아무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꼈다.


도시 전설 속 도플갱어라도 보는 느낌.

짧은 시간 속에서 고작 몇 번의 행동과 몇 마디뿐이었지만 목소리, 말투, 행동, 사고방식까지 모든 게 똑같았다.

유체 이탈이라도 해서 나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이 이런 건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일개 캐릭터가 둘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복사당한 듯이 똑같았다.


“원하는 건 없어. 그저 너, 짭개에 대한 증명과 해명?”


“그러면 내가 반성문 써주고 캐릭터 삭제라도 하지, 뭐.”


“뻔뻔한 놈.”


아무개는 웃으면서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개검류.”

“개검류.”


일개도, 아무개도 동시에 자세를 취했다.

놀랍게도 둘의 자세는 대칭을 그려놓은 것처럼 똑같은 모양이었다.


허술한 듯.

하지만, 어깨너비로 벌린 발과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반응해 낼 수 있는 낮은 중심.

그리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검을 떨어뜨릴 것 같은 간당간당해 보이는 그립.


한걸음.


서로의 거리를 좁히며 둘은 오른손만으로 쥐고 있던 무기에 왼손을 더했다.


다시 한 걸음.


이제 서너 걸음이면 검과 각목의 사정권에 진입할 수 있을 거리만큼 가까워진 그들은···.

동시에 서로에게 쏘아졌다.


“일개검.”

“일개검.”


같은 자세, 같은 동작, 같은 궤도.

거울을 마주한 듯 데칼코마니처럼 동시에 펼쳐진 두 검격은 아무개와 일개의 사이 정중앙에서 오차 없이 부딪쳤다.


충돌.


“푸핫.”


충돌과 동시에 아무개의 입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손에 들려있던 검의 칼날이 깨지듯이 부서졌다.


“오오, 역시!”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길드원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검과 나무 막대라는 말도 안 되는 체급 차이의 충돌이었지만, 그 결과는 상식과 반대였다.

일개가 쥔 나무 막대는 선명한 푸른 기운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오히려 검을 깨부수고 아무개의 가슴 한복판까지 내리쳤다.


“쯧. 역시 시간만 낭비했군.”


티끌만큼도 미치지 못한 아무개의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심한 눈빛을 한 플렉스는 몸을 돌렸다.

곧 죽을 것이었기에 더 지켜볼 이유는 없었다.


“증명은커녕 사칭할 자격도 없다 넌.”


마찬가지로 예상보다도 싱거운 결과에 일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쥐고 있던 나무 막대를 놓고 플렉스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하하, 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그리고 빠르게 줄어가는 체력과 무너져 가는 몸의 아무개는 실소를 흘리기 시작하더니,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오랜만에 죽네.”


시야가 점차 흐릿해졌고, 온 세상이 빛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조만간이면 죽음을 뜻할 칠흑이 찾아올 것이었다.


“딱 기다려. 조만간 자격 따고 증명하ㄹ···.”


암막.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페널티 – R.T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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