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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3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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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6,964

작성
20.10.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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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2쪽

내추럴 본 : 종결 1

DUMMY

이 안에서 벌어진 일을 시간 순으로 모두 말하면 한두 시간 걸릴 것 같다. 너무나도 긴장된 시간이었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우린 즉각 반응해 집중력 엄청났고 또한 피로도가 높았다. 그래서 이 안에서 벌어진 일 서너 가지를 추려서 묘사하고자 한다.



# 1


원래 동초는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한 시간 안에 이상이 발견되면 비상이 걸리니까. 그런데 우리가 가는 방향에 그 동초가 정확히 걸렸다. 생각했다. 쟈를 죽이면 우린 발각되는가? 우회해야 하는가? 우회하기엔 부대 모양이 좀 그렇다. 군대 어디나 비슷한 계급의 습관.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응사할 곳은 저 아래 병사들 막사다. 계급의 권위. 사령부의 높고 좁아지는 곳에 계급 높은 사람들 사무실과 막사를 만들고 아래 넓어지는 곳에 노비들이 먹고 산다.


동초를 보고 우린 주저하며 멈췄다. 순간 내추럴 본의 얼굴을 봤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앞뒤 모두 내추럴 본을 봤다. 우리도 해봤지만 본능적으로 칼로 살 부비는 거 좋아할 수가 없다. K-7으로 보냈으면 좋겠는데 사방도 이상할 정도로, 꼼지락도 안 될 것 같이 고요하고, 총 쓰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모두에게 공통이면 그건 맞는 거다. '저 보초 걸린다...'


내추럴 본은 금방 시선들을 이해하고 주저 없이 K-7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뽑는다. 빛나는 것을. 그 다음부터가 믿기지 않았다. 우린 본이 건물을 돌아 접근해 공격할 줄 알았다. 아니다. 그냥 걸어갔다. 그냥. 나가기 직전에 본은 이중사의 북한모를 벗겨 자기가 쓰고 나갔다. 칼을 팔뚝 뒤에 숨기고 아주 편하게 걸어갔다.


보초는 순간 그를 봤다. 무슨 일인가, 왜 저 사람이 오지? 이때 중요했던 건 당당하게 걸어간 본이다.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그러자 상대도 놀라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생각할 틈 없이 본은 다가섰다. 그리고 다짜고짜 찔렀다. 보초가 발버둥치고 소리를 내려하자 곧바로 칼날을 돌려 목을 그었다. 더 발버둥치자 또 옆구리를 찔렀다. 그냥 개를 잡는 듯했다. 움직이면 한방 더, 또 움직이면 한방 더. 본은 절대자였고 상대는 발악이 아니라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내 몸이 떨렸다. 코너에 몰린 쥐처럼 전율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무섭다. 그리고 깨닫는다.


무엇을? 돌려 말할 수 없는 그걸...


칼로 어쩌려는 사람은, 선방으로 먼저 찔렀을 때 상대가 어떤 발광이나 몸짓이나 반격을 하더라도 찌르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계속 질러야 한다. 내 몸을 잡으면 팔뚝이라도 찌르고 어깨라도 찔러야 한다. 본은 두 번째 공격에 냉정하게 목을 그었다. 상대가 어쩌건 계속 공격하는 것... 그게 살 길이고 이기는 길이다. 멱살 잡히고 주먹 맞았다고 주춤하면 안 된다. 맞아서 충격을 받았더라도 계속 찔러야 하고 자세가 안 되면 베기라고 해야 한다. 만약 1방 후 주저하다 맞아서 넉아웃 될 경우 극도로 분노한 상대가 내 칼을 빼앗아 역으로 찌를 수 있다. 맞아도 왼손을 절대로 놓지 말고 상대가 약간 주춤할 느낌이 올 때까지 계속해야한다. 곧 다리 풀린다. 계속 질러. 계속.


그 뒤로는,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후미 정하사가 목표가 떠오르면 주저 없이 유원지 사격 게임 하듯 그냥 K-7을 사격했다. 소리가 들리건 말건.


그때 우린 또 깨달았다. 우린 우리 귀에 들리는 소음이 두려운 것이고, 막사 내부에서 듣는 건 전혀 다른 거다. 내추럴 본은 과감함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정쩡한 것보다 과감한 게 안전한 것. 그 장면은 나중에 곰곰이 생각했다. 본의 전문가인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건 우리에게 보여준 거다. 우리가 너무 긴장하고 주저하자 길을 튼 것이다. 우리가 주저하자 본은 짜증이 났다. 본은 잔인했다. 그리고 어쩌면 잔인한 게 아니다. 살살 찌른다고 안 죽어? 상대가 죽는 시간만 달라. 누군 안 잔인해? 다 잔인하다. 착하다고 오는 대로 칼 맞아줄 건장한 젊은 놈 누가 있나?... 그렇게 본은 말하고 있었다.


