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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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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6,964

작성
20.10.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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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DUMMY

침투공격조는 이동 순서대로 이러했다.


첨병1] 이중사 : 북한군복에 AK 착검. 대검 권총.

첨병2] 고하사 : 북한군복에 AK 착검. 대검 권총.

지휘] 오중사 : K-7. 권총 대검.

관측] 나 : K1a. 야간투시경. 권총 대검.

후미] 정하사 : 북한군복에 K-7


불필요한 장비 다 떼고 실탄도 개수를 줄였다. 특전조끼는 나만 입었다. 작전의 성공 혹은 효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 장교 거주막사에 침투조원이 가진 모든 수류탄을 투척하고 나오라는 지역대장 명령이 있었다. 주 공격대상은 장교 막사와 고급지휘관 관사 같은 것 두 개였다.


침투는 어렵지 않았다. 관측조를 수행했던 대원들이 길잡이로 점찍어둔 경계선 섹터로 안내했다. 지역대가 50미터 정도 수풀에 정지한 다음 관측조가 나가서 진입 포인트를 정찰하고 돌아왔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내부침투였다. 우린 독수리훈련으로 보초 간격 5미터도 두 시간을 기어 들어갈 정도로 외부담장과 철조망에 숙달되어 있었고, 보초 교대 시점 등 허점도 잘 알고 있었다.


교대할 때 소란하고 교대시점이 다가오면 또 정신이 산만해진다. 거기 경계 간격은 30미터로 우린 탱크가 지나갈 정도의 틈을 봤다. 남쪽에서 독수리 뛸 때, 정말 외곽에 손에 손잡고 우릴 맞는다. 대체 그게 무슨 훈련인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외곽에 너무 투자한 나머지 안으로 들어가면 대로를 어깨 펴고 걸어도 무주공산이었다.


경계량의 법칙. 군관 빼고, 외곽 경계선 길이 나누기 병사 숫자.


문제는 무성처리였다. 가장 깔끔한 게 무성총이었지만, 이날 밤은 바람도 구름도 비도 없이 별이 창창했다. 그런 상황에선 K-7도 일정한 소음 어쩔 수 없다. 이런 날은 대원들이 자주 밤하늘을 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우리에겐 비가 최고다. 하다못해 바람이라도 불면 고맙다.


그러나 이날 작전은 다른 날에 비해 심리적으로 좀 불안했다. 그 이유는 새로 받은 보급품을 정리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우린 한 달 넘게 거울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거울 달린 위장클립 있었으나 결국 사라졌는데, 우리에게 보낸 보급품 중에 놀랍게도 거울 달린 위장클립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걸 들어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을 보았다. 살 빠지고 온통 수염 나고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서 그런 게 아니다. 동물 같은 타인이 날 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고 현재 나였다. 어떤 사람은 거울을 잠깐 보고 나서 다시 보지 않았다. 그때 우리의 고민했던 면이 떠올랐다. 거울. 그것과 연관되는 나란 존재. 거울은 갑자기 우리 속에 숨기고 숨겼던 걸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난 나를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내가 움직이는 육체적 율동만 봐왔었다.


세계최강의 전사 어쩌고저쩌고. 그건 평시나 하는 말이다. 우린 힘들더라도 멋진 특수전 타격을 꿈꾸며 넘어왔다. 그러나, 곧 올라오리라 기대했던 아군은 올라오지 않고 점차 소모되며 지쳐갔고, 그러면서 재래식 전투로 계속 사람을 죽였다. 그게 적이라는 군복 입은 사람들이긴 했으나, 개인적 편차는 있더라도 갈등이 찾아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갈등이 사라졌다고 믿었다. 더 과감하고 겁이 없어지고 잔인해졌으나 속은 지워진 게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생존을 위해 내가 무슨 짓도 할 수 있다는 게 더욱 무서워졌다. 내가 과거에 알던 내가 가짜 같았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무서웠다. 적은 개념이 다르다. 어차피 적이 무서운 때가 오면 우리가 죽는 것이고, 죽는다는 건 내가 남을 죽인만큼 두려워도 받아들이지 못할 건 아니었다. 우린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걸 잊으라고? 망각해? 이랬던 내가 정말 사라져? 몇 년 전 기억에도 매번 이빨을 가는 인간이?


