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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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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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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개도 잠든 밤 1

DUMMY

조용한 발걸음이 앞에서 사라지고,

내 앞사람이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고 쪼그려 앉으며 날 향해 드는 손바닥.


‘정지. 사주경계.’


난 몸을 180도 돌려 지나온 방향으로 10미터 되돌아가 쪼그려 앉으며 경계총, 후방을 청음한 다음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인가 앞사람을 보려 목을 뺀다. 산을 30분은 더 내려가야 하는데 뭐지?


이동하다 정지하면 선두 두 명은 전방, 세 번째부터 좌우로 총구를 돌리며 쪼그려 앉고, 후미 두 명은 뒤로 약간 빽도해 후방을 경계한다. 정지 상태에서 이상 징후가 있으면 선두가 앞으로 정찰을 나간다. 조용히 걷다 앞사람이 손을 들 때면 간이 철렁하다.


‘밤벌레 소리...’


평시 훈련보다 서너 갑절 민감하게 자주 정지하나, 이제 과정이 자연스럽고 소리가 순간 사라진다. 훈련과 다른 건 개인간격이 훨씬 벌어졌다는 것. 훈련 때처럼 오밀조밀 모여 정지하면 기관총 하나에 몰살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개인간격이 벌어지니, 밤에는 검게 칠한 얼굴과 장갑 낀 손이 안 보이고, 가지나 수풀에 가려도 수기가 안 보인다.


내가 어둠 속에 뒤 사람일 경우, 앞사람에게 팔을 완전히 돌려 OK를 알려야 눈에 들어갈 수 있다. 불을 켜면 오히려 더 안 보이는 밤눈이 생겼지만, 거리가 멀어지니 수기에 민감해진다. 아무 일 없어 다시 출발할 때, 수기로 안 되는 경우 앞사람이 기다렸다가 뒷사람 귀에 속삭여 전달한다.


저기 앞에 무거운 기운이 돈다.


‘뭐?’


앞사람과 눈이 마주쳐 손바닥으로 물어보니, 모르겠다... 으쓱한다.


훈련 때, 오른손잡이가 좌우경계에서 오른쪽일 때 불편했다. 오른손잡이는 총을 잡은 손 때문에 좌측경계가 편하고 우측은 총을 반대로 잡거나 몸을 90도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려야 한다. 훈련 때는, 정지할 때 첨병 다음부터 좌우로 시작하는데, 첫 사람이 좌면 그 다음은 우측으로 앉은 번호처럼 차례로 앉는다. 측정 때는 침투종대 순서와 아예 좌총 우총을 정하고 시작한다. 이동 중 정지! 좌우 경계총! 짜증난다. 잔뜩 쪼그려 앉아서 대기하니 짜증난다. 침투 측정을 할 때는 통제관 보라고 왼손잡이처럼 손을 거꾸로 잡고 오른쪽 경계총도 했다.


훈련 때 그냥 습관적으로 했던 것. 그러나 지금 여차하면 진짜로 쏴야 한다. 오른손잡이의 왼손사격은 경험만 했지 정확히 맞추는 연습은 아니었다. 이제 정지하면 엄지가 자물쇠에 바로 얹힌다.


어디서 새로운 북한군 부대가 나타나 우리를 잡으러 돌아다니고, 며칠 전 처음으로 산길에서 야간매복을 받았다. 저들이 조명지뢰나 크레모어 류는 업었고 수류탄도 들쭉날쭉 던졌으며, 사격도 자동으로 갈겨 정확한 총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마음껏 다니던 산길에 공포가 무르익는다.


반반히 닦여진 길은 불안하다. 잘 닦여진 길 저 앞이 골(짜기)로 모이면 섬뜩하다. 선이 세 개가 모이면 매복의 최적지. 처음 당했을 때 아무 사전징후도 못 느꼈다. 가하기만 하다 당하니 마음이 쉽지 않아 자꾸 정지한다. 당하고 나니 걸을 때도 오감이 촉을 잔뜩 세워 피곤하다. 감각이 서로 흩어지는 도심과 인구밀집지역이 오히려 편하다.


매복 첫 총소리에 움츠러들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탕! 총소리 다음 1분간 뛰는 방향과 속도가 목숨을 좌우한다.


‘뭔데 저래?’


뒤를 보고 있지만 자꾸 앞으로 눈이 돌아간다. 왜 멈췄는지 어떡할 건지 궁금하다. 훈련처럼 앞사람 놓쳤다고 부를 수 없다. 그래서 수기가 진화한다. 체중도 가벼워지고 발들이 날아, 순간 종적을 놓치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내려갈 때면 군화 끈부터 모든 걸 조이고 잠그고 묶는다. 저 북적이는 도시 근처에 은거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훈련 때 머리 좋은 사령부나 타 대대 대항군들은 우리 근처에 붙어 교묘히 숨곤 했었다.


이제 걷다가 지형이 바뀌면 일단 섬뜩하다. 산을 내려오다 나무들이 화목으로 벌목하고 쳐버린 지대를 만나면 그때부터 길은 버린다.


[경계 총 똑바로 들어.]


훈련 버릇.


산을 가다 수도 없이 ‘정지! 산개!’ 수기나 나오면 잽싸게 수풀로 들어가면서 전후좌우 경계구역으로 거총. 안 보면 총을 대충 들었었다. 통제관만 없으면 전술상황에서 햇볕 따스한 곳 아무 데나 누워 쉬었다. 이젠 결코 안 된다. 이제 똑같은 상황에서 빵! 총성이 울리고 모골이 송연, 정신이 혼미하고 튀어 올라 날아간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다. 다른 사람 놓치는 일은 금방이다. 그래서 산을 내려가다가 그날 그날 찍는다. 저 앞에서부터 첨병이나 기억하기 쉬운 특정 구역을 수기로 강하게 찍고 간다.