‘까는 소리 말고 잘 봐. 이게 진짜야. 이게 다라고! 뭐가 더 있어? 우리 인간도 개새끼 퍼덕이는 것과 같아. 인간이 그리 대단해? 넌 그렇게 고귀해? 그럼 내 칼을 곱게 맞고 뒈져봐. 어차피 죽일 거면 사정없이 질러버려. 이런 게 무서웠으면 전쟁이란 걸 하지 말았어야지. 이런 게 무서웠으면 꾀병이라도 부려서 전쟁터 오지 말았어야지. 이런 게 두려웠으면 전쟁을 읽거나 말하거나 선호하지도 폼 잡지도 말았어야지. 이런 꼴 안 보려면 전쟁에 환상을 품지도 말았어야지...’


우린 재빨리 걸어가 동초 시신을 뒤쪽 처마 창고 같은 곳으로 끌어다 넣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겁이 충분히 사라졌다.


그거다. 전쟁은 내추럴 본처럼 하는 게 장땡이다. 생각하고 자시고 고민하고 자시고 필요 없다. 그런 거 하다 뒤질 거면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죽이는 거다. 죽이는 이유는 병사가 아니라 위에서 설명해준다. 본은 전쟁 자체였다. 0.5초의 생각 때문에 내가 칼에 난자당하고 총에 맞아 만두 터진다.


동초를 처치하고 우린 과감해졌다. 아니, 주저함이 사라졌다. 천하게 표현하면 우리들 꼴깝이 사라졌다. 이것은 전쟁의 작은 축소판이었으며 또한 하나가 빠져 있었다. 우린 항복 의사와 포로 대우와 심문절차가... 없다. 우린 알고 있다. 잡히면 즉각 사살되거나 고문 후에 죽는다는 걸. 여기는 상식이 전혀 다른 비문명국가이며 그들에게도 우린 더럽고 악랄한 산사람들이다. 서로간의 예의는 이미 생략되었다. 우리가 그걸 까먹었던 거다. 우리도 찔린다. 우리도 내장 터져 죽는다. 칼을 못 쓰는 게릴라는 상병신이다.



# 2


우리는, 우리 부대 안에서 보초교대 하러 가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날 밤에 거기서 한 것은, 숫자로 말할 종류가 아니다. 숫자로 말하면 이 2번을 말하기 전에 이미 다섯을 보냈다. 첫 번을 제외한 네 번은 K-7. 그리고 다시 세검정이 왔다.


다섯 명이 좀 벌어졌고, 나와 조장인 본이 약간 떨어진 상태. 갑자기 누가 등장했다. 군복을 기억하건데 군관이었고 계급은 견장을 자세히 안 봐 모르겠다. 장교막사 끝 문을 열고 나온 사람. 좀 이상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갑자기 몸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본다. 이 군관이 뭘 느꼈고, 우리도 동시에 느꼈다. 전투를 치러본 사람이라는 걸. 그는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살짝 갈등했다.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다음은 충분히 눈에 ‘선하게’ 보였다. 권총 가지고 나온다. 반드시. 나와의 거리 5미터.


난 내추럴 본을 보지도 않고 발소리만 줄여 그냥 걸어갔다.


도착하자마자, 뒤에서 팔을 목에 감고 대검을 밖으로 돌려 수평으로 늑골 사이 폐를 찔렀다. 소리 낼까봐 팔뚝으로 상대 목젖을 힘껏 눌렀고, 몸부림치는 손이 내 눈을 찢거나 귀를 잡아 뜯거나 핡퀼까봐 상대 뒷목에 고개 숙여 내 이마를 대고 눌렀다. 그러나 기다려도 상대의 완력은 줄어들지 않고 손을 넘겨 내 머리를 잡으려고 긁었다. 이러다 소리날까 불안해 칼을 수평을 비틀어 벌렸다. 그러나 상대 다리는 여전히 안 풀리고, 발악은 더욱 심해지고 드디어 소리가 나겠구나 생각하던 찰라, 뭐가 앞에서 밀고 들어왔다. 보지 않아도 내추럴 본...