어떤 불만도 생겼다. 왜 우릴 더욱 정신병자로 만들지 않았나. 왜 북한 놈들처럼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하는가. 왜 우릴 갈등하게 만드는가. 군은 왜 우리가 싸우고, 왜 내가 칼을 들어 적이라는 살집에 꼽고 베는지 실감나게 말해주지 않았다. 훈련 강도만 바라고 그 이상 정신적인 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막상, 우린 그게 필요했다. 정훈시간은 피부적이지 않았다. 군인은 단순하고 잔인해야 전쟁에서 버틴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사이비교도로 만들어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큰 이치는 없었고, 돌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전우를 위해 싸우고 죽였다. 그 이상은 없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게 무리였을까? 우린 공산주의와 싸우는 게 아니다. 북한은 공산주의도 아니다. 공산주의 간판을 내건 세습 불법 종합상사였을 뿐이다. 이론은 화려하나, 지구 역사상 이뤄진 적도 없고 표본으로 완성될 확률도 전혀 없다.


미친 욕망의 주체들을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가 애초부터 몽상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럼 우린 무엇과 싸우는가. 이들은 독재국가였고 우리를 위협했으며 적화통일의 공상을 꾸고 있었다. 그건 막아야 했다. 나더러 그런 독재 전제국가의 노예가 되라고? 그게 아닌 건 확실하다.


다만, 군인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게 필요하다. 사람을 죽이면서 넌 공산당이니까... 이런 게 피부적이지 않다는 거다. 각각의 전투 주체들이 삼투시킬 근본적인 키워드가 필요했던 거다. 남한에서 십계명과 같은 인본주의적 교육을 받은 우리들이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상황. 그 중간이 없는 거다. 그 중간을 아무도 교육하지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우린 이제 남한도 북한도 아닌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평상시 생각하며 날 다지고, 실전이 닥쳤을 때는 그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원래 다지던 그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되는 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중단할 수 없다. 거울을 잊고 다시 어둠의 목표를 향해 조용히 걸어간다. 하나하나가 승부이며 승부마다 내 목숨 건다. 거기에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 짜릿한 전율.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짜릿한... 고민은 저 멀리 뒤에 남기고, 손은 무기를 잡고 눈은 대상을 물색하며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손은 생각보다 빠르게 피를 찾는다.


시뻘건 석양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필터가 이빨에 씹힌다.

영화로 치면 마지막 담배냐. 이게 말이나 되는 작전이야?



먼저 내추럴 본이 지역대장에게 가서 서로 시계를 맞추고 서로 V-사인을 했다. 두 시간을 최대한 지키라는 말이다.


지역대 본진이 포석을 깔아 엄호경계하는 가운데 우리 다섯 명은 Y-지가대로 철조망을 벌리고 조용히 들어갔다. 지가대는 후미경계 정하사가 다시 빼서 숨기면서 나머지 네 명에게 은익처를 알렸다.


처음에 포복으로 경계선을 돌파한 다음 수풀이 제거된 지역을 지나자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사실 경계병을 무성무기로 제거하고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으나, 관측조가 얻은 정보로 1개 조 근무시간을 염두에 두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 두 시간 동안 최대한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고, 제거가 필요한 경우 나올 때 해야 했다. 우리가 들어간 섹터 양쪽의 적 경계병은 지역대 본진에서 각각 2명씩 할당되어 무성처리나 저격할 준비를 하며 보초 앞 수풀에 조용히 은폐해 있었다.


