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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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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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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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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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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다섯 골프 브라보 1

DUMMY

공중에 하얀 것이 보이면 미국 공군이고

공중에 검은 것이 보이면 영국 공군이고

공중에 아무 것도 안 보이면 독일공군이다

- 노르망디 상륙 이후 독일군 농담



다섯 골프 브라보


1. 김원기 하사는 부대원들이 상상했던 최악을 맛보았다. 그러나 진짜 최악을 맞이한 건 김하사가 아니라 김하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수가 맞다. 가슴 아프지만 그게 사실이다. 수송기는 뭔가에 재봉질 당하듯이 여러 차례 직격 당했다.


수송기가 운항고도에서 DZ를 향해 강하고도에 맞춰 감속하던 상황, 일어섯! 그리고 아직 레드라이트가 들어오지 않았던 순간, 그 뭔가는 밑에서 수십 개 뚫고 올라왔다. 총성 포성 징후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강하자들 귀에 울리는 엔진 굉음 속에서 갑자기 딱 따다닥 퍽퍽퍽 뚫고 동체 표피를 찢으며 올라왔다. 그것 하나 하나는 작지 않았다. 총알이 아니라 캐논탄처럼 터지면서 파열해 들어왔고, 내부는 감당 불가능한 아수라장이 된다.


통제하고 구령할 점프마스터도 맞았다. 메인패스트 중간에 있었던 김하사는 어찌 할 바를 떠올리지 조차 못했다. 타인이 출연한 영화를 보듯이, 바로 옆 동료들이 깜짝할 순간 비명이나 헉! 소리를 내고 나서 잠들 듯이 움직이지 않았고 주변에 튀고 흐르는 피를 보았다. 하사는 머리가 조용히 떨렸다.


건너편 문 강하열에서 길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나 산악헬멧 때문에 누군지 몰랐다. 어디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비명과 울부짖음. 무거운 군장에 꽉 끼인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어떻게 일어날 수도 남을 도울 수도 없다. 거기에 명이 끊기거나 정신을 잃은 사람들 몸이 서로 눌리면서 더욱 꼼짝하기 힘들었다. 훈련 때라면 여단에서 나온 강하지원 근무자들이 있었겠지만 전투강하는 없다.


수많은 나날 이 작전을 위해 연구하고 준비하며 작계군장을 꾸렸고 영웅적인 마음으로 수송기에 올랐으나, 북한이란 현실을 맛보기도 전에 미문의 충격부터 받았다. 아직 북한을 깨닫지도 보지도 못했다. 지금 북한 상공이라 해도 수송기 안은 여전히 남한이나 다름없었다.


그 참사를 보고 김하사가 처음 떠올린 단어는 ‘물거품’. 계속 머리가 떨린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공포와 충격으로 몸이 얼어붙고 김하사가 상상하던 점프는 조각났다. 적진을 향해 과감하게 기체문을 이탈하는 그림은 떠올린 단어처럼 물거품이 되었다. 기내 상황은 김하사가 상상도 해보지 않은, 어쩌면 농담 삼아 주고받던 짤막한 문장 그런 거였다.


어느 순간 저 멀리 왼쪽 45도 반대편 문에서 그린라이트가 점멸하는 걸 봤다. 그린라이트? 아니 그린라이트라고? 앉아서 그린라이트를 본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녹색 등은 점등이 아니라 점멸하고 있었다. 점멸?! 나가란 거다. 모두 나가라 하고 있었다. 누가 나가는가. 누구 내보내 줄 상황도 아니다. 그 파열탄들은 수송기 중심선을 따라 정확히 선을 그으며 뚫고 올라왔다. 그걸 발사한 병기들은 수송기 바로 아래 수직선에 있었고, 아마도 야투경으로 정확히 본 상태에서 쐈다.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도와 달라 소리쳤고, 같이 타고 있던 공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비행기는 남으로 못 돌아가...’