난 그 기운을 받아 상대 몸을 앞으로 더 밀었다. 본은 앞쪽에서 한 손으로 상대 턱을 V자로 누르며 입을 못 열도록 했고, 나중에 알았지만 서바이벌 나이프로 상대 가랑이 사이를 두 번 크게 절개했다. 난 그때 앞에서 폐나 복부를 찌른 거라고 생각했었다. 곧 기운이 빠져 상대 하체가 풀리자 물러났고, 본은 잡은 V자 손아귀를 눕는 몸을 따라가며 상대가 쓰러진 상태까지 대고 있다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용히 뗐다. 내 손과 팔뚝에 따뜻하고 축축한 그것이 묻었다.


나중에 내가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아니, 왜 그러셨나고.


“니가 목에 팔을 안 둘렀으면 목을 그었지. 왜 허벅지를 그었냐고? 나까지 폐를 찔러? 카라브마 배워도 이런 걸 안 가르치니까 문제야. 밤에 노는 아~들이 허벅지 지른다 하지? 재판정에서 죽일라 그런 거 아니라 그럼서 의도적 살인에서 벗어난다꼬. 까는 소리. 웬만한 데 보다 허벅지가 더 위험하다. 출혈은 허벅지가 더 강해. 근육 굵은 데는 당연히 핏줄이 굵어. 허벅지가 젤 굵다! 심장 가깝다고 장땡이 아냐."


"출혈 막 빠지면 금방 몽롱해져. 허벅지 암데나 찌르고 벤다고 다는 아이고. 허벅지 굵은 핏줄은 다리 뒤쪽과 가랑이 안쪽에 다 있다. 그니까 허벅지 앞과 바깥에만 겁주기 포를 뜨는 거야. 아무리 겁주기 하다가도 허벅지 암데나 막 찌르면 과다출혈로 간다. 상대 앞이나 뒤에 붙어서 가랑이 안쪽 크게 베면 사람 과다출혈로 간다. 와 거길 질렀냐고? 무너져야 포기한다. 하체가 안 풀리잖아. 사람은 서 있는 것과 쓰러진 상태 마음이 달라. 서 있으면 포기를 안 해... 여자도 누워야 주잖아.”


“날 대단하게 보지 마. 다 해본 게 아냐. 알고 있던 걸 여기서 해보는 거야. 그리고그 군관 말야... 그거 약한 사람 아니었어. 누군진 몰라도 뭐 좀 아는 사람야.”


여기서 난, 본의 지시를 어겨 한동안 힘들었다. 쓰러졌을 때 아직 미동하는 그 장교의 얼굴과 눈을 본 것이다. 컴컴했지만 똑똑히 보였다. 그 표정에서 읽었다. 나쁜 새끼... 치사한 놈... 더러운 놈... 상대는 누가 자신에게 그랬는지 보려고 한다. 어쩌면 ‘누구냐 넌?’ 하는 것 같았다. 내 입이 말할 뻔했다. 보면 안 되지만 나도 모르게 보게 된다. 그 표정으로 내가 공격한 현재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보게 된다. 며칠을 후회했다.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군관의 목 뒷덜미에서 나던 온기가 지워지지 않는다.



# 3


이 3번이 왔을 때, 이미 우린 선을 넘었다. 도가 지나쳤다? 그런 건 없다. 맨 마지막 목표까지는 그래도 정상이었다. 마지막은 사령관 혹은 그 레벨 막사였는데, 동초 두 명을 제거하고 나서 본이 귀를 문에 대고 들었다. 그리고 노크 두 번 한 다음 들어가 내부에 있던 사람을 본과 정하사가 들어가 K-7로 모두 사살했다. 목표는 달성되었다. 정하사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의 견장을 떼서 기념품으로 가졌다. 별은 별이었다.


여기서 마지막 갈등이 생겼다. 이제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 사령부 최고 장군 계급 모른다. 다시 올 수 없다. 나갈 시간이다. 이미 시간은 1시간 10분이 지나 있었다. 철조망에서 들어온 길까지 모두 알기에 우린 보초처럼 2열 종대로 천천히 당당하게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나치는, 바로 2번 사건에서 내가 지른 상대가 나왔던 장교막사. 중급 간부 막사로 보였다. 그걸 지나칠 때, 비웃는 듯한 내추럴 본의 눈이 우릴 둘러본다. 우리를 봐서 두려웠던 게 아니라, 그 눈이 하는 말이 무서웠다.


‘저기, 놔두고 갈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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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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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2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72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5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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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2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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