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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연재수 :
3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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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8,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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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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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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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해변으로 가요 5

DUMMY

고참은 유추했다. 지금 자신들과 똑같은 상황을 겪은 거다. 포격과 습격은 주간에 일어났다. 김원기는 무슨 전문을 받았고, 총을 쏘며 도주하다 이 하향길에서 적과 근접해 이리 들어왔다. 받은 그 전문을 태우거나 찢어 파기할 시간조차 없었고, 그 전문은 반드시 파기해야 했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이 친구는 마지막 힘을 다해 수첩의 종이를 찢어 입으로 삼키려 했다.


싸인펜이 아닌 볼펜이라 내용을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침 때문에 번지고 지워졌다. 몇 번 씹은 것 같다. 내용은 전체가 아닌 일부였다. 고참이 식별되는 글자들을 읽다, 눈이 물기로 흐려져 머리를 털었다.


[...... 열둘 B 지원. VIP 확증. 12일 OO~O4.

DC⼞27⼞⼞998. V⼞P와 모든 P ⼞드시 종결할 것.

완⼞히 절명시⼞것. VIP 얼⼞ 몸 다각도 촬영 채집.

P-3는 반드⼞ 식별⼞ 무사히 신병인⼞. 성공후 G는

모든 작⼞ 중단하고 P-3 동반 ⼞양으로 남하. P-3은

사수되⼞야 함. 열⼞⼞ 즉⼞파기. 통일!]


“뭐 이리 복잡해! 음, 누구 쥑이라는 소리 같은데? VIP? 뭐야? 모르겠다. P-3는 또 누구냐? 이거 내용 묘하네... 허, 기분 안 좋아질라 그런다.”


“이거 좌표가 어디지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말야... 이 좌표는 수신자가 수리학으로 한번 빼야 원 좌표가 나오는 거 같다. 내가 아는 우리 5만 분의 1 좌표와 안 맞아. 우리 작계섹터와 물려보면 안 맞아. 암호가 있다는 거지.”


“뭐가 중요하다고 죽으면서까지 씹어.”

“야, 하사가 원했던 대로 우리가 파기해주자.”


열둘 브라보... 이제... 둘은 이들의 여단을 알았다. 떠나기 전에 안 것이 다행이었다. 열둘 브라보의 어느 골프. 이제 김원기 소속을 알았다. 둘은 망자의 총을 분해해 수풀에 숨기고 노리쇠뭉치는 멀리 던졌다.


“됐다. 이제 됐다. 가자...... 에히 씨발... 좆같네 진짜. 에휴...”


가자고 서두르는데, 거구의 졸병은 증명사진이라도 찍어줄 것처럼 동안(童顔)의 죽은 자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마지막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우리 간다. 쫌만 좀 누워 있으라이... 다시 올게.”


하지만 바로 가지 못했다. “에이 이느므 자식아...” 덜컥, 졸병이 무릎을 꿇더니 양손을 땅에 짚고...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안 내려 이 악물고 울었다. 눈물이 명을 달리한 자의 군복에 뚝뚝뚝 떨어지고, 고참도 애써 먼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 이름 모를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어린 하사. 눈을 감겨 주었다.


“불쌍하다. 불쌍해... 뉘 집 자식인지... 턱에 솜털 밖에 안 난 녀석. 몇 년을 살고 간 거냐. 어디 깨지고 터진 거보다 이게 더 그렇네...”


부모가 너무 일찍 죽어 저승에서,

자기보다 더 늙은 자식을 만나거나

자식이 부모보다 일찍 죽어

청년이 더 늙어버린 부모를 만나거나

그래도 저승이 있는 것이 좋겠지

망자의 외로움이 너무 초라하니까


거기서 길을 피해 왼편으로 내려오는 진로는 험난했다. 길보다 열 배는 고달프고 힘들었으나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중간에 김원기가 고맙게 주고 간 특전식량을 한 봉지씩 뜯어 먹었다. 이제 둘은 그런 거 남겨봤자 뒤지면 어쩔 거냐고, 그냥 다 먹었다.