그들 사령부는 우리의 전통적인 부대 배치와 달랐다. 우리야 뭐 본청이 중앙에 따악 자리 잡고 필요에 따라 좌우로 늘어서게 배치하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산골 하단이고, 산이 남쪽을 막고 있었다. 이 부지는 애써 부대를 만든다고 밀어 지은 게 아니라, 지형에 맞게 적당한 건물들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부대 모양이 천연지형을 따른다. 우린 군관막사로 추정되는 곳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침투 전에 내추럴 본은 목표를 명확히 말했다. 장군을 잡고 싶다. 낮은 것은 싫다. 낮은 것은 차고 넘치며 흔하지 않은 걸 잡고 싶어 했다. 내가 내추럴 본의 자칭 전문가라고 하게 된 이유는 있다. 난 중사님 행동의 뿌리를 언젠가부터 간파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기 마음속에 논리적으로 생각을 축적한 건 아니나, 내가 보기에 지존이었다. 다시 말해 적 장군을 제거하는 건, 그 일대 공간 아래서 자기보다 높은 것이 있다는 건 허용될 수 없었다.


우리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은 다른 존재다. 그가 믿는 풍경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다. 적대적인 입장에서 자기보다 더 높은 놈을 그가 허용하지 못한다. 그걸 제거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본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걸 참지 못한다. 사실 저렇게 하다 얼마 못 살 것 같기도 했다. 차가운 남극 빙하 바로 아래 활화산. 다만, 차분했다. 무척 차분했다. 난 그걸 갖고 싶었다. 곧 죽는다고 해도 지존의 심장으로 사는 게 나라는 남자만의 꿈인가? 글쎄...


내부로 들어간 다음부터는 모든 게 발걸음이었다. 우리 다섯은 아예 소리가 적은 운동화 형태 낡은 북한군화를 신었고, 걸음은 최대한 정숙했다. 발 디딜 때 완전히 뒤꿈치 끝을 천천히 내려놓은 다음 우체국 둥근 스탬프 찍듯이 중간에서 앞 발가락까지 천천히 훑으면서 딛는다. 발바닥 전체가 퍽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없애는 것. 앞발도 가는 방향에 1자로 디디면 끌리거나 긁힌다. 그러므로 앞발을 내딛을 때는 발끝을 가는 방향 바깥으로 한 45도 정도 틀어서 뒤꿈치부터 내려놓으면 소리가 줄어든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는 자연적으로 그늘이 짙은 쪽 처마를 타고, 만약 피치 못해 개활지를 이동할 때는 아예 허리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잠시 어떤 포인트에서 주저했는데 오중사님이 시범처럼 그냥 천천히 횡단했고, 나머지도 같이 행동했다.


1번인 이중사는 AK에 착검한 채 총기끈을 늘여 허리 수평에서 약간 총검을 높여 자세를 잡았고, 2번 고하사도 똑같았지만 오른손 소매 뒤에 대검을 넣어 숨기고 있었고, 3번인 내추럴 본은 K-7을 완전히 거총한 상태로 조준간을 보면서 쏠 준비를 하며 이동했다. 4번인 나는 전체적인 관측을 맡았기에, 북한군모 챙을 뒷통수로 돌리고 야간투시경을 써 주로 먼 곳을 360도 계속 주시했다. 5번인 정하사는 역시 K-7 거총.


흔히 나오는 영화처럼, 이렇게 기습조가 들어가면 장교 막사에서 술도 먹고 도박도 하고 시끌벅적하겠지만, 사실 제대로 된 군대에서 그런 게 병영에서 어딨나. 병영은 시간을 지켜 점호하고 그때부터 조용해진다. 그 안에서 이동하는 건 살 떨리는 일이다. 고요하면 할수록 외곽보초나 동초 귀가 더욱 민감해진다. 아주 춥거나 덥지도 않기에 어떤 특정한 행동을 바랄 수도 없었다. 또한 보초 중에서 졸음에 빠지는 건 외곽보초지 내부 동초가 아니다. 요행과 행운은 항상 오는 게 아니다. 대표적인 요행과 행운은 딱 하나. 우리가 이 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 자체 밖에... 문제는 전시 경계태세였다. 밤에 움직일 가능성이 컸지만, 정찰조는 작전 go로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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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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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2 25 12쪽
»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73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5 26 12쪽
109 마천령 산맥 2 20.10.16 462 23 11쪽
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65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506 2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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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2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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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내추럴 본 : 이성규 중령 20.10.07 555 22 12쪽
101 내추럴 본 : 갈대숲에서 하늘을 본다 2 20.10.06 547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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