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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連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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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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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내가 악신 숭배자?

DUMMY

3화


계약(契約).

신이 인간에게 힘을 내리고, 인간은 그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숭고한 행위.


신의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이 계약이라는 것을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일방적 계약>의 방식으로 신성을 하사받는다.


예를 들어 저 아래 마을의 어떤 남자가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됐다고 치자. 이때는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일방적으로 힘만 준 경우다.


반대로 공허의 주인처럼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계약은 <직접 계약>이 된다. 신이 직접 나타나 계약을 주도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직접 계약을 통해 계약한 이들은 더 많은 힘과 권능까지도 부여받을 수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직자들은 대부분 직접 계약을 통해 강해진 이들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인 거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악신의 계열에 속하기 때문.


약소한 성신이 직접 나타나 계약을 언급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을 것이다. 선신은 대륙 전체를 등에 업고 어딜 가도 환영받으니까.


반대로 악신은 대륙의 공적이다. 특히 그 악신에게 직접 힘을 부 받은 이들은 무조건 척살 대상이다.


오죽하면 교단들의 공통 현상금 중 하나가 직접 계약한 악신 숭배자를 죽이는 것일 정도니 말 다 했다.


‘대부분의 악신 숭배자들이 힘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인 척 하는 이유가 다 있지.’


[대답이 없구나?]

“아닙니다. 그···저···.”

[나는 자비로운 여신이니까 1분 줄게. 결정하렴.]


그녀는 그리 말하며 허공에 앉았다.

나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신이라도 대상의 동의 없이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방적 계약이든 직접 계약이든 인간의 의지로 거부가 가능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무려 신이 직접 움직여 계약을 주도했는데 거절당했다? 자존심 상한 신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도에게 척살령을 내릴 것이다.


‘거절하면 무조건 죽어. 하지만 수락해도 그건 마찬가지잖아.’


죽기 직전까지 선신의 성직자들에게 도망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악! 도대체 왜 이렇게 꼬여버린 건데.’


아까 전부터 개 같은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설마 이것도 운이 낮은 게 원인인 걸까.


[째깍, 째깍. 째깍. 1분 다 됐네? 그래서 답은? 거절하면···알지?]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넌 이제부터 내 신도야.]


갑자기 텐션이 오른 그녀의 손가락에서 검은색 기운이 쏘아져 나와 심장에 깃들었다. 피를 따라 전신으로 퍼져갔다.


“크윽.”


기분이 이상하다.

벌레가 몸 속을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힘이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고, 본래의 시야로 돌아왔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피곤했다.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마냥 무거웠다.

공허의 주인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대답 하나 할 때마다 정신력이 쑤욱 빠져나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게임 속에 빙의한 이후로 다짐한 게 있었다.


-가늘고 길게 살자.


나는 오래오래 별 탈 없이 살고 싶었다. 실제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다짐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그 빌어먹을 성기사의 말대로 진짜 이단이 될 줄이야.”


소시민 요한, 악신 숭배자가 되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래도 굳이 희망 회로를 돌려보자면···그래. 공허의 여신이 썩 나쁜 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의 악신들은 절대적인 악 성향을 뛴다.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가며, 인간의 역사에 혼돈을 주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공허의 주인은 그렇지 않다.

절대 악도 아니고, 절대 선도 아닌 중립에 가까운 신.


‘내가 기억하기론 모든 행동들이 재미로 이어지는 신이었지.’


인간을 죽이는 게 재밌으면 죽이라고 명하고, 반대로 살리는 게 재밌으면 살린다.


내게 계약을 제안한 것도 그 재미 중 일부일 거다.


“뭐가 달라졌는지 볼까. 상태창.”


====

[상태창]

이름: 요한

칭호: 공허의 주인을 모시는 자.

-체력: 17

-근력: 17

-민첩: 12

-잠재력: 32

-행운: 0

-신성: 30

-보유 스킬: 소멸, 멀어지는 죽음, 신성 수확

====


“그래도 직접 계약이어서 그런지 신성이 어마어마하네.”


막 계약한 이들의 평균 신성량은 10이다. 20만 쳐줘도 많은 건데, 30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치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스킬을 살펴봤다.


====

소멸

분류: 액티브

내용: 일정 신성을 소모해 접촉하는 물질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대상의 크기, 무게, 수준에 따라 필요한 신성의 양이 달라지며 생명체에겐 쓸 수 없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소모 신성: 없음.

====


“역시나 이 스킬은 여전하네.”


공허의 여신이 다루는 공허는 아무것도 없음을 뜻한다.

말 그대로 무(無). 이는 파괴와 소멸, 죽음과도 관계돼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공허의 주인을 숭배하는 이들은 소멸이라는 힘을 사용했고, 매우 까다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 어떻게 썼더라? 너무 옛날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했다.

중학생부터 지금까지, 기간을 모두 합하면 무려 15년이다.


기억날 듯 말 듯 하다.


다음 스킬을 확인했다.


====

멀어지는 죽음

분류: 패시브

내용: 공허의 주인이 하사한 가호입니다. 가호가 유지되고 있을 시, 대상의 죽음은 10분간 유예됩니다. 이때 죽은 뿐만 아니라 모든 상태 이상도 함께 유보됩니다. 최대 신성의 90%를 사용시 모든 상태 이상을 없애고, 일정 수준 체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30일~7일

소모 신성: 없음.

====


신이 하사하는 힘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소멸처럼 계약만 하면 누구나 사용 가능한 스킬부터, 멀어지는 죽음처럼 신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가호. 마지막으로 인세에 신의 힘을 끌어올 수 있는 권능까지.


