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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3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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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7
글자수 :
2,076,964

작성
20.10.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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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추천
18
글자
11쪽

해파리 three (2)

DUMMY

어느 성당의 주보 : 필요이상으로 돈을 더 가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가져온 것이다. 인간 모두에게 생존권이 있다. 더 가진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의 생존권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작위-운이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세상 편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 그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니까. '세상이 그런 데 뭐 어때! 나도 최선은 다하고 있다고!' 정리하기 가장 간단하니까. 혹시나 정해진 어떤 규칙대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그게 하느님인진 확신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게 뭐야. 이 세상이 뭐야. 뭐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중구난방이야. 그럼 무작위로 욕심을 부려도 이상할 건 없네? 모든 것에 정해진 순서가 있고, 우리 인간으로서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그 무엇. 다수는 부정하겠지. 왜? 자기가 중요하니까. 자기가 맨 마지막에 죽어야 하니까. 난 있다고 봐. 난 죽을 때 되면 죽어."


"그때는 서러워 말고 받아들여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적 인간적 실리로 따졌을 때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군대 입대 전에도. 그건 사실이야. 부정할 수 없어. 그래도 인간이 어느 구석이라도 이 사회에 사람들에게 도움은 되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지. 한다고! 무의식중이라도 그런 생각 한다고! 누구에게 도움도 되지 않고 내 배만 불리려고 사는 사람, 있기는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아? 나는 정당. 정당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시 구분점. 하향길 타고 내려왔더니 그림이 변한다. 전형추는 앞뒤를 돌아본다. 처음에 찍었던 방향 참고점이 사라졌다. 방위각과 일치하던 검은 봉우리가 가까운 등성에 가려 증발했다. 감각으로 방향은 알지만 확실히 한번 찍어야 한다.


‘일단 이 위치에서 방위각을 보자. 1차는 포기, 연장선의 2차는 거리 따블. 팀장조와 만날 수 있어? 동이 터서 노출된 곳에 정지되면 죽는다. 손목시계... 아, 동트기 두 시간이 못 돼. 어서 주간에 유리한 곳으로. 은폐 엄폐 기동 유리한 곳으로...’


방위각을 확인하고 몇 걸음,

전중사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어? 어?’


갑자기 눈앞에 아련한 추억의 주형... 둘은 길 잃은 사람처럼, 먹을 걸 빼앗긴 어린애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백지시험이 백지가 되었다. 여기 뭐가 있었지? 훈련의 추억. 독수리훈련 폴 이글의 감각. 철조망이 쳐진 양계장 같은 윤곽.


‘이건 군부대야.’


컴컴하다. 하지만 저 앞에 뭐가 꾸무럭거린다. 희미한 등도 보인다. 잘 안 보이지만 있다. 꿈틀거린다. 꾸물럭과의 거리 약 50.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린다. 누가 누구에게 소리를 지르나. 그러나 직감! 저건 군인이다. 명칭은 모르겠지만 군인이 지르는 소리다.


다시 새로운 추억이 등장한다... 교전음 체험. 사선 150 중간 도랑에서 사선을 향해 등을 지고 앉아 기다리던 추억. 메가폰.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이어지는 총성과 함께 벌떼 같은 탄두의 습격. 딱 따다닥. 두꺼운 종이 뚫는 소리.

전중사가 전영배 팔을 잡는다.


충격! 파괴음! 조각나는 고요!


탕! 탕! 탕! 다라라라라....


동그란 불꽃이 앞에서 쟁반처럼 번쩍이며 파열! 탄이 날아온다. 녹색 예광탄이 줄지어 날아온다.


‘여기서 엎드리면 못 일어난다. 끝이다.’

당장 판단이 목숨을 좌우한다. 둘은 땅에 한쪽 무릎을 댄다.

‘씨발...’


전중사의 고개와 눈이 번개처럼 사방을 훑는다. 무겁다. 판단은 목숨이다. 가야할 방위각 + 나타난 부대 + 지형 = 답이 안 나온다. 보초는 신원불명 둘을 봤다. 응사하면 안 된다. 아직 조준은 못하고 있으나 곧 쫓아온다. 새로운 참고점을 아직 안 찍었다. 지금은 방향을 무시하고 도피탈출 시점.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갈 건지는 뛰는 것보다 중요하다.