내일은 내일이다. 없으면 인육이라도 뜯어 먹는다. 땅콩크림. 햄. 육포. 강정. 초콜릿, 전분 두 가지, 이온음료 맥스웰 커피 봉투는 가루 채 삼키고 물을 마셨다. 가루 커피 니미 씹 소리 나올 정도로 정말 달콤했다. 샷 더 마우스~ 천국. 몸이 반응한다. ‘이 사지(四肢)는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다 먹고 나자 고참이 손가락으로 저 산 위를 찍었다. 리멤버 김.원.기. 졸병은 그 쪽을 똑같이 바라보면서 망자의 대검을 챙! 뽑아 공중에 흔들었다가 내려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톡 쳤다. 졸병이 장송곡 같은 노래를 나지막이 부른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배가 부르자 여백으로 생각이 들어온다. 둘 다 골똘히 가만히 앉아있다. 슬픔, 좌절, 난망, 그 모든 것을 잊을 때는 딱 하나였다. 공격할 때... 누굴 죽이고 자신이 죽는 건 부차적이었다. 우선권을 쥐고 앞으로 나아갈 때다.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는 확실한 목적에 따라 하고 있고 실행하는 그것, 그것 밖에 안 보이는 상태. 자신이 강하던 약하건 잘하건 못하건... 하는 그 자체가 최고의 인간이었다. 해안돌격 익스트림이 두려움 속에 그걸 속삭여주었다. 둘은 그걸 쉬어서 화가 난다.


먹고 힘을 내서 해가 질 무렵 산 하단에 도착했다. 이제 완전히 컴컴해지면 출발한다. 이제 카멜백 물도 다 떨어졌다. 고등산악도 아니고 너무 용을 썼다. 고참은 종종 멈춰 조준경으로 밤에 이동할 루트를 물색하며 내려왔다. 도로와 민가, 북한군 주둔지나 검문소나 혹시나 모를 매복 깔릴만한 곳을 봐두었다. 자신들이 암기한 섹터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아주 어렵지 않다.


그렇게 어둠이 짙어질 무렵, 둘은 와지선 바로 위 수풀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컴컴해지길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며 관측하던 중, 대단히 특이한 것도 아니지만 아주 관심을 두지도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농사짓는 사람들 창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차 어두워지자 그 각진 창고 모양의 사선 틈에서 빛이 수직 1자로 새어나왔다. 그리곤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뭐지? 깨달았다. 그건 텐트였다. 남한으로 치면 24인용 군용텐트. 조준경 들어서 보니 안테나도 서 있었다. 그냥 보건데, 낮에 산에서 봤던 부대의 지휘소 같은 곳이 아닌가? 둘은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그 방향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원래는 그걸 피해 멀리 우회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냥 궁금했다.


텐트는 와지선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있었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소변을 보는 군인들의 모자를 보니 다수가 군관, 산에서 본 부대 지휘소가 분명했다. 왜냐? 그들도 색깔 어설픈 우드랜드 짝퉁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낮에 본 병력과 저 텐트, 어디 부대인가. 경보야? 일단 경보병여단이 가장 많고 군단마다 경보병대대도 있다. 해상저격여단이나 항공륙전은 아닌 것 같고, 하여간 일반 보병은 아니다. 북한은 워낙 군부가 거대해서 조금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는 많았다.


박모 시점, 이제 다시 올라가서 여길 우회해 출발하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텐트 바깥에 보초가 없다. 애매한 시점, 곧 동초가 시작될 거 같다. 이해는 간다. 여긴 저희들 땅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기들 땅에 우리가 돌아다니는 거니까. 남조선 게릴라들은 항상 산속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안 그런데? 과거 북한군 무장공비는 밑에 내려왔다 많이 잡혔는데...?


그걸 바라보는 수풀 속, 둘. 하도 오래 같이 다니다 보니 어떨 때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소통이 가능하다. 고참이 먼저 속삭인다.


“강릉 기록 읽었지?”

“어! 이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았드만.”

“마지막 정찰조 이야기.”

“끝까지 개긴 애들요?”