찍은 순간부터 다음 것을 찍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거기가 일단 재집결지다. 매복이나 교전이 벌어지면 누구랑 같이 뛰든 혼자서 뛰든 알아서 그곳으로 와야 한다. 대체로 특이하거나 큰 바위, 공지선상에 높이 뜬 큰 나무, 길이 갈라지는 곳, 시냇물 건넌 곳 등등.


밤에 불시에 울리는 총성! 머리가 지끈지끈 뇌세포들이 죽는 것 같다.

훈련병으로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진짜 총소리를 들었을 때의 충격.

그것과 비슷하다. 나를 향한 매복의 총소리는.


수기는 존댓말이 없다


고요. 선두가 정찰 나갔나? 다시 10미터 거리 앞사람 눈. 서로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사람이’ 익었다.


나는 뒤로 손가락을 뻗으며 후미 정찰 나가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손바닥을 젓는다. 그래서 다시 손바닥으로 머리를 이마부터 뒤통수까지 쓸어 올린다. 빡빡이 많은 북한군을 의미하는 우리 중대 수기. 곽중사님은 또 가로젓는다.


개(북한군) 아닌가? 뭐지?


어? 곽중사님이 서서히 허벅지 힘을 주며 일어선다. 앞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돌려 무척 신중한 정숙보행으로 날 향해 온다! 어?


나도 일어서려 왼손으로 탄창과 탄창 삽입구를 꽉 잡는다. 그 부위가 가장 소리가 많이 난다.


곽중사님 앞사람도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인다. 곽중사님이 손을 흔든다.


‘잘 들어!“


내가 집중하자, 중사님 손가락 검지가 허들 넘는 모양으로 굽이친다. 지나왔던 고개를 다시 넘어간다는 말. 어? 오늘밤 작전은? 루트 변경인가?

이제 내가 선두가 되어 빽도한다.


들리는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매복이다. 분명히 조중사가 느꼈다.”


중대장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고 조중사님이 팀원들을 둘러보며 끄덕인다. 모두의 눈은 1미터 안쪽. 14개의 눈. 오늘밤 작전은 지역대 규합 전 마지막 작전, 적 방사포부대 습격과 가능하면 그 부대 털기 보급투쟁. 멀리서 봤지만 혹시 신형 300mm가 아닌가 의심했다. 다른 방사포와 달리 300mm는 최근 유도방식으로 개량되어 200km를 날아 정확히 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작계에서 ‘작전이 공백일 때 즉각 공격/파괴 우선순위 4번’. 김정은 시대에 엄청 공들인 물건이다. 휴전선에서 대전 계룡대를 쏠 수 있다는 스펙.


‘저게 지금 전선과의 거리는 아니겠지?’


우린 보급도 지금 절실하다. 하지만 이틀 전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산 아래가 침묵하며 공기가 달라졌다. 상대하는 북한군의 공기가...


배고프다. 식량이 없다. 목도 칼칼하니,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 한 사발 들이켰으면 원이 없겠다. 아무래도 오늘은 끝난 거 같다. 밑에 깔렸다면 1개 소대가 아니라 최소 중대, 인근까지 합하면 대대가 될 수도 있다. 중대라면 그물망처럼 소대 별로 거리를 벌렸을 것. 이 정도 산허리 3-4부에서는 우리가 요즘 산길을 타지 않는다는 걸 저들도 안다. 고로 산길을 중심으로 소대들이 벌어져 깐다.


완전히 끈으로 조여 부피를 줄인 빈 군장. 화끈한 보급품 털기를 고대했던 눈들에 실망감이 서린다.


‘왜 이러지?’


우린 이제 빽도해 은거지를 옮기고 이동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안에 묘한 기운이 있다. 분명 중대장님이 말을 참고 있다.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엄격했던 중대장도 이제 중대원들의 의사를 묻는다. 약간의 잘못된 지휘관 의사판단으로 자신은 물론 우리가 순간 몰살당한다. 그렇게 우리 중대 다섯이 평안도의 별이 되었다. 우린 사라진 다섯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생각을 하고 - 생각을 하면 피부로 그때 상황이 온다. 우리 팀 안에 그 다섯의 문제에 자신이 실수했다고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라도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 회수한 망자의 총 두 자루도 비닐에 싸서 땅에 묻었다. 조준경만 떼서 쌍안경처럼 사용할 수도 있고 예비로 써도 되지만, 묻었다. 유사시를 위해 매몰 위치만 정확히 암기했다.


난 중대장이 할 말을 무릇 짐작했다. 산으로 돌아간다는 얼굴 근육이 아니다.


나만 눈치 챈 거 아니다. 담당관이 손바닥을 하늘로, 그 끝을 중대장님에게 향해...


‘하고 싶은 말 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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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개도 잠든 밤 2 20.12.30 376 17 13쪽
» 개도 잠든 밤 1 20.12.28 399 17 10쪽
164 안둘 바라기 2 20.12.25 371 22 11쪽
163 안둘 바라기 1 20.12.23 394 16 10쪽
162 태운다 나의 거짓 4 20.12.21 359 15 11쪽
161 태운다 나의 거짓 3 20.12.18 361 13 14쪽
160 태운다 나의 거짓 2 20.12.16 368 15 11쪽
159 태운다 나의 거짓 1 20.12.14 405 12 11쪽
158 게릴라의 길 2 +3 20.12.11 425 19 13쪽
157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59 17 13쪽
156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54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392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61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04 19 12쪽
152 격납고 1 20.12.02 417 20 11쪽
151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50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60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55 20 16쪽
148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32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33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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