직접 맞지 않은 대원들도 일어서기 힘들었고, 이 문제는 수송기 대당 점프병력을 최대한 많이 실었던 침투작계의 압축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게다가 수송기는 기울었고 고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도 정상적인 강하를 포기한 조종사가 고도를 높이는 것 같았고, 나선으로 돌듯이 올라가는 기분이다. 강하자들은 비행기가 앞으로 나가는 건 잘 못 느끼지만 상승과 하강은 직접 몸으로 안다.


김하사는 그때 그린라이트 점멸하는 반대편 문으로 몸부림을 치며 나가는 강하자들을 보았다. 몸은 얼었지만 상황은 알아들었다. 모두 이게 뭔지는 안다. 수송기는 정상이 아니었고 살 사람은 나가라는 거다. 그리고 기체문 앞에 누가 서서 사람을 잡아 끌어주고 있었다. 공군 승무원. 등에 승무원 낙하산을 착용하고 있었고, 강하자만 없다면 조종실에서 올린 점멸하는 그린라이트에 따라 그냥 문 밖으로 점프해도 된다. 승무원들이 그 승무원 낙하산을 착용한 건 아무리 경력 많은 고참도 처음 본다. 미군은 기체문이 열리는 전술상황에서 반드시 착용하지만, 우리 공군은 별로 그러지 않는다. 그 승무원이 낙하산을 착용한 것. 그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 항공기 자체 비상상황 탈출(bail out)! 그거다.


그 근무자들은 양쪽 문을 개방하고 나서 바로 나가도 되는 거였다. 하지만 승무원은 어렵사리 나오는 김하사 부대 강하자들을 잡아끌어 문 밖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나올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승무원은 중간 중간 문으로 뛰어나가려는 액션으로 갈등하면서 참고 있었다. 비상탈출 자체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승무원은 이탈하려다 다시 나오는 한 명을 끌어주고, 나가려다 안의 사람들을 보며 주춤했다. 승무원은 자꾸 기체문 밖 컴컴한 곳을 본다. 승무원이 왜 그러겠는가. 왜? 고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종실 승무원들은 비상탈출 절차가 별개다. 기장이 비상탈출을 인터컴으로 선언한 순간 명령은 이미 끝난 거다. 문 앞 승무원도 이제 문 밖으로 뛰어나가 자기 립코드를 당겨야 한다.


그때 김하사가 자기 눈을 의심한 건 바로. 도움을 받아 나간 그 강하자들이 생명고리를 걸지 않았다는 것. free fall이었다. 다시 말해 예비산 강하. 비행기는 기울었고 김하사 반대편 문은 밑으로 기울어 밀리면서 생명고리 걸 시간이 없었고, 김하사 쪽 문은 오히려 문을 향해 약간 기어오르듯이 나가야 했다.


김하사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체문 앞 근무자만이 아니라 조종실의 공군 조종사 항법사 서너 명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었다. 내부에 강하병력이 없었다면 일단 기수를 들어 고도를 높이면서, 그들은 더 빨리 비행기를 버리고 안전하게 탈출했을 거다.


김하사 지역대는 외측열, 타 지역대는 내측열, 어느 지역대가 더 먼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는 이 내-외측만 봐도 서로 알 수 있다. 이런 비극의 배경에는 이미 또 다른 독초가 자라고 있었다. 단어 하나로 정의된다. D+5일. 북한군은 이미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D+5란 명칭은 대원들에게 반은 죽음으로 들렸다. 김하사 부대원들은 못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령부는 뭔가 더 필요했다.