스킬이 제일 얻기 쉽고, 반대로 권능은 얻기 매우 힘들다.


“실제로 권능 뽑으려고 1억 가까이 썼던 너튜버도 있었지. 결국 뽑지 못했지만.”


생방송으로 울려퍼지던 절규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지막 스킬을 살폈다.


====

신성 수확

분류: 공양

죽은 대상의 신성을 수확하여 공허의 주인에게 공양합니다.

====


한마디로 신성을 받쳐 힘을 얻는 스킬이다.

이것 때문에 악신 숭배자들이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나는 심장 속 신성력을 느꼈다.


“여긴가?”


이질적인 기운을 최대한 끌어냈다.

손바닥 위로 회색의 빛이 피어났다.


찬란했다.

휴대폰 화면으로만 보던 픽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속에서 신성함과 범접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감상은 여기까지.


“스킬은···‧외쳐야 하는 건가? 그건 좀 쪽팔리는데.”


이 나이 먹고 일본 애니처럼 <파이어볼!>을 외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효과만 있으면 되니까.


“소멸.”


잿빛의 신성이 검게 변했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허공에 구멍이라도 뚫린 느낌이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아무 쇠 막대기 하나에 사용해 봤다.


수우우웅.

신성이 닿은 부분이 사라졌다.


“버근가?”


이런 말이 절도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녹은 것도, 끊긴 것도, 부서진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사라졌다.


“절단면은 매끄럽고, 온도 변화도 없어.”


확실히 스킬 자체가 신기하고도 유용했다.

소모 신성은 대략 1 정도. 꽤나 많이 잡아먹는 편이다.


고작 손바닥만큼의 크기를 없애는데 1이 든다는 건, 30을 다 소모할 경우 손바닥 30개 크기의 철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많은 것 같아도 강철보다 좋은 금속들은 소모값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건 실험을 여러 번 해봐야 할 것 같아.”


나는 대장간 안의 여러 금속들을 모두 모았다.

나무도 모았고, 밖에 있는 흙과 나뭇잎 같은 것도 긁어왔다.


이후에 소멸이란 스킬을 여러 물질에 사용해 보며 스킬의 소모값을 파악했다.

당연히 신성이 바닥나면 그 자리에서 기도하여 신성력을 쌓았다.


기도를 하면 신성 재생이 빨라진다.


재생과 실험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밤을 샜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소멸의 기준표를 만들 수 있었다.


“일단 가장 코스트가 낮은 건 흙이군.”


흙에 소멸을 사용하면 많은 신성을 들이지 않고도 넓은 범위의 소멸이 가능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흙을 소멸시켰을 때 안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그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생물에게는 소멸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은 곤충에게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가장 코스트가 높은 건 흑철이었지.”


흑철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금속 중에 가장 비싼 금속이다.

평소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를 호흡할 수 있기에 마법검이나 마법 관련 마도구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여태 실험 결과로 따져봤을 때 마나와 관련된 것들은 코스트가 높았다.


내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


아직 실험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선에서 끝난 것이지, 형편이 나아지면 계속해서 실험할 생각이다.


“앞으로 이 소멸이라는 게 요긴하게 쓰일 텐데 성능을 빠르게 파악해야 돼.”


성직자로서 첫 번째로 얻는 스킬은 게임 후반까지 들고 갈 가능성이 높다. 플레이어들이 그 스킬을 중심으로 스킬 트리를 찍어나가기 때문이다.


혼돈의 사제는 플레이해본 적 없지만, 이 트리 또한 비슷한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이틀 후에 있을 그 머저리 새끼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소멸을 극한까지 활용해야 한다.


마음 같아선 도망치고 싶지만, 위에서 보고 있는 공허의 주인은 그걸 바라지 않겠지.


공허의 주인 입장에서 이번 전투는 팝콘을 뜯을 정도로 꿀잼 매치다. 지금부터 꾸준히 호감도를 올려놔야 나중에 스킬 얻기가 쉬워진다.


“개인적으로 좆같기도 하고 말이야.”


따지고 보면 평화롭던 내 인생이 꼬인 것도 모두 그놈 탓 아닌가.


나는 피로 회복제로 피로를 몰아내곤 그를 쓰러뜨릴 방법을 강구해냈다.


* * *



“참 재밌는 아이야.”


어둠 속에 나른하게 누워 있는 공허의 주인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귓가로 신도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요한의 기도에만 집중했다.


=====

-태초의 죽음이자, 무(無)요. 공허의 주인이시여.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으시고,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무시며,

끝없는 변화를 주시는 분이시여,

저희의 영혼을 당신의 끝없는 공허 속에 맡깁니다.


공허의 심연 속에서 저희를 보호하시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저희를 이끄소서.

저희의 마음속 혼란과 두려움을 거두어 가시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평안을 찾게 하소서.

···

저희의 세계에 당신의 흔적을 남기시어,

낡은 것들을 허물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저희를 도구로 사용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게 하시고,

당신의 무한한 지혜로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모든 영광을 당신께 돌리며, 이 모든 말씀을 공허의 주인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어떻게 이 기도문을 알고 있는 거지? 지금은 완전히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 기도문을 마지막으로 읇었던 사람은 무려 100년도 더 된 사람이다. 그런데 어째서 시골에 처박혀 있는 인간에게서 들려오는 걸까.


과연 저 아이는 이 기도문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뿐만 아니라 손대는 것마다 부서지는 그 말도 안 되는 현상도 의문으로 남았다.


“까도 까도 미스테리가 많은 아이야.”


공허의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감고, 밤새 들려오는 기도문을 찬미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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