‘일단 부대만 피해?’


부대에서 나올 놈들의 추격 루트는? 높은 곳으로? 전중사 성대에서 귀신 소리가 허... 허... 바람 빠진다. 뜨겁던 몸이 반전되어 오한이 온다. 얼굴의 땀을 훔쳐 뿌리고 지력을 모아! 화점을 향해 수류탄이라도 던지고 싶지만, 비정규전에서 노출은 특별한 선택이다. 쏘고 싶어도 못 쏠 때가 있다. 게릴라는 오늘 많이 죽이고 부수는 것보다 내일 밤 또 나타나는 것. 이제 사라졌나 안심이 들 때 또 갑자기 나타나는 것. 특수정찰조는 이제 천연의 비정규전으로 발을 디뎠다. 서로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이다. 이어가려면 다섯 브라보에 도달해야 한다. 그들도 별 도리 없이 한계적이겠지만, 그래도 팔뚝은 모여야 강한 줄다리기가 된다.


전중사가 총 자물쇠를 툭툭 친 다음, 방향을 찍었다.

‘가자 씨...’

‘니미 씨...’


그림자,

내 모습은 거리를 헤매인다

어둠이 내리는 길목에 서성이며

불 켜진 창들을 바라보면서

아아 외로운 나. 달랠 길 없네

그림자 내 이름은, 하얀 그림자


1초는 우리가 불변의 단위로 생각하기에 1초다. 1초는 인간 외에 쓰이는 단위도 아닌 설정이다. 빛의 속도로 설명하면 1초는 자질구레한 소수점 아래 숫자로 설명한다. 세상 자신이 1초를 도량형으로 정하지 않았다. 영겁까지는 어니어도 1초가 다섯 손가락으로 나눌 정도는 늘어져 있었다. 난 내가 본 걸 말하고 있다. 세상은 인간이 보기에 슬로우비디오가 도량형에 가깝다.


우리 인간이 너무 급하고 빠르게 보려하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보고 싶은 것에서 빠르거나 느리면 집중력을 잃는다. 자기중심 속도로 허다하게 놓친다. 우린 느리게 천천히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많은 것을 더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빨라야 안 굶어죽는다고 충고한다.


느리게 보건 빠르게 보건 세상은 상관없이 자기 나름 흘러간다. 본질은 변하지 않고 인간의 속도계로 자위할 뿐. 나무도 풀도 매일매일 크면서 어제와 같은 것은 없다. 심지어 돌도 변한다. 농사를 짓거나 마당에 고추만 키워도 안다. 정지한 그 무엇도 없다. 오히려 정체된 것은 인간의 눈과 고질적으로 짧은 자가당착 감각이다. 산에... 오래 있으면 그것이 다시 원시적으로 늘어난다.


100미터 육상선수의 스타트 자세. 그 사람의 허리를 잡은 내 손. 내 몸이 따라 올라가고, 내가 거의 일어섰을 때, 내 왼손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그때 버클을 놓고 어떤 행동을 한 것 같은데 난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다음 기억의 파편은, 내가 한여름 보트에서 뒤로 떠밀려 바다로 떨어지듯... 발바닥이 뜬 채로 공기에 밀려 공중을 날았다. 발을 딛지 않은 채 별을 보았다. 내가 공중에 떠 있을 당시, 적어도 10초 비상했다고 생각하나, 실제는 아마도 1~2초? 그때 나는 ‘없음’을 보았다.


무(無). 그것은 누가 규정할 수 없다. 명제 자체가 없기에 無가 아니겠는가. 혹시 인생에서 그 無가 낀다면... 그 시간 동안 중간이 빈 게 아니다. 절대 無는 앞뒤와 인과가 없을 뿐. 그래야 無라고 칭할 만하다. 그렇다. 다시 태어나는 거다. 앞과 전혀 다른 것이 시작된다. 난 인간이 눈을 뜬 상태에서 아무 생각도 안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연은 그 시간을 오래 윤허하지 않았다.