고참인 중사도 졸병인 하사도 여길 우회해서 피해 가자 어쩌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어둠 속에서 이유 없이 서로를 쳐다보는데 입 꼬리가 올라가고 잇빨이 서서히 드러난다. 둘은 눈썹을 씰룩하며 피시식 웃기 시작했다. 정찰국, 정찰조? 우물 안 개구리도 좆을 까 잡숫곤 하지. 레드~썬에서 깨어나 봐. 강릉이 뭐가 대단했어? 웃기고 자빠졌네. 한 거 없어! 그냥 도망만 친 거야. 사람들이 착각해서 그렇지... 거지꼴에 총 든 건 지금 똑같네. 후후후. 이거, 웃기네! 진정하려 하지만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이게 대단해?


중사와 하사 웃으며 일어나 총 스위치를 돌린다.


둘은 천천히 걸어간다. 80미터 정도를 그냥 산보하듯이 천천히 걸었다. 발소리를 줄여 입구에 다달아 안의 소리를 듣는다. 뭐 토의하고 무전기 교신하고 난리다. 둘이 동시에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는다. 마주하는 눈. 될까? 글쎄... 흐흐흐. 아이 웃겨. 이게 어려운 거야? 강릉 포레버? 리벤지 열둘 브라보? 리벤지 김원기? 덩치 큰 하사는 여전히 몸이 킥킥대고 있다. 웃는 얼굴에 눈이 차디차게 변한다.


'곤조?'

'곤조...'

고개를 끄떡하자 동시에 안전손잡이를 날렸고

‘구워!’ 고개로 동시에 하나 둘 셋...


텐트 안으로 투척.

둘은 그 자리에 엎드린다.


꽈릉! 꽝! 푸시시시시식...


텐트 천장이 날아가고 반 이상이 휑하니 뚫렸다.

바로 일어나 손님답게 텐트 입구로 걸어 들어간다.

넝마가 된 텐트를 보고 하사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자동. 온 몸이 떨린다.

기마자세로 수평 지향. 먹어라 씨발.


니들 땅에도 씨부랄 정찰조 납셨다!


우드랜드 짝퉁들이 다 쓰러지고,

둘이 속보로 걸어 나온다.

하사는 여전히 웃고 있다.


다 죽었는 줄 알고 등을 돌리는데,

뒤에서 소리? 텐트 중간에 한 명이

일어나 보총 들고 간신히 비틀거린다.

하사. “얼라? 걸음마 해. 걸음마...”


위로 들리는 하사의 총구를 중사가 누른다.

‘이 거리는 내가 연습 안 해봤는데..’


어느 틈엔가 중사 손에는 대검이,

손잡이가 아닌 날 끝을 쥔 상태로 들려 있다.

‘타깃은 작아졌고 2회전이 넘어...“


중사는 보폭을 약간 벌려 발바닥을 안정시켰다.

모든 게 거기서 나온다. 속으로 상대에게 말했다.

‘맞으면 죽고, 아니면 넌 살어!’


왼팔을 주먹 쥐어 중단막기로 들고

대검 쥔 손을 거의 수직으로 들었고,

몸을 왼쪽으로 누이면서 대검을 투척했다.


둘은 어둠 속으로 전속력 질주를 시작한다.

특전식량 한 봉지의 힘!


웃음소리가 그들을 뒤따른다.


“또 까먹었어~! AK~~~!!!”


“우하하... 우하하하하하...”


손을 떠나 바람을 가른 잎사귀의 손맛.


방향 서쪽.

바다를 향해 뛰어.


별이 쏟아지는

전우들이 있는.


해변으로 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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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해변으로 가요 1 21.02.01 443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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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다섯 골프 브라보 11 +2 21.01.27 459 21 12쪽
177 다섯 골프 브라보 10 21.01.25 366 22 12쪽
176 다섯 골프 브라보 9 21.01.22 369 22 12쪽
175 다섯 골프 브라보 8 21.01.20 373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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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다섯 골프 브라보 4 21.01.11 359 17 11쪽
170 다섯 골프 브라보 3 21.01.08 361 23 12쪽
169 다섯 골프 브라보 2 21.01.06 361 18 12쪽
168 다섯 골프 브라보 1 21.01.04 440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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