그 많은 탑승인원 중에서, 김하사가 눈으로 목격한 반대편으로 나간 강하자는 서너 명이었고, 김하사가 자기에게 신경 쓰며 주의를 두지 않을 때 몇 명 더 나갔을 수도 있다. 김하사에 해당되는 우측문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움찔, 움직이려 했으나 고요히 잠든 양쪽 강하자 틈에서 김하사는 몸이 묶였다. 왜 중간의 자신만 안 맞았는지 생각할 틈이 없다. 일어서려고 해도 내측 강하열의 앞 사람 군장이 김하사 군장을 덮어 누르고 있다. 훈련 때는 130에 최대한 많이 채우려고 ‘차곡차곡 쌓는다’는 표현처럼 군장을 서로 위로 덮어 착석시키며 강하자 간격을 좁힌다. 그래서 강하지역 4분 전을 약간 길게 준 다음, 일어섯! 구령이 나오면 문에 가까운 쪽부터 군장을 들어 빼며 일어서 나가다보면 톱니바퀴처럼 풀려 순서대로 일어선다. 이 과정은 내측이 먼저 나가든 외측이 먼저 나가든 똑같다.


이렇게 많은 강하 탑승자 중에서 자력으로 나갈 사람이 나타나기 힘들었던 이유도 바로 이 차곡차곡...에 있다. 차곡차곡 수송기 안쪽으로 붙은 강하자들은 앞부터 풀려 나가야 한다. 그런데 대공포는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쐈는지 수송기 중심선을 재봉질하며 뚫고 올라왔고, 특히 바로 그 강하자 열 시작점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니 앞에서 안 풀린다. 김하사가 못 보는 시점에 거기서 몇 명이 나간 것 같지만, 문에 가까운 쪽에는 산악헬멧이 깨져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앞 열 한 대원은 헬멧을 벗고 목이 90도 뒤로 젖혀진 상태로 숨을 몰아쉬며 피를 토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세계 그 어느 나라 공수부대라 해도 수송기를 안부터 꽉 채운 상태에서 피탄 됐을 경우 똑같다. 이것이 비무장 훈련강하였다면 그냥 앞부터 고리 걸면서 뛰어 나가면 된다. 다 죽었으면 중간 열에서도 솟구쳐 나갈 수 있다. 부대에서 비무장강하는 하지도 않지만 - 한다면 그건 강하가 아니라 레포츠로 느낀다. 국군의 날 시범강하 같은 것. 부대에서 강하 정기강하란 명칭은 100% 야간무장강하다.


재보급을 믿지 않았던 김하사 부대원들의 엄청나게 무거운 군장은 이 상황에서 죽음의 스쿠버 납벨드가 되었다.


여러 군데서 강하자들이 결속을 풀고 군장에 들었던 의무낭을 꺼내 치료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일명 텔레토비 산악복과 낙하산과 군장을 착용한 상태에서 강하자들이 틈 없이 바짝 끼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 험난한 일이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결속을 손에 걸리는 대로 마구 풀어 지혈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좌우 앞의 강하자는 강하 다했다고 할 정도로 장비들이 얼키고 설켰다. 그러는 가운데,


징~~ 징~~~ 징~~~ 징~~~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문을 보게 되고, 열린 문에서 점멸하는 그린라이트를 보면 상황은 뇌에서 번개가 튄다. 그러나 나갈 수가 없다. 나갈 수가.


김하사 바로 앞사람도 어디 맞았는지 떨리는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보며 입을 벌려 크게 신음하고 있다.


“어어... 어어...”


윗 지역대 장교였다. 그래도 강하자들은 점프에 대한 최후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산악헬멧을 벗지 않고 있다. 김하사 쪽보다 피해가 적은 좌측문 강하자 일부가 대열 중간에서 어렵게 일어나 문으로 가려 한다. 김하사는 자기가 안 맞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곧 죽는 길이란 것도 알았다. 고참이건 졸병이건 생각은 위기 앞에 너나없이 동일했다. 비행기는 빠가가 났고 조종사는 탈출하라고 그린라이트를 깜빡이고, 상황이 어찌되건 결국 조종실 사람들도 탈출한다. 그러면 못 나간 사람들은 정신줄이 남아 있을 경우 추락과 충돌을 기다리다 죽어야 한다. 비극적으로 정신이 깨어 있다면 말이다.


'뭐지? 어떻게 되는 거지? 이게 왜 이러지? 유보사항. 유보사항. dz를 못 가거나 도달하지 못할 때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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