내가 무에서 유로 전환된 것은 사람들의 음성이다. 모기소리가 윙윙거렸는데, 어느 순간 인간의 억양 고조라는 걸 알았다. 생각하니, 지금 내가 왜 여기 있고 왜 이런지 모른다. 오로지 느끼는 건 ‘뜨겁다!’ 온 몸이 뜨겁다. 그리고 저 음성이 결코 나에게 온화할 존재가 아니란 생각에 퍼뜩, 움직이려 하지만 술에 취한 듯 사지가 주욱 늘어진다. 모기소리에 뜻이 형성된다. 말소리... 내용 모르겠다.


난 제주도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억양이 웅얼웅얼... 제주도 훈련 때 자주 들었던 본토박이 tone. 제주도 신시가지나 팬션과 멋진 집들과 떨어져야 그런 말을 듣는다. 우린 제주도에서조차 밤에만 외진 곳을 돌아다녔고, 이놈의 한라산 자락은 지도에 있는 길이 없고 - 없는 길이 나타난다. 자기 집 지은 서울사람들이 제멋대로 포장해서 지도를 보게 한다.


제주도는 항공지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다녀야할 우마차길은 지도와 상당히 다르다. 뭉개고 밭을 만들어 길이 사라진다. 하지만 아주 헤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혼란은 짧다. 왜? 한라산 정상을 찾는다. 하지만 산에 붙으면 붙을수록 정상이 안 보인다. 한라산은 전문 등반인 코스로 올라야 진짜다. 우리나라에 그런 산이 있다는 데 놀랄 거다. 300명은 들어갈 천연 동굴을 봤다. 멀리서 보면 백록담이 솟아 있지만, 붙으면 능선 밑으로 사라진다. 산에 한두 번 속은 건 아니다.


나는 한라산에서 자고 있나...


아니다. 그게 아냐. 앞의 일이 사라졌어. 뭐가 있었어. 뭐지? 그래 난, 군인이야. 여기 왜 있지? 아 전쟁 났어... 어... 어?... 내 수류탄. 터졌나? 공중에서 회전하던 AK를 봤어. 어찌 된 거지? 상급병사는 어디로 갔지? 귀를 열어. 다가오는 억양. 아, 제주도 아니다. 강원도 억양? 정신 차려! 북한군이야. 몸, 내 몸.


몸을 호출하자 불시에 고통이 몰려온다.


“어... 허... 억.”


단단한 불기둥이 날 후려친다. 내 몸을 선반에 놓고 바이스가 조이고 인두로 지진다. 턱이 끝까지 벌어지고 소리를 안 내려 참는다. 나 많이 다친 거다. 움직임이 불가능하다. 어디 부러졌나봐. 포로?... 안 돼.


다가온다. 눈이 왜 이래. 앞이 잘 안 보여. 컴컴해. 내 총. 내 총 어딨지? 별로 먹은 것이 없어서 그런지. 수류탄 폭발 때문인지, 대체 언제 여기 왔는지 하루가 지난 건지 이틀이 지난 건지 일주일이 지난 건지 희미하다. 내가 북한에 얼마나 있었던 거야. 아, 며칠 만에 사람이 이렇게 되나. 내가 미친 거 같다. 누구를 미친개처럼 물어뜯을 것 같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 같다. 난 인간이 아니다... 정신 차려! 넌 보람이 아빠야!!!


그럼 뭘 해야 돼!!!


‘더듬어서 수풀로 들어가. 기어. 몸을 뒤집으면서 숨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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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해파리의 유령 1 20.10.25 427 23 11쪽
» 해파리 three (2) 20.10.24 411 18 11쪽
116 해파리 three (1) 20.10.23 441 21 12쪽
115 해파리 넘버 Two (2) 20.10.22 451 21 13쪽
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113 내추럴 본 : 종결 2 +2 20.10.20 496 26 13쪽
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2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73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6 26 12쪽
109 마천령 산맥 2 20.10.16 462 23 11쪽
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65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506 22 15쪽
106 블랙홀 속으로 10 +4 20.10.13 497 25 13쪽
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3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103 내추럴 본 : 서바이벌 나이프 20.10.08 530 24 16쪽
102 내추럴 본 : 이성규 중령 20.10.07 555 22 12쪽
101 내추럴 본 : 갈대숲에서 하늘을 본다 2 20.10.06 547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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